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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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하나 혹은 둘의 특별함을 말하는 건 새삼스럽다. 사춘기 시절에는 서른 살을 넘어 까지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나이 즈음으로 요절한 예술가들에게 열광할 정도로. 이것의 느낌은 시작이거나 마무리, 절망, 죽음, 가파른 벽 혹은 급한 내리막의 이미지가 마구 뒤섞여 있다.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440쪽)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막 읽은 직후여서일까. 이건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맛이 났다.  기대했던 맛과 다르다고 해서 맛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제목이나 일러스트처럼 발랄하고 가볍게 무겁거나 비극적인 얘기들까지 마치 누구나 다 이렇게들 산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서 역시라고 생각했으니까. 


나이에 맞는 옷처럼 나이에 맞는 소설이 있다면, 내게 이 소설이 철지나고, 유행이 지난 옷이랑 비슷했다. 색 바랜 옛 얘기, 그것도 별로 기억하기 싫은 거라면 마냥 반가울 수가 없다. 재인처럼 단지 조건만을 보고서 대충 살아지겠지 라는 낙관만으로 결혼을 선택한 친구도 있고, 유희처럼 불현듯 직장을 덮고 꿈을 찾아서 발가벗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간 용감하지만 무모한 친구도 있었고, 은수처럼 연애할 남자, 결혼할 남자, 평생 친구할 남자로 분류하며 어이없는 줄다리기를 하던 친구도 역시 있었다. 당연히 행복의 척도는 결혼의 유무도 직장의 유무도 남자의 유무도 아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나이 서른한 살의 그녀는 그래서 연애가 아닌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정작 지켜야 할 것들을 잃었나. 이전까지 결혼의 상대자로서 손색이 없던 김영수가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상황이 되자 단숨에 뒤집어엎는 것처럼. 그의 현재로 과거의 허물을 포용할 순 없었을까. 그랬다면 은수가, 은수가 아니었겠지. 그의 옆에서 그의 손을 잡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치기어린 바램일 뿐이다.


달리 보면 이 이야기는 나이 서른에 관련한 왜곡일 수도 있다. 세상 여자들의 모든 서른 너머가 그녀들 같을 거라는 선입견을 심어주니까. 아직도 이런 고민 하냐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분개할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기발한, 무서운 미스테리가 가미되었으면 하는 상상을 했다. 김영수의 과거는 그래서 충분히 흥미진진했다. 아쉬움이 남을 때,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이랬다면 저랬다면 하는 것은 책을 읽는 나의 습성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그 도시는 씁쓸, 심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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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0-1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그렇군요. 저도 그 도시는 여전히 씁쓸해요...결코 심심하지는 않았구요.
달콤한 도시가 가끔 그립습니다.
아, 연애를 한 판 해줘야 하는건가요? 후후^^

겨울 2006-10-13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건강하시죠? 건강이 최고예요. 전 연휴 후유증으로 아직 골골댑니다.
오늘 낮, 햇빛이 참 달콤할 정도로 눈부셨어요.
여기, 지금 여기가 달콤한 나의 도시구나 싶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