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아름다움 - 김영숙 아줌마의 도발적인 그림 읽기
김영숙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위 사진은 표지 그림인데 음..사진이 좀 크다. 딱 책 표지 만한 그림이 보이길래 너무 좋아서..ㅋㅋ

이 책을 선택한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가정 첫번째 이유는 표지그림이 너무 맘에 들어서이고 두번째 이유는 이글을 쓴 이가 아줌마라는데 있다. 세번째 이유는 그냥 그림읽기도 아니고 도발적인 그림읽기라는데 있었고 마지막 이유는 지독하다 라는 말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독하다라는 말보다 더 한 독함인 지독함 이라는 말이 왜 독한년..이라고 하면 욕처럼 들리는데 지독한것! 이라고 하면 칭찬처럼 들리는지..^^;;; 여튼 말도 안되는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지독한 아름다움을 만났다.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것은 2004년 1월 얀 베르메르를 알게 된 후였던것 같다. 그냥 본다는 개념과 안다는 개념의 차이를 처음으로 알게해 준 작가였고, 알면 알수록 더더욱 궁금해짐을 느꼈다. 그러면서 미술에 관심을 가져보자! 뭐 이런생각을 갖게 된것 같다. 미술에 관련된 쉬운 서적을 뒤척이다가 어느분의 리스트를 발견하고 다 찜 해놓았으나 형편상 딱 한권만 일단 사자! 했는데 바로 지독한 아름다움이였다. 저 위의 네가지 이유와 더불아 아무래도 누군가 써놓은 리뷰에 뻑이 간게 아닌가 싶은데 지금 다시 와서보니 kimji님의 리뷰였던거 같다. ^^ 이 책은 산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되지는 않지만 아쉬움이 남긴한다.

첫번째 아쉬움은 그림보다 글빨이 좀더 도발적이였으면 하는 점이다.

클림트의 유디트를 비롯하여 많은 작품들이 실려있는데 모두 여성들의 벗은 모습이였다. 뭐 도발적이라고 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문체는 그라지 도발적이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누군가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 집중하여 읽지 못한다고 읽지 말라하였는데 나는 어렵고 잘 안읽혀지는 책일수록 지하철이나 버스에 읽으면 더 잘 읽히고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대담한책읽기의 저자중 한명이 말하길 누군가 자기가 책읽는걸 지켜보고 있다는 의식에 모르면서도 아는척 넘어가는게 아니냐고도 하더군..^^;;) 어쨋든! 지독한 아름다움을 지하철에서 읽으려고 꺼냈는데 음...살짝 민망하여 닫게 되었다. 내용은 소리내어 읽어도 무관할 정도로 건조했는데 그림이 벗었다는 이유로 읽고 싶어 죽겠음에도 그냥 가방에 넣어야했던 가슴아픈 이야기.. 좀더 도발적인 문체를 사용했으면 더 흥미로웠을텐데 그점이 좀 아쉽다.

두번째 아쉬움은 신선함이 떨어진다는데 있었다.

많이 대중화 되고 많이 다루어졌던 내용들을 많이 볼수 있었다.  특히 위 그림에서 보여지는 옷벗은 마하와 옷 입은 마하는 미술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디서나 쉽게 볼수 있는 그런 그림이다. 좀 더 색다른 것을 기대했다면 조금은 이런곳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건 당연한거겠지.

세번째 아쉬움은 군더더기 같은 한조각 수다.

뭐랄까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지만 분위기도 그럭저럭 좋고 나쁘지 않은 음식을 먹었는데 공짜로 준다면서 요구하지도 않은 후식을 갖다줬는데 그 후식이 정말 엉망일때... 뭐 그런 느낌이랄까. 오히려 도발적인 아줌마의 글빨을 망치는 한조각이였다. 어미나 선생의 마음이 책 쓰는 말미에 발휘가 되셨나보다. 유머라기보다는 씁쓸한 느낌이 드는 한마디였다.

