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배 탐색 대산세계문학총서 196
최애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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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 전설을 다룬 신작이 나왔다. 다만 이 책은 표제가 의미하듯, 순수하게 아서 왕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아니다.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아서 왕은 원탁의 기사들이 모험을 펼칠 수 있게 무대를 만들어주고는 이내 전면에서 사라진다. 한마디로 주변인에 불과하다.

 

본디 아서 왕은 켈트족으로서, 게르만족 침입에 맞서 싸운 전설적 영웅이다. 이것이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 12~13세기에 부활하였고, 게다가 오히려 기독교적 가치를 앙양하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게 되니 신기한 동시에 기묘하다. 5세기 당시 브리튼이 기독교를 열렬히 신앙하는 세계였다니, 순전히 역사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이러한 무리를 감수하고라도 작자는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를 기독교와 결부시킨다. 그리고 그들 기사의 정신과 모험을 지상에서 끌어올려 성배로 상징되는 천상의 것으로 승화시킨다. 기사도와 기독교의 결합, 이것이 이 작품의 목적일 것이다.

 

경들이여, 이처럼 성배 탐색의 분명한 징조가 나타났으니 경들은 조만간 탐색에 들어가게 되겠구려. 내 지금처럼 경들을 모두 한자리에서 볼 날이 다시 올 것 같지 않으니,” (P.24)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랑슬로-그라알 연작> 5부작 중 제4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원탁의 기사들이 난데없이 성배 탐색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전작에서 이에 대한 암시와 징조가 있었기에, 비로소 갈라아드의 등장과 함께 성배가 모습을 살짝 드러내는 것이다. 작가는 갈라아드를 이 작품의 첫째 주인공으로 대놓고 지정한다. 이제 막 기사가 된, 정체와 신분도 알 수 없는, 어떠한 기사로서의 모험과 업적도 갖추지 않은, 매우 젊은 기사를 원탁의 주재요 주장으로 모셔야 할 자, 바로 갈라아드 경”(P.35)으로 지칭한다. 이는 이후에도 일관된 표현 방식이다. 그는 처음부터 완성된 인간이며, 성배 탐색에 성공할 인물로 예정되어 있다고 공표된다.

 

당신[랑슬로]이 본 그 모든 일이 이미 갈라아드에게 일어났소. 당신의 아들인 그 기사 말이오. 그는 놀랍도록 거룩한 삶을 살고 있으니, 어떤 인간도, 당신도 다른 누구도, 그의 기사도에 필적할 수 없소. (P.180)

 

등장부터 성배 탐색의 최종에 이르기까지 그는 시종일관 완전무결한 존재로 묘사되기에, 그는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생사를 건 별다른 모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그는 자신에게 예정된 길을 나아가고 성취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이기에 솔직히 재미없는 인물이다.

 

그에 비하며 다른 성배의 동지인 페르스발과 보오르는 숱한 모험과 위기를 겪어낸다. 그들을 탐색에 실패하게 만들기 위한 악마의 계략과 유혹, 함정에 빠져 나락의 순간, 인간적 위기를 극복하고 절대자에 대한 귀의를 떠올린 덕분에 가까스로 벗어나기를 반복한다. 페르스발은 다른 작품에서는 영적 모험의 주인공인데, 퍼시벌 또는 파르치팔에 해당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동정이며, 보오르는 타의에 의해 동정을 잃었지만 이후 순수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성배 탐색의 대단원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문학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그다지 흥미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용도 그러하지만, 구성상에서도 기사들의 모험과 꿈이 벌어지면 곧바로 이에 대한 종교적 해석과 꿈풀이가 반드시 뒤따른다. 본문과 해석으로 이어지는 형식은 종교적으로 유의미하지만, 문학적으로는 흥미를 저하시킨다. 이들의 모든 행위는 영적 의미를 지니는데, 그것은 행위 당사자의 영적인 타락에 대한 질책과 경고, 예시를 지닌다. 애초에 성배 탐색은 작중에서 누차 밝혔듯이 천상의 과업이기에 도덕적, 종교적으로 흠결을 지닌 기사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도 고해를 하고 죄 사함을 받지 않고서는 이 탐색에 나설 수 없으니, 모든 패역함과 죄악에서 씻김을 받고 정결해지기 전에는 아무도 그처럼 고귀한 과업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오. 이 탐색은 지상의 것들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위대한 비밀과 신비를 찾는 일이 될 것이오. (P.30)

 

당신들[고뱅과 엑토르]에게는 결코 그런 표지가 나타나지 않을 터이니, 당신들은 너무나 불충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일어나는 모험들은 인명을 해치고 기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일이며, 훨씬 더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P.209)

