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를 뽑았다. 한마디로 끔찍했다. 눈을 꼭 감고 있어서 보지는 못했지만 잇몸에서 이빨이 뽑혀나가는 느낌은 너무나 생경해서 몸서리가 쳐졌다. 의사가 힘을 줄때마다 온몸이 딸려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데 그 무식함과 잔인함에 기절할 것 같았다. 내가 숨죽인 신음을 터트릴 때마다 의사는 아프냐고 물었는데, 사실 전혀 아프지는 않았다. 단지 이빨을 쥐고 뒤흔드는 그 느낌에 경악했을 따름이다. 누가 나에게 너 치과에 갈래 죽을래 라고 물으면 난 주저 없이 죽을래 라고 말할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이빨이 아프다한들 결코 죽어지지는 않는다는 거다.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아픈 것은 괴로우니 사색이 되어서라도 치과의 문을 넘을 수밖에. 치과에 있는 간호사들이 아무리 생글생글 웃으며 친절하게 굴어도 결코 마주보며 웃을 수가 없는 곳을 다녀온 지금, 난 파김치가 됐다. 해마다 치과 문을 넘나들 때마다 몸살을 앓았는데 올 해도 어김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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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8-29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리 나으세요... 저도 네개나 뽑은 경험이 있네요^^;;;

겨울 2005-08-29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네 개요? 존경합니다.

날개 2005-08-2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 저런~ 마취 풀리면 상당히 아플텐데요....ㅜ.ㅠ

겨울 2005-08-2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빼기 전, 빼는 동안엔 덜덜 떨었는데, 웃기게도 하나도 아프지는 않아요. 이상할 정도로요.^^ 천만다행이지요.

잉크냄새 2005-08-29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랑니가 자리를 잘 잡았다고 하더군요. 치과 의사 왈 " 나이 들어 어금니 빠지면 사랑니에 틀니 걸면 되니까 간수 잘하세요"

겨울 2005-08-30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사랑니가 그런 용도로도 쓰여지다니 금시초문입니다. 뽑았다고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군요. -_-
 

 

열었던 창문 꼭꼭 걸어 잠그고, 무릎 시리고 발 시려 이불 찾아 둘둘 말고, 냉장고에서 막 꺼낸 물이 차서 쉬었다가 마시고, 고무장갑을 끼고 하는 설거지가 훨씬 편해진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며칠 전부터 귀청이 시끄럽도록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심상치 않더라니, 느닷없이 여름은 가고 가을이 남았다. 그래서였나. 만사 귀찮음, 밥 맛 없음, 웃기도 말하기도 싫음, 딱 석 달 열흘만 입 닫고 귀 닫아걸고 살고 싶다는 소원을 하였는데, 계절이 가고 오는 길목에서 몸살을 앓았던 것일까. 한번도 이런 일 없더니, 무슨 변덕이라니. 나이 들어가는 거 티내는 중?


한동안 표정관리가 전혀 되질 않아서 고심했다. 억지로 웃으려니 입가와 눈가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던 농담도 나와 주질 않고 속으로는 ‘제발 말 좀 시키지 말아줘’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뭐가 문제일까, 생각을 해도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도 없고, 그냥 때가 되어 꼿꼿하게 세웠던 등을 내리고 늘어진 몸을 기댈 기둥을 필요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날 대신해서 근심과 걱정을 챙겨주시는 지인을 만나 응석을 부려 봤더니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긴 듯 했으니까. 그런 거다. 지친 거다. 동생들 걱정하고 남 얘기 들어주고 이런 척 저런 척 폼 잡는 거에 질린 거다.


확실히 어제와 그제하고는 또 달라서 방안의 공기가 서늘하다. 몸이 제일 먼저 느끼고 깨고 있다. 벌써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지치고 늘어지는 기분이 없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귀찮았던 근래를 돌아 볼 때 엄청난 변화다. 할머니를 뵈러 갈까. 친구 분이 돌아가셨다고 상심이 크셨는데 어찌 지내시는지. 어서 죽어야지 하는 입버릇에 지금처럼만  오래오래 사시라고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사실 거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었는데, 미안하다. 매번 화를 내고 돌아서서 후회하고 미안해하면서도 같은 상황이면 또 화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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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2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정관리해야한다는 건 참 속상한 일이지요. 그냥 감정대로 표현하고 싶은데, 왜들 그렇게 관리, 관리를 운운할까요..

