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Volkswagen > 다른 소재로 부탁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죽지 못해 환장한 여자가 있다.

이유는 어렸을 때 사촌 오빠한테 강간을 당한 이후 그녀의 인생이 거기에 지배당한다고 생각하는 여자이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불행하단다.

그리고 희대의 살인마라 불리는 사형을 기다리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공범자인 다른 이가 죽였는데도 자기가 죽였다고 인생 포기한 사내다.

그와 그녀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그런 내용들이 적혀있다.

작가는 그녀를 통해 이야기한다. 행위의 결과만으로 집행되는 사형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동조 해 달라고 소리치고 애원도 해본다.

그건 우리들이 넘어야 할 선과 넘지 말아야 할 기준이고 그 기준이 되기에는 누군가 피(?)를 보아야 성립이 되는 것이라고 잘난체 해 본다.

읽는 내내 머리 속에서 비슷한 질문을 혼자 던져본다.

대구 지하철에서 같이 죽자고 불지른 사내를 용서할 수 있는가?, 강간하고 토막 낸 유영철을 용서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형 제도를 옹호하는 쪽은 아니다.

단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라는 것이다. 사형을 당하는 날까지 수갑이 채워져 생긴 손목의 상흔들 그리고 형장의 목줄이 피기름에 절여 까맣게 되어 그걸 바꾸라고 해도 바꾸는 사람들이 없다는 그런 감상적인 이야기들 가지고 독자들의 눈물. 콧물로 책을 팔지 말라는 것이다.

 

예전에 한 다큐를 보았다. 희귀 병에 걸린 사람들과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난 상당히 충격을 먹었더랬다. 그리고 '안락사'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쉽게 결론 지어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면 알수록 단정 지어선 안될 것들이 천지다. 희귀 병에 걸린 사람들은 뇌는 살아 있다. 하지만 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는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나 낙태하기 전 기계가  태아의  근처에 오면 심장박동이 수십 배 빨라지듯이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은 결사반대라는 것이다. 그래... 책의 내용대로 그들을 살려둠으로써 죽임을 당한 가족들이 낸 세금으로 그들이 먹고 살아가니 죽어야 한다 라는 등식이 나올 수도 있다.

약하다. 설정부터 그랬다. 소설 속에서는 늘 상 여자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그것을 어떤 계기로 디딤돌이 되어 살아갈 의미를 찾고 이것이 맘에 안 든다는 것이다. 차라리 카드 빚으로 인생을 종치게 생겼다가 자살하려고 하는 설정이 휠씬 낫다

자꾸 이런 걸 책으로 보여주니까 성폭행에 대해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는 것이다.

이건 아우성의 구성애가 그랬듯이 그건 단지 폭행일 뿐이다. 그런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네가 당하지 않았음 입 다물라 하면 입 다물겠습니다.ㅡ.ㅡ)말하고 싶다.

난 김 군에게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만약 그런 재수 똥 튀기는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도 그렇게 날 바라보는 것이 맞고 행여 우리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단지 폭행일 뿐이라고 인식을 바꾸라고 소리치며 이야기하라고!! (ㅡ.ㅡ)"

 

쓰다 보니 내용과 상당히 동 떨어진 곳에서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청룡영화제'에서 영화화 하다는 소리를 듣고 낼름 구입했다.

흥행성이 있느냐? 없느냐? 를 따지는 영화계를 생각한다면 공지영도 책의 흥행성을 생각하고 만든 건 아닐까? 살짝 의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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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펭귄 > 과연 우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이 태어난 것은, 그저 괴로움을 당하기 위해서라고


