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음 -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 이용규 저서 시리즈
이용규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놀랐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베스트 셀러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160쇄 라는 엄청난 재 인쇄에... 무엇보다 지독한 기독교 관련 서적이란 점에서 놀랐다. 그저 기독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고 치부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 기존의 기독교 서적들은 이 처럼 베스트 셀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 나름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를 정리해 보자면...

첫째! 세상에서 최고라고 부르는 그곳에 다녔고 그곳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라고 부르는 대학은 어디? 아무리 그 누가  뭐라고 우겨도 [서울대] 라는걸 부인하기는 힘들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최고라고 부르는 대학은 어디? 이 또한 아무리 그 누가 뭐라고 우겨도 [하바드] 일 것이다. 이용규 선교사는 세상이 최고라고 부르는 그 곳에서의 욕심, 명예를 내려놓고 허허벌판과 같은 몽골로 온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껏 얼마나 서울대와 하바드를 향해 살아왔던가, 그렇게 향해 살다가 성공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실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패한 사람이 더 많을지도...) 그들을 향해 내려놓을 것으로 이 최고의 것을 꼽았으니 어찌보면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그것들보다도 더 중요한게 따로 있더라 하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고, 성공한 이들에게는 겸손의 미덕을 가르쳤을 것이다. 어쩌면 수험생을 둔 부모님들은 서울대, 하바드를 향한 그 꿈을 놓지 못해 나중에 내려와도 좋으니 이 분처럼 기도하고 응답받으며 서울대, 하바드를 가렴...하는 의미로 책을 읽었을런지도 모른다. 완전히 이 책의 의도를 잘못 짚은 것이기는 하나 베스트 셀러로 만든 공신으로 꼽지 않을 수가 없다.

둘째! 기도와 응답으로 꽉 찬 책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베스트 셀러이기 때문에 이 책을 골랐지 어떤 내용을 알고 고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절대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 책은 이용규 선교사의 삶을 주관하시고 이끄신 주님과의 대화로 꽉 차있는 책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주님께 묻고 그 응답을 따랐으며 , 응답이 없으면 행하지 않았던 신실한 믿음의 증거인 것이다. 그리고 그 응답대로 하였을 때 어떻게 성공하는가를 보여주는 책인 것이다. 여기서 성공은 절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닌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공, 주님 보시기에 가장 예쁜 그런 성공인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배운다. 하나하나 주님께 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운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 기도에 응답받기를 소망하게 된다. 오랜 시간 교회에 다녔던 친구는 내게 물었다. 그 응답이라는 것이 주님의 음성이 막~ 들리느냐고... 그걸 어떻게 답변해야할지 몰랐지만 그 응답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게는 말씀으로 주시기도하고 어떤 생각으로 주시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 친구는 모태신앙으로 오랜시간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단 한번도 주님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적이 없는 것이다. 주님께 묻고 대답을 기다리는 경험을 해본적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소망을 품게해 준다. 나도 듣고 싶어! 라는... 그래서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게 만든다.

셋째! 소박한 사람냄새가 폴폴 나는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고민할까? 무엇에 대한 두려움, 걱정이 가장 많을까? 학비, 집세, 의료문제, 장래 문제 등등... 이 책에는 이 모든 고민들이 들어있다.  너무나 가까운 내 문제들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도 들어있다. 바로 기도.... 기도 했을 때 주님은 그 믿음의 선물을 받드시 주신다. 이 세상에서 미처 다주시지 못한 선물들은 하늘에 쌓아두고 계신다. 믿음이 부족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에게는 미라클, 기적 이라는 이름으로 선물을 주신다.  몇백억을 버는 부자의 고민이 아니요, 당장 잘곳이 없어서 드리는 간절한 기도. 그 기도들로 가득한 책이다. 이 책을 만든 규장이라는 출판사의 간판에는 이렇게 글귀가 써있다. "기도할 수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이용규 선교사는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박한 사람이다. 주님의 일을 하기에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려고 오히려 우리보다 더 힘든 광야로 내몰아 힘들고 지친 생활 가운데 두신 그런 사람이다. 여기엔 그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불쌍해 보이지가 않는다.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주님... 지금 동일하게 이시간 이곳에서 우리와 나와 함께 하시는 그 주님... 그 주님을 경험하고 싶고 주님께 위로받고 싶기 때문에 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꼽자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것을 좇다가 힘빠지고, 실패해서 힘빠지고, 지치고 지쳐 이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것이다. 재작년인가... 한때 느림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명문대를 나와 오지로 들어가 사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세상을 웅성웅성하게 만들었고, 귀농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으면 귀농하지 못하면 주말농장이라도 꾸리며 사는 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여전히 사람들은 천천히 가고 싶은 소망들을 품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으로 내려놓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고 마침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나오니 내용이 무엇인지를 떠나서 사고 보는 것이다. 읽고 보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제목만 보고 자신의 마음의 상태만 보고 책을 집었다가 다분히 기독교적인 이야기에 놀라 읽다 포기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참 쉼을 얻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11:28)"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4:13)"