 

고뱅과 엑토르는 성배 탐색에 실패하고 돌아간다. 이뱅과 칼로그르낭을 비롯한 여러 기사는 목숨을 잃는다. 랑슬로, 즉 랜슬롯은 지상의 기사로서는 최고이지만, 왕비에 대한 그릇된 사랑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였기에 성배를 대면하면서도 반응하지 못하는 치욕을 마주한다. 참회를 거듭한 결과 마지막 기회가 찾아오지만, 그는 결국 창조주의 명령에 순응하지 못하는 씁쓸한 결과를 감수할 뿐이다. 랑슬로와 그니에브르 왕비의 사랑은 중세 기사도에서 찬미하는 궁정풍 사랑의 전형이지만 종교적으로는 엄연한 불륜이기에 이런 단죄를 내린 것이다.

 

당대 브리튼에 많은 모험과 이사(異事)가 출몰하였던 것은 성배 탐색의 전조라는 설정은 종국적으로 성배 탐색이 완수되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결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성배의 동지들이 모르드랭 왕과 시므온을 평안케 하고, 코르베닉 성에서 성배를 알현하고 예언에 따라 불수의 왕을 치료하고. 최종적으로 사라즈 성에 도착하여 갈라아드가 지상과 육신의 삶을 마감하는 장면은 성배 탐색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이로써 아서 왕 전설도 사실상 대단원을 내리게 되는데, 더 이상 모험해야 할 이사(異事)가 남아 있지 않아서다.

 

이 작품에서 특이한 대목은 우선 성배와 성배의 동지들을 태우는 거룩한 배의 유래다. 별도의 장을 할애할 만큼 공들여 기술하고 있는데,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에서 시작하는 창세기의 신화를 절묘하게 변용하고 재해석하고 있어 이채롭다. 페르스발의 누이는 독특하며 흥미로 인물이다. 비록 성배 탐색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들이 성배 탐색을 무사히 해 낼 수 있도록 하는 조력자다. 거룩한 배를 타고 와서 승선시키고, 불수의 왕으로 향해 갈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을 마치자 그녀는 나쁜 관습을 끝내기 위해 나병에 걸린 성주 아가씨를 살리려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그녀의 시신은 훗날 거룩한 도성 사라즈 성에서 페르스발과 함께 묻히게 되니 사후에는 주인공급의 대우를 받게 된 셈이다. 다만 목숨 걸고 살린 성주 아가씨와 성 사람들이 다음날 바로 창조주의 분노로 절멸됨은 허탈함과 동시에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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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 초절기교 연습곡
리스트 (Franz Liszt) (1811-1886) 작곡, 박종훈 (Chong Park) / 비타민엔터테인먼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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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다지 애호하지 않는 곡인데, 웅웅대는 소리를 제외하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어서였다. 오늘 각잡고 연주에 귀 기울여보니 너무나 좋은 연주다. 리스트 특유의 과장과 기교는 물론, 서정성과 재치도 들을 수 있어 과연 명곡이다 싶다. 녹음도 뛰어나서 연주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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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트리오 아티스트리 제6회 정기연주회

일시 : 2025년 10월 11일(토) 15:00

장소 : 일신홀

연주 : 트리오 아티스트리

  - 변예진 (바이올린)

  - 변새봄 (첼로)

  - 김고운 (피아노)

프로그램

  - 쇼스타코비치,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편곡: 레본 아토브미얀)

  - 수크, 피아노 삼중주 C단조 Op.2

  - 베토벤, 피아노 삼중주 7번 B flat 장조 Op.97 '대공'


* 세줄평

전반부 프로그램이 트리오의 성향에 유독 부합한다는 느낌이다. 쇼스타코비치야 그렇다 하더라도 첫 마디가 시작되자마자 슬라브향이 물씬 풍기는 요제프 수크의 곡이 풋풋함과 더불어 매력적이다. 대공 트리오는 고전주의적이기보다는 낭만적이고 슬라브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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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용재 오닐 - 3집 리패키지 Winter Journey (슈베르트 가곡,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겨울나그네) [2CD][비올라와 기타 이중주 편곡]
슈베르트 (Franz Schubert) 작곡, 이성우 외 연주 / 유니버설(Universal)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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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 오닐의 비올라로 듣는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도 훌륭하지만, 슈베르트의 리트 연주는 듣기 힘든 곡목이라 더욱 좋다. 특히 <겨울나그네>는 비올라와 두 대의 기타가 함께 하는데, 온화한 악기 음색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와중에 마음에 호소하는 듯한 연주여서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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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초니에레 대우고전총서 61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운찬 옮김 / 아카넷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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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는데 약 한 달 반이 걸렸다. 아무래도 운문이다 보니 무리해서 빨리 읽으려 하지 않고 하루에 열 편 정도를 목표했다. 소네트는 괜찮지만, 세스티나나 특히 칸초네가 있는 경우 한편으로 그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소네트 317, 칸초네 29, 세스티나 9, 발라드 7, 마드리갈 4, 366편이다.

