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을 어슬렁대는 도둑고양이 네 마리와 은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음식물쓰레기통을 두어 번 엎은 뒤론 얄미워서 눈을 흘겼는데, 얼마 전부터 그 녀석들이 먹을 만한 것들을 추려 화단의 넓적한 돌 위에 놓아두는 버릇이 들었다. 마루에 앉아서도 잘 보이는 장소라 녀석들이 왔다 가는 것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들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나 또한 길들여지고 있는 건가. 녀석들이 안 보이는 날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앞집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녀석들은 뒹굴뒹굴 놀다가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납작 엎드려 잠을 잔다. 매끼 챙겨주는 주인도 없으니 배가 고픈 날도 있을 터. 배부른 구속보다는 자유가 좋아 무소속이 된 건지. 야박한 주인을 만나 내쫓긴 건지. 고양이 팔자가 부럽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고, 그렇다.

 

고양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얘기지만. 오늘 어쩌다가 뒤로 돌아가기를 해서 옛날 글을 읽게 되었다. 무수한 오타들과 늘어지고 늘어져 읽다가 길을 잃는 이상야릇한 문장들을 보고 허걱. 그 때는 이랬구나 했다. 한번 쓴 걸 다시보기는 너무너무 귀찮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썼던 거라 뜯어 고치다보면 다시쓰기가 되고. 실수도 엉성함도 나름 미덕(?)이 있다고 자부하는 지라. 단 어쩌다 그걸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할 따름. 오늘 쓰는 이것도 한참이 지나서 보면 얼굴이 붉어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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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3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한 번 쓴 글은 다시 읽으면 안됩니다.
저는 길고양이들이 때로는 부럽던데요.

겨울 2006-08-3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고양이 어감이 좋아요. 담과 지붕을 타고 다니는 고양이는 분명 도둑고양이가 어울리지만 다 늦은 저녁이나 아침에 거리에서 만나는 고양이는 따로 길고양이라고 불러야겠어요. 아님 집없는 고양이?
 

 

세차게 부는 바람 앞의 갈대가 마음을 뒤흔든다. 여심이 갈대라는 비유가 아니라도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갈대는 매혹적이다. 저 가운데 서서 바람을 맞고 싶어서 실제와 상상하는 것의 차이 때문에 한참을 고민한다. 벌판에서 세찬 바람을 맞아본 사람은 안다. 그 살 떨리는 공포를. 절대 살랑살랑 부는 바람 같은 게 아니다. 


초등학교를 십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 태풍이 불거나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은 우산이나 우비도 별 소용이 없다. 즉, 온몸으로 비를 맞거나 바람을 맞는 일 같은 거 예사였다는 이야기.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나서서 옷을 말려 주시곤 했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 반찬이나 간식을 나눠 먹고, 수업 끝나고 교무실에 가서 놀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시절의 학교는 즐거운 놀이터였다. 학원도 없고 숙제도 없는 놀이터, 쉬는 시간 점심시간의 땀으로 흠뻑 젖는 놀이가 세상의 전부였던, 참으로 동화 같은. 이렇게 과거의 어떤 일들이 간절히 그립다는 것은 현재가 몹시도 우울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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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30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바람이 느껴져요.. 멋진 사진입니다..^^

겨울 2006-08-30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모르는 분의 사진인데 풍덩 뛰어들고 싶어지죠?

비로그인 2006-08-31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절반 정도로 걸어서 다닌 적이 있어요.
그때는 왜 그리, 태워준다는 사람들이 반가웠던지..;;;;

겨울 2006-08-31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짜 차의 기억들 무궁무진 하지요.^^
여행 준비로 여념 없으시겠죠? 제가 다 떨리네요.

