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천국에 가다 (2disc) - 할인행사
윤태용 감독, 염정아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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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영화의 1/3의 주인공을 맡은 어린 네모에게 별 다섯개를 주고 2/3의 주인공을 맡은 어른 네모 박해일에게 별 세개를 주어 별 4개로 마무리! 어린 네모의 천연덕스런 연기에 끄냥 뻑이 가고 말았다. 아주 잠깐 나왔지만 네모 엄마 조민수씨의 모습도 참 인상적이였다. 엄마앞에서 춤을 추는 어린 네모의 모습은 눈물을 자아냈고 구수한 사투리의 어린 네모는 그 자체만으로도 염정아와 사랑을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아지매! 몇살인교? 결혼은했는교? 아는? " 한마디 한마디가 배꼽을 쥐게 했다. 또 네모를 사랑하는 옆집 소녀 그 소녀의 연기또한 압권이였다. 아쉽게도 네모가 어른이 되면서부터 재미는 무섭게 반감되었고, 마지막 네모가 죽어갈때는 글쎄....슬픈 감동이 밀려오기보다는 그냥 어린애들 장난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역시 이 영화도 뒷심 부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결말을 어떤식으로든 꼭 내야한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으련만... 근래에 본 영화 브로큰 플라워나 프라임 러브의 경우 어떤 결론도 나지 않았지만 그냥 앞으로의 삶이 어떻겠구나..상상하는것으로도 참 즐겁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네모를 죽이더군. 살아남은 자들은 그를 기억하고... 에잇..그런결말은 별론데...

어쨋든! 멋진 아역배우 하나 건지것이 최고의 수확이고, 박해일씨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좋아하는데..음...연기 연습 좀더 진지하게 다시 해야할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내까짓게 뭐라고..)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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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찍고 친정 다녀오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찌나 빡빡한 일정이였는지 뭘 먹었는지 뭘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느때와 달리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가장 많은 친척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것 같아서 흐뭇하고 기분이 좋다. 시댁에서는 가족 사진찍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한복 입으려면 머리도 해야하고 렌즈도 껴야하고 번거로우니 양장으로 하자!! 라고 입을 모았는데 울 시어머니 느림에.. 두손 두발 다들고 그냥 아침 새배한 그 옷 그대로 사진관으로 가서 사진을 찍었다. 가기전에는 살짝 빈정도 상하고 그닥 좋지는 않았는데 막상 가서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 보고 하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요즘 계속 사이가 냉냉하신 시부모님, 두분만의 사진을 써비스로 찍어주었는데 두분 표정이 너무 밝아서 좋았다. 앞으로도 좀 그런 표정으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는데... 늘 나와 태양님이 하는 말! 자식들이 속을 안썪이니까 심심하신가보다. 자꾸 저리 싸우시는 걸보면....  이공..두분만 행복하게 잘 사시면 울 집안에 걱정이란 없을텐데..^^;;;

친정에서는 가족 전체가 모여 윷놀이를 해서 기분이 좋았다. 시댁과는 달리 친정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에 아빠 형제 8남매에 그 자식들의 자식까지해서 음...한 30-40명정도가 한집에서 득시글 거린다. 사촌 사이가 친 자매 형제처럼 가까워서 만나도 어색하지 않기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와~~  하는 시끄러움과 함께 즐거움을 즐긴다. 이번에는 사촌동생 승희의 남자친구 까지 와서 더 사람이 많은 느낌이 들었다. 초, 중,고 등학생을 제외한 어른들이 윷놀이를 하였는데 각 4명씩 4개조가 준결승을 치루었고 이긴 조가 결승! 그리고 결승에서 진팀은 패자 부활전에서 이긴팀과 다시 겨루고..^^ 어찌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반전이 가득하던지...ㅋㅋㅋ 1위는 내가 속해있던 팀이였는데 아쉽게도 나는 상금을 받을수 없었다. 왜냐하면 첫번째 경기만 치루었기 때문이다. (네살박이 조카를 봐야했기 때문에..흑흑... 요넘이 나하고만 놀겠다고 하니 휴..)

