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란 저항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예의범절이라든가 심사숙고라든가 그 밖에 교양이라는 이름의 각종 족쇄를 잊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통행권이 있는 곳에서 허락을 구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왜 노동자나 인부들처럼, 아니 판매대 앞의 상점 점원들만큼이라도 하지 못하는 것일까? (134쪽)


가여운 세실, 허락을 구한 키스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다니. 그러니 그에게 전망 없는 방이란 딱지가 붙을 수밖에. 영화에서 세실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맡았었나. 자유분방한 루시나 조지와 대조적으로 샌님 같은 차림과 외모가 비호감의 전형이었던. 다행히 책에서 읽히는 이미지는 영화보다 덜하다. 소설에서 기대하는 건 영화와 다른 점이다. 현재,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세실과 프레디인데, 영화에서 별로 기억에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포스터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거의 봤는데 어째 소설은 전무할까, 라는 사소한 의문에서 책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실수가 있었다. 미스터 노 시리즈와 양장본을 구분하지 못하고 덜컥 산 것이다. 첨엔 이걸 어째, 했지만 읽다보니 작고 가벼운 게 작은 가방에도 쏙 들어가고 장점이 많다. 하얀 표지도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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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10-2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를 한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꼭 중간부분서부터 보게 된다는...^^
언제 한번 맘잡고 첨부터 봐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냥 책으로 읽어버릴까요?ㅎㅎ

겨울 2006-11-11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영화는 작심을 해도 구하거나 보기가 꽤나 힘들어요.^^ 이 영화 다시 봐야지 하면서 결국 못보고 있어요.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쯤의 로맨스라는 걸 염두에 둔다면, 술술 잘 읽혀요.

소소담다 2006-11-11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읽기를 끝냈는데...언니 서재 왔다가 놀라고 가요^^

겨울 2006-11-15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늘, 열심히, 씩씩하게 사는 사람~ 건강하지?
 

 

아침이 제법 싸늘하다. 그래도 난방이나 온수가 당기지 않으니 겨울은 멀고 가을이 길어질 모양이다. 햇볕 좋은 한낮엔 니트 셔츠도 부담, 맨발에 양말은 아침에 잠깐 생각이 들다 만다. 관리부실로 쫓겨 갔던 장독들이 하나둘 다시 찾아들어 계단을 오르는 번거로움을 피해 마당 한구석에 흰 자갈돌을 깔아 자리를 마련했다. 키도 제각각인 장독을 윤이 나도록 닦아 놓으니 기분이 좋다. 고추장도 된장도 냉장고에 넣어 먹는 게 편하지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장독대의 운치는 값으로 따질 수가 없다.     


동네가 시끄럽다. 재개발이니 재건축이니 아줌마건 아저씨건 만났다하면 저 얘기다. 길을 걷다 저기서 그들을 발견하면 뒤로 돌아서 딴 볼일이 있는 것처럼 머뭇댈 정도로. 오케이 사인만 떨어지면 당장 아파트가 들어서고 벼락부자라도 되는 환상을 품고 있는 건지. 제 소유의 땅과 건물이 있어 이러니저러니 참견하며 계산기를 두드릴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클수록 이른 아침 나가 저녁 늦게 들어와 얼굴 한번 마주치기 어려운 이웃들의 고단한 삶은 더 암울하겠지. 땅값 집값이니 관심 없고 딱 지금만큼 조용하고 친절한 이웃들이랑 어울려 살길 희망한다. 근처에 있는 재건축된 아파트를 보면서 늘 들던 생각은 미친 짓이라는 거. 낡긴 했어도 낮은 건물과 높은 하늘 너른 녹지로 심신을 편케 해주었던 거기에는 촘촘히 붙어선 멋대가리 없는 회색 건물이 하늘을 뚫을 듯 서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부자가 되어 행복해졌나. 아마도 살던 곳을 원치 않게 떠나야했던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 동네에서 십여 년을 살았어도 이웃들과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일상이니 어쩌다 만나도 어디 사는 누군지 관심도 없고. 그러다 주구장창 집에만 붙어있는 요즘엔 과할 정도로 번잡하다. 노상 집밖에 나가시는 할머닐 생각해서 시골에서 공수해오는 야채며 곡식을 퍼다 나른다. 받으면 갚는 인지상정으로 누가 뭘 가져왔는지 염두에 두었다가 다른 날 잽싸게 나누는 게 어느덧 생활의 일부가 됐다. 단,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건 좋은데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불쑥불쑥 드나드는 것만은 영 적응이 안 된다. 대충 파자마 바람으로 있다가 갈아입는 번거로움, 헤어밴드로 말아 올린 뻗친 머리, 기타 등등.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습관들을 고치려니 스트레스 수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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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0-28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과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는게 현명하다고 봅니다.
아, 이건 먼저 살던 동네에서 징글맞게 부딪친 문제라서 그래요
적당히, 이 말이 참 어려운 의미이긴 한데 말입니다.
오늘도 식전부터 들이닥친 일단의 무리들로부터 스트레스 받았답니다.
사람 사는 동네는 꼭 별스런 인간들이 있더라구요.
산에 잠깐 올라갔다가 도토리가 너무 예뻐 다섯 알갱이를 가져왔어요
모니터 위에 놓았는데 며칠후면 시들겠죠. 가을, 10월 너무 아쉬워요

