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씨의 선생님이 말합니다.

위문편지를 씁시다. 나라와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군인 아저씨들에게 편지를 씁시다.

파씨는 안녕하세요, 저는 파씨입니다, 열살입니다, 삼학년 십이반입니다. 제일 잘하는 과목은 미술입니다, 크리스마스엔 선생님께서 아홉 가지 색깔의 연필을 주셨습니다. 파랑과 노랑이 제일 먼저 사라집니다. 흰색과 빨간색이 그다음으로 사라집니다. 파씨는 어제저녁에 추웠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추울 예정입니다. 아저씨도 춥습니까, 거긴 춥습니까, 세계는 춥습니까, 파씨는 세계라는 것은 잘 모르지만 거기가 춥고 아저씨가 너무 추워서 지금 울고 있다면 세계는 빌어먹게 나쁜 곳입니다,라고 씁니다. (...) 계속 세계의 평화를 지켜주세요,라고 제대로 된 위문편지를, 그러니까 위문慰問이라니 깜짝이지 싶지만 어쨌건, 진심을 다한 위문으로 위문편지를 쓰라고 말합니다. 파씨는 종이에 안녕하세요, 한 줄을 적고 나머지를 빈 채로 남겨둡니다. 왜냐하면 파씨는 조그맣고, 조그만 파씨의 조그만 평화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세계의 평화 같은 거대한 것은 파씨가 감히 소원해볼 수 없는바, 파씨는 편지를 빈 채로 내버려두고 부엌으로 내려가서 불을 켭니다.
- 황정은, '파씨의 입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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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 당신들은 젖비린내 나는 애들에 불과했다고요. 이층에 있는 저 애들처럼!"
나는 인정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우리는 전쟁 때 이제 막 아동기를 벗어나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들이었다.
"그런데도 소설에는 그렇게 안 쓰겠죠?" 이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규탄이었다.
"모─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난 알아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아이가 아니고 어른이었던 것처럼 쓸 거고, 영화화 되면 프랭크 시나트라나 존 웨인처럼 매력 있고 전쟁을 좋아하고 지저분한 배우들이 당신 역을 맡겠죠. 그럼 전쟁이 아주 멋져 보일 거고, 그러면 우리는 훨씬 많은 전쟁을 치르게 되겠죠. 그리고 그런 전쟁에서는 이층의 저 애들 같은 어린애들이 싸우겠죠."
(25p)

"내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지구인들을 연구하지 않았다면"하며 그 트랄파마도어 인은 말했다. "나는 `자유 의지`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거요. 나는 우주의 유인 행성 서른한 곳에 가 보았고 1백 곳에 대한 보고서를 검토했소. 자유 의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행성은 지구뿐이더군."
(104-105p)

이 소설에는 대단한 인물이 거의 없으며, 극적인 갈등도 거의 없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심하게 병들고 심히 무력한, 거대한 힘의 노리개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쟁의 중요한 영향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대단한 인물이 될 마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191p)

파티 손님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검안과 관련이 있었는데, 트라우트만 예외였다. 또 그 혼자만 안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모두들 그 파티에 진짜 작가가 참석한 사실에 몸이 떨리도록 흥분한 것이다. 그의 책은 읽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198p)

대피소 밖은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안전해졌다. 미군들과 경비병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시커먼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태양은 성난 작은 못대가리였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같았다. 미네랄 덩어리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돌들은 뜨거웠다. 인근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 (207-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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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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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게임을 즐겨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하는 게임은 베데스다에서 나오는 폴아웃 시리즈인데, 핵전쟁 이후 황무지로 변한 'The Wasteland'를 무대로 한 것이다. 그 게임의 엔딩은 항상 이렇다. 'War, war never changes.' 전쟁이라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항상 반복되어 온, 인간의 잔인함이 가진 끝을 보여주는 역사다. 드레스덴 폭격을 다룬 <제5도살장> 역시 이런 가치관을 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듯하다.

 

한번은 영화 제작자인 해리슨 스타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반전(反戰) 책이오?"

"예, 그럴 겁니다." 내가 대답했다.

"반전 책을 쓴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뭐라는지 아시오?"

"아니요. 뭐라고 하시는데요?"

"'차라리 반빙하(半氷河) 책을 쓰지 그래요?' 그럽니다."

물론, 그의 말은 전쟁은 항상 있는 거고, 빙하만큼이나 막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동감이다.

