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29.
















일인칭 가난읽기.


어쩌다 한 번씩 엄마는 내게 '교양'을 전수했다. 김밥천국 돈가스를 두고 포크와 나이프 쥐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허연 각질이 들고 일어나지 않게 얼굴에 바르고 남은 로션을 팔꿈치나 무릎에 바르라고 일러주었다. 가난이 표가 날까 봐 그런 것들로 얼기설기 기웠다. (65) 


가난하고 어린 사람을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와 온도는 이렇게 요동치곤 했다. 취소했다가 사과했다가, 깔보았다가 추어올렸다. 사무적이었다가 다정했다가, 냉했다가 끓어올랐다. 끓어오른 자신에게 도취되었을 뿐, 사실 가난하고 어린 사람에겐 관심이 없었다. (77) 


연애 옹호론자들은 주창할 것이다. 자취방에서 떡볶이만 먹어도 행복한 것이 연애다! 하지만 애인과만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취방을 그리 쉽게 얻을 수 없으며 '지지리 궁상''지난한 가난'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럼 연애 옹호론자들은 충고할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게 진짜 가난한 거야! 나도 충고하자면, 지갑이 허한 게 진짜 가난한 거랍니다.

20대는 왜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을까. 돈이 부족해도 마음은 충만해야 하고, 최저임금을 받아도 사서 고생을 해야 하며, 학점에 취업 걱정을 하면서 연애도 해야 하고, 마른 지갑을 쥐어짜서 애인과의 기념일도 챙겨야 하고……차라리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편이 낫다. (98)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완독. 갑작스럽지만 보니것스러운 마무리가 인상적이었다. 요상한 재벌집 아들에서 시작해 상속 다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핵심은 세계에서 낙오한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는 엘리엇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일까? 우리의 눈에는 바보 같아 보이지만 오늘날의 세계에는 더욱 필요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부제가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



25.9.30.

일인칭 가난완독. 담담하고 건조한 서술 안에서 오랜 시간 일렁였을 울분과 설움이 언뜻 눈에 비친다. 일인칭이라는 것은 가장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기에 보편성을 결여한 진술이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으나,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큰 파동을 남기고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바라보게 한다. 가난 때문에 좁아진 기회와 상상력의 폭, 어떤 범위의 꿈은 넘볼 생각도 못하게 하는 복지 제도의 굴레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했던 시간.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와 겹쳐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이니까 그렇게 됐지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족과 가난을 세트 취급하는 클리셰가 지겹다. 내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 날 불행하게 했던 것은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이었다. (116) 


사실 진짜 부족한 것은 시간이라는 자원이었다. 다음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질 좋은 식사를 할 시간, 질 좋은 수면을 할 시간, 질 좋은 대인관계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되찾을 시간이 없었고, 미래를 계획할 시간도 없었다.

'취업 준비'라는 말이 그래서 어색하다.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입시 과외를 받아본 적 없고(문예창작입시 과외가 월 70만 원이었다), 합평에도 나가본 적 없다. 그 시간들이 엄마의 시급과 나의 시급으로 환산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도 돈과 시간은 필수다. 내가 각종 행사를 거절하는 상용구는 하나였다. 시간이 없어서요. 이 말은 곧 돈이 없어서요, 와 동의어였다. (122)


가난한 사람은 누구보다 강력하게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누구보다 강하게 현실에 묶여 있다. 살기 위해 했던 학원 일로 이력을 채워온 나는 언젠가 학원을 창업하겠다고 생각한다. 이 계획이 의외로 자연스러워서 깜짝깜짝 놀란다. 학원 일이 언제부터 나의 장래 희망이 되었나.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어떤 사람으로 살지 고민을 이어갈 시간이 없다. 내가 미래를 고민하다가 써버린 시간에 돈을 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123)


부자들이 제 돈 갖고 무슨 짓을 하든 아랑곳할 바 아니지만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더군다나 내 가난은 그게 어떤 가난이라고. 내 가난은 나에게 있어서 소명(召命)이다. 박완서의 도둑 맞은 가난''는 나다. (146)



25.10.5.















바움가트너읽기 시작.

 


25.10.6.















3분 철학 2완독.



25.10.7.

