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민중사 세트 (2권 세트)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두 죽음이 있었다.선거로 뽑히지 않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1913-2006.12.26)가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전 미국인의 애도 속에 그의 장례가 치뤄질 것이다.미국 증권시장도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에서 새해 첫 장을 일찍 마감하기로 했다.한 해를 넘기기 전 또 다른 죽음,후세인(1937-2006.12.30)전 이라크 대통령의 죽음이다.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상당히 빨리 형이 집행되었다.바그다드에 있는 과거 그의 정보부 건물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다른 양상의 두 죽음은 그들의 정치적 공과를 떠나서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복잡한 심정을 갖게 한다.후세인이 이라크 민중들에게 행한 반인권적 행동은 결코 그의 죽음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방식이 과연 정당했는가는 마음 속에 큰 질문으로 남는다.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을 대신에서 권좌에 오른 포드,사자에 대한 예의인지 언론은 그의 업적을 미화하기에 여념없다.중동평화를 앞당기고 소련과의 핵협상을 통해 핵불안을 줄였다는 식으로 말이다.그러나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에는 그런 이야기 말고 숨겨진 진실들이 빼곡하다..

제럴드 포드는 1972년 이미 승산이 없다고 판단이 난 베트남전에 미련을 계속 남겼다. 1975년 4월 포드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의회가 내가 요청하는 시간에 맞춰 7억 2200만 달러의 군사 원조를 가용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남베트남이 오늘날 베트남의 군사적 상황을 안정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메이어게스호 선원 납치 사건을 빌미로 캄보디어 본토를 폭격한다.선원 39명은 중국측의 중재로 풀려나기로 되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폭격은 감행되었다.엄청난 인명사상이 발생했다.이 많은 무고한 사상자에 대해 포드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종로에서 뺌맞고 한강에 화풀이라도 해야지 베트남에서 구겨진 미국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다는 이유의 폭격이다.또한  포드는 취임 한달 만에 닉슨에 대해 면책특권을 준다.<르몽드>지는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발언을 했다. '닉슨을 제거함으로써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낳은 모든 구조와 그릇된 가치는 그대로 남게 되었다.' 하워드 진은 말한다.이것이 미국 주류가 정치를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정치,기업,군부가 유지하는 기성 체제는 형태를 바꾸고 공격에 대처하면서 기존 질서를 더욱 교묘한 형태로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는 당파성을 인식하라고 주문한다.<미국 민중사>를 이끄는 역사의 주인공들은 흑인,장애인,여자,노동자,인디언,그리고 피학살자 들이다.하워드 진은 자신이 당파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

'이 책은 일정한 방향으로 치우친 편향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다.그러나 나는 이런 편향에 얽매이지 않는데,왜냐하면 산더미처럼 쌓인 역사책들이 우리 모두를 다른 방향으로 크게 치우치게 만든 나머지-정부나 정치인들을 전율할 정도로 존중하게 만들고 민중들의 운동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게 만든 나머지-우리로서 굴종 상태로 속절없이 내몰리지 않기 위해 반대의 경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중도' '중립'에 우호적이다.스스로 '중도,중립' 적인 인물로 이미지 메이킹함으로써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게끔 노력한다.(아무리 그래봐야 -미안하게도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하워드 진은 이런 '합리적'인 사람들이 '구세주'에 의존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즉 위기의 시대를 탈출시켜줄 그런 사람말이다.그들은 4년에 한번씩 투표소에 가서 두 명의 부유한 앵글로 색슨계 백인 남자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구세주를 뽑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하워드 진은 이런 '구세주'라는 관념이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 문화 전반에 구축되어 왔다고 말한다.

표현이 '구세주'여서 괜한 공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구세주'를 찾는 사람들은 '내가 뭐 그리 큰 걸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그가 그렇게 완벽하리라고 생각한건 아닌데..' 라며 의회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 고개를 돌릴 빌미를 줄 것 같다. 유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글을 읽어 보라는 말 이외에 달리 해줄 말이 없다.우리 나라의 경우만 들어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인데... 지난 대선 때- 그리고 실패가 드러나고 있는 - 현직 대통령에게 보낸 열광은 하워드 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구세주'관념에 다른 말이 아니다. 다른 접근의 정치적 지평을 이야기해도 그들은 늘 '현실'을 이야기 했으며  임기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선 크게 실망을 하여 이젠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져버렸다.(실망의 늪에  빠진 그분들에게 광명의 빛이 다시 비춰지길..)

