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적 이희재 선생님의 만화로 처음 접했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드디어 책으로 읽었습니다. 너무 늦게 읽었나요... 이희재 선생님께서 원작의 감동을 그대로 얼마나 잘 만화로 옮겼는지 알수 있게 되었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어떤것으로 읽어도 그 감동만은 어쩔수 없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의 안쪽 표지에 [어린 시절의 꿈을 꾸다] 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저는 책을 읽고 난 후에 또는 읽기 전에 이렇게 표지에 글을 쓰는 습관이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거의 모든 책에 이렇게 글을 썼는데(어떤 의미에서의 내 책이다! 라는 표식같은 거였지요) 결혼 후에는 잘 안써지더군요. 아무래도 남편과 함께 하는 책이고 공동 소유이다 보니 그러한가 봅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꿈을 꾸다..라는 글을 쓴건 책을 읽기 전이였던거 같습니다. 어린 시절 보았던 그 악동이를 닮은 제제..그 제제가 보고싶단 의미가 컸던것 같습니다. 실제로 나의라임 오렌지 나무의 어린 시절은 꿈을 꿀만한 넉넉함이 없습니다. 글로리아 누나에게 맞고 또또가 형에게 맞고 아버지에게 허리띠로 맞고... 그에게 꿈이라면 꿈이랄까..그것을 가능케 하는건 오롯이 밍기뉴와 뽀르뚜가 아저씨뿐이였습니다. 그마저도 제제가 어른이 되기전에 아직 꿈을 더 크게 가지기도 전에 사라져 버립니다.

제제와 함께 있다보면 뒷목이 뻣뻣해오고 목구멍이 자주 매캐해집니다. 혼자 책상 머리에 앉아 제제 때문에 우는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싶지 않아 참다보면 점점더 뒷목이 당겨옵니다. 그냥 소리내어 울고 맙니다. 사실 나의 어린시절도 그다지 꿈을 꾸기에는 버거운 날들이였습니다. 제제에 비해 짖궂은 장난은 하지 않았기에 야단 맞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너무나 가난했기에 단 한번도 산타클로스나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얼마전 본 영화 폴라 익스프레스를 보면서 나이  서른이 된 이 나이에 산타클로스가 믿고 싶어졌습니다. 어린 시절 단 한번도 성탄절에 찾아와주지 않았던 산타클로스를....

예전에 톰소여의 모험을 읽고 난 후 그의 어른된 모습이 많이 궁금했더랬죠. 제발 아주아주 잘 자랐기를 바라면서... 제제.. 잘 살고 있겠죠? 그는 작가가 된걸까요?  멋진 차를 끌고 뽀르뚜가 아저씨가 제제에게 했던 것처럼 또 다른 제제에게 꿈을 꾸게 도와주고 있을까요? 꼭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픈마음 다 치유되고 멋진 어른으로 자신의 어린 아들 딸에게 밍기뉴 한그루를 선물해주는 멋진 어른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네요. 이희재님이 그리신 만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보면 어른이 된 제제가 아빠에게 얻어 맞은 떼떼라는 아이에게 빵을 사주고 딱지를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건 아마 이희재님의 상상이 빚어낸거겠죠? 전 꼭 제제가 그런 삶을  살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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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2006-01-23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읽고 리뷰 썼는데 같은 책을 읽었네요.
멋진 책이죠.....

이쁜하루 2006-01-23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멋진 책이죠! ^^ 테스님 드뎌 쓰신거예요? 그럼 읽어봐야겠다.
 
 전출처 : 물만두 > [퍼온글] 허난설헌의 시와 그림

허난설헌의 시와 그림 | 자료방 2005/09/10 11:33
http://blog.naver.com/suran10/40017392851

허난설헌 作

그녀는 세 가지의 한을 입버릇 처럼 말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여자로 태어난 것..

다른 하나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그녀는 짧은 생에 커다란 아픔 앓이만을 하다가 젊디 젊은 나이에

자는 듯이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강릉의 명문가에서 두번째 부인의 둘째 딸로 태어나,

아버지는 경상 감사를 지냈던 동인의 영수이고(화담 서경덕의 제자),

큰 오빠 허성은 이조, 병조 판서를, 둘째 오빠 허봉 역시 홍문관 전한을 지냈고,

홍길동전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허균 역시

형조, 예조 판서를 지낸 인물입니다.

임금은 동생 허균을 너무나 아끼어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노라고 말하라며

울며 애원까지 하게 되지만,

결국 허균은 봉건 사회 타파와,이상 세계 실현에 실패한 것을

슬퍼하며 죽음을 택합니다.

허난설헌의 본명은 초희(楚姬). 별호는 경번(景樊),

난설헌은 호라고 합니다.(許蘭雪軒, 1563∼1589: 명종 18∼선조 22).