세상의 사람들에게 괴롭히고 서로가 이용을 당하며


고생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후대의 사람을 위해 희생하다,


저 세상으로 멀찌감치 사라져가는 것이라고


얼마 전에 『라셀라스』를 읽었다. 그 안에서는 피라미드에 대한 소개가 잠시 있다. 피라미드가 견고한 것은 “위로 가늘어져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라는 것이다. 피라미드의 모양만 보면, 그들의 모양은 수많은 희생을 기반으로 조금의 벽돌이 위에 있는 것이다. 지금의 사회의 모양임을 부인할 수 없다. 왜, 이 사회가 그런 모양을 띄게 되었는가? 위정자가 그런 악한 마음을 애초에 품어서? 유감이지만, 원래 나쁜 놈은 이 세상에는 없다. 속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죄는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윤수는 그런 억울한 형태의 죄인이다. 그는 나쁜 계부를 만나 괴롭힘을 당한다. 고아원과 소년원을 전전한다. 앵벌이도 하고,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은 딱 두 사람이 있었다. 동생 은수와 미용실 여자, 그러나 그의 사랑들은 멀리 멀리 떠나간다, 죽음으로, 그를 사랑했던 사람에게,


세상은 너무나 잔인했다, 가장 격하지만 가장 많은 노가다를 해도 하루 먹을 돈과 약간의 저축 외에는 벌 수 없는 사회, 그러나 전혀 쉴 틈을 주지 않는 사회. 결국 나의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회, 떼어주지 않는 사회, 매정한 사회. 나에게 가짜 사랑을 요구하는 사회, 돈을, 외모를 요구하는 사회. 두들겨 맞는 사람을 신고하고도 늦장 출동한 경찰이 되려 화를 내는 사회, 아니, 그렇게 죄짓는 일이 너무 많은 사회. 맞는 놈이 죄인이 되는 사회.


그는 마지막 인질극을 벌일 때, 불쌍하게 죽어가던 자신의 동생, 은수 같은 어린 아이를 본다. 그는 이미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은 Circle을 도는 것인가?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살아가려고 하는 의지는 사회에서는 범죄로 취급받고, 그들이 살아날 기회라고는 부정한 수단뿐, 그러나 윤수가 칼을 겨누고 있는 것은 다시 또 다른 “은수”이다. 자기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악몽 같은 세상에서 윤수는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차라리 깨어보면 이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이것은 꿈이 아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현실이고,


이 순간 보통의 실존소설은 ‘멍’ 해진다. 내가 이런 상황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그것이 인간의 마지막 상황에서의 탈출구다, 그러나 공상 속의 세계는 현실의 나를 OFF시킬 수 없다.

이런 세상이 ㅈㄹ 같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수가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이지도 않았던 사람의 어머니에게, 엄청난 괴로움을 당한다. 남의 고통을 업고 가는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러나, 그리스도에게는 죄를 해방시킬 사명이라도 있었지만, 인간 정윤수에게는 그런 것은 없다. 단지 한 사람의 죄를 대신 업고 가는 것뿐이다. 그저 억울하게 죽는 사람일 뿐이기에, 이 사회는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마라. 다르게 생각하면 하루하루 죽어가는 사형수는, 나의 죄를 지고 가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하루, 하루 무시하고 나도 모르게 괴롭혔던 사람들… 원한들, 그 상처를 모두 업고,

그는 피라미드의 맨 아래층에서, 이 사회의 죄를 업고 가는 것이다. 그들을 기억한다면, 내가 사는 것이 이렇게 나태하고 추잡하지 않을 것이다.


정윤수는 사형수가 되었다. 이 때, 그에게 하루를 사는 것이 고통이었을까― 아니면 하루 빨리 죽는 것이 고통이었을까.

그런데 오늘 내일 죽을까 하는 사형수와 정신적 파탄자 문유정은 동일점이 많다.


상대적으로 문유정은 부자, 정윤수는 빈자다. 이 세상에서는 빈자도, 부자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는 것이다. 이 두 명의 공통점은 사랑에 목마르지만, 그런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없었고, 죽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부모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었다.


그들에겐 똑같이 빼앗긴 것이 있었다. 윤수는 부모, 유정은 부모의 사랑과 자신의 순결. 그들은 그것을 잃고 살 의지를 잃어버렸다. 윤수는 처음 잃어버린 것 때문에 연쇄반응으로 고아원, 앵벌이, 소년원. 나쁜 곳만 지나다닌다. 그래서 나쁜 놈이 되어버린다. 상대적으로, 유정은 잃어버린 것이 적지만, 그녀 역시 점점 세월을 지나며 잃어버린 것이 점점 많아진다. 사실, 잃은 것은 마찬가지다. 한 번 등진 그의 삶이 그를 외면하고 있을 때, 유정은 평안하지만, 더 많은 것을 떨어뜨린다. 교수 노릇도 하고, 가수 노릇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그를 채울 수 없었다. 더 많은 것이 그의 품에 있을 때에 더 많은 괴로움을 당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없는 사람은 배부른 소리라면서 빈정댈지도 모른다. 없는 사람에게 차곡차곡 쌓아나가서 성공의 희망을 보여줄 수 있게 해준다면, 이 세상에서 원망하는 소리는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Les Miserables』의 스토리를 따라 갈 것이기 때문이다.