네 가지로 생각해봤는데 이것은 다분히 나의 생각이다. 아니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그러므로 이건 아니야! 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일 그래 그런것 같아. 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지금 그 자리에서 기도를 했으면 좋겠다. 나는 책을 읽다 말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통성기도를 했다. 얼마나 하나님과 소통을 안하고 살았는지 가슴이 답답해서 가슴을 치며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게 해준 주님의 손길에 감사를 드리고 이 책을 읽은 후 기도의 통로가 열려 무릎 꿇게 하시고 입으로 소리내어 고백하고 기도케 하시는 주님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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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9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쁜하루 2007-04-1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베스트 셀러는 늘 피하는 타입! ^^ 이 책도 친구가 권해줘서 읽었는데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이쁜 우리 태양님이 이쁜 초콜렛빛 상자에 제가 좋아하는 초콜렛과 황금빛이 예쁜 소리는 더 이쁜 오르골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오르골에서는 이웃집 토토로의  주제가가 나와요....너무나 예쁜 소리를 내면서.. ^^

앞으로 더 예쁘게 많이 사랑하면서 살겠습니다.

새학기 시작해서 또 책도 많이 못읽고 게을러지고 있네용...다시 힘을 내서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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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3-1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프레이야 2007-03-15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양님이란 말 오랜만이에요^^ 좋으시겠어요.
저도 어제 옆지기에게 초콜릿 상자 받았어요. 한달전에 전 그냥 넘어갔는데
미안하지? 이러더군요. 그런 거 생각 안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나이들어가면서
더 그런 게 생각나나봐요. 내년에 자그마한 거 하나 준비해서 줘야겠어요.^^

이쁜하루 2007-03-16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감사합니다!!
 



그동안 일하면서 보지 못했던 공연이랑 고대하던 전시를 며칠 사이 몰아쳐 보았다. 정신없고 바쁘긴 했지만 뿌듯한 것이.....흐흐흐흐흐....

역시 내 심장은 공연장에서 제일 심하게 팔딱 거리는 것 같아.. ^^

[1] 뮤지컬 에비타


뮤지컬 에비타는 마돈나가 찍어서 유명했었던 그영화를 뮤지컬화 한것! 나와 태양님이 매우 아끼는 배우인 [김선영]씨가 에비타 역할을 맡았고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역에는 [송영창]님이 맡으셨다. 살을 일부러 찌우신건지 덩치가 퍽 있으셨고 중후한 음성은 페론역을 맡기에 딱 알맞았다.  성녀와 마녀! 두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었던 에비타...그녀는 죽어가면서 한남자의 여자로 사랑받고싶다며 노래한다. 세상일에 너무 관심갖느라고 내 남자를 못챙기는 내모습이 투영되어서 인지 엄청 질질 울어버렸다. ^^;;; 울고 난 후 찍은 사진이라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있고 눈은 퉁퉁 부어있다. ^^

[2] 뮤지컬 [하루]



내가 너무너무 아끼는 배우 [김재만]님이 주연은 아니었지만 감초역할을 아주 맛나게 해주었던 뮤지컬! 국내순수 창작뮤지컬로써는 아주 대박의 흥행 성적을 거두었지. 극 자체의 힘보다는 오만석을 비롯한 배우들의 힘이 컸지만 생각보다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이날도..울었던가.... ^^;;;; 무대가 너무 높아서 목에 담이 든것 같다.