겨울 2005-08-22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대로 성질대로 살았던 것이 까마득하답니다. 차갑다 딱딱하다 인상 더럽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살지요. 사회적 약자의 비애랄지..
 
몽상가들 - 완전 무삭제판, 태원 5월 할인행사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마이클 피트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예술이더라, 암 예술이야. ‘몽상가들’을 본 어떤 이의 코멘트에 자극을 받아 귀찮음을 무릅쓰고 본 영화다. 어째서 제목이 몽상가들인가, 보기 전에는 어지간히 재미도 없다고 궁시렁 댔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제목도 예술이네. 지리멸렬한 일상도 영화의 한 장면이 되면 근사한 판타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영화 같은 영화처럼 산다는 것에 전부를 바치는 빛나는 시절에 관한 영화를 바라보는 여자라니. 오직 하루, 단 하루만을 위한 삶 같은 건 더 이상 흥미도 없고 있을 턱도 없고 가당치도 않다. 그래서 우울한 건가. 바람 빠진 타이어가 터덜터덜 굴러가는 기분인가.


삼인삼색의 이사벨 테오 매튜의 공명과 일탈과 사랑과 그 영화 속의 또 다른 영화를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눈부신 이사벨의 나신이 화면을 압도할 땐, 그 조화로운 아름다움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예술이건 포르노건 옷을 벗은 여자만큼 아찔한 건 없다. 벌거벗은 남자에게도 물론 시선이 머물지만, 당신은 무엇, 나는 누구냐는 시선으로 걸어 나오는 이사벨은 이 영화가 보여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칭 그들은 분리 된 샴쌍둥이다. 그래서 한 침대에서 벌거벗고 자고 일어나고, 욕실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게임에서 졌다고 자위하는 벌칙을 주는 이사벨이나 시키는 대로 곧장 벽을 마주보고 앉아 자위를 하는 테오를 보면서 영화 밖의 사람들은 다들 무슨 생각을 할까. 사실 따지고 보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영화 밖의 관객도 몽상가들이라서 대개는 그런 거야라고 납득을 하고 지나갈 것이다. 영화를 보며 손가락을 내밀 인간이라면 애초에 이 영화를 선택하지도 않을 테지. 그러나 몽상은 언젠가는 깨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일생을 몽상가로 사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걸 누가 바랄까.


벌거벗은 애벌레처럼 뒤엉킨 알몸을 드러내고 잠이 든 이사벨과 테오, 매튜가 여행에서 돌아온 부모님의 시선에 노출된 순간, 이게 끝인가 싶었다. 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쌍둥이의 부모는 수표를 써서 머리맡에 고이 놓아두고 조용히 그 집을 나선다. 경악도 분노도 없이 살그머니 딸과 아들이 잠든 집을 나와 차에 올라탄다. 그것은 지나친 믿음일까, 혹은 구원일까, 아니면 회피일까. 잠에서 깨어난 이사벨은 수표를 확인하고 가스 밸브를 열어 호스를 연결한다. 사랑하는 두 남자를 동반한 달콤한 죽음을 꿈꾸는 그 극단으로 치닫는 행위에 숨을 죽이는데, 와장창 유리창을 깨트리고 돌맹이가 날아든다. 몽상을 깨우는 현실이다. 그들은 거리로 나가 데모의 행렬에 합류하고 이사벨과 테오는 화염병을 집어 든다. 그들은 과연 언제까지나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까.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파리, 68혁명. 영화 밑바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코드와 상징들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누군가의 몫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순수하게 보이고 들리는 것 외에는 이해도 관심도 불능이다. 다만 망각된 청춘의 한 때를 추억하다가 잠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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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5-09-0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죠. 이 영화 보고 싶어집니다. ^^ 9월로 접어들었지만 오늘 무더위가 만만치 않네요. 건강하게 지내시길..

겨울 2005-09-0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태풍이 온다네요. 별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의 감회라니. 이게 어인 떡이냐. 속으로는 웃음을 감추고, 껄렁한 표정으로 책방 주인에게 얼마냐고 묻고, 가격을 흥정하고, 예상대로 거저나 다름없는 값에 낙찰을 본 후, 너무 좋아서 역시 속으로만 웃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뭔가를 좋아해서 가지고 싶다고 해서 당장에 그것을 찾아다니는 열정이 부족한 나는 이렇게 우연찮게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가 진짜로 행복하다. 돌부리를 걷어찼는데 굴러가던 돌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오백 원짜리를 토했을 때랄까? 비유가 이상하네. 사바스 카페를 처음 접한 게 8년 전 쯤? 막 만화책의 재미에 빠져들 즈음이었다. 일본만화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되어 그 후 정신없이 온갖 만화를 다 읽기 시작했다. 가질 수만 있다면 꼭 가지고 싶은 만화 1순위였지만 막연히 구하기 쉽지 않은 만화려니 하고서 포기했는데, 이런 우연한 행운이 따라주다니. 아, 행복해서 죽을 지경이다.