“형, 우리 나라 좋은 나라지, 나는 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왠지 우리가 훌륭한 사람이 된 거 같애…….”

이 사회의 비행청소년 계도프로그램이 엉터리로 만들어진 것도 그들에게는 禍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들이 유일하게 배운 노래는 애국가 하나다. 그것을 부르면서 그들은 위안을 갖는다.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그들의 원수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그들에게는 앞으로 나갈 힘이다.

그래서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보다 복 받은 사람이다. 있는 사람은 대부분 가치를 모른다, 그래서 타락해간다. 그에 비해 없는 사람은 아주 조그만 것을 받았어도 이 세상 천근만근보다 더 큰, 귀한 것을 가진 것처럼, 어떤 것을 가졌어도 그 가치를 아는 축복을 받았으므로.

다만 그들에게 희망의 빛이 주어졌다면, 장 발장처럼 희망을 써나갈 수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이 둘은 그 빛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세상은 참 빛을 많이 잃었다. 땅 투기나, 고액과외 경쟁이나 하는, 그들은 정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자식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문유정처럼, 뭔가 가득― 찬 세상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물질이란 것이, 정신이란 것이, 가지면 가질수록 만족이 안 된다.

부끄럽지만 노숙자나 걸인들을 외면할 때가 나도 많다. 반성을 하지 않는다거나, 앵벌이를 하고 있을거란 괜히 되도 않는 의심이나 하고. 나도 윤수와 같은 살인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장발장은 사랑을 알고 변한 다음,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나 정윤수는 그가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갔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바꿀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소설이 남의 얘기인가? 나는 이 소설을 남의 이야기로 봐주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대통령마저도 사형수였다는 말은 현실을 뛰어넘어 말하는 바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문유정, 혹은 정윤수 그 중 어느 하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대통령이 사형수의 고통을 가지고 있었던 자기 자신을 잊고 사형을 집행한다, 는 것도 우리의 현실과 일치한다.

맨 마지막의 치매 노인, 그들을 양산했던 어머니, 비유적으로 살펴본다면, 그들을 만든 어머니는 바로 사회다. 그들에게 사회를 등지게 만들었고, 상처 주었고, 죄 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를 죽이고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녀와 같이 매일 까먹는 병증을 우리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다시 또 하나의 윤수가 처형을 당하러 들어간다. 그녀는 윤수와 은수. 딱 중간쯤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문유정의 편견과 일치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편견과 너무 맞다. 딱 절반에서, 거기서 빗나갔다고 나쁜 놈 취급을 하고, 거기서 더 잘 살아갔다고 성실하다고, 그렇게 우리는 성실하다는 것을, 나쁘다는 것을 내세울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강인하고 착했지만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선 강했던 윤수. 피해자였지만 세상을 미친듯이 미워했지만 마지막에 사랑을 했었던 그가

맨 밑에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에겐 빛만이 절실하게 필요했을 뿐이다. 다만 그것이 뵈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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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금동 > 누구에게나 슬픔은 있는 것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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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푸른숲)

 

 

*

누구에게나 슬픔은 있다. 이것은 자신이 남에게 줄 수 없는 제산이다.

모든 것을 남에게 줄 수 는 있지만 자신만은 남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소유한 비극이 있다.

그 비극은 영원히 자신이 소유해야 할 상흔이다.

눈물의 강, 슬픔의 강, 통곡의 강,

슬픔은 재산과는 달리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 분배되어 있다.