마이시크릿덴 방문. 연휴 기간이기도 하고 날씨가 좋지 않을 것이란 예보가 있어서 전날 부랴부랴 예약하고 방문했다. 덕수궁 바로 옆에 있는 공간은 약간 어두우면서 운치 있게 꾸며져 있었고, 날씨도 궂으니 아무도 안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어느새 다 채워진 자리를 보며 사그라들었다. 조용하게 대화의 소음을 걱정하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서울광장의 행사음이 그대로 다 들렸고, 시위가 있는 날이면 집중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 동안 있으면서 바움가트너읽기.





25.10.8.

바움가트너완독. 백조의 노래가 언제나 절창(絶唱)은 아니지만, 읽는 동안 과거의 내가 떠올라 내내 묘한 감정이 들었음을 부인할 순 없겠다. 달의 궁전, 공중 곡예사, 뉴욕 3부작을 읽을 때의 나는 저 멀리에 있어 이제 보이지도 않지만, 바움가트너의 생의 단편들을 따라가는 동안 그때의 느낌이 잔상처럼 부유했다. 안타깝게도 잔상에서 더 선명해지진 못했지만. 그때의 저력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었으나, 그 사이 내가 빼먹은 오스터의 작품들을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마침 개정판도 나온다는 소식이 있으니..


두 달 뒤 그는 환지통 에세이를 쓰는 일에 파묻혀 있다. 은유적 적합성이 점점 분명해졌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환지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게 어디로 튈지 지금 시점에서는 알 수 없고 이걸 끝낼 수 있을지 조차의심스럽지만 당장은 이것이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그에게는 뇌 지도, 감각 수용체, 신경 회로 연구를 계속해 나갈 동기가 된다. 이것은 정신적, 영적 통증을 몸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노력의 한 부분이다. 그는 죽은 자식을 애도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죽은 부모를 애도하는 자식,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여자, 죽은 아내를 애도하는 남자를 떠올리며, 이들의 고통이 신체 절단의 후유증과 얼마나 닮았는지 생각해 본다. 사라진 다리나 팔은 한때 살아 있는 몸에 붙어 있었고, 사라진 사람은 한때 다른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절단된 일부, 자신의 환상에 속하는 부분이 여전히 깊고 지독한 통증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치료가 가끔 이 증상을 완화해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 치료법은 없다. (68-69)


그러니까, 인간 삶이란 외로움과 잠재적 죽음이라는 고속 도로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는 통제불가능한 차라는 독한 비전으로부터. 그러다 자동차automobile라는 단어에 관해 생각하게 되면서 비로소 그의 생각이 구체화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결국 운전대의 신비가 되었다. 자동차. 이것은 고대 그리스어 autos, 라틴어 mobilis, 19세기 프랑스어 mobile의 혼종 복합어로 스스로 움직인다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차를 가리키는 공식 용어이기도 하다.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두 가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생각들을 가져와 하나의 억지스럽고 명백히 우스꽝스러운 관념으로 뭉뚱그리며 바움가트너는 자신의 책을 앞으로 밀고 나갈 은유적 엔진을 발견했다. 사람으로서의 차, 차로서의 사람. 이 둘은 지그재그를 그리는 유사 철학적 담론을 통하여 서로 대체할 수 있는데, 이 담론을 관통하는 것은 독자들이 물구나무를 서서 똑바로 선 세계를 다시 상상하도록 이끌기 위해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스위프트, 키르케고르를 비롯한 지적 장난꾸러기들의 정신이다. 익살꾼 바움가트너. 슬프게도, 지금은 풍자가 득세하는 시기는 아니기에, 그 우스개를 알아들을 사람이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228-229)


그는 차 그 자체만이 아니라 인간 자아의 표상으로서의 차, 나아가 어두운 밤을 뚫고 혼자서 저돌적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수백만 명이 모는 다른 차 수백만 대와 함께 주간 고속도로가 서로 얽힌 방대한 망을 따라 돌아다니는 차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미국 사회의 축도였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분노하여 제정신을 잃고 도로의 규칙을 내팽개친 채 영원히 이어지는 <파괴 경주>, 그 뉴에이지 최고의 때려 부수기 스포츠에 참여하게 되면서 <자유민의 나라>는 잉크처럼 검은 아스팔트의 띠, 하얀 줄이 그어진 그 띠를 따라 미쳐 날뛰고 있다. 그것이 바움가트너 책의 중심 은유다. (236)

















3분 철학 3읽기 시작.
















