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해문화 53호 - 2006.겨울
황해문화 편집부 엮음 / 새얼문화재단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올해 초에 작은 계획을 잡았다.담배는 끊은지 오래되었으니 계획이 될 수 없었다.운동은 아이때문에 1년간은 힘들 듯 하다.책읽기 역시 물리적 시간의 한계가 있어서 양적으로는 더 늘릴 수도 없고 또 굳이 계획을 짜서 늘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대신 한동안 접었던 계간지는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올해부터 꾸준히 볼 계간지는 두 개다.<녹색평론>과 <황해문화>... 이 두가지는 현재 내가 중요시 여기는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둘 다 새로운 사회,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담론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갖는다.그러나 둘이 가르키고 있는 손가락 끝의 대상은 조금 차이가 있다.지향점으로 보자면 <녹색평론>조금 더 이상적이다.그러나 <녹색평론>의 글들을 읽어보면 굳이 이상적 지향만을 외치는 것들은 아니다.현실의 토대 위에 있는 <황해문화>의 학술적인 글보다 직접적인 글들도 많이 있다.생태주의를 표방하는 <녹색평론>은 근원적인 삶의 변화를 모토로 한다.이상적이며 실천에 있어서는 미시적이다.<황해문화>는 현실정치 위에 있다.근원적인 변화보다 현실토대 위에서의 변화를 중심에 두고 있다.이념적 지향으로 본다면 최소한 우파적이지는 않다.
나는 이 둘이 한 개인 내에서 조화로와야 된다고 믿는 쪽이다.두 책 창간 이념적을 유추해보면 변별성이 분명이 있겠으나 지면을 채우는 글들은 서로 공유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연대의 부분이 많다..생태주의로 대표되는 <녹색평론>의 모토였던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는 것이 <황해문화>의 내지 제호 밑에도 씌여있다는 것은 상징적이다..이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은 중의적이기도 하다.
황해문화 겨울호는 좋은 인연을 통해 얻게 되었다.올해 부터는 내 돈주고 사서 봐야겠다.(친환경 농사꾼들의 이야기를 인용하면 이 상황에 딱 맞다.친환경 농산물이 조금 비싸다는 말에 대해 ...'제대로 지은 농산물 제대로 된 가격에 사주면 우리농촌이 다 산다.' 라고 한다.별것 아닌 말 인 듯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황해문화 2006년 겨울호의 특집은 시기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또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87년 혁명 그 후 20년' ...곧 나오게될 2007년 봄호에 특집 2편이 실린다.
올해는 87년 6월 항쟁의 20주년 되는 해이다.며칠전 박종철 열사의 20주년 추도식이 그의 모교인 부산 혜광고와 그가 비극적 죽음을 맞았던 대공분실에서 있었다.발빠른 신문은 '민주화 세대 20년'을 정리했고 몇 몇 방송에서도 올 6월쯤 되면 다큐멘터리등을 선보일게 뻔하다.대통령도 20주년을 기념해서인지 개헌론을 툭하고 던져서 정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대통령의 개헌은 다른 말로 하면 '87년 시스템'을 이제 정리하자는 것의 상징적인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민주화 세대'들이 대거 포진해 있던 '참여정부'의 무능이 부각되면서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개혁 정치에 대한 피로함을 드러내고 있다.과연 지난 20년전의 열정은 사상 누각이 었으며 공허한 메아리였는가? 민주화세대는 어떻게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며 주저앉고 말았는가? 결국 민주주의라는게 해봐야 그게 그거인 것인가? <황해문화>는 질곡의 20년을 돌아보며 민주화세대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김선혁 교수는 최장집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87년의 민주화를 '운동에 의한 민주화'로 규정한다.그리고 87년 시스템이 대단히 불완전하고 협소하며 취약한 민주주의였다는 점을 지적한다.절차적 민주주의의 부분적 성취 정도로 파악한다.왜 혁명적 상황 속에서 개밥의 토토리만큼만의 성취를 얻어냈을까? 김교수는 87년 6월 항쟁이후 변혁의 불길이 3중위임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그러들고 말았다고 말한다.첫번째 위임은 시민사회의 헤게모니가 정치사회에게 주도권을 준 것이다.두번째 위임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성장한 계급운동이 90년대 들어서면서 힘을 잃고 시민운동에게 밀려나게 된 것이다.세번째 위임은 조금 더 일반적인 형태이다.오도넬이 말한 '위임 민주주의'의 보편적 특징이 한국에도 적용된 것이다.아무런 견제 장치도 없이 대통령과 정치엘리트들에게 정치를 위임한 것이 그것이다.3중의 위임구조하에서 잊혀져가던 87년의 기억을 다시 수면위로 떠올린 것은 노무현 정권의 등장이었다.