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에서 다음에 다룰 책으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선정했는데, 나는 이미 한 번 읽은 책이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방인』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대략 6~7년 전에 읽고 처음 읽는 것인데, 줄거리도 가물가물해서 몇몇 장면들만 기억하고 있고, 엄청 읽기가 어려웠다는 기억만 남아있다(그래서 난 지금도 『이방인』보다 『페스트』를 더 좋아한다). 이후 개정판이 나왔을 때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서 사두긴 했지만 여태껏 한 장도 읽지 않았었다.
1) 오늘의 한국어가 허용하는 한 가장 간결하고 단순한 문장과 단어로 번역하도록 노력했다. 가장 단순한 것이 항상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은 결코 아니므로 그에 따르는 위험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2) 독자의 가독성을 돕는 의역을 가능한 한 피하고 원문의 탈색된 문체를 그대로 유지, 표현하고자 했다.
3) 카뮈의 원문이 가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는 한, 문장과 문장 사이의 인과 관계나 시간적 선후 관계에 대한 해석을 임의로 추가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 '2015년 새 번역에 부치는 말' (2015, 8쪽)
얼마나 바뀌었는지 비교해보자는 마음에 두 가지 판본을 대조하며 읽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읽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져서 1부의 1절, 뫼르소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는 부분까지 비교해본 뒤 포기하고 개정판에 집중했다. 앞 부분을 비교해보면서 눈에 띄었던 차이점은 이렇다. 1) 기존 전집판에서 "엄마"와 "어머니"가 혼용되어 쓰이던 것을 "엄마"로 통일했다(현재 2부의 앞부분까지 읽었는데, 뫼르소가 "어머니"라고 지칭하는 표현은 딱 한 번 나왔다). 2) 기존에 한 문장으로 번역했던 문장을 둘로 쪼개어 번역한 것이 많았다. 3) 기존 판본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던 이중 부정문을 많이 없앴다. 4) 부사어, 관형어 등의 수식어가 줄었다. 5) 기존에 한 문단으로 처리한 것을 둘로 나눈 것이 종종 있다. 기타 등등. "가독성을 돕는 의역을" 피했다고 하지만, 나는 개정판이 훨씬 잘 읽히고 눈에 잘 들어온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카뮈가 『이방인』에서 구사하는 구어체 느낌을 더 잘 살리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방인』은 소설에서 흔히 구사하는 문어체(단순과거)가 아닌 구어체(복합과거)로 쓰여졌다. 자세한 것은 네이버 지식백과(링크) 참조)
특이했던 것은, 영안실 안에 있는 여자 간호사를 '아랍인' 여자 간호사라고 밝힌 점, 그리고 양로원 원장이 뫼르소에게 반말(정확하게는 하게체)을 하는 걸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간호사의 경우는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레몽의 여자도 무어인(전집판은 아랍인이라고 썼다)이었다는 점 때문에 그런지 무슨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고민되는 부분이다. 반말의 경우, 뫼르소와 원장이 이미 서로 아는 사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존대에서 반말로 바꾸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음 부분은 조금 마음에 걸린다.
층계로 나서자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조그만 영안실로 어머니를 옮겨놓았네. 다른 원생들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원생이 하나 죽을 때마다 이삼일 동안 다른 사람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든. 그렇게 되면 일하기가 어려워져." (2015, 28쪽)
층계로 나서자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시신은 조그만 영안실로 옮겨놓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지요. 원내에서 사망자가 생길 때마다 2, 3일 동안 다른 사람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일하기가 어려워진답니다." (2009, 24쪽)
원장에 대한 서술이 많지 않아서 성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무적이고 인정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없었는데, "하나 죽을 때마다"라는 표현에는 사무적이고 비정한 느낌, 원생들의 죽음을 귀찮은 일로 인식한다는 인상이 실린 것 같다. 과잉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런 몇 가지를 제외하면 개정판의 번역이 훨씬 나은 편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책의 구성인데, 전집판에는 사르트르의 해설, 피에르-루이 레의 카뮈 입문서 전문, 로제 키요의 논문이 함께 실려 있지만, 개정판은 김화영 교수의 해설만 실렸다. 해설이 감상에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해설이나 부록을 다 읽어보는 입장에서 다양한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가 그만큼 줄어 아쉽다. 김화영 교수의 해설도 60여 쪽에 이르는 분량을 자랑하고 나 역시 신뢰하는 편이지만, 민음사판에 실은 해설을 그대로 가져온 것 같아 자료를 상쇄할 만한 만족감을 주는 건 아니다. 나 같으면 양장본으로 안 만들고 저 자료를 넣었을 텐데... 괜히 양장본으로 만들어서 가격만 올랐다.
다시 읽으면서 눈에 띄는 점은, 햇살이나 빛에 대한 뫼르소의 서술이 상당히 안 좋게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읽을 때는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문제의 총살 장면 이전에도 햇살/빛은 따귀를 때린다거나, 머리를 쿡쿡 찌른다거나, 눈이 피로해지게 만든다는 식으로 서술된다. 이런 것들이 일종의 복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미국판 서문'이나 '《이방인》에 대한 편지'에서 카뮈가 생각하는 『이방인』의 의미가 생각보다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점도 이번에 읽으면서 알았다. 예전에 나는 대체 무엇을 읽은 것인가... 이번에 다 읽고 나면 예전에 읽다 포기했던 사르트르의 해설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내용이 기억에서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장면, 뫼르소의 일갈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