그녀는 어릴 적부터 놀라운 글로 찬사를 받아왔으며,

당시의 마음에 들지않는 사람을 거부할 수 조차 없었던

사회 속에서의 한을 시에 담아 한탄하며 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閨怨(규원)

비단띠 비단치마 눈물 흔적 쌓였음은

임 그린 1년 방초의 원한의 자국

거문고 옆에 끼고 강남곡 뜯어 내어

배꽃은 비에 지고 낮에 문은 닫혔구나

달뜬 다락 가을 깊고 옥병풍 허전한데

서리친 갈밭 저녁에 기러기 앉네

거문고 아무리 타도 임은 안 오고

연꽃만 들못 위에 맥없이 지고 있네



그녀는 미쳐 피지도 않은 나이 15세에 '김성립'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 김성립의 방탕한 생활과 기방 출입은 그녀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반면 김성립은 늘 재주가 빼어난 자신의 부인 난설헌에게

열등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늘상 허균의 눈에도 그리 보여 "문리(文理)는 모자라도 능히 글을 짓는 자.",

"글을 읽으라고 하면 제대로 혀도 놀리지 못하는데

과문(科文)은 우수한 자"라고 매형을 평하기도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불행할 수 밖에 없었고,

시댁에서는 밖으로만 도는 아들과 아들보다 뛰어난 며느리를 곱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설헌에겐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었다고 하는데

모두 한 해 차이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녀는 일찌기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던 듯..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라는 시를 지은 적이 있는데, 그녀는 27세되던

어느 날 갑자기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고서
"금년이 바로 3·9의 수(3×9=27, 27세를 뜻함)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를 맞아 붉게 되었다"하고는 눈을 감았다 전해집니다.



그녀는 죽기 전, 자신의 모든 작품을 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데 난설헌의 글이 너무 아깝고 억울하여 동생은 모두 태워 버리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녀가 만일 평범한 가정 속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사랑받고 한 집의 며느리로서 대우 받으며 자식들을 그리 떠나보내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슴 저미는, 설움 담긴 글들을 우리는 단 한 편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테지요.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아내가 죽은 후 재혼하였으나, 아이를 얻지 못하였고 죽은 후에도 본처가 아닌, 후처와 합장하였다고 합니다..

숨막히는 당시 유교 사회에서 철저하게 버림받고 희생당한, 빼어난 미모와 재능의 소유자인 허난설헌의 아픔이 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얼마 전해 지지 않는 몇 편의 시와 그림 속에서 배어 나오는 듯 합니다. 당대의 학자였던 오빠 허봉에게서 '두보의 소리를 네게서 들을 수 있으리라'라는 극찬을 받았던,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천재 허난설헌의 삶은 곧 남존 여비,여필 종부 등의 유교적 사상과 가치관에 희생된, 한 여인의 슬픔이라기보다, 한 시대의 슬픔입니다...


哭子(곡자)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 마주보고 나란히 서 있구나

백양나무 숲 쓸쓸한 바람..

도깨비 불빛은 숲속에서 번쩍이는데

지전(紙錢)을 뿌려서 너의 혼을 부르고

너희들 무덤에 술 부어 제 지낸다

아! 너희 남매 가엾은 외로운 혼은

생전처럼 밤마다 정답게 놀고 있으니

이제 또다시 아기를 낳는다 해도

어찌 능히 무사히 기를 수 있으랴

하염없이 황대의 노래 부르며

통곡과 피눈물을 울며 삼키리..


자료..출처: "김억 한시역선",허난설헌의 한 의 문학,김수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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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실비 > [퍼온글] 책정리 달인들의 노하우 10가지

 많이 읽기로 유명한 일본의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을 이고 이사를 다니다 결국엔 지하1층, 지상 3층 규모 의 빌딩을 사들여 서가 전용으로 꾸몄다. 이것이 그 유명한 ‘고양이 빌딩’이다.

“책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요?”

(1) 분류 공식의 노예가 되지 말라〓개인 서가를 정리하면서 도서관의 분류법을 따를 필요는 없다. 도서관의 분류법은 전문적이어서 일반인은 책을 찾는데 오히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연역적이 아니라 귀납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

(2) 모든 책은 3가지로 분류하라〓책을 중요도에 따라 3가지로 분류한다. 1종은 바로 곁에 두지 않으면 작업 효율이 떨어지는 책이다. 2종은 가끔 찾아보는 중요한 책, 3종은 더이상 찾지는 않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책이다. 1종은 책상 위나 옆의 책장에 둔다. 2종은 서재의 책장에 꽂아두고 3종은 상자에 담아 다락방이나 베란다 등 빈 공간에 둔다.

