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라하 여행길의 모차르트 / 슈투트가르트의 도깨비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70
에두아르트 뫼리케 지음, 윤도중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2월
평점 :
에두아르트 뫼리케는 슈만과 볼프의 독일 가곡으로 일반적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 면에서 시인과 작가로서 뫼리케의 본령은 생소하고 의외로 다가온다. 이 책에 실린 노벨레 <프라하 여행길의 모차르트>와 동화 <슈투트가르트의 도깨비>는 뫼리케를 알기 위한 매우 적절한 선택이다.
1. 프라하 여행길의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클래식 음악사상 최고의 천재로서 영화 <아마데우스>의 이미지가 굉장히 각인되어 있다. 살리에리와의 대결 관계는 이 소설에서도 ‘불구대천지원수’ 등의 표현으로 강조된다. 대중으로서는 모차르트의 때 이른 죽음과, 음모론을 연계하고 싶은 유혹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운 듯하다.
각설하고 같은 천재라도 모차르트는 베토벤과 다르다고 한다. 베토벤의 자필 원고를 보면 무수히 수정과 삭제, 퇴고를 반복한 자취가 있는 반면 모차르트의 그것은 마치 베껴 쓴 듯 깔끔하다고 하니. 그러한 음악이 오늘날 아름답기 그지없는 최고의 명곡으로 칭송받고 있으니 확실히 뮤즈의 영감을 전수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라는 음악사상 전대미문의 현상을 그의 삶과 음악을 연관 지어 이해하려는 문학적 시도다. 빈에서 프라하로 연주 여행을 가는 여정에서 벌어지는 뜻밖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우리는 모차르트라는 다채로운 인물의 불후의 음악과 필멸의 삶이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흘러넘칠 듯한 풍요로운 음과 선율로 특징 지어지는 것처럼 그의 삶도 일체의 유보 없는 현세 지향적임을 보여준다. 고도의 초인간적인 영감을 끌어내는 작업에 몰두하는 건 결국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음을 잦은 우울증의 발현으로 암시하면서.
제기랄, 나는 사람들이 놓치고 뒤로 미루고 내버려두는 걸 생각해서는 안 되오. 신과 인간에 대한 의무를 얘기하는 게 아니오. 온전한 향유, 매일 우리 발아래 놓인 소박하고 순수한 즐거움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오. (P.14)
작가는 모차르트 최후의 대작 오페라 <돈 조반니>와 관련한 설정을 집어넣으면서 시골 혼례식 장면의 사실성을 확보하고, 마지막 석상 장면의 무시무시함을 처음 공개하면서 청중을 충격에 빠뜨리는 동시에 오이게니로 하여금 모차르트의 임박한 슬픈 장래를 예감케 한다. 백작 가문의 여러 사람 중 모차르트를 진실로 이해하는 오직 오이게니 혼자뿐이다.
이 사람이 빠르게 그리고 막을 수 없이 자기 자신의 불꽃으로 생명을 불태운다는 것, 그가 발산하는 지나친 불꽃을 실제로 감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가 지구상의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확실, 아주 확실해졌다. (P.95)
작가는 이야기를 흐름에 따라 순탄하게 그려가지 않는다. 모차르트가 자기 자신을 망각하게 된 계기로 시작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 대목, 오렌지 나무와 관련한 백작 가문의 오랜 추억 이야기, 모차르트 부인이 털어놓는 소위 여행 가방 안 보물 이야기 등이 삽입되면서 흐름을 방해하는데, 산만하게 보이는 구성은 결국 작가가 의도적으로 모차르트라는 인간의 다면성을 조명하기 위한 장치임을 깨닫게 된다.
2. 슈투트가르트의 도깨비
동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어린이를 위한 작품은 결코 아니다. 길고 난삽하고 비비 꼬인 줄거리에, 굉장히 긴 삽입 이야기의 반복적 등장 등으로 한마디로 어수선함을 안겨준다. 아마도 동화라는 분류는 이것이 도깨비와 인어, 마법 구두 따위의 비현실적 존재의 등장, 남녀 주인공의 행복한 결말 등으로 일반적 소설 문학보다는 환상적 요소가 강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작품을 이끌어가는 남주는 기능공 제페이며, 중간에 잠시 여주 브로네의 이야기가 나오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밧줄 타기에서 결합한다. 전체적으로는 제페의 여정이 작품의 동인이 되는데, 고향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여러 지방을 방랑하다가 다시금 고향으로 복귀하는 지역적 배경을 지닌다.
“너희가 밧줄 위에서 혼인을 약속했다고? 그래, 모든 성인에게 맹세코, 그 바보 같은 짓이 가장 마음에 드는구나. 그런 일은 우리 슈바벤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장한 젊은이들아, 행운을 빈다.” (P.221)
백작 영주의 말에서 나타나듯이,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슈바벤 지방의 향토적, 문화적 색채를 담뿍 담고 있는 일종의 지방주의 문학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동화에서 주인공들에게 도움을 주고 끝내 결합시키며,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지탱해 나가는 존재는 난쟁이 도깨비다. 인간에게 분탕질과 해악을 끼치는 유형이 아니라는 점, 이상한 힘을 지닌 측연을 얻기 위해 인간과 거래하는 도깨비는 분명 이채로우면서 흥미 있는 캐릭터라고 하겠다.
이 작품 역시 흐름 자체는 매끄럽고 유려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작품 전개와 직간접적인 연관을 지닌 다채로운 삽화와 회상 등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여기에 작가가 “친애하는 독자여” 하며 직접적으로 작중에 개입하여 자신의 관점과 해석을 늘어놓고 서사 전개를 주도하기도 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찌 보면 제페의 인생 여행담은 부차적이며, 슈투트가르트 지방의 전반적인 문화와 풍속을 보여주는 게 주안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작중 이야기로는 제페가 장인 부인에게 들려주는 파일란트 박사 이야기,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시장 인형극, 슈투트가르트 축제 가장행렬의 흥겨운 장면 등이 나온다. 무엇보다 웬만한 단편 분량으로 들어 있는 ‘아름다운 요정 라우의 이야기’가 핵심적인데, 민음사 출간본에서는 이 이야기만 단독으로 실려 있다. 라우, 도깨비, 제페 모두가 측연이라는 물건을 통해 통시대적으로 연결되어 문화적 정체성을 특징짓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