이 책은 미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책이다. 무엇이든지 비교 하게 되고 내가 조금  알지..하는 마음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평가하기 시작하고 살짝 평가 절하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랬던것 같다. 감히 나 같은 사람은 어디에서 구하지 못할 작품도 있었고 와우~ 이런거였구나! 하는 신선함도 곳곳에 있었음에도 지금 나는 아쉬움만 들추고 있으니 헛되고 헛되도다 인간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kimji > 아줌마는 힘이 세다
지독한 아름다움 - 김영숙 아줌마의 도발적인 그림 읽기
김영숙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필자의 '여는 글'을 꼭 읽어야 한다. 이 글이 왜 굳이 여성적 시선에서 펼쳐지고 있는지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는 글'을 읽지 않으면 이 책 읽기의 절반은 실패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편협한 시선, 혹은 꼬부장한 의도로 읽힐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왜 많은 이들이 그림 읽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지 그리고 독자들이 그런 글들을 열심히 찾아 읽게 되는지에 대한 답변이 실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 사랑하는 이의 모든 것이 알고 싶듯, 나는 그 수많은 그림들이 나를 보는 시선들을 알고 싶었다. (생략) 새로 생긴 남자친구가 얼마나 멋있고, 내게 자상하게 대해주는지를 자랑하고 싶어 커피 값까지 내주면서 친구들을 불러모으듯이, 나는 나를 매혹시키는, 그리고 나를 꼼짝 못하게 하여 나의 생활을 지배하고 간섭하는 그림이란 멋진 애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이상향이나 개인적으로 끌리는 매혹의 동기체가 일치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그림을 보고 각각의 느낌은 감상자마다 다 다르겠지만 그 느낌이 분명 일치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인 것이다. 또한 그 느낌은 다르지만 각각의 다른 이유로 인해서 그 그림을 손꼽는 일치도 가능하다. 나는 김영숙 아줌마와 그런 일치점을 찾았다.

그림, 화가에 대한 일화와 뒷이야기, 그 그림의 미술학적인 접근과 더불어 필자의 아주 개인적인 감상이 무리 없이 잘 매치되어 있다. 그렇기에 미술관련 서적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썩 괜찮은 그림 읽기의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림 읽기가 아니라 그림 감상에도 무난히 적용될 것이다. 그건 필자의 세심한 배려 때문이었다. 강한 자신의 어조를 보이고 있으면서도 보는 이의 개별적인 다른 감상에 대한 충분한 허용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 그림은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내가 느낀 느낌도 제대로 된 감상이었구나’, 싶은 인식을 만들어 준다는 것, 그것은 그림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 서적을 즐겨 찾아 읽는 이에게는 이 책은 다소 싱거울 수 있다는 오점도 있다. 워낙에 유명세를 탄 그림들과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부분은 '아줌마의 도발적인' 시선이라는 부제와 ‘여는 글'에서 밝힌 필자의 전제를 인식한다면 굳이 꼬부장한 마음으로 읽지 않아도 될 듯싶다. 그러나 이 부분은 분명히 제시되어야 할 부분이다. 또한 각 그림에 관련된 내용은 그리 긴 편이 아닌데, 그래서였는지 필자는 조금 부족함을 느꼈는가보다. 각 장의 말미에 '수다 한 조각'이라는 코너를 달아 대화체의 글을 실어놓고 있는데, 그 부분이 오히려 책의 이미지를 감(減)하게 만든다. 뭐랄까, 가르치려고, 혹은 이미 작품에 대한 개별적인 감상이 정립되어 있는 독자에게 필자의 사고를 다소 강요하려는 몸짓으로 읽힌다고 할까. 그런 의도를 부여하고 싶었더라면 부차적인 기교가 아니라 글에서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게 해주었어야 바람직했다고 생각된다. 사소한 부분이기는 하다, 그래도 조금 더 깊이나 조금 더 전문적인 그림 읽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이 책은 피해야 할 이유인 셈이다.

도발적인 그림 읽기, 라는 부제는 그림 자체가 도발적인 것이 아니라 필자의 시선과 필체가 도발적이라는 말이다. 여성,이라는 시선을 굳이 고집하면서 서술된 부분이 그러하고 필자가 기술한 각 장의 제목이 그러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내용은 그리 도발적이지 않다(그건 어쩌면 도발, 을 기대한 독자의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지극히 상식적이고 또한 지극히 착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것이 아줌마의 힘일 것이다. 그악스럽고 주책 맞은 이미지가 아니라, 정당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 그것이 김영숙 아줌마의 힘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림 읽기의 시작을 시도하려는 독자에게 훌륭한 안내서가 되기에 충분한 요인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포 선라이즈 + 비포 선셋 (2disc) - [할인행사]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 에단 호크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추억의 영화를 떠올리다 보면 그 영화를 함께 봤던 이가 생각이 나고 그 사람을 떠올리다보면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일들이 생각나고... 그렇게 그렇게 추억의 영화들은 나를 추억속으로 여행을 데려다 준다.  비포썬라이즈 이 영화는 태양님을 만나기전에 만났던 사람과 본 영화이다. (나는 그를 여섯번째 남자라고 부른다)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흔해져서 자기마저 그것에 보태고 싶지는 않다던 사람이였고,  자기는 손 잡으면 섹스까지 가는데 너무 쉽게 간다며 헤어지던 그날까지 손 한번 못잡아 본 사람이였다. 그의 시니컬 함에 반해 혼자서 애태우고 마음 졸여하고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였다. 비포 썬 라이즈는 두 주인공의 하룻밤 사랑과 다시 만날것에 대한 약속으로 내 기억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한 내 사랑의 흔적으로 기억되어 있다.