(3) 책이 많을 땐 간단한 분류 코드를 만들라〓1종과 2종의 경우 문학,경제와 경영, 철학, 실용서적 등 취향대로 5, 6개 범주로 나눠 선반을 달리해 정리한다.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책이 100권을 넘으면 다시 소장르나 저자의 국적 등 1, 2개의 하위 분류 코드를 활용해 분류한다.

(4) 꺼낸 책을 다시 꽂을 때는 왼쪽부터 꽂아 나간다〓꺼냈던 자리에 꽂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왼쪽부터 꽂아나가면 오른쪽 끝부분 책들은 이용 빈도가 낮은 책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책장이 가득 차면 오른쪽 끝부터 빼내 1종은 2종 책장으로, 2종은 3종 상자로 옮기면 된다.

(5) 서재 결혼시킬 땐〓결혼해 부부의 서가를 합쳐야 할 때는 우선 책의 분류 방식에 합의해야 한다. 합의가 어려울 경우 분류법이 까다로운 쪽을 따르는 것이 좋다. 깐깐한 분류법을 따르던 사람은 허술한 분류 체계에서는 책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같은 책이 2권 있으면 책의 여백에메모를 해놓은 것 등 ‘사연’이 있는 책을 살린다.

(6)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의 구분〓읽은 책은 읽은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읽지 않은 책들은 읽고 싶은 순서에 따라 배열하는 방법이 있다. 독서 취향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알 수 있다. 아니면 읽지 않은 책은 책의 제목이 거꾸로 읽히도록 뒤집어 꽂아두면 “저 책을 빨리 읽어 바로 꽂아두어야지” 하는 압력도 받을 수 있다.

(7) 독서를 장려하려면 책을 한군데 모으지 말라〓책이 가까이 있어야 읽게 된다. 서재를 중심으로 정리하되 TV나 거실 소파 옆, 화장실, 식탁 등에 책을 놔둔다. 화장실에는 가벼운 시집, 침대 옆에는 단편소설, 식탁옆에는 가벼운 상식책, 거실에는 중장편 소설책이 좋다.

(8) 책장은 비싼 걸로 충분히 준비한다〓책장을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책을 사다 꽂아두고 싶은 생각이 든다. 또 책장을 비워놓아야 책을 사고 싶어진다. 그래야 읽게 된다.

(9) 책 잘 버리기〓내게 필요없는 책들도 요긴하게 읽어줄 사람들이 많다. 초중고교 도서관이나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공부방, 고아원, 장애인 시설, 낙도의 학교 등에 기증한다. 초중고교 단위로 매월 혹은 분기별로 여는 벼룩시장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증정본은 보내준 사람의 서명이 들어간 부분을 떼낸 후 버리는 것이 예의다. 버리지 않고 특정 기관에 기증할 때는 서명 밑에 간단한 사유를 적는다.

(10) 정기 간행물은 목차만 떼낸 후 버린다〓논문집, 월간지, 주간지 등은 필요한 부분만 분철하고 목차를 떼내 파일에 정리한 후 나머지는 버린다. 언제 어디에 실렸는지만 알면 인터넷에서 찾아 보면 된다.

참고〓이어령 교수, 헨리 페트로스키의 ‘서가에 꽂힌 책’, 하야시 하루히코의 ‘정리 잘하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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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 개정판 정채봉 전집 8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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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8년 겨울의 문턱에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를 만났습니다. 뻗뻗하면서도 한지같은 느낌이 나는 표지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어항속의 물고기를 한쪽눈을 지긋이 감고 노려보는 고양이 그림이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표지 안쪽에 있는 너그럽게 웃고 있는 정채봉님의 미소가 너무 맘에 들었고,  책의 뒷표지에  있는 류시화 시인의 글은 일품이였으며,  정성과 유머와 충고와 권유가 베어있는 글 한편 한편 모두 감동이였습니다.  그 중에 최고의 감동은 마지막 작가 후기였습니다.

