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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은 어떤 등짝일까. 갑자기 등짝을 차여 앞으로 고꾸라진다면? 이라는 엄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을 읽었다. 어쩐지 얇아도 너무 얇다. 자고로 소설이라면 두껍고도 두꺼워야 한다는 게 바램인데, 이 책은 너무한다. 책읽기를 싫어해서 일단은 얇아야 손을 내미는 녀석들에게는 딱 이겠다.
인정받고 싶다. 용서받고 싶다. 빗살 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걷어내듯, 내 마음에 끼어 있는 검은 실오라기들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집어내 쓰레기통에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남에게 바랄 뿐이다. 남에게 해주고 싶은 것 따위는 뭐하나 떠올리지도 못하는 주제에.(p.96) 무엇을, 누구에게? 불특정 다수에게. 이것은 하츠의 거꾸로 가는 욕망이다.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진심이다.
마치 만화처럼 술술 읽힌다. 표지에 혹은 페이지 중간 중간의 적당히 마른 체육복 차림의 소녀를 그린 일러스트 탓인지도 모르겠다. 무리에 들지 못한 소수로 살아가는 법이랄까. 나는 남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시점에서 이미 겉돌기 시작해서 친구가 손을 내밀어도 잡지 못하고, 그렇다고 친구가 내게서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것도 싫은 시절의 얘기다.
하츠와 같은 부류의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원치 않아도 늘 중심에 있거나 그 무리에 끼려고 하는 부류 말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에 선 애들이다. 하츠는 자발적이다. 심술 같기도 하고 잘난 척 같기도 하고 아니면 본인은 제어가 안 되는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음침하고 우울한 니나가와와 마지못한 팀을 이룬다.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자고 있거나 늘 혼자인, 무엇보다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가진 녀석과. 딴에는 심각한 폼을 잡는 스토리지만 인생의 굽이굽이를 지나온 나이에 읽기에는 웃음이 슬금슬금 기어 나온다.
네가 좀 더 욕먹었으면 좋겠어. 좀 더 비참해졌으면 좋겠어. 좀 더 고통스러워했으면 좋겠어.(p.136) 니나가와를 향한 하츠의 마음속은 심술로 펑 터질 지경이다. 걱정과 속상함을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말하는 하츠가 귀여워 죽겠다.
고통을 주고 싶다. 발로 차주고 싶다. 사랑스러움이라기보다, 뭔가 더욱 강한 느낌.(p.150)
사랑스러움이라기보다 뭔가 더욱 강한 느낌이라니. 그게 뭘까. 발로 차주고 싶을 정도의 그 무엇의 정체는? 한때는 그것에 목숨을 걸고 몰두했던 듯도 싶은데, 지금은 모르겠다. 십대의 그 어린시절로 돌아가기 전에는 이해불가다. 이미 그 나이의 감수성을 다 상실해 버렸다. 알 듯 말 듯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이 소설은 그렇게 애를 태운다. 읽는 게 전부가 아니다. 공감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데. 이제 막 십대의 과도기로 들어선 조카 녀석을 염두에 두고 산책이지만, 액션 판타지 게임에 익숙한 녀석에게 이런 우울 촉촉한 이야기가 먹힐 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