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 이사를 꿈꾸며
6.
그저께는 오랜만에 책탑을 정리했다. 바닥에 쌓기 시작한 책탑은 한 번 쌓기 시작하면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 새로 들어온 책은 재배열되지 않고 계속 위로만 쌓이게 된다. 그러다보니 균형이 맞지 않아 나의 뒤척거림 한 번에 책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도 잦았다. 간만에 큰 맘을 먹고 책탑을 재배치하면서, 마음 먹은 김에 바닥에 쌓은 책을 조금이나마 줄여보자는 생각으로 책장도 정리를 시작했다. 이래저래 무사히 정리를 마쳤지만 책탑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책탑까지 정리를 한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 사진을 몇 장 찍어두었다. 본가에 있는 내 방과는 규모도 책장 크기도 천지 차이인지라 얼마나 더 쌓일지를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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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책은 쌓이는 대로 바로 택배로 보내버리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책 중에 90%는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읽지 않고 끌어안고 있는 책 중에는 새해에는 꼭 조금씩 읽기 시작해서 완독하자고 다짐했던 책들도 있다. 주로 누구나 읽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읽지 않은 (벽돌)책들이 대부분이다. 여전히 그 책들은 책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번 주의 나는《타타르인의 사막》을 다 읽었고, 《서울리뷰오브북스 2호》를 드디어 펼쳤으며(이미 3호가 나온 지 오래이고 곧 4호가 나올 것 같다), 공쟝쟝님의 엮인글을 보다가 '무해함'이라는 단어에서 《서울리뷰오브북스 1호》에 실린 김홍중의 글(<무해의 시대>)이 떠올라 '무해'에 대한 간단한 단상과 함께 정리해보려 하였으나 생각보다 《일기》의 리뷰가 잘 써지지 않아 뒤로 미뤄두었다(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일기》의 리뷰는 처음으로 한글이 아닌 에버노트에 쓰고 있고, 컴퓨터로 쓰기 → 앱으로 종종 보면서 어색한 부분 찾기 → 다시 컴퓨터로 수정하기의 루틴을 반복하는 중이다. 오늘 처음으로 로지텍 블루투스 키보드(k380)를 사용해 보았고(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노트북 자판과 사뭇 다른 위치 감각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
책들을 정리하고 보니 은근히 모이기 시작한 시리즈들이 많은데, 다행히 나는 누군가가 1권을 선물하면 그것을 전부 사야 할 정도의 책수집벽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전체를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리즈는 그리 많지 않다. 몇 개만 나열하자면 이렇다.
1. 조르주 페렉 선집(수집완료)—문학동네 컬렉션이 있지만,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나온 《사물들》과 《W 또는 유년의 기억》, 열린책들에서 나온 《임금 인상을 위해 과장에게 요구하는 기술과 방법》까지 모아야 시리즈가 완성된다. 다 모았으나 내가 읽은 건 《사물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공간의 종류들》뿐이다.
2. W. G. 제발트 전집(수집완료)—여기저기에 쪼개져 있는데, 제일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역시 문학동네 쪽이다. 창비에서 나온 책은 구판본을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개정판이 (저렇게 깔끔하게) 나와서 새로 구입했고, 《공중전과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3.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수집중)—가장 열심히 모으는 것 같지만 이 중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지(아니, 읽을 능력이 될지) 알 수 없는 책들. 《일반 기호학 이론》은 앞부분을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덮어두었고, 제대로 읽어본 것은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정도다. 내가 무엇을 안 샀는지 헷갈릴까봐 따로 메모를 해두는 컬렉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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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가 구입한 것이고, 빈칸은 아직 구매하지 못한 것이다.)
이 외의 시리즈들은 많아도 다 모으겠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않는 것들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안토니오 타부키 선집, 조르조 바사니 선집, 워크룸프레스의 제안들 시리즈 등등... 언제나 책을 둘 공간을 고민해야 하는 입장에선 이 정도에 그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한편, 지난주에 했던 주문 중 여태껏 오지 않은 책들이 있었다. 한 권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최근에 이제는 준비가 되었나 싶어서 알라딘에 들어가 본 나는 처음 보는 광경을 목격했다. 출판사에서도 재고가 없어 제작 중이라는 알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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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알라딘에 들어가 보면 《여름 별장, 그 후》는 일시품절 상태라고 뜬다. 제작 중이라는 것은 한 쇄를 새로 찍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한 권만 만들고 있다는 것일까?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하나씩 철수시키고 있는 듯한 민음사의 행보를 보았을 때는 한 권만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한 명의 고객을 위해 그렇게 비효율적인 일을 할까 싶기도 하다. '모던 클래식' 시리즈 중 일부는 점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편입되고 있고(이것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 한정인 것 같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판형과 문장 부호 표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안 좋은 소식이다. 더 사라지기 전에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그러모아야 하는 것일까?
책장 정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책에 대한 푸념으로 끝나는 페이퍼가 되었다. (나만 못 지킬까 전전긍긍하는 듯한) 연재에 대한 아이디어가 전혀 없는 시기가 (오래) 있고, 아이디어는 많지만 산만하고 아득한 상태로 정리되지 않아 쓰지 못하는 시기가 있는데, 오랜만에 후자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시간이 늦었으니 《일기》에 대한 감상을 조금이라도 끄적이러 가야겠다. 다음엔 조금 더 단정한 글을 연재하길 스스로에게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