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조카가 모두 넷이 있다. 그래서 이녀석들이 한데 모이는 명절이 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참새들처럼 따라다니며 고모, 고모, 이모, 이모, 서로 질새라 합창을 하면 대꾸하기도 버겁다. 이녀석들은 그걸 또 즐거워하고. 여동생의 아들 현이 중학교 1학년, 현이 동생 원이 초등학교 3학년, 오빠의 딸 율이 초등학교 2학년 그리고 막둥이 솔이 유치원 2년차 여섯 살이다. 다들 성격들이 내성적이고 차분해서 각각 있으면 있는 줄도 모르는데, 넷이 되면 좀 번잡스럽긴 하다. 그 중에 제일 큰 현은 입 꾹 다물고 책이나 컴퓨터 붙잡고 앉으면 끝이지만 그래도 여동생들이 원하는 건 다 들어주는 편이다.
역시나 가장 말이 많고 요구사항도 많고 목소리가 높은 건 막둥이 솔이다. 온갖 참견 다 하고, 온갖 잘난 척 다 하고, 온갖 엄살 다 부리는 귀염둥이. 세상이 마치 자길 중심으로 돌아가는 냥 나비처럼 팔랑팔랑 잘도 날아다닌다. 그동안 배운 한글로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한테 편지도 쓰고, 고모 준다고 그림도 그리고, 이게 뭐예요, 저게 뭐예요 궁금한 것도 많고. 제 엄마는 집안의 별종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솔의 언니 율인 지나칠 만치 똑 떨어지는 야무진 성격으로 제 엄마의 기대치를 점점 높이는 아이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보니 또래에 비해 작은 체구와 키를 가지고 꽤나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티가 역력하다. 달리기를 해도 다리가 짧아서 꼴찌에서 두 번째라고 해서 어찌나 놀랍던지, 엄마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유난히 이해가 빠른 아이인지라 친구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까지 받아보았다니 대충 둘러 댈 수도 없었던 듯싶다. 그건 먼 훗날의 일이라고, 키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지만 설령 작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걱정하지는 말라고 했지만 납득했을까? 이제 아홉 살,잘 먹고, 잘 놀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 외의 세상은 어른들의 몫으로 남겨두면 좋을 것을. 아이가 가고 난 뒤에 내내 마음이 심란하다.
사실, 율의 키가 자꾸 화제에 오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종사촌인 원이 탓도 있다. 이제 3학년인 그 녀석은 어딜 가면 6학년이냐고 물어볼 정도로 팔다리가 길쭉하게 뻗어서 제 키나 나이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이번에 보니 머리까지 사자갈기처럼 쳐놔서 남자앤지 여자앤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행동이나 말도 터프 그 자체다. 율이나 솔보다 가까운 곳에 사는 지라 자주 보고 친밀도도 높아서 만나면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데, 이번에는 그것조차도 미안했다. 원이는 인간적으로 참 예쁜 아이다. 제 엄마한테는 오빠와 비교당하며 구박도 받는 모양이지만 타인에게 무심하고 약간 이기적인 현과 달리 마음씀씀이가 넉넉하고 배려가 많다. 전화 통화라도 하게 되면 시시콜콜 학교 이야기며 그동안 본 영화며 만화 이야기를 참새처럼 지저귄다.
초등학교 내내 맨 앞자리를 벗어나질 못했던 현인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부쩍 키가 컸다. 이제 제 또래들과도 비슷하고 발 크기나 팔 다리의 길이를 보면 제 아빠 이상은 클 것도 같다. 이 녀석의 키 문제로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얼굴은 아직도 조막만하지만 목소리도 굵직한 것이 말하는 본새가 나 이제 남자요, 다. 하긴 중학교 들어가며 사준 핸드폰에 여자애들 문자가 빗발쳐 여동생이 걱정을 하더라. 썩 잘 생긴 얼굴은 아닌데 여자애들에게 은근히 인기가 좋단다. 대개는 관리를 못해서 우수수 떨어져 나가지만 여동생은 관리해줄 생각 절대 없다고 한다. 공부 안한다고. 내가 보기엔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는 걸 용납 못하는 엄마의 질투로 보인다만.
이 아이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기원을 한다. 언제까지나, 너희 눈 안의 세상이 아름답기를. 어떤 고통이나 슬픔, 근심도 너희들 영혼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