 

이 책이 <칸초니에레>의 첫 독서는 아니다. 김효신 번역본 두 권은 1편부터 100편까지 순차적으로 수록하였다. 이상엽 번역본은 100편을 발췌하였다. 각기 장단점이 있다. 아쉬운 마음에 근년에 출판된 완역본을 무리하게 도전하였다. 이것은 또한 일련의 페트라르카 독서의 대단원이기도 하다.

 

완역본 독서에도 단점은 있다. 무엇보다도 지겨움이다. 거의 매 편 반복되는 라우라 타령에 정신이 아득할 정도다. 살아서도 라우라, 헤어져서도 라우라, 죽어서도 라우라. 라우라에게 366편을 계속 들려준다면 라우라가 아마도 도망가지 않을까. 그러면 장점은 무엇일까. 이전 세 권의 발췌본을 읽었을 때, 시인 자신의 표현대로 단편적인 시들또는 흩어진 시들이라는 의견에 기울었다. 이제는 다르다. 죽기 직전까지도 시인은 이 작품집의 새로운 편집에 몰두하였다고 하는 것처럼 시집에 수록된 각 시는 시인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배치하였기에 내적 통일성을 지닌다.

 

내가 지금의 나와는 약간 달랐던 / 젊은 시절 초기의 혼란스러움에 / 내 심장을 채우던 탄식의 소리를 / 흩어진 시들에서 듣는 여러분, (P.13, 1)

 

이 시집은 이른바 서문, 본문, 결문의 짜임새 있는 삼단 구조를 지닌다. 1편이 서문에 해당하며, 2부와 3부의 시들은 라우라 생전과 사후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다. 3부 마지막 몇 편은 세속적 사랑을 뉘우치고 신에게 귀의하며 마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완역본을 통해서만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페트라르카는 <칸초니에레>에서 소네트가 주종이지만, 칸초네, 세스티나, 발라드, 마드리갈도 노래한다. 이렇게 다채로운 시 형식을 채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소네트의 정형화된 패턴의 단조로움을 흩뜨리는 효과가 있다. 내용상에서도 분명히 시 형식에 따른 차이가 있을 텐데, 소네트가 단시라면, 특히 칸초네는 장시이기에 소네트의 분량으로는 담을 수 없는 더욱 길고 깊은 사실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다양한 시 형식에 대한 소개와 분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옮긴이는 이 책의 독자가 이미 이탈리아 시에 대한 기초 지식이 있을 거라고 간주하는 듯하다.

 

언제나 타오르는 불꽃으로 내 심장 속에서 / 아무리 말해도 지치지 않게 하는 것은 / 바로 그 아름다운 눈이라오. (P.207, 75)

 

대다수의 시는 라우라를 향한 절절하면서 불멸의 사랑을 노래한다. 그녀의 신체와 정신을 향한 거침없고 맹목적 사랑, 시인의 사랑을 거부하고 냉대하는 연인에 대한 복합적 감정과 그러함에도 어쩔 수 없는 사랑. 떨어져 있어 보지 못함에 절절한 그리움. 끝내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으로 인한 처절한 슬픔과 눈물. 이제 천상의 존재가 되어서 시인을 위로하고 훗날 천상에서 영원한 결합을 동경하는 시구들.

 

나는 집요한 아픔을 끝내지 못하고 / 매일 더해지는 고통에 괴로워하니, / 이 욕망이 점점 더 커지는 가운데 / 벌써 십 년째 가까이에 이르렀고, / 누가 나를 풀어줄지 모르고 있답니다. (P.138, 50, 칸초네)

 

마음속 연인이자 영원의 여인상인 라우라는 시인에게 현실이자 이상의 대상이다. 시인은 라우라를 처음 만난 날과 장소, 순간을 잊지 못하며 그로부터 주기적으로 기념일을 꼽는다, 심지어 라우라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이걸 보면 순전한 상상과 설정이라고 간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현실의 라우라가 그렇듯 평생에 걸쳐 불멸의 연인으로 지치지 않는 사랑과 찬미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거라는 것도 무리한 바람이다. 이미 이 단계에서 라우라는 이념적 존재로 승화되지 않았을까. 페트라르카는 연인의 이름을 함부로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그녀의 이름과 동음어인 월계수, 산들바람으로 간접적으로 나타내거나 사랑, 여인, 원수 등의 표현으로 지칭할 따름이다.

