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웃겼다가 울렸다고 다시 웃기는 이야기. 처음엔 뭐, 이런 이런 사신이 다 있어 하며 건성으로 읽다가 이내 이 말할 수 없이 친절하고 진지한 사신 치바의 매력에 쏙 빠져들고야 만다. 더구나 그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바로 그 얼굴이다. 어둡고 사악한 까맣게 죽은 입술의 창백한 이미지가 절대 아니라는 거다. 

혹시 아나.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날. 내 곁에 서서 말을 걸고 있는 멋진 남자가 치바일런지. 그는 친근한 이웃, 직장동료, 사돈에 팔촌일 수도 있고 우연히 버스를 기다리던 내 앞, 옆의 인상좋은 그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님, 편의점에서 나란히 서서 컵라면을 먹던 낯설지만 익숙한 그 모습이던가. 중요한 것은 그를 볼 수 있는 기간은 딱 일주일 뿐이며 그 후의 내 운명은 죽음이라는 사실. 무섭지 않겠냐고? 전혀. 오히려, 치바와의 만남은 행운이 아닐까?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 속의 치바가 관련된 죽음들은 모두 다 달콤하다. 아니 애잔하다. 사나이의 도리를 다한 후지타 형님의 죽음도 멋지고, 복수를 선택해 죽음에 이른 산장 살인사건의 죽음도 아쉬움이나 미련 따위는 찾을 수가 없다. 모두가 죽어도 좋다라는 신념을 가졌다. 치바가 연애상담사로 나선 어쩌면 가장 슬픈 사연도 마찬가지다. 암에 걸려 일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오기와라는 운명의 여인을 만나 달콤한 사랑에 빠질 찰나에 죽임을 당하지만, 좋아하는 여자를 위한 죽음이라 다행이라 말한다. 살인 용의자와의 동행은 또 어떤가. 어린시절의 유괴에 의한 고통스런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온 모리오카가 흉악한 살인범의 얼굴에서 점점 연민을 자아내는 가여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과정은 눈물겹다. 어짜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삶이지만 치바와의 동행을 통해 삶도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치바군, 흉기(칼대신 포크)를 품고 후쿠츠를 찾아온 모리오카에게 "이봐, 포크 가져가야지."는 너무 했어. 불행히도 치바군에게 그건 진담이었다. 그는 늘상 그렇게 분위기 파악 못하는 썰렁한 조언을 인간들에게 건네지만 의도야 어떻건 결과는 나쁘지 않다. 인간사회의 법칙에 대한 몰이해가 여유로 비춰진들 어떤가. 그리고 설령 내일 죽는다한들 어떤가. 오늘 죽을 힘을 다해 살았다면.

이쯤에서 드는 의문, 사신이란 무엇을 하는 존재일까, 라는 거.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듯 하지만 그들도 그 부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걸로 보아 생사여탈권과는 무관한 관조자, 동행이라는 거. 홀로 맞서야 하는 죽음 앞에서 말동무처럼.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교훈은 결코 사신을 두려워하지 말라. 비가 내리는 어느날 동행이 되어준 누군가가 있다면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모든 얘기를 아낌없이 토하라. 그러면 짊어지고 가는 등짐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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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19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목이 딱입니다. 친절한 치바씨^^

비로그인 2006-10-20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댓글에 한표~^^

겨울 2006-10-2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요? ^^ 마왕도 막 읽었어요.
이사카 코타로, 치바만큼이나 멋진 사람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