파란여우 2006-08-3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에 풀물 들어요....흐흐(완전 깨는 소리)

겨울 2006-09-0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풀물보다 뱀이 나올 것 같아서.... 훌쩍 어른이 된 후로는 아무리 멋진 풍경이 나타나도 멀리서 바라볼 뿐 뱀이랑 징그러운 기타 벌레들을 상상하며 몸서리를 치게 되요.
뱀을 만나도 거머리가 달라붙어도 눈으로 쓱 훑고 마는 담대했던 계집아이가 그리워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서 익숙해지는 건 순간이겠죠?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6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온통 악당 아니면 악녀 뿐인. 탐정도 경찰도 기업가, 의사 하다못해 고용인 내지 종업원,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엑스트라까지도 어딘가 한군데는 뒤틀려있는 이런 소설 아마도 처음이지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른 인간을 찾아서랄까.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배경이 되는 도시, 무생물의 나무, 날씨까지도 뭔가 음흉한 범죄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살맛, 인간의 냄새 운운하기엔 너무도 타락한 도시 사람들 속에서 그나마 제일 순수(?)하고 착한(?) 필립 말로. 얄팍한 우정에 헌신한 대가로써 그가 얻는 것은? 난 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책의 마지막 몇 장을 먼저 읽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결과는 그러면 그렇지.

  

자네가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걸세.(61쪽)


이 멋진 말과 함께 테리 레녹스를 배웅하는 필립 말로는 그럴 듯했다. 이거야말로 정녕 남자들의 우정이란 거구나. 만취해서 거리에 개처럼 팽개쳐지는 한 남자의 무엇을 보고 말로는 선뜻 손을 내밀었을까. 그가 원래 그런 인간이어서? 탐정이란 그의 직업의 특성상 전혀 상관없는, 그러나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정체불명의 한 남자를 거두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라서? 어쨌든 두 남자의 만남과 이별을 참 의미심장하게 낭만적으로 그려나가는 소설의 시작은 멋졌다. 우정이란 여자 남자를 떠난 만인의 로망이니까.


갑자기 소설이 잔혹해지는 시점, 말로가 살인사건 사후 종범 혐의로 연행되어 무자비한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장면에서 호기심은 급상승했다. 유능한 탐정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어낸 남자의 가치가 무엇이길 레, 덩치 커다랗고 주먹이라면 어딜 가도 빠지질 않을 주인공이  이런 수모를 당해야하나. 무릇 영웅은 시련 속에서 태어난다지만. 그의 오만과 냉소, 말기 암 수준인 잘난 척을 빼면 필립 말로가 아닌데. 눈은 활자를 따라가면서도 머리는 또 다른 소설을 썼다.     


이 친구, 그저 경찰을 미워하는 녀석이구먼. 너는 그게 다야, 탐정 새끼. 그저 경찰을 미워하는 녀석일 뿐이라고.(83쪽) 그레고리우스 경감은 뼛속까지 썩은 악당 중의 악당이다. 이 악당 앞에서의 필립 말로는 그야말로 하이에나의 먹이 감이다. 악당이지만 나름 귀엽고 미련하고 둔한 메넨데스. 그는 역시나 결국 경찰에게 개기다 죽을 쑨다. 유일하게 깔깔깔 웃고 싶어지는 캐릭터랄까. 난 거물급 악한이야, 말로. 돈을 쓸어 담지. 내가 짜낼 수 있는 녀석들을 짜내서 한 몫 챙기기 위해서는, 짜낼 수 있는 녀석들을 짜내서 돈을 버는 수밖에 없거든. (128쪽) 이런 웃기는 과시를 하는 머리 나쁜 악당의 말로는 너무 뻔해서 동정을 금치 못했다.