 

아모르가 아폴로의 심장에 상처를 주었고, / 이제 자유를 되찾기에는 늦었을 만큼 / 나의 목에다 달콤한 멍에를 묶었던 / 그 푸른 월계수에 부는 하늘의 산들바람은 (P.476, 197)

 

<칸초니에레>만 근거하면, 페트라르카는 평생을 라우라를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을 갈구하다 삶을 마친 것으로 알기 쉽다. 시인은 수도사 신분이었지만, 다른 여인을 통해 남매를 자식으로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예술과 현실은 같지 않으며, 라우라를 향한 이상만으로 세속적 삶을 온전히 꾸려나갈 수 없다. 이 시집을 비판적으로 감상하고 해독해야 하는 이유다.

 

제아무리 구구절절한 절창이라고 하더라도 라우라만 매번 읊조리면 독자는 금세 물려서 싫증을 내고 만다. 페트라르카의 구체적 삶을 들여다보더라도 그는 수도사이자 인문학자이며 애국자이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대략 30편 정도는 다른 대상과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우정, 이성, 종교, 정치 등이다. 당대 교회에 대한 비판은 물론 특히 이탈리아 정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뜨거운 애국심을 보여주는 대목을 자주 접할 수 있다. 훗날 마키아벨리가 유명한 저작에서 괜히 페트라르카를 인용한 게 아니다. 이렇게 이따금 다른 주제로 전환은 라우라와 사랑 일변도를 깨뜨리는 참신한 환기 효과도 지닌다.

 

자기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처럼 / 늙고 게으르고 굼뜬 이탈리아는 / 영원히 잘 텐데, 깨울 사람이 없나요? / 내가 머리칼을 움켜잡을 수 있다면! (P.144, 53, 칸초네)

 

정숙하고 겸손한 청빈으로 세워진 네가 / 너의 설립자들에 거슬러 뿔을 쳐드는구나, / 뻔뻔한 창녀여, 어디에다 희망을 두었느냐? (P.364, 138)

 

세상을 떠난 라우라를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는 시인의 염원이 통했을까. 이제 시인은 꿈속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라우라와 재회한다. 생전에는 그토록 냉대하던 여인은 이제 그를 다정하고 따스하게 대한다. 자신은 일찍 천상으로 돌아가지만, 시인은 아직 지상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에 좀 더 훗날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둥. 생전에 라우라가 시인에게 무정하고 냉대한 게 결국은 오히려 모두에 좋은 일이었으니, 두 사람이 영혼과 육신의 타락에 빠지지 않고 순결을 지닐 수 있게 되어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둥. 시인의 공상은 지상을 넘어 천상을 향한다.

 

나는 울고, 그녀는 손으로 / 나의 얼굴을 닦아주고, 이어서 / 달콤하게 한숨을 쉬고, / 바위도 깨뜨릴 수 있는 말로 화를 내고, / 그런 다음 그녀는 떠나고, 잠이 깬다오. (P.777-778, 359, 칸초네)

 

문득 시인은 각성한다, 수도사로서 본분을 자각한다. 세상과 우주의 무엇보다도 최우선으로 사랑하고 공경해야 할 하나님보다 라우라를 더 사랑한 자신의 죄악을 깨닫는다. 시인은 회개하고 신에게 자신을 구원해줄 것을 간청한다. 마지막 대단원의 칸초네는 참회의 시편이자 성모마리아를 위한 찬가이다. 각주와 작품 해설에서는 단테의 <신곡> 구성과 명시적 유사성을 언급한다.

 

아모르는 스물한 해 동안 불 속에서 즐겁고, / 고통 속에서 희망에 넘쳐 불타게 했고, / 여인과 저의 심장이 함께 하늘로 올라간 다음 / 다시 열 해 동안 울게 했습니다. (P.793, 364)

 

당신의 아들, 진정한 사람이자 / 진정한 하느님께 부탁하시어, / 저의 마지막 정신을 평화 속에 받아들이게 해주소서. (P.803, 366, 칸초네)

 

<칸초니에레>를 단순한 사랑 노래로 간주해도 좋다. 개별 시편은 사랑의 대상과 감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기에 시 작품 개별의 감상을 깊이 음미해도 좋다. 이 경우 발췌본이 충분한 역할을 한다. 다만 전체로서 통일성과 체계성을 가진 시집 <칸초니에레>의 전모를 알려면 반드시 완역본을 접해야 한다. 완독의 고통은 따르겠지만, 시인이 평생에 걸쳐 추구하고 창작하고 배치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어서다. 그것이 이 두툼한 완역본을 읽은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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