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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자리 - 개정판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4년 6월
평점 :
어른이 된 우리가 사진이나 영상 속 어린 자신을 보면 생소함과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내게 과연 그러한 때가 있었던가 하는 새삼스러운 의구심도. 부모님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동일한 감정을 품게 된다. 그네들도 어린 시기, 청춘의 때가 있었구나 하는 뜻밖의 발견도. 우리가 익히 아는 부모는 언제나 어른이거나 노인의 모습뿐이다. 우리랑 비슷한 또래 또는 더 어린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경험은 자못 묘하다.
어릴 때는 절대적 존재감을 지닌 부모이지만, 늙고 약해진 부모는 보살핌의 대상이자 구시대의 유산이다. 귀가 닳도록 되풀이하는 옛날 타령과,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무용한 습관과 말투, 태도 등. 비교적 짤막한 이 작품을 읽는 소회는, 한국이나 프랑스나 자식은 참으로 부모를 이해하기 어렵구나 하는 유사성이다.
나는 예전처럼 울고 싶다. <<그러니까 그는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니까!>> (P.90)
잘난 부모라면, 물려받고 따를 것이 많겠지만 화자처럼 시골, 소시민 계층에서 자라난 경우 당사자의 일차적 목표는 탈출이다. 촌스럽고 수준 낮은 집안과 동네를 떠나 대도시의 세련되고 고상한 사회에 진입하는 것. 화자의 아버지로서는 아내와 함께 소박하나마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게 된 것 자체도 장족의 발전이자 성공이다. 중세 시대나 다름없던 시골에서 자라 공장에서 일하다가 자영업을 시작하며 노동자에서 사장님으로 변신하였으니까. 배운 것 없고, 부유하지 못한 처지이지만, 그는 그 자리를 얻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했다. 노동자보다는 상인으로 보이고 싶어 했다. (P.39)
화자의 어린 시절은 카페 겸 식료품점을 드나드는 술꾼과 가난한 이웃의 허름한 삶으로 기억한다. 친구들처럼 적당히 학교 다니다가 청소년기에 일자리를 구해서 부모와 비슷한 삶의 패턴을 반복하는 것, 그게 화자에게 비친 자신의 미래이다. 화자가 그들과 달랐던 점은 똑똑하여 공부를 잘하였고, (아버지가 어렵사리 확보하고 안주하는) 처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여서다. 격려하고 상찬할 만한 선택이다.
어떤 낯선 이의 시선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세계에 들어간 것은, 그 세계가 내게 열렸던 것은 내가 살던 세계의 방식과 생각, 취향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P.86)
학력이나 직업 등에서 이미 화자는 부모 수준을 뛰어넘었다. 그녀가 고향에 커다란 애정을 지닌 것도 아니다. 그녀가 접하는 사회는 대도시의 고상하고 지적인 소위 부르주아다. 화자가 가끔이나마 고향을 되돌아보는 까닭은 부모가 사는 곳이기에 그러하리라. 그런 부모의 존재도 본능적이고 윤리적인 최소한일 뿐 엄청난 사랑과 존경을 품고 있어서도 아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화자와 아버지 간 단절과 불통은 일견 정상적이면서도 안타까움을 갖게 만든다. 우리는 부모들이 어릴 때부터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다. 우리가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은 현재에 국한될 따름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네들을 온전히, 그리고 온당히 이해할 수 없다.
식사를 하던 중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움이 터지고는 했다. 그가 대화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나는 늘 내가 옳다고 믿었다. 나는 그가 음식을 먹는 태도 혹은 말하는 방식을 지적했다. (P.75)
화자의 글쓰기는 서술적이며, 건조하다. 내용상 과장이나 수식을 극도로 배제한다. 표현에서도 감정개입을 조심하고 담담한 태도를 끝까지 견지한다. 때문에 이 작품을 소설로 보는 게 타당한지 의구심이 든다. 전기라고 하긴 그렇고 수기 또는 행장에 가깝다. 그럼에도 작가가 이런 글쓰기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을 그리는 게 가장 확실해서다. 그렇지 않은 삶은 잘 알지 못할뿐더러 허구나 과장이 개입될 것임을 피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이 작품에서 어떠한 극적인 사건 흐름과 감동적인 장면을 기대한다면 낭패다. 20세기 후반기에 여전하였던 자식과 부모 세대 간 소통 단절과 부재, 시골과 도시, 하류 계층과 중상류 계층 간 뚜렷한 계층 차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는 21세기 전반기에 그것이 단지 과거의 유물에 불과한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지 아닌지를 우리 각자는 비교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글을 쓰며 하류라 여겨지는 삶의 방식에 대한 명예회복과 그에 따른 소외를 고발하는 일 사이에서 좁다란 길을 본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의 것이었고 심지어 행복하기도 했으며, 우리가 살던 환경의 수치스러운 장벽들(<<우리 집은 잘살지 못한다>>는 인식)이기도 했으니까. (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