모비 딕읽기 시작.


샘물에 비친 아름다운 영상을 붙잡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물에 뛰어들어 빠져 죽은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는 훨씬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영상을 우리는 모든 강과 바다에서 본다. 그 영상은 결코 잡을 수 없는 삶의 환영이고,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열쇠인 것이다. (46)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런 것에 아무 자극도 받지 않았겠지만, 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금단의 바다를 항해하고 미개인들의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좋은 것도 외면하지 않지만, 두려움에 대해서도 민감하다. 그리고 상대가 허락해준다면 그것과 친하게 사귈 수도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의 모든 주민과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니까.

이런 것들이 내가 고래잡이 항해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이제 경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대한 수문이 열렸다. 그 목적지를 향해 나를 몰아대는 분방한 공상 속에서 두 마리씩 짝을 지어 내 영혼의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오는 고래의 끝없는 행렬이 보였다. 그리고 그 행렬의 한복판에는, 하늘로 우뚝 솟은 눈 덮인 산처럼 거대한 두건을 쓴 거대한 유령이 하나 떠다니고 있었다. (51)


! 죽은 이들을 초록빛 풀밭에 묻은 사람들, 꽃 속에 서서 "여기 이곳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잠들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쓸쓸함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검은 테를 두른 저 대리석 밑에는 한 줌의 재도 들어 있지 않으니, 그 공허감은 얼마나 쓰라린가!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저 비문 속에는 얼마나 큰 절망이 숨어 있는가! 객사하여 무덤조차 없는 이들에게 부활을 거부하고 모든 신앙을 갉아먹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 속에는 얼마나 지독한 허무감과 자발적인 불신앙이 담겨 있는가! 저 명판들은 여기보다는 오히려 엘레판타 동굴 속에 세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의 인구조사에 포함된 적이 있는가. 죽은 자들은 굿윈 사주의 모래알보다 더 많은 비밀을 안고 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속담이 세계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어제 저세상으로 떠난 사람의 이름 앞에는 그토록 의미심장하고 이단적인 단어를 덧붙이면서, 이 지구상에서 가장 먼 인도양으로 항해를 떠나는 사람에게는 그런 단어를 붙이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생명보험회사는 무엇 때문에 불멸의 인간에게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인가. 오랜 옛날 60세기 전에 죽은 아담은 아직도 꼼짝하지 못하고 영원히 마비된 채 얼마나 치명적이고 절망적인 혼수상태 속에 누워 있는 것인가. 우리는 죽은 자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을 침묵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덤 속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난다는 소문만으로도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결코 무의미한 의문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신앙이란 것은 승냥이처럼 무덤들 사이에서 먹이를 찾고, 이런 죽음의 회의 속에서도 가장 활기찬 희망을 주워 모으려고 한다. (89-90) 



25.10.11.

모비 딕읽기.


설교단은 이 세상의 이물이고, 그 밖의 것들은 모두 그 뒤를 따를 뿐이다. 설교단이야말로 세상을 이끌어간다. 신의 노여움의 폭풍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곳도 이곳이고, 그 노여움의 화살을 정면으로 받는 곳도 이곳이다. 순풍이건 역풍이건 마음대로 불게 하는 신에게 구원의 바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는 곳도 이곳이다. 그렇다. 세상은 항해에 나선 배이거니와, 그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설교단이야말로 그 배의 이물인 것이다. (94)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난다는 것은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는 뜻이니,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120)


