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11.















서리북 읽기.



전가경_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책의 해체


컬랜드는 책으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에 반박하며 자신의 서재에 있는 약 150여 권의 백인 남성 사진가들의 사진책들을 해체했다. 그중에는 사진계의 권위로 자리매김한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와 브라사이(Brassai), 1950년대 미국 분리주의 및 인종 정책을 감성적인 톤으로 담아낸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The Americans도 있다. 컬랜드는 백인 남성 사진가들의 '권위 있는 책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조각조각 가위질했고그래서 각 작품의 제목은 해체 대상이 된 책 이름이다가위질에서 살아남은 사진들은 컬랜드만의 독자적인 해석으로 재조합되어 이전 사진가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버린다. 기존 백인 남성의 사진책을 해체한 후 남은 앙상한 표지 껍데기만 배경에 있다. 기존 표지가 감싸고 있던 내지들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컬랜드가 '구원한이미지들만이 살아남아 출처를 모르는 사진들이 모여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한다. 백인 남성 사진가가 구축한 이미지의 성벽을 허물어뜨린다. 이제서야 비로소 책의 제목을 파악하게 된다. 'SCUMB' 그것은 'Society of Cutting Up Men's Books(남성 책을 잘라 내는 소사이어티)'로서, 한편에서는 남성 중심의 선정적이고도 성차별적인 사진저널리즘으로 인해 죽음의 순간마저 이미지로 박제당해야만 했던 루스 스나이더에 대한 예술적 애도로서 읽히기도 한다. (93-94)


저스틴 컬랜드가 만든 SCUMB Manifesto는 남성적 권위주의 상징물로서의 책에 책으로 저항한다. 그래서 SCUMB Manifesto21세기 버전의 독특한 페미니스트 선언이자 책을 활용한 예술적 퍼포먼스이다. 솔라나스의 1960년대 선언에 대한 오마주임을 넘어서 ''이라는 상징 권력을 채택함으로써 '문자와 책의 가부장제'를 환기한다. 우리는 책을 제법 민주적인 매체로 간주하지만, 역사 속 많은 여성들은 문자와 글 그리고 그것들의 고양된 결과물로서의 ''에 대한 접근에서 차단당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책은 남성의 언어만이 독점하는 글쓰기의 공간이었다. 이는 이미지가 다수를 차지하는 사진책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을 향한 남성의 차별적 시선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때마다 여성은 가라앉는다. SCUMB Manifesto는 그런 가부장적 사회에 가위질이라는 삿대질을 한다. (94-96)


발터 벤야민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현대의 시각 언어로 포토몽타주를 옹호했다. 기존의 시간대로 더 이상 저항과 혁명이 불가능하다면, 그 시간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만 한다. 이때 포토몽타주는 기존 사진이 담지하고 있던 권위주의와 폭력의 언어를 전달하고, 새로운 시간을 재조립하는 탁월한 시각 언어가 된다. 존 하트필드는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기, 기존 사진들을 오려내어 히틀러의 집권에 저항하고 이를 풍자하는 포토몽타주를 선보였다. 하트필드가 그렇게 사진을 사진으로 반박했다면, 컬랜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만든 포토몽타주 덩어리인 사진책을 통해 기존 사진책에 맞선다. 남성의 손과 시선이 주조해 나간 여성 재현의 역사는 사진가 저스틴 컬랜드가 왜 하필 사진책을 해체의 대상으로 삼았는지를 설명해 주는 단서이다. 그래서 발칙한 SCUMB Manifesto는 분명 기이하고 음산하고 무질서하고 혼란스럽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이곳을 지탱하고 있는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새로운 탄생을 염원하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큐레이터 마리나 차오(Marina Chao)가 쓴다. “콜라주의 첫 몸짓은 폭력을 담고 있지만, 그 마지막 행위는 봉합과 수정, 가능성에 대한 은유다. 형태가 은유적이고, 끊임없이 탈바꿈하며, 반항적이고, 교정적인 콜라주는 삶과 예술 모두에서 지속되는 페미니스트 전략이다.” 그렇게 권위주의의 산물로서 만들어진 책의 상징 또한 허물어진다. (96-97) 



25.11.12.

