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제법 싸늘하다. 그래도 난방이나 온수가 당기지 않으니 겨울은 멀고 가을이 길어질 모양이다. 햇볕 좋은 한낮엔 니트 셔츠도 부담, 맨발에 양말은 아침에 잠깐 생각이 들다 만다. 관리부실로 쫓겨 갔던 장독들이 하나둘 다시 찾아들어 계단을 오르는 번거로움을 피해 마당 한구석에 흰 자갈돌을 깔아 자리를 마련했다. 키도 제각각인 장독을 윤이 나도록 닦아 놓으니 기분이 좋다. 고추장도 된장도 냉장고에 넣어 먹는 게 편하지만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장독대의 운치는 값으로 따질 수가 없다.
동네가 시끄럽다. 재개발이니 재건축이니 아줌마건 아저씨건 만났다하면 저 얘기다. 길을 걷다 저기서 그들을 발견하면 뒤로 돌아서 딴 볼일이 있는 것처럼 머뭇댈 정도로. 오케이 사인만 떨어지면 당장 아파트가 들어서고 벼락부자라도 되는 환상을 품고 있는 건지. 제 소유의 땅과 건물이 있어 이러니저러니 참견하며 계산기를 두드릴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클수록 이른 아침 나가 저녁 늦게 들어와 얼굴 한번 마주치기 어려운 이웃들의 고단한 삶은 더 암울하겠지. 땅값 집값이니 관심 없고 딱 지금만큼 조용하고 친절한 이웃들이랑 어울려 살길 희망한다. 근처에 있는 재건축된 아파트를 보면서 늘 들던 생각은 미친 짓이라는 거. 낡긴 했어도 낮은 건물과 높은 하늘 너른 녹지로 심신을 편케 해주었던 거기에는 촘촘히 붙어선 멋대가리 없는 회색 건물이 하늘을 뚫을 듯 서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부자가 되어 행복해졌나. 아마도 살던 곳을 원치 않게 떠나야했던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이 동네에서 십여 년을 살았어도 이웃들과의 왕래가 거의 없었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일상이니 어쩌다 만나도 어디 사는 누군지 관심도 없고. 그러다 주구장창 집에만 붙어있는 요즘엔 과할 정도로 번잡하다. 노상 집밖에 나가시는 할머닐 생각해서 시골에서 공수해오는 야채며 곡식을 퍼다 나른다. 받으면 갚는 인지상정으로 누가 뭘 가져왔는지 염두에 두었다가 다른 날 잽싸게 나누는 게 어느덧 생활의 일부가 됐다. 단,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건 좋은데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불쑥불쑥 드나드는 것만은 영 적응이 안 된다. 대충 파자마 바람으로 있다가 갈아입는 번거로움, 헤어밴드로 말아 올린 뻗친 머리, 기타 등등.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습관들을 고치려니 스트레스 수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