그리고 전쟁이 빙하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밀려오지 않더라도, 그 흔해빠진 죽음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13p)

 

여태껏 내가 전쟁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읽은 이후 형성되었던 것이었는데, 보네거트의 이 소설은 그런 관습적인 이미지를 걷어 차버리고 시간여행과 외계인이라는 요소를 함께 엮는다. 사건을 직접 겪은 작가에게 그 끔찍한 실상을 전달하는 방법은 이를 통해 시간을 뒤틀어 버리는 형식으로 서술하는 것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덕분에, 소설은 다른 전쟁소설과 다르게, 비선형적인 서사 속에 허무주의와 풍자, 블랙 유머를 곳곳에 숨겨 두었다.

 

드레스덴 폭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2차 대전 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이 소설을 읽고 처음 알아 인터넷을 찾아봤을 정도니까. 어쩌면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입은 피해였다는 점이 다른 역사적 사실에 비해 부각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사를 풀어내는 보네거트의 모습에서는 비관론과 허무주의가 보인다. 죽음이 나타날 때마다 등장하는 '그렇게 가는 거지.'라는 말에서 보여주듯, 그의 서사는 냉정하다 못해 무감한 것 같다. 4차원의 세계를 보는 트랄파마도어 인을 등장시킨 것도 그런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모든 시간은 모든 시간일 뿐이오. 그것은 변하지 않지. 그것은 경고나 설명의 대상이 아니오. 시간은 그저 존재할 뿐이니까. 각각의 순간을 떼어놓고 보면, 우리는 모두, 내 이미 말했듯이, 호박 속의 벌레가 되는 거요. (104p)

 

빌리와 트랄파마도어 인, 그리고 서술자에 의해 기술되는 전쟁과 인간의 모습에는 어떤 온기도 없다. 시간여행이라는 요소가 운명론적인 시각을 더욱 부각시키며, '그렇게 가는 거지.'로 요약될 수 있는 비관론과 회의론은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혹자는 이런 비관적인 시각이, 인간에 대한 어떤 믿음도 없는 듯한 이 분위기가 마음에 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읽으면서 나타나는 우스꽝스럽지만 슬프면서 끔찍하기도 한 '슐라흐토프-퓐프'의 모습을 읽다 보면, 어느새 보네거트에게 동조하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랬다. 물론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한몫을 했겠지만.

 

"불가피한 일이었소." 럼퍼드가 빌리에게 말했다. 드레스덴 폭격을 두고 한 말이었다.

"압니다." 빌리가 말했다.

"전쟁이란 그런 거요."

"압니다. 전 불평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지상은 지옥이었겠소?"

"그랬지요." 빌리 필그림이 말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시오."

"이해합니다."

"선생은 심정이 착잡했겠소? 거기 지상에서 말이오."

"상관없었습니다." 빌리가 말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어요. 모두들 자신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나는 그것을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웠습니다."

(231-232p)

 

전쟁이 끝난 이후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잘못은, '너무나 큰 비극이었지만,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일일 것이다. 그 합리화의 주체가 거대할수록, 그것은 하나의 담론이 되어 수많은 죽음을 정당화한다. 그렇게 형성한 담론들은, 살아남은 인간 공동체의 회피 기제일 뿐이며, 이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할 것이다.

 

인간은 전쟁을 다시 되풀이할 것이다. 언젠가는. 이것은 얼마나 도덕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으므로. 현재에 머물기를 지속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가는 거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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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감정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3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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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Hommage), 라는 단어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마주는 원래 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이르는 용어다.(네이버 백과사전) 명백하게 말하자면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은 오마주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테지만, 이 소설의 모습을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오마주라는 단어뿐이었다. 언어 수준의 빈약함이란...

 

소설은 분명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굉장히 집중해서 작가가 어딘가 슬쩍 집어넣었을 카프카의 그림자를 찾고 그것을 추적해야 작품의 묘미를 알 수 있다. 작품 곳곳에는 카프카의 단편 '사냥꾼 그라쿠스'의 변주가 숨겨져 있는데, 세 번째 장인 ‘K 박사의 리바 온천 여행’ 에 줄거리가 나와 있지만(일곱 쪽밖에 되지 않는 짧은 단편이므로 거의 모든 내용을 다루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단편을 먼저 읽고 보는 것이 작품을 읽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실제로 책을 읽다가 도중에 '사냥꾼 그라쿠스'를 읽은 뒤, 다시 앞부분을 읽으면서 아, 하고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으므로.