국민들은 2002년 개혁을 원했고 당선이 불가능해보였던 노무현을 권좌에 앉혔다.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그 염원과 반대방향으로 향했다.노 정권은 외부요인론을 내세우며 '신자유주의'의 가속 페달을 밝았고 강력한 속도로 '보수혁명'을 추진했다.최장집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 '정서적 급진주의와 정책적 보수주의의 기묘한 결합'상태가 이어졌다.비정규직의 증가,사회양극화의 심화,잦은 정책 실패,보수언론의 맹공 등등의 이유로 참여정부의 지지율은 급락했다.이는 노무현 정권으로 상징되던 '진보세력의 위기론'으로 돌아왔다.(노무현이 과연 진보세력의 좌장이었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가 정답이다.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진보=노무현/열우당 이런 구조에 익숙해져 있다.) 집권 386들 역시 위임과정을 통해 정치권에 '젊은 피'로 수혈 되었다.(그람시가 말한데로..)이런 포섭 다음에는 또다른 차용이 있었다.정책 능력이 부족했던 집권386은 관료세력들을 안을 수 밖에 없게 된다.이런 거래를 통해 개혁과 보수적 관료가 기묘한 동거에 들어간다.그 결과는 현재 보이는 바와 같다.
민주화 세대 20년을 돌아보며 각 필자들은 회고와 반성,그리고 대안을 제시한다.조금씩 차이를 두고 있지만 '새로운 정당정치의 출현'을 대안으로 제시한다.박상훈 교수는 '정당 없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지적한다.대부분의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화 이후 공통적으로 불평등의 심화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은 정당을 통해 대중의 힘을 조직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정당은 배제되고 대통령 개인 위주로 구성되는 권력의 문제는 현 노무현 정권의 한 특징처럼 보이기도 한다.특히 임기말에 이르러 대통령은 정책을 직접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방식을 취한다.개헌론에 이어 신년 연설,그리고 신년 기자회견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은 TV를 통해 직접 국민들을 만나고 있다.이는 다른 말로 보면 정당정치의 붕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지금의 여당이 사분오열되어 있어서 그런 현상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은 집권초기 부터 대중주의적 여론 동원 방식을 택했다.정당이 붕괴된 것은 사회현상에 대한 다양한 이해관계와 주장들을 조직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강한 정당의 부재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축소시키고 선거를 중간계급 위주의 것으로 만든다'는 로이와 긴스버그의 지적이 귀에 들어온다.
물론 새로운 정당의 출현과는 다른 접근법을 제시하는 필자들도 있다.홍석만의 경우는 노동운동의 재정비와 계급적 통일에 기초한 전국적인 투쟁질서의 확립을 주장한다.홍석만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지난 20년간의 노동자 정치운동/노동자 정당 운동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결과이다.민주노총에 바탕을 둔 민주노동당은 원내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저자는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의회정치 안으로 노동운동 문제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한다.또한 민주노동당이 가진 내적 분열과 인적 구성의 편향성등은 반자본주의적 대안을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김정한은 80년대의 NL,PD론과 구분되는 민중주의적 시각의 복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전통사회의 도덕경제 모델에 바탕을 둔 민중주의는 대안모델의 부재로 신자유주의에 포섭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김정한은 새로운 시민권 확보 차원에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운동의 활성화를 제안한다.
흔히들 386세대라고 불리는 민주화세대는 이제 기득권층에 올라섰다.젊은 날 그들의 열정은 시간과 제도의 틀 안에서 퇴색되어 갔다.'87년 혁명 20주년'은 이제는 중년이된 민주화세대,그리고 청년으로 성장한 한국민주주의에 있어 새로운 성장을 위한 결절점이 되야한다.지난 시간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이제는 또다른 권토중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그렇지 않고 수구정당의 집권을 막자며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공포의 정치'에 기대어 '여론몰이'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성찰이 없었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