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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역할 - 장하준이 제시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발전과 진보의 경제학'
장하준 지음, 황해선, 이종태 옮김 / 부키 / 2006년 11월
평점 :
비경제학도로서 그리고 비즈니스계에 있지 않는 나로서는 이 책 읽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이 책이 별 셋인 이유는 내게 힘들었기 때문이지 책의 내용이 부족해서는 아니다)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 중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 일까 책장을 넘기면서도 갸웃 갸웃 거렸다.물론<국가의 역할>에서 장하준 교수가 하고자 했던 바....그걸 몇 줄로 정리하는 것은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다.하지만 무슨 잠언서도 아니고 대략적으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만 주워담기 위해 이 책을 보는 건 경제적으로도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기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경제학에 대한 사전 공부가 어느 정도 되어 있어야 한다. 옛 강의실 기억을 떠올려 봤자 '경제학 개론'이거나 '경제사' 정도인 나같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좀 고생해야한다.피구의 후생경제학이나 사무엘슨의 공공재 이론등을 떠올리기 위해서 일본의 경제신문사에서 나왔던 <경제학의 선구자>니 하는 류의 책을 뒤적여 보아야 했다.책이라는게 나아가는 맛이 있어야 된다.그런데 아파트앞 안전턱처럼 속도를 줄여가는게 반복 되다보면 결국 '책읽기의 악순환구조'가 발생하게 된다.저효율이 고짜증으로 폭발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 경제학적 지식의 일천함을 안타까와하며 또 이 책을 술술 읽어 내실 분들의 지식을 부러워하며 읽기는 읽었다.
<국가의 역할>에서 장하준교수는 적극적인 국가 개입론을 편다.그의 국가개입론은 제도주의적 관점에서의 개입이다.이 제도주의적 관점을 설명하기 위해 장하준 교수는 후생경제학,신자유주의,제도주의를 비교하여 설명한다.요약하자면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장하준 교수가 바라보는 시장에 대한 관점은 다양한 사회제도 중 하나일뿐 이라는 것이다.이념적으로 시장의 절대적 가지,시장이라는 유일 신을 섬기는 자유방임적 신자유주의자들과 비교하면 시장은 그리스의 올림프스간 구성원중 하나일 뿐이라는 관점이다.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시장의 실패를 세계의 실패가 아니다.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실패하면 인류는 대재앙을 겪을 것이라고 위협한다.그러나 제도주의적 관점에서는 다양한 제도들간의 상호작용으로 시장의 실패는 보완될 수 도 있다.
장하준 교수가 싸우는 대상은 명확하다.신자유주의의 이론과 신자유주의가 함의하고 있는 신화들이다.특히 국가문제와 관련해서 신자유주의자들의 반개입론은 이 책을 통해 철저히 비판당하고 있다.경제학사를 살펴볼때 대공황 이후 국가 개입주의는 너무나 보편적인 사상이었다.케인즈로 대표되는 개입주의는 70년대를 거치면서 역습을 받는다.통화주의자들의 공격이다.오스트리아 학파와 시카고 학파로 대표되는 통화주의자들은 '최소정부'를 주장하며 시장의 유연성을 도모한다.90년대를 들어서면서 초국적 기업과 투기자본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그 바톤을 이어받고 있다.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경제학계에 끼친 긍정적인 부분도 잊지 않는다.정보의 경제적 역할,경쟁의 중요성,국가 영역 밖에 있는 시장의 중요성 등이 그런 부분이다.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하에서 국가개입 여부가 역사적,지리적,환경적 요인등에 따라 구체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신자유주의는 개별 국가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국민경제를 무한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의 탈정치화를 목표로 하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산업 정책(우리에게는 익숙하며 당연한 듯 보이는)같은 것들은 일소해야할 독버섯이다.특히 이 문제는 저개발국가가 과거 선호하는 방식이며 그 효과가 현재에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산업정책 논쟁은 현재성을 갖는다.장하준 교수는 '선별적 산업정책'이라는 것으로 산업 정책을 정의한다.