[3] 이솝빌리지 - 퍼니밴드


브라스 밴드 퍼니밴드가 공연을 한다고 해서 다녀왔다. 어린이 뮤지컬이였는데  어른 네명이서 맨 앞자리에 앉아 공연을 관람했다. 어찌나 쑥쑤럽던지.... 악기 연주보다는 극 위주이다보니 퍼니밴드의 음악을 맘껏 즐길수 없어서 아쉬웠다. 특히나 우리가 아끼고 이뻐한 안종민 군이 음...넘 귀엽고 멋지지는 않아서 ....ㅋㅋ (저기 파란색 사자) 아쉬웠다는... ^^ 다음엔 성인들을 위한 공연에 꼭 가보고 싶다.

[4] 르네마그리트 전시



내가 그동안 일했던 곳도 미술관인지라 같은 날인 월요일 문을 닫아 볼수없었던 전시. 그리하여 쉬는 기간 다녀오려고 후다다닥~~ 다녀왔다. 함께 도슨트했던 동생이 이곳에서 도슨트를 하고 있어 더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초현실주의 작가라고만 알려져있지만 사실 그에게는 그 면보다 다른 여러가지면들이 혼합되어있다. 다양하게 그안의 미술사조를 느낄수 있어서 즐거웠다. 특히 2년여만에 막을 내린 그만의 미술사조 바슈! 꽤 흥미로웠다 ^^

[5] 뮤지컬 올슉업



정말 정말 즐거웠던 공연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든 노래로 만들어진 공연! 시종일관 웃음이 떠나질 않고 의외의 모습때문에 박수와 함께 폭소가 터져나온다. 솔직히 기대안하고 봤는데 너무 재밌어서 친구들과 한번더 보기로 약속한 상태 ^^ 나중에 울엄마 아빠 모셔다가 같이 보고 싶을 정도! 맘마미아 이후 이렇게 커튼콜때 춤을 추듯, 콘써트에서 방방 뛰듯 한건 첨인듯 ~~~~~ 강추 합니다!!!!!

이로써 바쁘디 바빴던 쉬는 날들의 나의 행적을 마칩니다.  바쁘게 다니다가  집에 있으려니 웬지 허탈해서 아침부터 친구들과 연락해서 이공연 저공연 정보 알아보는 중.... 앞으로 볼것 같은공연에는...

뮤지컬 클로저 앤 댄버, 넌버블 퍼포먼스 난타, 연극 달링, 뮤지컬 올슉업(한번도 볼예정) 등이 있다. 요거...돈이 얼마냐... ^^;;; 그래도 보고싶은걸어떻게..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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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7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많이 보셨네요. 부러워요^^

이쁜하루 2007-02-0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정신없이 놀러만 다녔네요! 이제 내실을 기해야할 때.. ^^
 
내 이름은 빨강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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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설 속의 '화자'를 어디까지 신뢰해야 하는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살인범이 끝까지 독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뻔뻔스럽게 속이는 소설이다. 이 악한은 객관적이고 선량한 목소리를 가장하여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들을 혼란시키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뒤통수를 때리고는 낄낄거리며 즐거워한다.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자] 속 화자 역시 사건의 진상을 결코 온전한 형태로 독자에게 보여주는 일이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실제 벌어진 일과 전혀 딴판인 설명을 독자에게 진실인양 공개하기도 한다. 비단 추리소설만 그런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소설 작품에서, 화자는 자신의 이념을 선전(도스또예프스끼의 [악령]을 생각해보라)하고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며 정당화(미스터 리플리는 이 방면에서도 천재적이다)해서 독자에게 납득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편협한 화자는 작중 특정 인물에 치우친 애착을 표하거나 찬양하기도(토마스 만의 [트리스탄]을 읽어보라) 하고, 다른 문화를 저급한 것으로 비하하는가 하면(셜록 홈즈 소설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고결한 인물을 비열한으로, 천박한 악녀를 영광된 성녀로 묘사하기 일쑤다. 때문에 우리는 소설 속의 화자라는 존재에 대해 한번쯤 심각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그는 얼만큼 정치적으로 공정한 사람일까. 그는 자신의 윤리관이나 미학관, 취향을 우리에게 수긍하도록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화자가 사건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은 과연 얼마만큼 정확한 것일까.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은 세월에 의해 흐려지고, 왜곡되고, 부풀려진 것이 아닐까.

