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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백시나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내가 관심을 아주 잔뜩 가지고 있는 신 시인께서 어느 문화프로그램에 나오셔서는 요즘 백석시와 동화책들을 자주 읽습니다! 라고 말하는것이다. 백석시가 대체 뭔가? 출판사 이름이 백석인가..지역 이름이 백석인가..문학쪽은 알면 알수록 너무 깊고 넓은 세계라.... 혼자서 막 이렇게 중얼대다가 서점에 갔는데 너무 멋들어진 남정네가 부풀 머리를 하고서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시집이 보이는것이 아닌가! 바로 백석시인이였다. 나는 운명을 예감하고는 시집을 집어 들었다. (그냥 요즘 신간 뭐있나 보러만 왔는데 그자리에서 사고 말았다)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 어쩜 이리 시집 제목도 고운지..^^;; (백석시인의 외모에 마음을 빼앗긴지라 이제 별것이 다 좋아 보인다.) 책장을 넘기기 전, 표지부터가 그냥 대 만족이다. 어쩜 이리 뽀다구가 나는지. 그래서 일부러 집에 돌아오는길 읽던 책을 물리치고 지하철에 앉아 이 책을 읽으며 왔다. 최대한 표지를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얼굴께 까지 올려서 읽으면서...
집에 돌아오면서 또 집에 돌아와 시를 읽는데 평소 시를 읽던 시간, 시를 읽고 생각하는 시간에 곱절은 걸려 시를 읽어 갔다. 그 이유는 시어들 때문이였다. 1930- 40년대에 쓰여진 시이기에 그 당시 사용했던 우리 말을 사용했는데 어째 한자보다도 더 어렵게 느껴지는지.. 그러면서도 싫지 않았던것 이 시어들이 주는 느낌과 감동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여우난골족이라는 시가 있는데 명절날 친조부모 댁에가서 모든 친척들과 만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글써놓은 것이 내 어린시절을 보는듯 잘 묘사가 되어있고, 사촌들끼리 모여 하던 놀이의 풍부함과 그 이름이 주는 고풍스러움(맞는 표현일런지..)은 정말 멋들어진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룻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 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면서 졸음이오면 아룻목 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드거리다 잠이 든다 - 여우난골족 중에서 ]
저 놀이들을 북적 북적 사촌들과 한방에 모여 까르르르 웃어가며 하는 모습을 상상하는것만으로도 훈훈함이 절로 느껴진다. 이뿐 아니라 제비꼬리 마타리 가지취 쇠조지 고비 가지취 두릅순 회순 산나물 물구지우림 둘굴레우림 등등... 나물들이 열거된 시도 있다. 칠월에 백중이라는 시는 거의 뭐 한시를 읽는 수준으로 읽어야만 하는데도 그냥 글자 하나하나가 시인듯 아름답다. 다행히 시 아래 주석처럼 어려운 단어들을 풀이해서 달아놓았으니 마음으로 읽고 난후 머리로 읽으면 더 행복한 시읽기를 할수도 있다.
이 아름다운 시어들 뿐 아니라 시 자체도 아름답다. 그리고 [두보나 이백같이] 라는 시에서는 그 안에서 뭐랄까 시인의 뻔한 속내까지 보는것 같아서 백석시인의 순수한 마음까지 알게 되는것 같다. 1963년에 사망한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1995년에 사망했다는것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그는 30년이 넘는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시들을 쓰지는 않았을까. 95년... 현재의 글과 언어로 탄생했을수도 있었을 시를 생각해본다. 예전의 그것처럼 그냥 시어 한글자 한글자가 주는 그 풍부한 아름다움은 아마 줄수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