*

박삼중 스님


 

*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언니가 마지막에 결국 눈물을 떨구었다며, 권해준 책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공지영님의 소설을 그리 좋아한 편은 아닌지라 빌려온 책을 책상 위에 고스란히 올려놓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우연찮게 지루했던 시간을 꾸역꾸역 채우려 집어들게 되었다. 아주 심심하고 사소한 이유였다. 그러나 지루한 시간을 채우려고만 사용되는 글은 없다. 지루한 시간을 뛰어넘어 사소함을 뛰어넘어 일상으로 다가온 커다란 문제를 내게 안겨주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

 

 

  나로 말하자면, 나에 관해 굳이 말하자면, 나는 엉망이었던 사람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살았고,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사랑이라든가 우정이라든가 하는 이름으로 내 생 속으로 끌어들이려 했고 나만을 위해 존재하다가 심지어 나 자신만을 위해 죽고자 했다. 나는 쾌락의 신도였다. 자신을 잃고 감각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나는 언제나 내 견고한 가족의 성곽으로 발길을 내지르곤 했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밤새 춤을 추었다. 그 사소한 일상이 실은 나 자신을 차근차근 파괴해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설사 알았다 해도 멈추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하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온 은하계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야만 성이 차던 존재, 술에 취한 날이면, 닫힌 문들을 발길로 차면서 나는 진실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발음해본 적은 없지만 그때 누군가 내 심장에 청진기를 가져다 대었다면 아마도 이런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왜 태양은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 거야? 왜 니들은 내가 외로울 때만 내 곁에 없는 거야? 왜 내가 미워하는 놈들은 승승장구를 하는 거지? 왜 이 세상은 내 약을 바싹바싹 올리면서 나의 행복에 조금도 협조하지 않는 거냐구!……라고.

 

 

*

  어떤 강의시간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좋아하는 책을 한 권이상씩 제목과 그 이유를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는 뭐라 대답했던가. 나는 그저 아직은, 이란 말로 얼머버렸더랬다. 아직은, 이란 대답을 한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권씩 제목을 이야기 하고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나는 그저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은 상당히 부끄러웠는데, 그래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자부했던 나였는데 나보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보다 마음 속에 넣어 둘 글 하나 간직하지 못하고 글을 읽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 선생님은 아직 인생에서 좋아하는 책을 정해두지는 말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모든 글에는 각자의 장점과 매력이 있으니 딱 하나를 정해두고 그것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 글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라고 하신 말이었다.

  꼭 선생님이 하신 말 때문만이 아니라 난 특정하게 좋아하는 책이 없다. 내가 지루하게 읽은 책이나 재미없게 읽은 책이나 아주 좋아하는 책에도 각자의 글에 매력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조금 편협할 정도로 감성적이기 때문에 주인공이나 저자의 생각이 나와 공감대만 형성된다면 무조건 그 글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었다. 나에게『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문유정이 그러했다. 상황이 아닌 마음이 꽤 나와 닮은 그녀에게 나는 그만 눈을 돌릴 수 없게 되어버렸다.

*

 

 

  고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불어가는 바람 소리가 휘익 하고 들리더니 창문이 덜컹거렸다. 바람이 거세지는 모양이었다. 창밖의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사람도 나무처럼 일 년에 한 번씩 죽음 같은 긴 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깨어나 연둣빛 새 이파리와 분홍빛 꽃들을 피우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 (중략)

  전화기 너머에서 가늘게 떨리던 여자의 목소리, 뜻밖에도 마주 앉아 커피잔을 잡는 손이 아주 거칠었다. 고운 얼굴이었는데 그 얼굴하고 손이 마치 두 주인을 섬기는 지체처럼 너무 달랐다. 갸름한 얼굴의 윤곽과 솔밋한 눈은 부드러웠지만 전체적으로 창백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 사람은 제 모든 것이었어요…… 여자가 입을 열자마다 그렇게 말했을 때 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더구나 여자가 남자를 두고 내 모든 것이 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말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토록 단호하게 뱉을 수 있는지. 나는, 이게 옳아요, 라는 확신과 신념과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에게 언제나 그랬듯 이 아마도 막연하게 그녀에게 질투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을 두고, 설사 그것이 유치라고 어리석으며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결말로 끝난다고 해도, 그렇게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대상을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힘겨워 보였지만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아직은 이 상태를 다는 인정 못하겠다는 어리석은 희망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 희망이 실은 정말로 어리석은 것이어서 낙담하는 것보다 더 형편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저 여자는 아마 죽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느꼈다. 그렇게 비장하고 위태로운 빛이 그녀에게 있었다는 이야기다.


