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었던 창문 꼭꼭 걸어 잠그고, 무릎 시리고 발 시려 이불 찾아 둘둘 말고, 냉장고에서 막 꺼낸 물이 차서 쉬었다가 마시고, 고무장갑을 끼고 하는 설거지가 훨씬 편해진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며칠 전부터 귀청이 시끄럽도록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가 심상치 않더라니, 느닷없이 여름은 가고 가을이 남았다. 그래서였나. 만사 귀찮음, 밥 맛 없음, 웃기도 말하기도 싫음, 딱 석 달 열흘만 입 닫고 귀 닫아걸고 살고 싶다는 소원을 하였는데, 계절이 가고 오는 길목에서 몸살을 앓았던 것일까. 한번도 이런 일 없더니, 무슨 변덕이라니. 나이 들어가는 거 티내는 중?


한동안 표정관리가 전혀 되질 않아서 고심했다. 억지로 웃으려니 입가와 눈가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대수롭지 않게 주고받던 농담도 나와 주질 않고 속으로는 ‘제발 말 좀 시키지 말아줘’라고 비명을 질러댔다. 뭐가 문제일까, 생각을 해도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도 없고, 그냥 때가 되어 꼿꼿하게 세웠던 등을 내리고 늘어진 몸을 기댈 기둥을 필요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날 대신해서 근심과 걱정을 챙겨주시는 지인을 만나 응석을 부려 봤더니 한결 마음에 여유가 생긴 듯 했으니까. 그런 거다. 지친 거다. 동생들 걱정하고 남 얘기 들어주고 이런 척 저런 척 폼 잡는 거에 질린 거다.


확실히 어제와 그제하고는 또 달라서 방안의 공기가 서늘하다. 몸이 제일 먼저 느끼고 깨고 있다. 벌써 몇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도 지치고 늘어지는 기분이 없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귀찮았던 근래를 돌아 볼 때 엄청난 변화다. 할머니를 뵈러 갈까. 친구 분이 돌아가셨다고 상심이 크셨는데 어찌 지내시는지. 어서 죽어야지 하는 입버릇에 지금처럼만  오래오래 사시라고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사실 거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었는데, 미안하다. 매번 화를 내고 돌아서서 후회하고 미안해하면서도 같은 상황이면 또 화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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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2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정관리해야한다는 건 참 속상한 일이지요. 그냥 감정대로 표현하고 싶은데, 왜들 그렇게 관리, 관리를 운운할까요..

겨울 2005-08-22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대로 성질대로 살았던 것이 까마득하답니다. 차갑다 딱딱하다 인상 더럽다는 소릴 듣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살지요. 사회적 약자의 비애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