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옛날 책을 들추다가 밑줄이 좍 그어진 문장을 발견했다. 1992년 1월 9일.
자살이 삶이 어떻고 하는 글귀에 눈을 반짝 빛내던. 책마다 밑줄이 가장 많이 그어지던.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삶이니까. (25쪽)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심리적 여건이다. 그것은 시간의 정지가 아니라, 공포, 불안, 초조 등의 심리적 반응이다. 죽음이 많은 사람을 그것에 대한 사유로 이끌어 들이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죽음이 도둑처럼 갑작스럽게 온다면, 그것을 두려워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순간순간 온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하나의 도구와도 같다. (254쪽)
지금 다시 읽어도 공감이 가는 죽음에 대한 사유들. 죽음은 순간순간 온다, 에 절대 공감한다. 나날이 쇠약해지시는 할머니를 보는 심정 그대로다. 멀리서 바라보면 한없이 평화로운 날들의 연속 같은 요즘의 내 생활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기분이 때때로 찾아든다. 그럼에도 또 다른 순간순간은 달콤한 휴식이기도 하다. 너무 달콤해서 벙긋벙긋 미소가 떠오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