 

리바의 부둣가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두 소년이 벌써 나와 앉아서 주사위놀이를 하고 있었다. 벨은 마담 게라르디에게 육중한 낡은 배 한 척을 가리켜 보였다. 돛대는 위에서 삼분의 일 정도 지점에서 부서졌으며 누렇게 변색된 돛은 다 찢어져 너덜거렸다. 그 배는 아마도 방금 부두에 도착한 듯이 보였는데, 은색 단추가 달린 검은 옷차림의 두 남자가 들것 하나를 배에서 육지로 운반해내는 중이었다. 들것은 보풀이 인 커다란 꽃무늬 비단천으로 덮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 장면을 목격한 마담 게라르디는 기분이 좋지 않아 그 자리에서 당장 리바를 떠나자고 말했다.

-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 (27p)

두 소년이 방파제 위에 앉아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다. (...) 푸른 작업복을 입은 한 남자가 상륙하여 밧줄을 고리에 걸어 당겼다. 은단추가 걸린 검정 저고리 차림의 다른 두 남자들이 사공 뒤에서 들것을 들고 들어오는데, 그 위에는 꽃무늬에 술이 달린 큰 비단보에 덮여 분명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 이주동 옮김, '사냥꾼 그라쿠스',『카프카 전집 1 - 변신』, 솔출판사

 

소설은 스탕달의 전기를 다룬 첫 번째 장, 1980년과 1987년 화자가 이탈리아를 여행한 일을 다룬 두 번째 장, 카프카가 1913년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시기를 다룬 세 번째 장,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자신의 고향 W로 돌아와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네 번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홀수 장은 실존 인물들의 이탈리아 여행을 다루고 있어 짧고, 짝수 장은 분량이 길어 '약-강-약-강'과 같은 모습을 띠는데, 곳곳에 카프카의 그림자가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자(제발트 본인일 거라고 추측되는)의 이탈리아 여행 역시 카프카의 이탈리아 여행의 궤적을 밟고 있으며, 곳곳에 등장하는 그라쿠스의 변주들은 너무 많아 다 적을 수도 없다.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스탕달-카프카-제발트의 모습이 굉장히 닮아서, 그들의 모습이 하나로 겹쳐지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고독하고, 현실과 미지의 세계를 오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곳곳에 나타나는 그라쿠스의 환영은 이런 겹쳐짐을 더욱 극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수많은 접점들을 통해 제발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알다시피, 사실과 기억은 전혀 다르다. 벨 스스로도, 설사 직접 체험한 일에 대한 생생한 기억의 장면이라 할지라도 그 신뢰도는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다고 썼다.'(12p)라고 나와있듯, 사실과 기억 사이에서 떠도는 더없이 초라한 존재의 모습이었을까.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현기증과 감정들이다. 화자는 놀라울 만큼 해박한 지식으로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하다가도, 불현듯 찾아오는 현기증과 감정들로 인해 미지의 경계를 떠돈다. 문제는 이렇게 현실과 미지를 왔다갔다하는 과정에서 점차 네 개의 장의 인물들이 하나로 겹쳐진다는 것이다. 마치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그라쿠스 역시 죽었지만 생과 사를 떠돌게 되었다는 점에서 같이 묶을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스탕달과 카프카의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충실한 기록으로 보이는 1장과 3장 역시 화자에 의해 변형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실과 기억은 전혀 다르므로.

 

이 소설은 어렵다. 문장에 담긴 단어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야 그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나 역시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스탕달과 화자의 연결성에 대한 확신이 아직도 없으므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까지의 소설들과는 분명히 다른 지역을 개척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 현기증이라는 경계 사이에서 떠도는 화자와 인물들의 모습에서 어느 순간 그 겹쳐짐에 감탄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 자신도 모르게 그라쿠스-카프카-제발트로 연결되는 지점을 찾게 되리라는 것. 내가 이 소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정도인 듯하다.