겨울 2006-10-29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가 계시니 대문 현관문 활짝 열고 살아요. 아픈 사람 붙잡고 하지 마라 할 수도 없고,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 땅에 떨어진 도토리 무시하고 지나치긴 어렵죠. 시들어 버릴줄 알면서도 한주머니 가득 줍곤 했었는데... 도토리묵 좋아하심 작정하고 모아보셔요.
 
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웃겼다가 울렸다고 다시 웃기는 이야기. 처음엔 뭐, 이런 이런 사신이 다 있어 하며 건성으로 읽다가 이내 이 말할 수 없이 친절하고 진지한 사신 치바의 매력에 쏙 빠져들고야 만다. 더구나 그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바로 그 얼굴이다. 어둡고 사악한 까맣게 죽은 입술의 창백한 이미지가 절대 아니라는 거다. 

혹시 아나.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날. 내 곁에 서서 말을 걸고 있는 멋진 남자가 치바일런지. 그는 친근한 이웃, 직장동료, 사돈에 팔촌일 수도 있고 우연히 버스를 기다리던 내 앞, 옆의 인상좋은 그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님, 편의점에서 나란히 서서 컵라면을 먹던 낯설지만 익숙한 그 모습이던가. 중요한 것은 그를 볼 수 있는 기간은 딱 일주일 뿐이며 그 후의 내 운명은 죽음이라는 사실. 무섭지 않겠냐고? 전혀. 오히려, 치바와의 만남은 행운이 아닐까?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 속의 치바가 관련된 죽음들은 모두 다 달콤하다. 아니 애잔하다. 사나이의 도리를 다한 후지타 형님의 죽음도 멋지고, 복수를 선택해 죽음에 이른 산장 살인사건의 죽음도 아쉬움이나 미련 따위는 찾을 수가 없다. 모두가 죽어도 좋다라는 신념을 가졌다. 치바가 연애상담사로 나선 어쩌면 가장 슬픈 사연도 마찬가지다. 암에 걸려 일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오기와라는 운명의 여인을 만나 달콤한 사랑에 빠질 찰나에 죽임을 당하지만, 좋아하는 여자를 위한 죽음이라 다행이라 말한다. 살인 용의자와의 동행은 또 어떤가. 어린시절의 유괴에 의한 고통스런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온 모리오카가 흉악한 살인범의 얼굴에서 점점 연민을 자아내는 가여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과정은 눈물겹다. 어짜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삶이지만 치바와의 동행을 통해 삶도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치바군, 흉기(칼대신 포크)를 품고 후쿠츠를 찾아온 모리오카에게 "이봐, 포크 가져가야지."는 너무 했어. 불행히도 치바군에게 그건 진담이었다. 그는 늘상 그렇게 분위기 파악 못하는 썰렁한 조언을 인간들에게 건네지만 의도야 어떻건 결과는 나쁘지 않다. 인간사회의 법칙에 대한 몰이해가 여유로 비춰진들 어떤가. 그리고 설령 내일 죽는다한들 어떤가. 오늘 죽을 힘을 다해 살았다면.