 터키 출신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 [내 이름은 빨강]이 흥미롭다면, 이는 분명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 인물들의 인간적 결함 때문일 것이다. [빨강]은 주인공 카라와 셰큐레를 비롯해서 십 수명의 인물들이 교대로 화자 역할을 맡아 자신을 변호하는 소설이다. 인물들은 마치 동네야구에서 서로 공을 던져보겠다고 싸우는 애들처럼 각 장마다 번갈아가며 이야기꾼으로 나선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자신은 결백하고, 자신의 미학적 관점은 알라가 보시기에 올바른 것이며, 자신의 외모는 멋지고, 다른 사람은 멍청이거나 악당이거나 신성 모독자임에 틀림없다고 고자질한다. 등장인물들 간에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코란의 신성성과 셰큐레의 미모 뿐일 정도로, 화자들은 서로 다른 주장과 진술과 기억으로 독자에게 수십가지 서로 다른 사실을 제시한다. 심지어 주인공인 카라조차도 자신의 증언에서와는 달리, 세밀화가들의 묘사에서는 바보 멍청이에 무능력한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구성은 기존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텍스트 읽기를 독자에게 체험하게 한다. [빨강]에서는 수많은 주관적 진술들이 한데 모여 커다란 객관적 사실을 드러낸다. 독자는 [빨강]의 인물들을 결코 신뢰하지 않고 그들이 하는 얘기가 전부 사실은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지만(심지어 세 명 중 하나는 살인자라는 사실까지도), 그럼에도 이 모든 진술들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하나의 화자에 의한 단일한 설명'보다도 더 큰 사실성과 설득력을 얻게 된다. 독자는 기존 소설에서 작가의 의도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던 처지에서 벗어나, 같은 이야기를 그린 세밀화의 여러 판본들 가운데서 한 점을 선택하는 화원장처럼 진상이 무엇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또한 본래 화자들은 저마다의 세계와 이데올로기를 갖고 독자를 자신에게 맞춰 코드화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존재이다. 화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독자는 [빨강] 속에서 각각의 화자들이 시도하는 여러 종류의 개별 코드화에 대응해야 하고, 꼭 화자의 숫자 만큼의 서로 다른 '백과사전'을 펼쳐 보아야 하며, 화자가 말하는 이야기가 지닌 개연성을 추론하는 작업 역시도 훨씬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진다. 텍스트에 대한 독자의 협력 작업이 기존의 소설에서보다 매우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빨강]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낯설게 하기'의 기법에 있어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둬내고 있다. [빨강]은 기본적으로 이슬람권 소설이며, 비이슬람권 독자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질 16세기 이스탄불의 채색 세밀화를 둘러싼 미학적-종교적 논쟁을 다루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오르한 파묵이 강력한 박진법을 구사하며 이 화려하고 신비스런 세밀화의 아름다움을 '눈에 보이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인리히 라우스베르크의 수사학 이론에 따르자면, 박진법은 독자가 '재현된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제시하는 것'이자 '직접 보여주는 것처럼 말하는 것'에 해당한다. [빨강] 전체를 수놓고 있는 세밀화에 대한 묘사, 셰큐레의 아름다움, 이스탄불 겨울의 풍광 등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듯 선명하고 독자의 상상을 유도해내는 면에서 박진법의 한 경지를 일궈내고 있다. 오르한 파묵의 묘사는 알랭 로브그리예보다 신비롭고, 나보코프보다 사실적이며, 기계 장치를 묘사하는 카프카의 꼼꼼함만큼이나 정성스럽다. 이처럼 독자가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잘 아는 것처럼'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빨강]은 텍스트의 의미 생성과 문체에 있어 두루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는 [빨강]이 이슬람권 작가에 의해 쓰여진 작품으로, 이슬람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플로베르나 네르발같은 대문호도 피해갈 수 없었던)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로운 작품임을 지적하고 싶다. 소설 속에서 이슬람 전통을 고수하려는 자들과 유럽 르네상스의 성과물을 도입하려는 자들은 모두 공평한 발언 기회를 얻어 자신들의 미학관과 종교관을 피력한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의 이견을 두루 소개하면서도, [빨강]에는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하나의 동위 주제가 관통하고 있다. 파묵은 이슬람권 작가임에도 이슬람적 가치에 함몰되어 서구의 문물을 배척하는 것을 경계하며, 한편으로는 고유의 정신적 유산이 사라지고 빛을 잃어가는 현실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한다. 파묵의 소설은 이슬람권 사람들의 정신으로, 이슬람의 사고 방식으로 이야기하면서도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열린 입장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여러 화가가 힘을 합쳐 완성해낸 하나의 채색 세밀화처럼, [내 이름은 빨강]은 다양성 속에 존재하는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한다. 세밀화 '유수프의 유혹'이 지닌 화려한 색채만큼 놀랍도록 아름다운 문체와, 비범한 세밀화가의 실험적 그림처럼 독자의 지위에 대한 색다른 실험을 시도한다. 기존의 소설들이 사실상 독자를 가르치고 속이고 농락하는 텍스트 전략에 기대고 있음을 생각할 때, [내 이름은 빨강]이란 소설을 읽는 것은 독자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하나의 감동적인 특권에 가깝다. [내 이름은 빨강]은 전쟁에 불타버리고 세월에 좀슬어버린 옛 세밀화의 운명과 달리, 오래도록 보존되고 읽혀야 할 현대의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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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하루 2007-01-30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추천이 많은 리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내이름은 빨강을 읽으며 "이 책 좋아요?" 라는 질문을 참 여러번 받았다. 얼른 읽고 어떻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인데 생각만큼 진도가 빨리 나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다는건 아닌데..참 희한하지...
이 리뷰가 도움이 되어서 책 읽기에 가속도를 좀 붙였으면 좋겠다.
 