정신없지만 신나고 행복하게 명절을 보냈다. 집에 돌아오니 시댁에서 친정에서 각각 싸주신 음식들로 냉장고가 터질것 같다. 언제 다먹누..^^;;; 먹으면서 감사함으로 먹어야지! 울 엄마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 2-3일 정도는 푹~~ 쉬세용!! 그런 의미에서 저도 좀...쉬겠습니다. 으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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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미네르바 > 지상의 마지막 유랑자들
하늘빛 사람들
르 클레지오 부부 지음, 브뤼노 바르베 사진,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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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사막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을 품고 살았다. 사막에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인간의 근원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한 동경에 불을 붙인 것이 있다면 아마도 어린 왕자였을 것이다. 사하라 사막에 홀로 불시착해 막막해 하고 있는 조종사에게 다가와 “양 하나만 그려 줘”하며 천진스럽게 말하는 어린 왕자를 보면서 나도 그 사막에 가서 어린 왕자를 만나 보고 싶었다. 금빛 모래 언덕에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금발 머리를 한 어린 소년이 나타나 자기별에 대해서, 여우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만 같다.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있으면 생의 비밀을 한가지 알려 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 책은 바로 그 사막이야기이다. 사하라 사막... 보이는 것은 끝없는 모래언덕과 바람과 출렁거리는 따가운 햇빛. 그 사막은 섭씨 50도의 기온과 달의 표면과 비슷한 습도만을 유지하며 단조로움만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천변만화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저주의 땅, 죽음의 땅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삶의 덧없음, 존재의 덧없음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게 해 주는 곳이다. 그 곳에 서면 자연의 위대함과 광대함을,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막에 오르면 인간은 좀더 겸허해지고, 순연해질 것 같다. 작가도 “사막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일은 없다. 어떤 사막도 다른 것과 닮지 않았지만, 사막에 들어갈 때마다 심장은 더욱 세차게 고동친다”(p29)고 말한다. 작가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이 책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세상을 밝힌 위대한 문명은 낙원에서 생겨나지 않았다고 했다. 위대한 문명은 오히려 지구상에가 가장 살기 어렵고 기후 조건이 가장 나쁜 지역에서 출현했다. 이를테면 이라크의 불타는 듯한 사막이나 소아시아, 유다 지방, 이집트, 수단에서. 또 파미르고원의 차디찬 고독 속에서, 페루와 멕시코 고원 지대의 혹독한 조건에서... 그렇기 때문에 문명이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장소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좀더 겸허해져야 한다. 이 지구상의 모든 문명과 업적은 인간의 손과 힘으로 만들었다고 교만해져 있으니...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사막에 산다는 것은 단지 거칠고 냉엄하고 혹독한 세계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표지가 없어도 하늘과 별을 바라보면서 길을 찾을 수 있으며, 아득하게 먼 곳에서도 조약돌 하나를 식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처럼 용감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냉혹한 사람들이다. “사막에 산다는 것, 그것은 절제하며 간소하게 사는 것이고, 태양의 열기를 견디는 법과 온종일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갈증을 참아내는 법, 열병과 이질에 신음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기다리는 법과 설령 양의 고기는 남들이 다 먹고 뼈에 힘줄과 가죽만 달랑 남는 한이 있더라도 남보다 나중에 먹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두려움과 고통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p75)

똑같은 해 아래 숨쉬며 살고 있지만 이토록 이질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의 소음과 현란한 네온싸인과 하늘을 향해 저돌적으로 서 있는 건물들 사이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막의 사람들은 너무나 생경하고 낯설기만 하다. 사하라의 여인들은 자녀들에게 사막의 교훈을 전수한다. 불손과 무질서를 용인하지 않고, 땅의 이치를 존중하며 신비한 힘과 기조와 정성과 인내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르침을... 비록 그들은 끝없는 가뭄과 건조한 바람과 높은 온도와 낮은 습도에 묶여 있지만, 그들의 빈곤이 우리의 풍요보다도 더 넉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천,히 작가와 함께 척박하고 건조한 사막 여행을 하고 왔다. 하지만 내 가슴은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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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미네르바 > 인간에 대한 예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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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음이란 존재의 다른 양태에 불과하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영원’이 거세된 인간에게 죽음은 늘 두려운 존재이다. 그러기에 생은 불안하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가장 처절하게 그린 작품으로, 싸르트르의 작품 『벽』이 떠오른다. 부조리의 벽에 부딪친 사형수 파블로 이비에따의 모습은 생의 절망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래 전에 그 책을 읽었지만 소름이 돋도록 전율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신이 내일일지 모레일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물론 인간은 죽는다. 자연사할 수도 있고, 병이나 사고, 타살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죽는다. 그러나 가장 비극적인 죽음은 역시 사형수의 죽음일 것 같다.