2004년 비포선라이즈에 얽혀있는 내 추억때문에 지금의 내 사랑인 태양님과 영화를 본다는 것은 죄를 짓는것 같은 기분이였다. 왜냐하면 비포선셋은 또다시 나를 추억속으로 데려갈테니.. 그리하여 혼자 영화를 봤다. 러닝 타임 79분... 처음엔 깜짝 놀랐다 영화가 짤린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실제 시간 79분이 영화속의 79분이라고 한다 2주동안 같은 시간에..해가 지려고 하는 그 시간에 바삐..찍어댄 영화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비포선셋은 나를 추억속으로 데려가지 못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이 너무 커서 추억의 영화는 더이상 나를 추억으로 인도하지 못한는것 같았다. 그냥 예전의 영화와 비교하고 분석하는 내 모습만 있을 뿐이였다. 

9년전 befoer sunrise하고는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영상에 치중을 하고 느낌을 중요시 여겼다면 이번 영화는 느낌을 가질틈을 주지 않고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화들로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그렇지만 힘겹거나..이게 머야~~ 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편안했다. 적당히 주름살도 있고 적당히 성숙해진 또 적당히 더 아름다워진 두사람 만큼이나 예전의 관객들도 세월과 함께 적당히  나이들고 적당히 생각도 깊어졌고 또 적당히 삶에 굴곡도 겪어 예전의 그 아릿한 감정은 없었지만 편안함만은 가득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태양님과 한 번 더 봤다. 이제 비포선라이즈도 비포선셋도 태양님과의 영화가 되는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나..그건 나의 착각이였다. 여전히 비포썬라이즈와 오버랩될때에는 여섯번째 남자가 생각이 났고, 별것 없이 얘기만 해대는 영화에 지루해하는 태양님을 다독여 가며 영화를 봐야했다.  줄리 델피의 노래가 자장가처럼 느껴졌다. 내 옆에 앉아 피곤을 억누르지 못해 졸고 있는 태양님을 위한.. 이제 비포선셋 하면 태양님이 떠오르겠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애도인 2013-04-04 0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람, 신경쓰이게 하네.......지금은 어떻게 지내나?
 
친절한 금자씨(2disc) : 디지팩
박찬욱 감독, 이영애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지금껏 보아온 영화중에 최고로 꼽는 영화는 [그대안의 블루] 이다. 뭐 내용이나 구성을 떠나서 색깔들이 나의 눈과 뇌를 자극했고 그것들이 깊게 각인 되어서 떠나갈줄을 몰랐다. 그 후로 본 많은 영화들은 때로는 나를 울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감동에 벅차 말을 잊게도 했지만 오래도록 각인되지는 못한채 그다음영화에 계속 밀려났다. 그런데 오랜만에 그대안의 블루에 견줄만한 작품을 만났으니 바로 [친절한 금자씨] 이다.

영화를 보기전 많이 걱정했다. 워낙 혹평이 난무한지라 돈 아까운짓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사람들이 왜 이 영화를 싫어한걸까? 이렇게 좋은 영화를.... 라며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 앞에 사진 같은 영상들이 펼쳐졌다. 배경과 금자씨의 자태와 잠시 멈춘듯한 화면과 모든 색감이 그대로 잡지책에서 톡 튀어나온 인테리어 사진 같았다. 그 칙칙한 지하방이 그토록 멋들어지게 보인 까닭은 바로 적절한 색깔들의 배합 때문이였을것이다.  빨간 눈화장이 그토록 고와보이는것은 다른곳은 최대로 비워두었기 때문일것이다.

사람들이 왜 이영화에 대해 그렇게 혹평을 했는지 이런 저런 글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색감들에 홀려서 옳고 그름의 판단같은건 하지 못했다. 그냥 오랜만에 만난 강렬한 색채에 모든 이성들이 마비를 일으킨 것 같다. 복수의 잔인함과 우스꽝스러움, 시원찮은 결말.. 내게 이 따위 것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내게 좋은 것 하나때문에 모든것이 가려진 것이다. 난 늘 이런식이지 뭐..^^;;

복수시리즈 완결편이라 했는데 난 올드보이도 복수는 나의 것도 보지 않았다. 단편 영화에서 네팔인 여성농동자 찬드라의 여권을 관리하던 여권관리국 직원이 이금자 씨 였다는 것 밖에는.. 본것이 없다. 그래서 더 비교 대상도 없고 기대감도 없어서 더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봐야겠다. 이번엔 그 사진 같았던 장면들을 더 깊게 새기면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드무비 > 두릅부추비빔밥 같은 시인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강화도에서 혼자 살고 있는 집엔 빨간 양철지붕으로 된 안채와 파란 양철지붕을 인 행랑채가 있고 흰 슬레이트를 얹은 화장실이 있다. 나는 이를 자금성, 청와대, 백악관이라고 부른다.(128쪽)

보일러 기름이 떨어지면 뒷산에 올라 직접 나무를 해다가 때고, 마니산에서 두릅을 따다 뒤꼍의 부추를 뜯어 넣어 비빔밥을 해먹고 혼자 사는 시인이 있다. 아니 참, 속이 허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면 날계란도 하나 톡 깨어 먹는다지. 동리 사람이랑 바닷가에 나가 그물을 던져 숭어를 잡기도 하고.

