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미네르바 > 지상의 마지막 유랑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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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빛 사람들
르 클레지오 부부 지음, 브뤼노 바르베 사진,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2월
평점 :
어렸을 때부터 사막에 대해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을 품고 살았다. 사막에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인간의 근원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한 동경에 불을 붙인 것이 있다면 아마도 어린 왕자였을 것이다. 사하라 사막에 홀로 불시착해 막막해 하고 있는 조종사에게 다가와 “양 하나만 그려 줘”하며 천진스럽게 말하는 어린 왕자를 보면서 나도 그 사막에 가서 어린 왕자를 만나 보고 싶었다. 금빛 모래 언덕에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금발 머리를 한 어린 소년이 나타나 자기별에 대해서, 여우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만 같다.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있으면 생의 비밀을 한가지 알려 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 책은 바로 그 사막이야기이다. 사하라 사막... 보이는 것은 끝없는 모래언덕과 바람과 출렁거리는 따가운 햇빛. 그 사막은 섭씨 50도의 기온과 달의 표면과 비슷한 습도만을 유지하며 단조로움만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천변만화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저주의 땅, 죽음의 땅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삶의 덧없음, 존재의 덧없음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게 해 주는 곳이다. 그 곳에 서면 자연의 위대함과 광대함을,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막에 오르면 인간은 좀더 겸허해지고, 순연해질 것 같다. 작가도 “사막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일은 없다. 어떤 사막도 다른 것과 닮지 않았지만, 사막에 들어갈 때마다 심장은 더욱 세차게 고동친다”(p29)고 말한다. 작가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이 책을 읽으면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세상을 밝힌 위대한 문명은 낙원에서 생겨나지 않았다고 했다. 위대한 문명은 오히려 지구상에가 가장 살기 어렵고 기후 조건이 가장 나쁜 지역에서 출현했다. 이를테면 이라크의 불타는 듯한 사막이나 소아시아, 유다 지방, 이집트, 수단에서. 또 파미르고원의 차디찬 고독 속에서, 페루와 멕시코 고원 지대의 혹독한 조건에서... 그렇기 때문에 문명이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장소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좀더 겸허해져야 한다. 이 지구상의 모든 문명과 업적은 인간의 손과 힘으로 만들었다고 교만해져 있으니...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사막에 산다는 것은 단지 거칠고 냉엄하고 혹독한 세계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표지가 없어도 하늘과 별을 바라보면서 길을 찾을 수 있으며, 아득하게 먼 곳에서도 조약돌 하나를 식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처럼 용감하고 너그러우면서도 냉혹한 사람들이다. “사막에 산다는 것, 그것은 절제하며 간소하게 사는 것이고, 태양의 열기를 견디는 법과 온종일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갈증을 참아내는 법, 열병과 이질에 신음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것이며, 기다리는 법과 설령 양의 고기는 남들이 다 먹고 뼈에 힘줄과 가죽만 달랑 남는 한이 있더라도 남보다 나중에 먹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두려움과 고통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p75)
똑같은 해 아래 숨쉬며 살고 있지만 이토록 이질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도시의 소음과 현란한 네온싸인과 하늘을 향해 저돌적으로 서 있는 건물들 사이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막의 사람들은 너무나 생경하고 낯설기만 하다. 사하라의 여인들은 자녀들에게 사막의 교훈을 전수한다. 불손과 무질서를 용인하지 않고, 땅의 이치를 존중하며 신비한 힘과 기조와 정성과 인내를 중요하게 여기는 가르침을... 비록 그들은 끝없는 가뭄과 건조한 바람과 높은 온도와 낮은 습도에 묶여 있지만, 그들의 빈곤이 우리의 풍요보다도 더 넉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천,히 작가와 함께 척박하고 건조한 사막 여행을 하고 왔다. 하지만 내 가슴은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