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랑 아기가 처가에  올라간지 어느덧 열흘.원래 지난 주 토요일에 내려올 계획이었다.토요일에 아이를 데리러 올라갔다.그런데 다음날 눈이 많이 왔다.처갓집 뒤란의 장독대에 함박눈이 쌓였다.디지털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했다.그러나 아이 뒤치닥 거리 하느라 그 예쁜 장면을 찍지는 못했다.첫눈이 함박 내려버려서 아이와 함께 내려오지 못하고 그냥 혼자 기차를 탔다.텅빈 기차역에서 넓은 하늘가를 뒤덮고 있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눈 내리는 건 역시 넓은 하늘을 배경으로하고 봐야된다.앞이 탁트인 산중에서 바라보는게 가장 좋을 것 같다.하늘이 넓은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바라보는 것도 과히 나쁘진 않다.내리는 눈처럼 가볍게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강 위로 뛰어드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묘한 슬픔을 안겨준다.사라진다는 것이 저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우리들의 인생이라는 것도 슬며시 자유낙하하여 차가운 강물 위로 종적을 감추는 눈송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때쯤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부여앉고 싶은 마음이 절절해진다.

열흘째 돌아온 총각으로 지내고 있지만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퇴근 후 매일 하던 청소를 조금 뜸하게 한다는 것과 결혼후 꼬박 꼬박 챙겨먹던 아침을 자주 거른다는 것의 차이뿐이다.와이프가 있을 때는 매일 청소를 했다.하루는 청소기만 돌리고 다음날은 청소기 돌리고 한경희 스팀 청소기로 바닥을 한번 닦아준다.중간 중간 아기 목욕시키는 것 도와주고 설겆이도 하고 뭐 이러다 보면 대략 10시를 넘긴다.나는 투덜거리는 페미니스트인가 보다.어차피 하게 될 걸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 해서 본전도 못찾았다.그래도 힘든 건 사실이다.가끔은 내가 축구선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회사에서의 하루는 전반전에 지나지 않는다.퇴근길 운전하면서 대략 20분이 유일한 휴식 시간이다.음악을 들으며 하프타임의 달콤함을 누린다.집에 들어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다시 후반전이 시작된다.10시가 넘어서면 힘이 빠지고 좀 과장하면 정신이 몽롱하다.그냥 번잡스러운 마음에 몽롱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다행히 아이가 잠들어주면 와이프랑 10시 이후에 차라도 한잔 할 수 있다.그러나 어떨 때는 11시가 다 돼어서야 아이가 잠든다.와이프가 아기 재우고 씻는 동안 잠깐 책을 본다.그리고 아기 깨기전에 와이프도 눈을 부쳐야 하니까 불을 꺼줘야된다.몇 마디 말을 나누다 보면 둘 다 스르르 잠이 든다.

투덜이 페미니스트라 늘 투덜거리지만 와이프가 나보다 100배쯤 힘이 든다는 것은 알고 있다.새벽에 틈틈이 깨는 아이를 돌보는 일은 아내의 몫이다.아기는 아토피 때문에 자다가도 자주 얼굴을 긁어댄다.그걸 내버려 둘 수는 없기때문에 그 때마다 아이를 안고 있거나 팔을 잡아 주어야한다.와이프는 그래서 자주 깨어날 수 밖에 없다.거기까진 도와주지 못한다.출근한다는 핑계로 그걸 면해보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아기 백일 축하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한참 오래된 듯 하다.그 이후의 사진은 아직 컴퓨터로 옮겨 놓질 않았다.지금의 예찬이에 비하면 저때는 더 아기같다.그사이 많이 컸다.지난 주 토요일에 올라갔더니 더 큰것 같다.대가족인 외갓집 식구들 사이에서 아이가 훌쩍 커버렸다.낯을 가리기 시작했다는 아내의 말에 행여 아빠 얼굴을 일주일 사이에 잊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했다.하지만 기우였다.우리 아들은 아빠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일주일 만에 만나서 번쩍 안았더니 아이가 까르르 하고 웃는다.아이와 함께 하는 '아빠볼 깐따삐아'놀이를 했다.(별거 아니다.아이의 양손을 잡고 내 볼을 톡톡 치며 입으로 '깐따비아'하고 노는 거다.내가 만든 건데 우리 아기를 웃기는데 잘 통한다.) 일주일 만인데도 우리 아기는 잊지 않고 천사 같이 '까르르'해주었다.옆에서 보시던 장인 어른이 '역시 니네 아빠 밖에 없구만..허허' 하면서 질투어린 웃음을 띄셨다.장인 어른의 질투어린 웃음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더 큰 목소리로 '깐따비아 ..예찬아..아빠 볼,아빠 볼'하며 놀았다.

일요일에 혼자 내려온 후 아기가 감기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아닌 듯 하다.아기가 첫 눈을 본 날 첫 감기에 든 셈이다.육아 일기에 그 내용을 썻다.첫 감기를 이기고 나면 더 튼튼해질 거라고 생각한다.열도 나고 코도 막혀서 힘들어 한단다.그러나 우리 아기 예찬이가 잘 견뎌내리라고 믿는다.(화이팅!!)

밤이 깊었다.아내와 아기가 무척 보고 싶은 밤이다.옷장에 걸려 있는 아기의 옷에서 '까르르'하는 아기의 웃음 소리가 쏟아진다.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와이프가 무척 그립다.사진에서 처럼 와이프는 참 예쁘다.내가 가끔 아내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하는 말이 '중부권 최고 미인'이다.여러모로 참 훌륭한 사람이다.이번 주 금요일은 아내의 생일이다.아무래도 함께 하진 못할 것 같다.다음 날이나 되어야 올라갈 수 있을테니까..어떻게 축하해주어야 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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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0 0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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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0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6-12-2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정말 고운 분이시네요. ... 저희 예찬이도 낯가림을 시작했는데, 아빠가 그렇게 잘 놀아줬는데도 아빠가 안고 돌아다니지 않는 이상 아빠 품에서는 칭얼칭얼 거려서 제가 좀 민망해요... 아가들은 감기가 빗겨가지 않나봐요.. 전, 열도 안나고 해서 감기 걸린지도 모르다가, 너무 밤에 잠을 못자서 병원에 혹시나 하고 데려가봤다니까요.. 하여간 육아란, 엄마아빠 모두 화이팅해야 되는 일인가봐요..

느티나무 2006-12-2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주 금요일은 아내의 생일이다." ㅋㅋ 제 아내도 이번 주 금요일이 생일인데요...참, 신기한 일도 다 있네요 ^^

2007-01-15 2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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