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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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영웅 전설을 읽으면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을 먼저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미... 에서 보여준 그의 입담은 뭔가 정갈하게 다듬어지고 뒤로 살짝 감출줄도 아는 테크닉이 엿보였다면 지구...에서는 처음부터 모든걸 까발려 보여주고 생각 나는대로 일필휘지 써내려간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삼미를 보고 지구를 본 느낌은 아하~~ 이 양반이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지구에 다 있었구만!! 이었다. 삼미는 책의 종반부 그것도 종반부의 종반부 즈음 가야 진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만일 박민규 소설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삼미를 먼저 읽고 지구를 나중에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구를 먼저 읽으면 박민규 사상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기에 삼미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영웅전설의 주인공은 바나나 맨이다.  그도 분명 지구영웅 중 한명일진데 어디에도 그에 대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그는 현재 한국 땅에서 새벽반부터 야간반까지 영어 강사로 활약중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찌하여 자기 몸도 제대로 추수리지 못하는 인간으로 추락한 것인가....  바나나맨은 진짜 정신병자일까... 아님 진짜 영웅이었을까...

 박민규는 지구영웅들을 통해 미국을 꼬집는다. 아니 미국의 프랜차이즈 국가로 전락한 이 나라를 꼬집는다. (삼미에서와 같이..) 바나나맨을 통해 속은 허옇게 미국화 서양화 되고 겉 껍데기만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이 나라 사람들을 꼬집는다. 그리고 안되는 'R' 발음을 애쓰며 교정하는 나를 꼬집는다. 그의 꼬집기와 비틀기는 깊지도 얕지도 않다. 딱! 고자리에서만 아프고 말 정도의 것이다. 그래서 뭐 재미나 감동이 오랜 시간 지속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번이라도 되돌아볼 여지를 마련해준다면 그것으로 괜찮은 거 아닐까...

이왕 읽은 김에 하는 마음으로 카스테라도 집어 들었다. 환타지와 현실 세계를 묘하게 넘나드는 동물원 같은 느낌의 책이였다. 으윽....멀미가 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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