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식 뒤엔 좋은 소식이 온다. 할머니가 아침을 맛있게 드셨단다. 그동안은 밥을 먹지 않겠다는 어이없는 고집에 온 식구가 난리브루스를 췄다. 순전히 심술처럼 밥, 물, 두유 기타 등등 어느 것도 먹기를 거부해서 지켜보는 사람에겐 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니었다. 옷 안 갈아입기, 안 씻기는 기본으로 원래도 힘이 좋으셨던 분이라 완력으로는 당할 수가 없고 또 누구도 선뜻 강제된 행위를 하지 못했다. 어젠 집이 싫다며 대문 앞에 나가 종일 택시를 기다리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날 밤엔 잠도 잘 주무시고 일어나서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 맛있게 드셨단다. 사소하다면 엄청 사소한 일상의 작은 당연한 행위에 엄마는 무척이나 흥분을 해서 소식을 전하는 목소리에서 생기가 묻어났다. 의욕적으로 밀린 빨래며 청소를 하실 정도로.
할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그렇지 엄마의 나이도 이제 적지 않다. 살림에 농사에 간병까지 완벽하게 하기엔 무리가 있다(종종 잊어버리지만). 천만다행인 것은 고부가 아니라 모녀관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할머니를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힘들다는 표현을 자제하고 있음을 안다. 우리는 할머니가 변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나이 듦의 과정일 뿐임을, 엄마에게 혹은 나에게 닥칠 미래라는 걸 간과하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 살아계실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걸 배려해 드리는 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몫이다. 대화 중에 엄마나 동생과 늘 마지막에 다짐 하는 것은 할머니는 지독하게 아플 뿐이고, 주변인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당사자만큼 슬프고 억울하고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라는 거. 연민을 가지고 어떤 억지, 심술, 폭언에도 맘 상하지 않기. 좋아질 거라는 어설픈 낙관은 아무도 않는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나빠질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