이쯤에서 드는 의문, 사신이란 무엇을 하는 존재일까, 라는 거.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듯 하지만 그들도 그 부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걸로 보아 생사여탈권과는 무관한 관조자, 동행이라는 거. 홀로 맞서야 하는 죽음 앞에서 말동무처럼.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교훈은 결코 사신을 두려워하지 말라. 비가 내리는 어느날 동행이 되어준 누군가가 있다면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모든 얘기를 아낌없이 토하라. 그러면 짊어지고 가는 등짐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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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19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이 딱입니다. 친절한 치바씨^^

비로그인 2006-10-20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댓글에 한표~^^

겨울 2006-10-2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요? ^^ 마왕도 막 읽었어요.
이사카 코타로, 치바만큼이나 멋진 사람일 것 같아요.
 

 

내겐 조카가 모두 넷이 있다. 그래서 이녀석들이 한데 모이는 명절이 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참새들처럼 따라다니며 고모, 고모, 이모, 이모, 서로 질새라 합창을 하면 대꾸하기도 버겁다. 이녀석들은 그걸 또 즐거워하고. 여동생의 아들 현이 중학교 1학년, 현이 동생 원이 초등학교 3학년, 오빠의 딸 율이 초등학교 2학년 그리고 막둥이 솔이 유치원 2년차 여섯 살이다. 다들 성격들이 내성적이고 차분해서 각각 있으면 있는 줄도 모르는데, 넷이 되면 좀 번잡스럽긴 하다. 그 중에 제일 큰 현은 입 꾹 다물고 책이나 컴퓨터 붙잡고 앉으면 끝이지만 그래도 여동생들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는 편이다.


역시나 가장 말이 많고 요구사항도 많고 목소리가 높은 건 막둥이 솔이다. 온갖 참견 다 하고, 온갖 잘난 척 다 하고, 온갖 엄살 다 부리는 귀염둥이. 세상이 마치 자길 중심으로 돌아가는 냥 나비처럼 팔랑팔랑 잘도 날아다닌다. 그동안 배운 한글로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한테 편지도 쓰고, 고모 준다고 그림도 그리고, 이게 뭐예요, 저게 뭐예요 궁금한 것도 많고. 제 엄마는 집안의 별종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솔의 언니 율인 지나칠 만치 똑 떨어지는 야무진 성격으로 제 엄마의 기대치를 점점 높이는 아이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보니 또래에 비해 작은 체구와 키를 가지고 꽤나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티가 역력하다. 달리기를 해도 다리가 짧아서 꼴찌에서 두 번째라고 해서 어찌나 놀랍던지, 엄마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유난히 이해가 빠른 아이인지라 친구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까지 받아보았다니 대충 둘러 댈 수도 없었던 듯싶다. 그건 먼 훗날의 일이라고, 키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지만 설령 작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걱정하지는 말라고 했지만 납득했을까? 이제 아홉 살,잘 먹고, 잘 놀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 외의 세상은 어른들의 몫으로 남겨두면 좋을 것을. 아이가 가고 난 뒤에 내내 마음이 심란하다.


사실, 율의 키가 자꾸 화제에 오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종사촌인 원이 탓도 있다. 이제 3학년인 그 녀석은 어딜 가면 6학년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팔다리가 길쭉하게 뻗어서 제 키나 나이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이번에 보니 머리까지 사자갈기처럼 쳐놔서 남자앤지 여자앤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행동이나 말도 터프 그 자체다. 율이나 솔보다 가까운 곳에 사는 지라 자주 보고 친밀도도 높아서 만나면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데, 이번에는 그것조차도 미안했다. 원이는 인간적으로 참 예쁜 아이다. 제 엄마한테는 오빠와 비교당하며 구박도 받는 모양이지만 타인에게 무심하고 약간 이기적인 현과 달리 마음씀씀이가 넉넉하고 배려가 많다. 전화 통화라도 하게 되면 시시콜콜 학교 이야기며 그동안 본 영화며 만화 이야기를 참새처럼 지저귄다.


