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미네르바 > 인간에 대한 예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이란 존재의 다른 양태에 불과하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영원’이 거세된 인간에게 죽음은 늘 두려운 존재이다. 그러기에 생은 불안하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을 가장 처절하게 그린 작품으로, 싸르트르의 작품 『벽』이 떠오른다. 부조리의 벽에 부딪친 사형수 파블로 이비에따의 모습은 생의 절망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래 전에 그 책을 읽었지만 소름이 돋도록 전율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신이 내일일지 모레일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물론 인간은 죽는다. 자연사할 수도 있고, 병이나 사고, 타살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죽는다. 그러나 가장 비극적인 죽음은 역시 사형수의 죽음일 것 같다.

이 책도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을 죽이고 사형수가 되었는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만큼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나 역시 극악무도한 사람들의 살인 행위를 볼 때면 저런 사람이야말로 사형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다가도, 피조물인 인간이 같은 피조물인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며 주장을 철회한다. 조물주인 신의 눈으로 보았을 땐, 인간의 죄란 오십보 백보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의 눈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손으로 인간을 죽여야 하는 것은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목을 이렇게 짓고 보니, 공지영의 예전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같게 되었다.)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는 사형제도가 존속하고 있다. 작가는 사형제도를 폐지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난 이상하게도 작가 공지영에 대해선 점수를 좀 짜게 준 것 같다. 그녀의 책을 참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무엇 때문인지 그녀와 같은 또래 작가들 중에서도 항상 낮은 점수를 주었다. 그래서 공지영의 책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삐딱해지곤 했다. 그럼에도 신간이 나오면 열심히 찾아 읽으려고 했다. 이 책 역시 그런 선입관을 가지며 읽은 책이다. 그러나 공지영의 소설은, 아름다운 문체와 스토리의 흡입력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책도 읽다 보면 책을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푹 빠져든다. 무엇보다, 이제 세상을 향해 칼날을 들이대는 날카로움보다는 그것을 감싸 안으려는 포용력이 더 크게 느껴져서 마음을 뭉근하게 한다. 어느새 마흔을 넘긴 그녀의 글은 예전보다 많이 달라진 듯하다. 이 책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아픔도 아니고, 억눌린 여성들의 이야기도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 사형수들의 이야기이다. 어쩜 그것은 이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에 대한, 좀더 확장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두 명의 주인공은 문유정과 정윤수이다. 사형수인 27살의 남자 정윤수와,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땐 부러울 것 하나 없지만, 유년시절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여자 문유정... 그들의 환경은 180도 다를지 모르지만, 이란성 쌍생아처럼 참 많이 닮았다. 애써 외면해 왔던 깊은 심연의 상처를 서로 알아 본 것이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두 사람... 애절한 로맨스를 상상하지는 말라. 인간을 사랑할 수 없는 두 영혼이 비로소 인간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니까. 사실,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를 썼어도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보다는,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더 가슴을 적시게 한다. 세상을 향한 분노와 자포자기하였던 두 인물이 어떻게 세상을,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지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책은 논픽션에 가까운 픽션이다. 책을 읽으며 어느 틈엔가 삐딱해져버린 내 마음은 무장해제 되어서 대책없이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선과 악의 경계가 있는 것일까? 정윤수는 무조건 잘못한 것일까? 물론 잘못을 했다. 사람을 죽였으니...(책 내용으로 보아서는 동료가 죽이고 자신은 누명 쓴 것이지만) 하지만 지옥 밑바닥의 생활을 경험한, 불우한 유년의 환경들을 본다면 무조건 그를 범죄자로 몰기 이전에 이 사회로 돌려야 할 것이다. 문유정... 15살 때 사촌 오빠로부터 강간당하고 온 날... 아프다고 하자, 네가 어떻게 꼬리를 쳤길래 그렇게 당해! 하며 오히려 따귀를 때리는 엄마 밑에서 자란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온전할 수 있을까? 뒤틀리고, 꼬이고, 염세적인 그 삶은 당연한 것일 게다. 나만이 세상에서 소외되고, 나만이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실컷 울고 싶은 사람도 읽어보기 바란다. 그래도 난 행복한 사람이란 것을 느끼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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