[물 한방울도 아프지 않게]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작가 후기에는 선생님이 분신처럼 아끼는 수첩 안쪽의 내용물 변천사가 쓰여져 있습니다.  충청도 괴산의 야산길에서 만난 찬송가를 너무나 아름답게 부르던 소녀에게 받은 종이학이 그 시작이였고, 그 종이학은 종합검진때문에 들렀던 병원에서 만난 옆사람에게 건네졌습니다. 옆 사람은 검진을 기다리며 "이 만큼이라도 담담할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 데려가 주셨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였고 선생님은 "이 종이학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어린이가 접은 겁니다. 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라며 종이학을 건냈습니다. 그 분은 주머니속에서 작은 성서를 꺼내어 그 종이학을 소중히 담고 다른 갈피에서 메모지를 꺼내주었습니다. 그 메모지에는 옆 환자분이 요즘 자주 읽고 있는 시라는 알프레드 테니슨의 '모래톱을 건너며' 라는 시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여러날이 지난 어느날 전철에서 만난 실연 당한 여성에게 위로를 하가 위해 그 시를 건네 주며 종이학과 시에 읽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그 시를 건네 받은 후 하늘에서 떨어지는 벗꽃잎을 수첩으로 받은거라며 한번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벗꽃잎을 잎으로 후~ 불어 선생님의 수첩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나 지하철에서 만난 한 여학생이 중앙 도서관 강의 때 들었다며 벗꽃잎 지금도 지니고 계세요?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수첩속의 시를 건네 주었고 선생님도 그 꽃잎을  꺼내주었다고 하네요.. 그 여학생의 준 작자 미상의 시 [만약] 의 전문이 적혀있습니다. 이 글을 쓰신것이 1998년... 그리고 선생님은 2001년 하나님 나라고 가셨지요.. 지금 선생님이 살아 계시다면 선생님의 수첩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아마도 그 시를 누군가에게 주고 또 무언가를 받고 계시겠지요.

나는 98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졸업 선물로, 또 99년 새해 선물로, 입학 선물로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욕심내지 않고 처음의 그 마음으로 살길 바라면서, 더 이상의 자기안의 욕심으로 힘겨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정작 나는 이 책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제 아침에 갑자기 이 책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 그때 참 많은 이들에게 선물해주었지. 우리 졸업 동기들에게도 선물해주었지. 그들은 이책을 잘 간직하고 있을까... 어제 오후에 남편과 함께 함께 헌 책방에 갔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펴낸 날짜를 보니 1998년 11월 11일 1판 1쇄의 책이네요. 1500원을 주고 사왔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그랬던것 처럼 또 소중히 한장 한장 넘기며 마지막 후기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책을 읽었습니다. 알라딘 서점에 들어와보니 1월 9일 정채봉 전집 이라하여 깨끗하게 다시 출판되었네요. 많은 이들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자신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좀더 순수했던 그때,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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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6-02-19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몇 년간 알라딘 다니면서 본 최고의 서평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쁜하루 2006-02-1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렇게 최고의 칭잔을 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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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 읽었습니다. 그냥 잘 안 읽혀 졌습니다. 이 책은 산게 2003년이였는데 꺼내서 읽다가 몇장 읽고 책상 위에 올려놓고 또 꺼내 읽다가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러다가 얼마전에서야 다 읽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하고 한참 생각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내가 전우익님을 너무 과소평가 했기 때문인듯합니다. 느낌표를 통해서 만난 전우익님은 정말 그냥 농사꾼 같았습니다. 너무나 편안하고 우리 할아버지처럼 나를 얼래고 달르듯 천천히 쉽게 말해주는 그런 농사꾼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책을 펼쳐서 읽는데 그곳엔 우리 할아버지는 없었습니다. 사회를 향해 날선 비수를 던질수 있는 지식인이 있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처럼 봄이면 땅 일구고 여름이면 김매고 가을이면 수확하고 겨울이면 자식들과 화로불에 앉아 자식들 이것저것 챙겨주며 옛날 이야기를 하는 분은 아니였습니다. 정성껏 키운 농작물이 잘 자라주어서 가을에 맛있게 먹는거로 만족하는 그런 할아버지는 아니였습니다. 전우익님은 그냥 단순히 농사를 짓는것이 아니라 세상을 짓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난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그리워했나 봅니다. 어쩌면 이렇게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한 희망같은건 접은지 오래였나봅니다. 내가 세상을 향해 아무리 떠들어봤자 변하는것은 없다고 포기하고 살았나 봅니다. 그래서 삼겹살 집에서 정치 얘기로 떠들고 가끔 언성 높여 싸울때 귀를 막고 고기만 그렇게 집어 먹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이렇게 오래 읽혔나봅니다. 눈 감고 싶은, 귀 닫고 싶은 이야기들은 자꾸 꺼내시니 내 마음에서 한마디 한마디를 밀어내었나 봅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가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듯했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세상을 향해 눈감지 말자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좀 알고, 우리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지켜드리려면 농촌이 지금처럼 빚으로 허덕거려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 또 행위적으로 앞에 나서서 뭔가를 할 용기는 없지만 방관하지는 말자! 라는 생각은 갖게 되었습니다. NGO 단체들 참 많은데 깊게 생각해서 나의 뜻과 맞는곳에 가입하고 활동할 생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쪽 마음은 자꾸만 그럼 옛날이야기는 누가 해주는거예요~~ 라고 말하는건 어쩔수가 없습니다. 친한 친구도 이 책이 그렇게 안읽혀졌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그 친구도 구수한 할아버지의 음성이 듣고 싶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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