난 악녀가 무섭다. 악녀가 나오는 영화도 꺼리고 악녀가 등장하는 소설은 말할 것도 없다. 필립 말로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고 약간 어리숙한 바보로 만들어 버린 아일린 웨이드가 등장했을 때 그래서 불안했다. 그녀의 지고지순 연기에 홀딱 빠져들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이라고 짐작하다가 맞아떨어지니 입맛이 썼다. 이 여자의 비뚤어진 욕망, 질투가 실비아 레녹스의 타락과 파멸, 비참한 죽음보다 나을 것도 없다. 저이는 버려진 개나 다름없어요. 저 사람에게 집 좀 찾아주지 그래요. 잘 길들여져서 성격은 제법 순하거든요.(10쪽) 최소한 데리고 살던 남자를 차 밖으로 집어던지고 떠나는 실비아 레녹스는 나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버려진 남자에게 하등의 동정을 느낄 이유는 없으니까.

 

술 아니면 담배 그리고 데메롤.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유혹들이다. 여기에서 죽어나가는 인간들에게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죽을 법 하다는 삶이 죽음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설령 그것이  필립 말로 우리의 주인공일지라도. 그래서 이별 뒤에 짠하고 등장하는 또 다른 주인공 따위 반갑지 않았다. 원래 진짜 악당은 이렇게 끝까지 살아서 남은 자의 뒷머리를 강타하는 것일까. 세뇨르 마이오라노스. 당신을 악당 중의 최고 악당으로 임명합니다. 마지막에 그 매디슨의 초상을 집어넣은 게 치명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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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3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말로 작품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겨울 2006-08-3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작품을 첫 번째로 읽었어요.^^ 나머진 이 거보다 약하다는 거지요?

물만두 2006-08-3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건 취향에 따라 달라요^^

프레이야 2006-09-1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겨울 2006-09-1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 혜경님.^^
재미나게 읽고, 쓰고, 덤으로 적립금까지
좀, 민망합니다.

비연 2006-09-1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레이먼드 챈들러 작품은 다 좋죠..

겨울 2006-09-15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반갑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온전한 매력을 아직은 잘 몰라요.
 

 

 

 

 

 

 

 

문득 옛날 책을 들추다가 밑줄이 좍 그어진 문장을 발견했다. 1992년 1월 9일.

자살이 삶이 어떻고 하는 글귀에 눈을 반짝 빛내던. 책마다 밑줄이 가장 많이 그어지던.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삶이니까. (25쪽)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심리적 여건이다. 그것은 시간의 정지가 아니라, 공포, 불안, 초조 등의 심리적 반응이다. 죽음이 많은 사람을 그것에 대한 사유로 이끌어 들이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죽음이 도둑처럼 갑작스럽게 온다면, 그것을 두려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순간순간 온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하나의 도구와도 같다. (254쪽)


지금 다시 읽어도 공감이 가는 죽음에 대한 사유들. 죽음은 순간순간 온다, 에 절대 공감한다. 나날이 쇠약해지시는 할머니를 보는 심정 그대로다. 멀리서 바라보면 한없이 평화로운 날들의 연속 같은 요즘의 내 생활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기분이 때때로 찾아든다. 그럼에도 또 다른 순간순간은 달콤한 휴식이기도 하다. 너무 달콤해서 벙긋벙긋 미소가 떠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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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2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요.. 삶은 죽어서보다 살아서 더 값진 것일거라 믿어요.

물만두 2006-08-2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겨울 2006-08-2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하면 자기 위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당시에는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는 말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
 

 

내가 당신께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지금처럼만 사시다가

 

아이처럼

여기 저기 아픈 곳을 가리키고

약 발라 달라 조르고

때가 되면 정확하게

밥 안주냐고 물어보고

좋아하는 포도를 맛나게 드시고

밤이면 세상 모르게

단잠을 주무시고

그러다가, 먼 훗날

더 이상

팔도 다리도 움직일 기력이

다 하셨을 때 

달콤한 잠에 취한

아기처럼

평화롭게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돌아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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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2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를 읽으니 님의 할머니 안부가 궁금합니다.

겨울 2006-08-2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많이 좋아지셨어요.
그런데 좋아지심이 건강하심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하루하루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불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