하워드 진은 이 힘빠진 분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이 책을 썻음직하다?

 ".....이런 역사(민중의 역사)를 들춰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 인간임을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인간적 충동을 발견하기 위함이다.이것은 더 없이 깊은 비관주의의 시대에 조차 놀라운 가능성을 버리지 않기 위한 것이다."  (아멘!)

하워드진의 관점에서 사회의 부를 독점하는 1%를 제외하면 나머지 99%는 민중이다.그들 중 하층 계급을 빼고는 대개 체제의 간수 역할을 한다.자본주의가 가장 잘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바로 이 중간계급층이다.이들은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의 완충지대가 된다.그리고 체제가 스스로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양보해주는 특권들에 스스로 만족하며 상층계급으로 의식적으로 편입한다.하워드 진은 체제가 만들어 놓은 이 완충지대-중간계급-이 변혁을 위한 열쇠라고 믿는다.이 체제의 간수들이 만약 시스템에서 이탈하기 시작한다면 변혁은 급물살을 타게 되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변혁 운동이 이 '중간계급의 불만을 조직'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물론 중간계급을 하나의 층으로보는 일원화된 관점이 있다.또한 그들의 헤게모니를 분석하고 재전유하는 방식은 말하지 않는다.)신자유주의의 시대에는 이러한 외부의 상황 변화가 급격하게 만들어지고 있다.하층 계급으로 수많은 중간층이 편입되어 가는 추세다.

하워드 진은 이렇게 말한다.

"99%가운데 자기 자신을 똑같이 궁핍한 계층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체제의 간수들과 죄수들 가운데 그들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기존 체제는 점점 더 고립되고 무력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수많은 사람들이 굳게 결심한다면 엘리트들의 무기와 돈과 정보수단의 통제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천 페이지가 넘는 <미국 민중사>의 수많은 학살과 봉기,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를 전부 다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우리는 알고 있다.기존의 교과서도 이 정도는 가르친다. 현재의 사회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역사 속 사람들이 피를 흘렸는 지를.물론 교과서의 수치만 잘 외워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생각 바른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하지만 행간을 읽고 그 행간의 의미에 눈을 돌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알고 있다.우리의 일상적인 평화는 사실 핏덩어리 위에 구축된 것이라는 걸 말이다.사실 인류의 기원은 폭력과 희생아니던가..문명인이라고 하면서도 그 태곳적 카인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금 무슨 무장봉기를 하자는 말은 아니다.다만 우리의 역사가 그런 지평위에 있었다는 것을 왜 외면하냐고 묻는 것이다.또한 아무런 일도 없어보이는 일상 바깥에는  이 책에 넘쳐나는 갈라진 목소리와 핏덩어리들이 사방에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아....알고 있다고...TV에서 봤다고...그렇다면 내년에는 지나가다 그 현장에 한번이라도 끼여서 그들의 고민을 좀 들어보자.모니터 안에서 바라보는 역사는 내 안방의 온도만큼이나 따뜻하다.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미국 민중사>에 나오는 현실도 차갑기만 하다.지금 길바닥에서 터져나오는 역사도 차갑다.그 차가운 바람 한번쯤 맞아보자.차가운 바람 한번 맞아보지 않으면서 사무실에서 교실에서 작업실에서 '정치는 허무해' '이제는 한국사회가 정말 염증나'라고 말하지는 말자.

일나 애버나시의 시의 한 구절

"나는 당신의 양심 긁는 소리, 나를 받아들여라"

<미국 민중사>를 올해 마지막으로 읽었다.한 줌의 지배세력의 욕심과 비인간적 자본주의와 전쟁이라는 장난질에 의해 죽어간 수 천 수 만 명의 이름없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한 해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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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12-31 18:31   좋아요 0 | URL
엄두를 못내고 있는 책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또 읽어보고 싶어지는.
결국 해를 넘기네요
리뷰를 읽고 나니 더욱 읽어야 할것 같네요 ^^

클리오 2006-12-31 22:5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정말 봐야 되는데.. 언제 진지하게 도전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별 다섯 리뷰의 도움을 받아, 꼭꼭 도전하렵니다!!! 뜬금없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드팀전 2007-01-01 10:08   좋아요 0 | URL
네...몽님도 클리오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저는 조금 전에 해운대에서 해뜨는 것 보고 회사로 들어왔습니다.이제 곧 집으로 들어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