초등학교 내내 맨 앞자리를 벗어나질 못했던 현인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부쩍 키가 컸다. 이제 제 또래들과도 비슷하고 발 크기나 팔 다리의 길이를 보면 제 아빠 이상은 클 것도 같다. 이 녀석의 키 문제로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얼굴은 아직도 조막만하지만 목소리도 굵직한 것이 말하는 본새가 나 이제 남자요, 다. 하긴 중학교 들어가며 사준 핸드폰에  여자애들 문자가 빗발쳐 여동생이 걱정을 하더라. 썩 잘 생긴 얼굴은 아닌데 여자애들에게 은근히 인기가 좋단다. 대개는 관리를 못해서 우수수 떨어져 나가지만 여동생은 관리해줄 생각 절대 없다고 한다. 공부 안한다고. 내가 보기엔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는 걸 용납 못하는 엄마의 질투로 보인다만.


이 아이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기원을 한다. 언제까지나, 너희 눈 안의 세상이 아름답기를. 어떤 고통이나 슬픔, 근심도 너희들 영혼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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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13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를 사랑하시는 님의 마음이 참 예뻐요. 언제까지나, 너희 눈 안의 세상이 아름답기를.. 세상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커가는 것이겠죠.^^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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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하나 혹은 둘의 특별함을 말하는 건 새삼스럽다. 사춘기 시절에는 서른 살을 넘어 까지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나이 즈음으로 요절한 예술가들에게 열광할 정도로. 이것의 느낌은 시작이거나 마무리, 절망, 죽음, 가파른 벽 혹은 급한 내리막의 이미지가 마구 뒤섞여 있다.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440쪽)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막 읽은 직후여서일까. 이건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맛이 났다.  기대했던 맛과 다르다고 해서 맛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제목이나 일러스트처럼 발랄하고 가볍게 무겁거나 비극적인 얘기들까지 마치 누구나 다 이렇게들 산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서 역시라고 생각했으니까. 


나이에 맞는 옷처럼 나이에 맞는 소설이 있다면, 내게 이 소설이 철지나고, 유행이 지난 옷이랑 비슷했다. 색 바랜 옛 얘기, 그것도 별로 기억하기 싫은 거라면 마냥 반가울 수가 없다. 재인처럼 단지 조건만을 보고서 대충 살아지겠지 라는 낙관만으로 결혼을 선택한 친구도 있고, 유희처럼 불현듯 직장을 덮고 꿈을 찾아서 발가벗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간 용감하지만 무모한 친구도 있었고, 은수처럼 연애할 남자, 결혼할 남자, 평생 친구할 남자로 분류하며 어이없는 줄다리기를 하던 친구도 역시 있었다. 당연히 행복의 척도는 결혼의 유무도 직장의 유무도 남자의 유무도 아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나이 서른한 살의 그녀는 그래서 연애가 아닌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정작 지켜야 할 것들을 잃었나. 이전까지 결혼의 상대자로서 손색이 없던 김영수가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단숨에 뒤집어엎는 것처럼. 그의 현재로 과거의 허물을 포용할 순 없었을까. 그랬다면 은수가, 은수가 아니었겠지. 그의 옆에서 그의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치기어린 바램일 뿐이다.


달리 보면 이 이야기는 나이 서른에 관련한 왜곡일 수도 있다. 세상 여자들의 모든 서른 너머가 그녀들 같을 거라는 선입견을 심어주니까. 아직도 이런 고민 하냐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분개할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기발한, 무서운 미스테리가 가미되었으면 하는 상상을 했다. 김영수의 과거는 그래서 충분히 흥미진진했다. 아쉬움이 남을 때,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는 것은 책을 읽는 나의 습성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그 도시는 씁쓸, 심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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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0-1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그렇군요. 저도 그 도시는 여전히 씁쓸해요...결코 심심하지는 않았구요.
달콤한 도시가 가끔 그립습니다.
아, 연애를 한 판 해줘야 하는건가요? 후후^^

겨울 2006-10-1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건강하시죠? 건강이 최고예요. 전 연휴 후유증으로 아직 골골댑니다.
오늘 낮, 햇빛이 참 달콤할 정도로 눈부셨어요.
여기, 지금 여기가 달콤한 나의 도시구나 싶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