이 책도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을 죽이고 사형수가 되었는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만큼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나 역시 극악무도한 사람들의 살인 행위를 볼 때면 저런 사람이야말로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다가도, 피조물인 인간이 같은 피조물인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주장을 철회한다. 조물주인 신의 눈으로 보았을 땐, 인간의 죄란 오십보 백보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의 눈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손으로 인간을 죽여야 하는 것은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목을 이렇게 짓고 보니, 공지영의 예전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같게 되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는 사형제도가 존속하고 있다. 작가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난 이상하게도 작가 공지영에 대해선 점수를 좀 짜게 준 것 같다. 그녀의 책을 참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무엇 때문인지 그녀와 같은 또래 작가들 중에서도 항상 낮은 점수를 주었다. 그래서 공지영의 책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삐딱해지곤 했다. 그럼에도 신간이 나오면 열심히 찾아 읽으려고 했다. 이 책 역시 그런 선입관을 가지며 읽은 책이다. 그러나 공지영의 소설은, 아름다운 문체와 스토리의 흡입력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책도 읽다 보면 책을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푹 빠져든다. 무엇보다, 이제 세상을 향해 칼날을 들이대는 날카로움보다는 그것을 감싸 안으려는 포용력이 더 크게 느껴져서 마음을 뭉근하게 한다. 어느새 마흔을 넘긴 그녀의 글은 예전보다 많이 달라진 듯하다. 이 책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아픔도 아니고, 억눌린 여성들의 이야기도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 사형수들의 이야기이다. 어쩜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에 대한, 좀더 확장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두 명의 주인공은 문유정과 정윤수이다. 사형수인 27살의 남자 정윤수와,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땐 부러울 것 하나 없지만, 유년시절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여자 문유정... 그들의 환경은 180도 다를지 모르지만, 이란성 쌍생아처럼 참 많이 닮았다. 애써 외면해 왔던 깊은 심연의 상처를 서로 알아 본 것이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두 사람... 애절한 로맨스를 상상하지는 말라. 인간을 사랑할 수 없는 두 영혼이 비로소 인간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니까. 사실,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도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보다는,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더 가슴을 적시게 한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자포자기하였던 두 인물이 어떻게 세상을,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책은 논픽션에 가까운 픽션이다. 책을 읽으며 어느 틈엔가 삐딱해져버린 내 마음은 무장해제 되어서 대책없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선과 악의 경계가 있는 것일까? 정윤수는 무조건 잘못한 것일까? 물론 잘못을 했다. 사람을 죽였으니...(책 내용으로 보아서는 동료가 죽이고 자신은 누명 쓴 것이지만) 하지만 지옥 밑바닥의 생활을 경험한, 불우한 유년의 환경들을 본다면 무조건 그를 범죄자로 몰기 이전에 이 사회로 돌려야 할 것이다. 문유정... 15살 때 사촌 오빠로부터 강간당하고 온 날... 아프다고 하자, 네가 어떻게 꼬리를 쳤길래 그렇게 당해! 하며 오히려 따귀를 때리는 엄마 밑에서 자란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온전할 수 있을까? 뒤틀리고, 꼬이고, 염세적인 그 삶은 당연한 것일 게다. 나만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나만이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실컷 울고 싶은 사람도 읽어보기 바란다. 그래도 난 행복한 사람이란 것을 느끼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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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미네르바 > 진주 귀고리와 5길더
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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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은 지 보름이 더 되어 간다. 그 후에도 몇 권의 책을 더 읽었지만, 여전히 내 상념은 17세기 네델란드의 한 저택을 서성거리고 있다. 그 보름 동안 나는 컴컴한 다락방에 올라가 물감을 만들거나, 화실에 있는 그림을 감상하다가 조용히 청소를 하는 그리트를 만났다. 그러나 내가 만난 소녀는 하녀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분을 알 수 없는 복장, 머리에 푸른색과 노란색 두건을 쓰고, 진주귀고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는 가끔씩 약간 벌려진 입술과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환한 빛을 내는 진주 귀고리이다. 맑은 우윳빛 진주귀고리는 그 소녀가 더 이상 하녀가 아니라고 말한다.

