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씨의 선생님이 말합니다.

위문편지를 씁시다. 나라와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군인 아저씨들에게 편지를 씁시다.

파씨는 안녕하세요, 저는 파씨입니다, 열살입니다, 삼학년 십이반입니다. 제일 잘하는 과목은 미술입니다, 크리스마스엔 선생님께서 아홉 가지 색깔의 연필을 주셨습니다. 파랑과 노랑이 제일 먼저 사라집니다. 흰색과 빨간색이 그다음으로 사라집니다. 파씨는 어제저녁에 추웠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추울 예정입니다. 아저씨도 춥습니까, 거긴 춥습니까, 세계는 춥습니까, 파씨는 세계라는 것은 잘 모르지만 거기가 춥고 아저씨가 너무 추워서 지금 울고 있다면 세계는 빌어먹게 나쁜 곳입니다,라고 씁니다. (...) 계속 세계의 평화를 지켜주세요,라고 제대로 된 위문편지를, 그러니까 위문慰問이라니 깜짝이지 싶지만 어쨌건, 진심을 다한 위문으로 위문편지를 쓰라고 말합니다. 파씨는 종이에 안녕하세요, 한 줄을 적고 나머지를 빈 채로 남겨둡니다. 왜냐하면 파씨는 조그맣고, 조그만 파씨의 조그만 평화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세계의 평화 같은 거대한 것은 파씨가 감히 소원해볼 수 없는바, 파씨는 편지를 빈 채로 내버려두고 부엌으로 내려가서 불을 켭니다.
- 황정은, '파씨의 입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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