  신기하게도 기억은 그 당시에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을 보게 해준다. 무대 구석에서 작은 제스처를 하는 엑스트라에게 비추어지는 핀 라이트처럼, 기억은 우리에게 그 순간을 다시 삵 해줄 뿐 아니라 그 순간에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때로 우리가 우리의 기억이라고 믿었던 것과 모순 될 수도 있다.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다. 공지영님은 이것을 단순한 소재로써 사용하여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소재를 중심으로 이끌어 낸 것 같다. 우리가 알 수 없었던 그 부분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들이 '죄를 지어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고 낙인 찍은 사형수도 결국 한 사람이었다는 결론이라고나 할까. 하나님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며 주제를 이끌어 낸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문유정과 환경에 상처받아 죄를 짓게 되는 한 사형수의 만남으로 하여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여기서 사랑이라는 것은 이성간의 미묘한 호르몬의 차이가 아니라 정신의 사랑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어느정도 종교의 손을 이끔으로 내비치기도 했지만 결국은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란 것이다. 상처입는 것도 사람.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는 것도 결국 사람의 사랑인 것이다.

*

 

 

 "전에 당신이 편지에다 그랬잖아요. 이게 마지막 봄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에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봄날에 지당도사들이 하는, 당연하고 지당한 이야기 같은 거 하지 않고 싶어요. 시간이 없잖아요. 나는 이왕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거, 당신하고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일 년에 봄이라는 계절이 한 번뿐이라는 거 당신 때문에 처음 알았어요. 이 봄을 다시 보기 위해 일 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처음 깨닫게 되었어요. 그러자 당신이 말한 대로 이 봄이 첫 번째이자 마지막 봄처럼 내게도 느껴졌다는 거예요. 한 계절을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죠. 그렇게 늘 오는 계절이, 혹여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계절이 될 수 있다는 거, 그래서 하루하루가 목이 타는 것처럼 애타게 지나간다는 거…… 나문에 물이 오르는 그 찰나도, 진노랑꽃 무더기로 피어서 흔해빠진 그 개나리에게도, 다신은 그 모든 것이 처음 대면하는 기분이고 또 대면하자마자 안녕, 이라고 말해야 한다는 거 …… 그래서 이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사물들이 널려 있는 게 아니라, 가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박혀올지도 모른다는 거…… 그거 당신 때문에 알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 때9문에, 내가 눅나가를 죽이고 싶었는데, 그게 나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중략)

  왜 내가 그 이야기를 그 앞에서 꺼냈는지 나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때 나는 적어도 동요하지 않았고 담담했다. 적어도 그의 태도에서 그의 온 존재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날이어서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 생애에서 나의 말에 온 존재를 모아 귀 기울여주었던 사람을 내가 가진 적이 있었을까.

 

 

  사랑했고 믿었던 사람들이어서 더 그랬다. 그런데 큰오빠는 몰랐다고 한다. 그랬을 것이다. 나도 몰랐으니까. 셋째올케를 비웃었으니까. 아무리 돈 많이 못 버는 교수 부인이라지만 옷 입고 다니는 게 그게 뭐니, 어마가 셋째올케를 비웃을 때, 나도 그랬으니까. 큰오빠가 그동안 어떤 아픔을 가졌는지, 둘째오빠와 셋째오빠는 어떤지, 나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쭉 그럴 테니까.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의 그 놀라움…… 그 사람들 가난해서, 그렇게 거기 들어와 영치금 천 원도 못 가지고 사는지 몰랐으니까…… 사람을 셋이나 죽이고 강간한 파렴치범인 윤수가 그렇게 맑게 웃고, 그렇게 아프게 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으니까. 몰랐으면 하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 ꡐ저들ꡑ이고, 심지어 우리가ꡐ저들ꡑ인지조차 모르는 것이니까.