고요서사에서 열린 행사 읽기의 향연에 다녀왔다. 5회에 참여 신청을 한 건 황정은 작가가 다섯 번째 연사였기 때문. 올해 문학주간 행사에서도 만나러 갈 기회가 있었으나 어찌저찌하다 티켓팅을 놓쳤기 때문에, 이번만은 놓치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열리자마자 예약을 했고 오늘 방문.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좁은 책방에 모인 자리였고, 나는 괜스레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에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내적 친밀감은 나만의 몫으로 여기면서. 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낭독을 들으면서 내용을 따라가려다가도 듣기의 집중력이 읽기의 집중력을 따라가지는 못하는지 이따금 흐름을 놓쳐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연루되었다는 표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며 연루됨이라는 책을 떠올렸고, 책태기에 빠졌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의 나를 위로하기도 하고, 고통에 대한 당신의 말들을 들으며 내가 당신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고통의 감각,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고통에 내가 더 깊숙이 들어가게 된 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을 생각하며.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내향인인 나는 사인을 받을 때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이름만 겨우 말하고 얼굴도 쳐다보지 못하고 글씨를 쓰는 손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젠가 보았던 어떤 영상에선 관계에서 스몰 토크가 가지는 중요성을 이야기했었는데, 아무래도 그쪽에는 전혀 재능이 없나 싶고결국 당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들으며 당신의 작품을 새로 읽은 것이 생각보다 없구나, 오래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떤 문예지에 어떤 작품이 연재되고 있는지까지 파악하고 있는 독자는 아니었으므로, 그런 소식을 듣더라도 그것을 따라가며 읽지는 못하고 언제 단행본으로 만날 수 있을지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이였으므로. 그러니 내가 최근에 읽은 것은 일기작은 일기가 끝이었으므로.



처음으로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었던 2014년부터 당신의 작품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그것들이 나를 수시로 통과해갔던 시간들이 나를 얼마나 바꿔놓았는지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되고 있음을 알기에, 어지러운 서가에서 가지런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보고 있으면 감사의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을 동시에 품게 된다. 그런 생각들을 한 마디도 말하지 못하고 서점을 나섰지만, 당신의 생각과 독서를 육성으로 따라갈 수 있었으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처음 글로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감한 사람. 세계의 은밀하고 냉혹한 폭력을 감지하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쓰는 행위로서, 호명함으로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비-존재들이 있음을 일깨우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질리도록 엄혹한 현실이지만 어떻게든 발을 떼지 않고, 눈을 떼지 않고 쓰는 사람.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결같다는 생각을 하며, 현실에 소진되어 책태기와 침체기가 진행 중인 나도 가지런한 마음으로 다음 책을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불씨를 하나씩 살려가며 기다릴 테니, 언제나 사인에 적으시는 것처럼 평안하고 건강하시기를.



 

읽기의 향연에서 낭독한 책들은 다음과 같았다. 무지개, 환희의 인간, 물질적 삶,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호라이즌.






























그리고 나는 무지개세계의 주인 각본집을 샀다. 

















25.11.13.~14.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읽기. 처음 나왔을 때도 자주 회자되었던 책이라 눈여겨 보았지만 구매하진 않았고, 이후에 영화 <룸 넥스트 도어>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 다시 주목했었다가 나중에 낫저스트북스에서 구매하고 안 읽고 있었다. 13일에는 중간에 대기 시간이 긴 출장이 있어서 우연히 챙겨가 조금 읽고, 14일에는 당일치기 여행 중 잠시 카페에서 쉬면서 조금 더 읽음. 존엄사를 준비하는 친구를 마주한 화자의 이야기라고 대충 알고 있었는데(이는 오래 전 책소개에서 본 것일까, 아니면 영화의 시놉시스에서 본 것일까?), 한 줄기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사람들(주로 가 만나는 사람들)어떻게 지내는지를 수집한 이야기들처럼 읽힌다. 아직 초반부니까 속단은 이르고, 천천히 더 읽어봐야 알 수 있을 듯.

 



여행의 말미에 다다르다라는 서점에 들러 이리저리 책들을 살피다 두 권의 책을 샀다. 하나는 처음 알게 된 책, 다른 하나는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아직 사지 못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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