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게임을 즐겨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하는 게임은 베데스다에서 나오는 폴아웃 시리즈인데, 핵전쟁 이후 황무지로 변한 'The Wasteland'를 무대로 한 것이다. 그 게임의 엔딩은 항상 이렇다. 'War, war never changes.' 전쟁이라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항상 반복되어 온, 인간의 잔인함이 가진 끝을 보여주는 역사다. 드레스덴 폭격을 다룬 <제5도살장> 역시 이런 가치관을 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듯하다.

 

한번은 영화 제작자인 해리슨 스타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반전(反戰) 책이오?"

"예, 그럴 겁니다." 내가 대답했다.

"반전 책을 쓴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뭐라는지 아시오?"

"아니요. 뭐라고 하시는데요?"

"'차라리 반빙하(半氷河) 책을 쓰지 그래요?' 그럽니다."

물론, 그의 말은 전쟁은 항상 있는 거고, 빙하만큼이나 막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동감이다.

그리고 전쟁이 빙하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밀려오지 않더라도, 그 흔해빠진 죽음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13p)

 

여태껏 내가 전쟁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읽은 이후 형성되었던 것이었는데, 보네거트의 이 소설은 그런 관습적인 이미지를 걷어 차버리고 시간여행과 외계인이라는 요소를 함께 엮는다. 사건을 직접 겪은 작가에게 그 끔찍한 실상을 전달하는 방법은 이를 통해 시간을 뒤틀어 버리는 형식으로 서술하는 것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덕분에, 소설은 다른 전쟁소설과 다르게, 비선형적인 서사 속에 허무주의와 풍자, 블랙 유머를 곳곳에 숨겨 두었다.

 

드레스덴 폭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2차 대전 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이 소설을 읽고 처음 알아 인터넷을 찾아봤을 정도니까. 어쩌면 전쟁을 일으킨 독일이 입은 피해였다는 점이 다른 역사적 사실에 비해 부각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사를 풀어내는 보네거트의 모습에서는 비관론과 허무주의가 보인다. 죽음이 나타날 때마다 등장하는 '그렇게 가는 거지.'라는 말에서 보여주듯, 그의 서사는 냉정하다 못해 무감한 것 같다. 4차원의 세계를 보는 트랄파마도어 인을 등장시킨 것도 그런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모든 시간은 모든 시간일 뿐이오. 그것은 변하지 않지. 그것은 경고나 설명의 대상이 아니오. 시간은 그저 존재할 뿐이니까. 각각의 순간을 떼어놓고 보면, 우리는 모두, 내 이미 말했듯이, 호박 속의 벌레가 되는 거요. (104p)

 

빌리와 트랄파마도어 인, 그리고 서술자에 의해 기술되는 전쟁과 인간의 모습에는 어떤 온기도 없다. 시간여행이라는 요소가 운명론적인 시각을 더욱 부각시키며, '그렇게 가는 거지.'로 요약될 수 있는 비관론과 회의론은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혹자는 이런 비관적인 시각이, 인간에 대한 어떤 믿음도 없는 듯한 이 분위기가 마음에 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읽으면서 나타나는 우스꽝스럽지만 슬프면서 끔찍하기도 한 '슐라흐토프-퓐프'의 모습을 읽다 보면, 어느새 보네거트에게 동조하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그랬다. 물론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한몫을 했겠지만.

 

"불가피한 일이었소." 럼퍼드가 빌리에게 말했다. 드레스덴 폭격을 두고 한 말이었다.

"압니다." 빌리가 말했다.

"전쟁이란 그런 거요."

"압니다. 전 불평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지상은 지옥이었겠소?"

"그랬지요." 빌리 필그림이 말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시오."

"이해합니다."

"선생은 심정이 착잡했겠소? 거기 지상에서 말이오."

"상관없었습니다." 빌리가 말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어요. 모두들 자신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나는 그것을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웠습니다."

(231-232p)

 

전쟁이 끝난 이후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잘못은, '너무나 큰 비극이었지만,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일일 것이다. 그 합리화의 주체가 거대할수록, 그것은 하나의 담론이 되어 수많은 죽음을 정당화한다. 그렇게 형성한 담론들은, 살아남은 인간 공동체의 회피 기제일 뿐이며, 이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할 것이다.

 

인간은 전쟁을 다시 되풀이할 것이다. 언젠가는. 이것은 얼마나 도덕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은 결코, 변하지 않으므로. 현재에 머물기를 지속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가는 거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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