동네의 다른 집들엔 제비가 집을 지었는데 시인의 집엔 제비가 깃들지 않아 친하게 지내는 후배 여성 시인에게 하루 놀러오라고 전화를 거는 마흔 중반의 시인. 제비가 여성 호르몬 냄새를 맡고 혹시라도 찾아오지 않을까 하여......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을 할퀴고 지나가도 몸을 다 내어주면서 뒤통수를 긁는 사람'이라고 오래 전 김훈은 시인 함민복을 묘사한 적이 있다. 가난과 불우는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함민복은 홀로 사는 늙은 어머니를 고향 이모 집 근처 경로당에 딸린 방에 세들어 살게 하면서도 "어머니 이층집에도 살아보시네요."하고 짐짓 너스레를 떤다. 어머니가 잠시 신세지는 경로당에 딸린 방이 어떤가 구경하러 내려왔다가 고향 사람들 보기 부끄러워 어두워질 때까지 서점에 숨어 있었으면서도...

1990년인가 91년, 그의 원고를 받기 위해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을 때 함민복 시인은 버팀목이라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다. 우울 씨가 다니는 출판사 이름이 버팀목이어서 뭔지 안심이 되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함민복과 유하의 이름은 항상 붙어다녔다. 그런데 당시 내가 헷갈렸던 시인은 진이정과 함민복.  왜 그랬을까? 가난 때문에? 병 때문에?

유하 시인이 동숭동의 무슨 화랑에서 자신이 찍은  '구보 씨의 1일'이라는 단편영화를 처음으로 상영했을 때 나는 친구와 그곳을 찾았다. 영화는 하나도 좋은 줄 모르겠고 아무튼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계단 옆에 유하 시인과 진이정 시인이 함께 서 있었다. 진이정 시인은 아주 시니컬해 보이는 인상이었고 나는 그들을 지나치며 함민복 시인은 어디 있을까, 속으로 생각했다.

함민복 시인은 금호동 친구의 집에 꽤 오래 얹혀살았다. 그는 나도 두 다리 세 다리 건너 아는 이였는데 어느 날인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데 골목 모퉁이에 계란판이 켜켜이 쌓인 자전거가 있어 취한 김에 계란 한 판을 훔쳐가지고 춤을 추듯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아마 그 계란은 함민복 시인의 입에도 들어갔으리라.

어느 날 시인은 돼지 새끼를 직접 받다가 지인의 전화를 받는다. "예, 저는 지금 돼지 새끼를 받고 있거든요. 돼지 자궁 속에 제 손이 들어가 있어요."

개도 키우고 돼지도 기르고 안해본 일이 없는 시인의 퉁퉁하고 넙적한 손이 나는 참 좋았다. 자신이 지하셋방에 사는 게 뭐 그리 큰 수치라고 걸핏하면 지하셋방으로 자신의 가난을 표현하지 못해 안달인 또래 시인들의 희고 긴 손보다 100배나......

그는 시 하나 써주면 국밥 한 그릇 값의 원고료를 받고 자신의 시가 과연 그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의 속을 덥혀줄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한다.   1996년, 소설을 써주기로 하고 어느 출판사에서 이백만 원을 당겨 받은 시인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그런 거금을 만져본다고 했다.  세상에! 그 돈은 어머니 방 얻는 데 홀랑 들어갔다. 

가난과 불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 해맑고 다정하고 생각이 깊은 시인이다. 그것보다 더 큰 재산이 어디 있는데?

--건축가 이일훈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의 중 슬라이드를 보는 시간이 있었다. 고건축물에서 현대 최첨단 건축물까지 여러 건축물을 설명하는 도중 느닷없이 한적한 곳에 덩그렇게 서 있는 시골 방앗간 풍경이 떴다. 이 선생님은 잠깐 사이를 두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이 방앗간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났습니다. 완벽한 건축물을 만났기 때문이죠. 장식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양철지붕만 올려놓았지만, 여기 어디 버릴 게 있습니까, 부족한 게 있습니까?" 가슴이 찡했다. 나도 어느 골목길에선가 그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152쪽)

(나도 이 대목을 읽고 가슴이 찡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