17세기의 네델란드의 화가 베르메르는 그리 많이 알려진 화가가 아니다. 그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는 것은 작가에겐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상상력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화석처럼 굳어있던 유물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독자는 마법에라도 걸린 듯 터벅터벅 그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러면 17세기 네델란드의 소도시 뎀블트에 있는 어느 저택에서, 하녀 그리트와 베르메르의 작품 28점을 만날 수 있다.

평범한 소녀였던 그리트는 갑작스레 기울어진 집안 형편 때문에 하녀로 전락했지만, 그녀에게서는 보통 하녀에게서는 볼 수 없는 기품이 있다. 비록 하녀로서 물을 긷고 빨래를 쥐어  짜며, 마룻바닥을 닦아내는 험한 일을 하지만, 그리트는 일반적인 하녀에 관한 속설을 거부한다.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는 그녀는 침착함과 지혜와 진중한 모습으로 큰마님과 화가인 주인에게 신뢰를 얻기도 하지만, 그것은 화가인 아내나, 같은 하녀 테네카에겐 질투의 대상이 된다. 큰마님이나 주인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것은 충분히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할 것을 안 그리트는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주인의 부탁으로 과외의 일, 즉 밤마다 물감을 만드는 일은 그만큼 잠을 못 자고 피곤하게 하지만,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고귀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그리트는 예술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다. 베르메르는 그리트를 통해 또 다른 미의 세계를 보기도 한다. 낮에는 빨래에, 집안 청소에 그녀의 흰 앞치마는 지저분했지만, 그녀에게는 또 다른 앞치마가 있다. 그것은 밤이면 아마인유를 풍기며 붉은 색을, 때로는 푸른색 물감을 묻히는 그리트의 다른 앞치마, 즉 그녀가 하녀이지만 그 곳에 있을 수 있는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트와 주인 여자, 또는 주인 여자를 닮은 딸아이와의 미묘한 갈등, 같은 하녀끼리의 질투가 섬세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미생물들처럼 겉으로는 그리 크게 부각되는 것은 아니지만, 살얼음판을 걷고 있듯 언젠가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다.

이 작품은 고요하고 잔잔하다. 그리트가 주인을 향한 은근한 연정은 불안하면서도 설렌다. 주인인 화가 베르메르의 눈빛이나 대단치 않은 심부름에도 설레이는 열 일고여덟의 소녀 그리트. 그것은 탱탱히 당겨져 있는 줄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흔들릴 것 같은 위태로움이다. 그 감정의 선율들이 너무 조용하고 고와서 불안하다. 그 미세한 감정의 파동을 주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그의 도덕성은 그저, 진주귀고리소녀 작품의 모델이 되었을 때, 얼굴 한 번 만져 보는 것으로 멈출 수밖에 없다. 베르메르의 감정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어서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이 작품을 더 가치 있게 만들었다고 본다.(물론 독자마다 느끼는 것은 다를 것이다)

 그리트에게 그 저택은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푸줏간 집 아들 피터에게로 간다. (진주귀고리 때문에 그 집을 나오긴 했지만...) 그럼, 그 때의 삶은 한바탕 꿈이었을까? 그리고 10년 후, 그리트는 베르메르가 죽으면서 자신에게 남긴 진주귀고리를 20길더에 판다. 그리고는 베르메르가 남편에게 진 빚 15길더를 갚고, 나머지 5길더는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몫으로 남긴다. 비록 지금은 푸줏간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 5길더란 격정적이었던 젊은 날의 은밀한 비밀을 혼자만 누리고 싶은 욕망일 게다. 그 때의 삶이 비루했을지라도, 그로 인해 남겨진 5길더는 고단한 삶을 지속시켜주는 힘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가슴속에 비밀 하나 없는 생이란 얼마나 척박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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