'산업정책은 국가가 경제 전반에 효율적일 것으로 인식한 결과를,특정 산업-그리고 그 요소로서 기업-으로 하여금 달성토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저개발 국가가 산업정책을 펴는 이유는 간단하다.대기업을 키워서 정치자금 받겠다는 것보다는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다.국가는 직접 자원의 배분에 관여하여 특정 산업을 육성한다.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은 이 책에서도 여러번 등장하는 대표적인 산업정책의 예이다.이론적인 측면에서 강력한 정부의 금융통제를 통한 자원배분과 산업육성방식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장하준 교수는 산업정책을 통해 기업이 가진 미래 정보의 불확실성과 불충분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실제 저개발국들은-현재 선진국이 되어 잇는 나라들 역시- 고유의 산업정책을 통해 국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산업 정책론에 갖는 반감은 이상화된 완전경쟁 시장에 대해 갖는 환상때문이라고 말한다.물론 산업정책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하는 바는 아니다.산업정책 역시 비용과 수익의 관계가 발생한다.결국 제도적 다양성과 기술 변동,그리고 경제 이론의 발전등을 고려한 조절 메커니즘으로서의 산업정책은 효율적인 정책 수단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가 바로 '탈규제'다.이건 다른 말로 하면 정부의 간섭을 없애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장하준 교수는 규제와 탈규제를 구분하는 기준의 모호성에 대해 언급한다.또한 탈규제가 경제 영역에서 정부의 완전철수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힌다.시장의 효율성과 존립 자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규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또한 개발도상국이나 체제 전환국의 경우에는 시장 규제 정도가 아니라 시장 창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또한 규제개혁을 통해 발생하는 분배의 형태도 고민거리로 남겨두어야한다.규제 개혁과 관련해 이어서 등장하는 것이 공기업의 효율성문제이다.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널리 퍼뜨린-또는 경험상으로 익힌-공기업은 비효율적이며 실적이 저조하다라는 상식에 도전한다.특히 대만과 한국같은 신흥공업국의 경우 공기업의 성공은 주요했다고 평가한다.민영화론자들은 공기업의 이기적 대리인모델,징계 메커니즘의 부재,수익성을 기준으로 한 비효율성등을 예로 들며 공기업을 공격한다.흔히들 알고 있는 '무사안일 공기업인'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장하준교수는 민영화가 된다고 주인-대리인 모델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단지 국가의 자리에 대기업이나 대주주가 자리바꿈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또한 '퇴거론'에 근거한 -즉 무기력한 기업은 소비자가 퇴출 시킨다는 식의-징계 메커니즘 역시 민영화도입으로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한다.경험적으로 볼 때 공기업도 도산이라는 절차를 받게 되며 또한 반드시 지켜야하는 기업,주주 이익이 극대화된 기업조차 민영화로 그 퇴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결국 퇴거에 의한 징계는 기업의 효율성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기업 규모때문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수익성에 따른 공기업의 비효욜성도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즉 공기업은 단순한 수익성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럼에도 수익성을 측정해야 한다면 공기업이 지향하는 '공익목표'라는 목표지향성을 포함한 수치로 재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치 중 좀 납득이 가지 않는 것들이 있다.장하준 교수는 <국가의 역할>이 씌여진 시점은 2003년이다.세계화와 함께 등장한 초국적 기업의 증가와 외국인 직접 투자를 보여주기 위한 표에 문제가 있다.저자는 외국인 직접 투자가 대부분 선진국에서 발생했고 개도국은 극히 미미했다고 말한다.그러면서 1983년부터 94년까지의 투자 비중을 보여준다.국내 자본형성에서 외국인 직접투자비율을 나타내는 표에 의하면 한국은 외국인 직접투자가 상당히 낮은 국가로 평가된다.물론 한국은 차관이라는 형태의 투자방식을 과거에 고수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다.91-93년 수치를 보면 0.6%로 일본의 0.1%에 미치지 못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상당히 낮은 편에 해당한다.그런데 문제는 이 수치가 지나치게 과거의 것에 의존해있다는 것이다.한국에서는 90년대 중반 이후 외국인 투자규제 문턱이 낮아지기 시작한다.그리고 99년에 이르면 외국인 직접투자가 대폭증가한다.99년 4월 외환자유화 1단계 계획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탈정부화한 금융시스템과 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 약화,자본시장의 변화등은 기업부문의 자금조달구조를 변화시켰다.결국 98년부터 2000년 사이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액은 1965년-1997년 사이의 총 유입액과 유사해진다.장하준교수가 93년 이전의 외국인 투자액을 제기한 것은 초국적 기업의 진출과 투자라는 것이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세계적인 현상은 아니다라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였다.하지만 그 시점이 책이 써진 시점에서 10년전 자료에 근거하다보니 아무래도 현재성을 확보하기 어렵지 않나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