그래서 그들, 특히 남자들 중에는 성서에서 따온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고─이 섬에서는 특이하면서도 흔한 일이다그들은 퀘이커교도 특유의 '자네''그대'니 하는 엄숙하고 연극적인 말투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도 그 후의 생활은 대담하고 끝없는 모험으로 가득 차 있고, 그것이 성장한 뒤에도 변하지 않는 천성과 융합되어, 거기서 스칸디나비아의 해적왕이나 서사시의 주인공인 고대 로마의 이교도에게도 뒤지지 않는 대담무쌍한 성격이 나온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이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사람, 이를테면 먼바다에 나가 북반구에서는 본 적이 없는 별자리 아래서 오랫동안 수없이 밤번을 서면서 적막과 고독을 겪은 덕분에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사색할 수 있었던 사람, 그리하여 자연이 자발적으로 내맡기는 순결한 젖가슴에서 갓 나온 달콤하고도 거친 자연의 느낌을 모두 받아들이고, 게다가 우연한 모험의 도움도 조금 받아서 대담하고 간결하며 고상한 언어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이런 사람은 한 나라의 전체 인구 가운데 한 사람 있을까 말까 하지만안에서 지구 같은 두뇌 및 무거운 가슴과 결합할 때, 숭고한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에 알맞은 강력하고 화려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극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런 인물은 선천적이든 다른 상황 탓이든, 그 성격의 근저에 거의 의도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압도적인 우울함이 숨어 있지만, 그것도 그 인물의 가치를 조금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비극적으로 위대한 인물은 병적인 우울함을 통해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야망을 품은 젊은이들이여, 명심하라. 인간의 위대함이란 질병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138-139)


거칠고 사나운 대서양의 추운 겨울밤, 내 발은 젖었고 재킷은 더 많이 젖었지만, 그때는 피난할 수 있는 유쾌한 항구가 앞길에 많이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들판과 골짜기는 영원히 푸르러서, 봄에 돋아난 풀이 발에 밟히지 않고 시들지도 않은 채 한여름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175)


항구는 자비롭다. 항구에는 안전과 안락, 난로와 저녁식사, 따뜻한 담요, 친구들, 우리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 강풍 속에서 항구나 육지는 그 배에 가장 절박한 위험이 된다. 배는 모든 환대를 피해서 도망쳐야 한다. 배가 육지에 닿으면, 용골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배 전체가 몸서리칠 것이다. 배는 돛을 모두 펴고 전력을 다해 해안에서 멀어지려 한다. 그러면서 배를 고향으로 데려가려는 바로 그 바람과 맞서 싸우고, 또다시 거친 파도가 배를 때리는 망망대해로 나가려고 애쓴다. 피난처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위험 속에 뛰어든다. 배의 유일한 친구가 바로 배의 가장 고약한 원수인 것이다! (178)



24.10.12.

모비 딕읽기. 이제 에이해브 선장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키토의 날씨에 대한 묘사가 아름다워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았을 정도. 고래학에 대한 설명은 너무 본격적이어서 훑기만 했다.


'피쿼드'호의 뒷갑판 양쪽, 뒷돛대 버팀줄 가까이에 있는 널판에 지름이 1.5센티미터쯤 되는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는 고래뼈로 만든 다리를 그 구멍에 끼우고, 한 손을 들어서 밧줄을 움켜잡고 꼿꼿이 서서는, 끊임없이 곤두박질하고 있는 뱃머리 너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앞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 두려움 모르는 눈길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정신, 단호하고 양보할 수 없는 무한한 고집이 담겨 있었다.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선원들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심란한 선장의 지휘를 받는 것이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불편하다는 자각을 지극히 사소한 몸짓과 표정으로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분이 언짢은 에이해브 선장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표정을 얼굴에 띠고 그들 앞에 서 있었는데, 그에게서는 어떤 강력한 슬픔이 지닌 위엄,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당당하고 압도적인 위엄이 풍기고 있었다. (200) 


따뜻하면서 시원하고, 맑고, 온갖 소리가 울려 퍼지고, 향기롭고, 넘칠 듯이 풍족한 낮 시간은 마치 장미 향수를 뿌린 눈으로 만든 페르시아 빙과를 수북이 담은 수정 그릇 같았다. 별이 빛나는 장엄한 밤은, 보석으로 장식한 벨벳 옷을 걸치고 집에 홀로 남아, 자긍심 속에서, 정복하러 떠난 백작들, 황금빛 투구를 쓴 태양들의 기억을 끌어안고 있는 도도한 귀부인들 같았다. 낮은 그렇게 매력적이고 밤은 그렇게 유혹적이어서, 잠을 언제 자는 게 좋을지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시들지 않는 날씨의 모든 매력은 바깥세상에 새로운 매력과 효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영혼에도 작용했고, 특히 고요하고 온화한 저녁 무렵이면, 맑은 얼음이 대부분 조용한 황혼녘에 형성되듯 기억은 수정처럼 맑은 결정체를 쏟아냈다.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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