‘활과 리라’
옥타비오 파스의 산문집 ‘활과 리라’(솔)는 눈부신 문학의 피라미드이다. 그가 노벨상에 빛나는 시인이고, 이 작품이 20세기 스페인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산문이라서가 아니다. 이 책은 인간과 시에 깊이 천착한 한 거장의 사색의 절정으로 인간의 존재를 깊이 느낄 수 있다.
“시는 앎이고 구원이고 힘이고 포기이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시적 행위는 본래 혁명적인 것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해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어디를 펼쳐도 가슴을 치는 문구들이 튀어나온다. 어떤 책을 읽으면서도 이만큼 감동과 부러움과 질투에 사로잡히지는 않았다. 아니 질투라기보다 무력감과 자괴감이다. 이 책을 보며 비로소 한국문학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보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시인이다. 그가 내리친 도끼로 정수리를 얻어맞으며 나는 내내 행복했음을 고백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으로 태어나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행복한 일이다.
나는 그가 살던 멕시코를 세 번 방문했고, 그때마다 아즈텍과 태양의 돌이 나의 피 속에서도 분출하는 착각을 느꼈다. 그는 우리에게 문학을 말한 것이 아니다. 시대와, 인생의 본질을, 생명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스페인어를 살과 뼈로 녹여 빼어난 한국어로 되돌려놓은 두 역자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문정희 시인·동국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