 

덧 ) 번역의 문제는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역자 해설에 붙은 말처럼 '제발트적 울림'을 줄어들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직역한 것 같이 갑작스럽게 삽입되는 문장, 띄어쓰기와 오탈자는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해설을 독자가 제발트를 어느 정도 알 것이라는 전제하에 쓰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이 작품이 제발트의 첫 소설인만큼 제발트를 이 책으로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많을 텐데, 이런 식으로 해설을 쓰면 안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어로 읽으면 좀더 제발트의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럴 일은 아마도 내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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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5-08-2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진짜. 이 책 언제 읽지. ㅋㅋㅋ

아무 2015-08-21 19:19   좋아요 0 | URL
3일만 투자하시면 됩니다 ㅎㅎ.... 오랜만에 보물찾기하는 느낌이 들었던 책.. 덕분에 카프카 전집까지 찾아보고 ^^;;
 

 


머릿속에 그려보았던 전장의 풍경과 실제로 그 전투가 있었음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눈으로 목격한 전장 풍경의 차이가 너무나 컸으므로, 예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모종의 현기증, 어떤 광적인 감정이 그를 엄습했다. 아마도 바로 그런 이유로, 전장에 서 있는 기념비가 극단적으로 조그맣게 보였을 것이라고 그는 썼다. 초라하고 흐릿한 기념비는 마렝고 전투를 상상할 때마다 그를 장악했던 요동치는 광폭함과도, 마치 멸망으로 침몰하고 있는 한 인간처럼 홀로 서 있는 이 끝없는 시체 들판의 광막함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20-21p)

병이 지속되는 동안 대화재의 불길에 휩싸인 모스크바 광경, 그리고 열병에 걸리기 직전에 계획해두었던 슈네코프 산 등반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라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산 정상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여러 차례 반복해서 나타났으며,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모두 잃어버린 채 사방에는 오직 거센 바람과 수평으로 휘몰아치는 사나운 눈송이들, 그리고 집들의 지붕을 뚫고 활활 솟아오르는 화염의 혓바닥이 눈앞에 보이는 것이었다.
-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25p)

그때 마담 게라르디는, 사랑은 다른 종류의 많은 문명의 혜택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본성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더 간절하게 갈망할 수밖에 없는 키마이라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가 오직 타인의 육신에서 본성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결국 그것과 멀어지게 될 뿐인데, 왜냐하면 사랑은 스스로 만들어낸 통화에 의해서만 부채 상환이 가능한 열정, 즉 다행스럽게도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허상의 거래이기 때문이다. 마치 벨이 모데나에서 구입한 깃펜깎이처럼 말이다.
-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26p)

아마도 그러느라 너무 지친 탓인지, 나는 내가 아는 누군가가 방금 곁을 스쳐지나간다는 느낌에 수시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런─다른 명칭을 붙일 수 없는─환각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 내가 수년 동안 한 번도 떠올린 적이 없는 사람들, 말하자면 이미 죽은 사람들뿐이었다. 또는 죽었을 것이 확실한 사람들, 이를테면 마틸트 젤로스와 외팔이 마을 서기 퓌르구트를 나는 보았다. (……) 그런 돌연한 환각을 몇 번 겪고 나자 내 마음속에는 울렁거림과 현기증으로 묘사할 수 있는 희미한 우려가 싹트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붙잡고자 하는 장면들의 테두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머릿속에 피어나는 모종의 생각들은 내가 채 인식하기도 전에 와해되었다.
- `외국에서`(37-38p)

우리가 함께한 그날 오전 시간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우리는 하늘을 나는 법을 배웠으리라. 적어도 나는, 품위 있게 추락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최고의 순간은 결코 다다르지 못하는 법. 말하자면 그라이펜슈타인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이제 옛날 같지 않았다는 의미다.
- `외국에서`(43-44p)

카사노바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생각한다. 인간이 실제로 미쳐버리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그럴 만한 계기는 삶의 도처에 널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의 자기 자신에 아주 약간의 균열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카사노바는 인간의 명확한 판단력을 저 홀로는 깨지지 않는 유리에 비유한다. 단지 외부의 충격에 의해서만 깨지지만, 일단 깨질 때는 또 얼마나 쉽게 깨지고 마는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끝이다.
- `외국에서`(57-58p)

베로나에서 이곳을 거쳐간 카프카 박사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 역에서 내려 이 화장실을 사용했을까, 지금 나처럼 바로 이 거울을 들여다본 것은 아닐까. 그랬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거울 근처에 있는 그라피티 중 하나가 나에게 그 사실을 암시해주었다. 사냥꾼이라는 글자가 서툰 솜씨로 쓰여 있었다. 손을 말리면서 나는 글자 앞에 슈바르츠발트의라고 덧붙여놓았다.
- `외국에서`(86p)