아름다운 건 월요일의 아이

품위가 있는 건 화요일의 아이

울상을 짓는 건 수요일의 아이

여행을 떠나는 건 목요일의 아이

매력적인 건 금요일의 아이

고생하는 건 토요일의 아이

귀엽고 명랑하고 마음씨가 고운 건 일요일에 태어난 아이 


<목요일의 아이>라는 소설도 있었는데, 친구들과 돌려가며 읽고 나름 심각한 대화도 나누고, 하나같이 모두 여행을 떠나는 목요일의 아이를 꿈꿨었는데. ‘마더구즈’의 노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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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8-14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바스카페.. 너무 좋지요? ^^ 이 책 보면 저는 행복해지더라구요..
좋은 책 구하신거 축하드려요~

로드무비 2005-08-1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오래 전 운좋게 구했답니다.
우울과 몽상님이 좋아하시는 모습 보니 덩달아 기분 좋네요.^^

겨울 2005-08-1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로드무비님, 반갑습니다. ^^ 출판사에서 덤핑 처리한 책인지라 귀퉁이에 약간의 칼질을 당했지만 상태가 아주 양호합니다. 워낙 오래된 책이라 누렇게 색이 바랜 것은 감수하구요. 두 분 다 이 책을 가지고 계시다니, 기분이 두 배로 좋아집니다. ^^

딸기 2005-08-1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몽상님, 오랜만인듯해요 :)

겨울 2006-08-3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딸기님! 그동안 귀차니즘 병에 시달리느라요. 오늘 말복인데 맛난 것 드셨나요? 전 토마토와 옥수수, 오이를 주식으로 삼아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습니다. 어젯밤, 만화책을 읽느라 잠을 못자서 정신이 몽롱한지라 마당가에 쑥쑥 자란 잡초를 뽑은 후 샤워를 하고 나서 낮잠이나 잘까 합니다. ^^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다.(p. 154)


이 책은 에둘러 비유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게 아니다 라고 말한다. 고개를 똑바로 들고서 하늘을 바라보기를 부끄럽게 만든다. 잘 못 알고 있는 것, 감추어진 진실, 허위의식, 가면을 집어던지라고 한다. 이제까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한 것을 부끄럽게 만든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눈물 따위 쉽게 가볍게 흘리지 말라고 한다. 연민이라고 믿은 것이 혹여 쾌감이 아닌가를 묻는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섣불리 강한 척을 하거나 손가락 하나 내미는 것으로 동정의 의무를 다했노라 교만하지 말라 한다.


어떤 곳을 지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그 지옥에서 어떻게 빼내올 수 있는지, 그 지옥의 불길을 어떻게 사그라지게 만들 수 있는 지까지 대답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하고, 그런 자각을 넓혀나가는 것도 아직까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인 듯하다. 이 세상에 온갖 악행이 존재하고 있다는 데 매번 놀라는 사람, 인간이 얼마나 섬뜩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잔인한 해코지를 손수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를 볼 때마다 끊임없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물이다. 나이가 얼마나 됐든지 간에, 무릇 사람이라면 이럴 정도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세상만사를 망각할 만큼 순수하고 천박해질 수 있을 권리가 전혀 없다.   (p. 167)


아프가니스탄 카불시의 한 화상병동을 취재한 방송을 보았다. 이제 막 열두 살이 된 소녀가 등유를 온몸에 들이부었다. 아버지에게 팔려 시집을 갔으나 남편과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분신을 기도했단다. 이웃의 남자가 주변을 맴돌며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로 분신을 기도하여 전신에 화상을 입고 아프다고 소리치는 소녀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버지나 남편이 아닌 남자로부터의 그러한 행위는 강간과도 같다. 그래서 소녀는 순결을 잃었다고 믿으며 등유를 들이부은 것이다. 며칠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텔레비전의 그 이미지를 통해서 나는 내가 거기에서 태어나지 않았음을 안도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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