  그러고 보니 그녀가 신문에 나든 그렇지 않든 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외삼촌이 슬픈 어조로 내게 충고했듯이 깨달으려면 아파야 하는데,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 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 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정말 몰랐다고, 말한 큰오빠는 그러므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를 업어주고,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언제나 나를 걱정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왜 그렇게 변해 가는지 그는 모르겠다, 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의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연민의 반대말이기도 하고 이해의 반대말이기도 하며 인간들이 서로 가져야 할 모든 진정한 연대의식의 반대말이기도 한 것이다.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고모는 정말 꺼져가는 심지 같아 보였다. 오래도록 생각했던 것, 고모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났다. 하지만 이제 한 가지는 안다. 그래도 산다는 것, 죽을 것 같지만, 죽을 것 같다, 이건 사는 게 아니야, 라고 되뇌는 것도 삶이라는 것을. 마치, 더워 죽겠고 배고파 죽겠다는 것이 삶이듯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삶이라는 듯이, 그래서 나는 이제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바꾸어 말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

  내가 작가 공지영님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작가 황석영님이 말한 것과 같이 그녀가 너무 글을 쉽게 쓰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 글의 장점이자 단정이었는데 쉽게 읽혀서 좋지만 쉽게 잊혀질 수 있다는 말 또한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다루는 주제들은 늘 쉽지만은 않은 것들이었는데 그것은 늘 그녀가 늘 끊임없이 자신과 대치하여 얻어낸 것들이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나. 그것은 "존재"라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가치. 그리고 스스로 얻을 수 있는 행복. 그녀는 그것에 대해서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쉽게 읽히는 글에서 너무나도 쉽게 눈시울을 젖셨다. 한 번이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윤수와의 만남을 마치고 나는 구치소 복도를 걸어나왔다. 구치소 앞뜰은, 저쪽에 마지못해 장미가 몇 송이 피어있긴 했지만 여유가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그런 황금빛 밀밭이 아니었다. 이주임이 내가 싸가지고 간 도시락 가방을 들고 나를 따라 걸었다. 구치소 저편에 일찍 시든 나뭇잎들 몇이 벌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빛깔은 아직 푸르렀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파스스 파스스 하는 소리가 가을이 오는 것을 알린다고, 오늘 만남에서 윤수는 말했다. 보이는 것이 같아도, 소리가 달라요. 똑같은 초록이라도 봄 나무하고 여름나무하고 가을 나무 소리가 다 달라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가봐요.

 

 "울지 말아라. 우리 이쁜 유정이. 네가 이겨냈을 때, 처음 구치소를 따라왔을 때, 윤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때, 네가 윤수를 살려보려고 엄마에게 찾아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네가 이뻤는지…… 고모가 실은 그전부터 가슴 졸이면서 널 몰래 지켜보고 있었는데…… 너는 뜨거운 사람이야. 뜨거운 사람은 더 많이 아프다. 하지만 그걸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

 

  인간은 누구나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실은,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분노로 뒤틀린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 그게 진짜라는 것…….

 

 

*

  우리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가족들과 즐겁게 저녁을 먹는 것.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들? 친구와 싸우는 시간?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행복한 시간은 지정된 어느 시간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시간일 것이다. 행복한 시간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모든 존재의 시간들. 그 시간들에 대해서 생명의 이유와 삶의 이유로써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기록들 일 것이다.

  통속적인 소재와 글쓰기가 때문에 드라마적 요소를 소설적 요소보다 더 많이 가지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도 이 글의 한 특징이면 특징이랄까. 우리의 모든 삶이 소설과 드라마처럼 아이러니하고 매 한면이 초점화되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매 순간을 열심히 살자. 사랑하며 살자. 이것이 작가 공지영님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우리의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사형제도는 그 벌을 당하자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이다.

정신적으로 수개월 내지 수년 동안 육체적으로

생명이 다하지 않는 제 몸뚱이가 둘로 잘리는 절망적이고도 잔인한 시간 동안

그 형벌을 당하는 사형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른 품위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이 형벌을 제 이름으로 불러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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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08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 사시는 건가요???????????

이쁜하루 2006-02-0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헌책 사는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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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0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쟁이입니다...;;;;;

이쁜하루 2006-02-0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윽...빨리 읽고 싶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