루치아나가 페르네트를 가지고 왔다. 이번에도 그녀는 잠시 동안 곁에 서서 내가 펼쳐들고 있는 신문을 들여다보았다. 하녀, 하고 그녀가 입속말로 중얼거렸고, 그녀의 손이 내 어깨를 건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친 것은, 사실상 모르는 관계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낯선 여인이 시도한 신체 접촉은 살면서 참 드물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우연히 일어난 피부 접촉은 늘 그랬듯이 무게도 중력도 없는 어떤 것, 실제라기보다는 허상과도 같은, 그래서 한없이 투명한 사물처럼 나를 관통해가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 이날 오후 리모네에서도 당시 맨체스터에서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주변 사물의 형체가 초점이 맞지 않는 안경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볼 때처럼 일제히 흔들리며 의식 속에서 와해되어 사라졌다.
- `외국에서`(95-96p)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사실은, 그때 순간적으로 갑자기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수일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 마침내 이곳에 도달하게 된 나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에도,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 있는 것인지 그 너머 다른 세계를 서성이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렇게 기억을 상실한 상태는 대성당 꼭대기층 갤러리로 올라갈 때까지 지속되었고, 빈번하게 나를 엄습했던 현기증에 다시금 휩싸였는데, 내게는 완전히 낯설고 이상하게 보일 뿐인, 허공을 가득 뒤덮은 연무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는 이 도시의 파노라마를 시야에 담는 순간에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 `외국에서`(112-113p)

퇴근 후 나는 산문 속으로 구원을 찾아 떠나는 겁니다, 하고 살바토레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섬으로 휴가를 떠나듯이 말이죠. 온종일 소음이 홍수를 이루는 편집국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가, 저녁이 되면 내내 나만의 섬에 있게 되는 셈이죠. 그리고 책의 첫번째 문장을 읽기 시작하면 노를 저어 물 가운데로 점점 더 멀리 나아가는 느낌이 들곤 한답니다. 오직 저녁시간의 이런 독서가 있었기에 나는 이날까지 제정신을 유지하고 살아올 수가 있었던 거지요.
- `외국에서`(124p)

마담 게라르디는 그곳에서 한 광부에게, 이미 죽어버리기는 했지만 도리어 그 덕분에 수천 조각의 크리스털로 뒤덮인 나뭇가지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그들이 숙소로 되돌아왔을 때, 가지 위에 내리쪼인 햇빛이 결정체의 표면에서 수천 갈래의 영롱한 파편으로 쪼개졌다고, 그것은 무도회장 조명의 환한 빛이 신사들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숙녀들의 다이아몬드 장신구 위로 부서질 때만 나올 수 있는 그런 찬란함이라고 벨은 썼다.
죽은 나뭇가지를 기적의 예술품으로 만드는 그 오랜 결정화 과정은, 우리 영혼의 암염광산에서 성장해가는 사랑의 알레고리처럼 느껴졌다고 벨은 묘사했다.
- ‘벨, 또는 사랑에 대한 기묘한 사실’ (28p)

K 박사는 육체를 배제한 사랑의 이론을 단편적으로 풀어놓는다. 그런 사랑에는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것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적어도 우리가 눈을 뜨고 있는 한 행복의 근원은 자연이지 이미 오래전에 자연으로부터 유리된 우리의 육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리석은 연인들은, 사랑에 빠지면 대부분 다 어리석어지기 마련인데, 아예 눈을 감아버리거나,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지만, 욕망으로 흐려진 눈을 찢어져라 크게 떠버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성욕으로 그 어떤 때보다 더 대책 없는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이제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나는 상상은 걷잡을 수가 없다. 끊임없는 변화와 반복을 요구하는 강박이 인간을 굴복시킨다. 이미 그가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듯이 일단 그런 강박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이, 인간이 영원히 붙들어놓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형상조차도, 허공에 산산이 흩어지고 만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가 인식하기에 광증과 실제로 맞닿아 있는 것이 분명한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상상으로 만들어낸 검은색 나폴레옹식 사령관 모자를 그 자신의 자의식 위에 씌워주는 일이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그에게 가장 필요 없는 사물이 바로 그런 사령관 모자다. 왜냐하면 이 호수 위에서 그들은 그야말로 육체가 거의 없는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며, 그들 개인의 무의미성을 통찰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에 걸맞은 혜안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 ‘K 박사의 리바 온천 여행’ (150-150p)

그는 특히,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일이 내 안에서 저절로 설명되고, 그럼에도 그 일들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욱 수수께끼처럼 변해간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과거에서 끌어올린 그림들을 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그것들이 과연 내가 기억한 대로 흘러갔던 것인지가 더욱 모호해질 뿐이라고, 왜냐하면 과거에 속한 그 무엇도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또한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경악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 ‘귀향’ (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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