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우....... 이제, 마지막 한 번 남았다. 오늘은 마취씩이나 하고 치료 받았다. 예전에는 신경치료 말고는 마취를 안했던 걸로 아는데,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무조건 마취를 한다. 나야 아프지 않으니 좋다만, 치과하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바꿀 때가 되었나 보다. 물론 여전히 귓가에 쟁쟁한 드릴 소리는 소름이 끼치지만 한창 공사 중인 현장을 지나는 셈 치면 된다.


치과를 나와 걷다보니 추석을 앞두고 온갖 과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길 가 곳곳에 무더기로 쌓아놓고 있는 포도, 사과, 복숭아, 바나나, 자두 등등의 군침 도는 과일이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왔다. 올해 사과가 풍년인지 값도 싸고 실하다. 덥석 사고 싶어도 짐이 버거워 구경만 했다. 배낭이나 짊어졌으면 모를까, 지갑이 든 손가방 하나 들고 있는 처지인지라.


저녁은, 시골에서 보내온 밤을 넣어 밥을 지어 봤다. 생밤을 까먹기도 불편하고 쪄먹는 것도 금방 질린다고 했더니 막내 동생이 밤밥이 좋다고 일러주더라. 때마다 콩밥을 짓는 것도 슬슬 질려가던 참인데 잘됐다. 냉장고에 넣어둔 말린 옥수수가 있는데, 옥수수밥도 지어봐? 뭐든 하면 된다더니 매끼 상을 차리다보니 조금씩 요리의 기본을 터득하고 있다. 요리는 살면서 가장 겁냈던 부분 중의 하나였는데, 국이건 반찬이건 모르면 인터넷으로 찾아서 대충 뚝딱거리면 먹을 만한 결과물이 나온다. 요는 할 마음, 목적의식의 부재였던 거다.


아침에 들렀던 J에게 밥 아니 커피 한 잔도 못준 게 마음에 걸린다. 병원에 갈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궁금해 한다고 일부러 들린 건데 다음에 보자고 보내고 말았다. 야근을 하고 지친 모습에 빨리 가서 쉬라고 둘러댔지만 내 사정이 좋았다면 간다고 해도 붙잡았을 것이다. 일이 힘들다고 한다. 당연히 힘든 일이다.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테니까. 하지만 일이 없어 고생한 걸 생각하면 당분간은 꾹 참고 버티는 방법밖에 없다고 타일렀지만 J의 의지는 얄팍하다. 앞뒤 생각 없이 지금 당장만을 생각하고 있을 게 뻔하다. 백수생활이 길어지면서 치유가 불가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J는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만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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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9-14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미리요^^

프레이야 2006-09-14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기 싫은 곳 중의 하나가 치과인 것 같아요.. 밤밥은 저도 먹고 싶은걸요^^

마법천자문 2006-09-14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제가 처음 신경치료 받을 때 느꼈던 짜릿한 전율이 되살아나는군요.

겨울 2006-09-14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고마워요.^^ 다음 주에 가서 본 뜬 거 씌우면 끝나요. 나름, 엄청 큰일을 치뤘어요.

혜경님, 밤밥 한 번 해 드셔요.  색깔도 곱고 맛나요.^^

나스랄라님, 손발이 쭈뼛하는 그 전율입니다.^^ 정확한 손상부위를 찾기 위해서 마취를 자제한다는 설명을 어느 젊은 의사로부터 들었었는데(오래전에요), 요번 분은 솜씨가 대단하신 건지 별 설명도 없이 간단하게 치료를 끝내셨어요.  

 

 

9월은 벌써 시작됐지만 마치 오늘이 9월의 첫 날인 듯 8월의 달력을 넘긴다. 시골에 전화하니 엄마는 고추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는데. 가을 햇볕에 말리는 붉은 고추라. 제대로 가을 냄새가 나긴 난다. 간만의 외출에는 8월 내내 입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딱 달라붙는 스타일의 청바지와 긴팔 셔츠를 꺼내 입고. 눈까풀에 엷은 아이섀도우도 발라본다. 힐과 운동화 둘 중에 뭘 신을까. 정확히 3초쯤 고민하다 흰색 스니커즈를 신은 발을 탁탁 굴러보고. 우체부 아저씨의 가방을 둘러매면 준비 끝.


그러나 실상은 몸과 달리 천근만근 마음이 무겁다. 달 반 가까이 벼른 치과 가는 날. 오늘날짜의 달력에 빨간 사인펜으로 밑줄이 좍좍 그어졌으니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산부인과도 아니고 비뇨기과도 아닌 기껏 치과잖아. 솔직히 그 흔한 내과, 외과보다도 간편한 게 이빨 치료 아닌가. 어떤 병인들 그 만큼 아프지 않겠어. 엉덩이에 주사 한 대를 맞아도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면서. 이런저런 설득에 충고에 납득을 거듭하여 내린 치과 행은 그럼에도 역시 죽음이다.


벌건 대낮의 병원은 낯설어서 얼떨떨한데, 무엇보다 보이지 말아야 할 결점들이 보였다. 유난히 비위가 약한 탓도 있지만 양치하는 곳의 얼룩과 흘낏 바라본 옆자리의 피투성이 화장지며 타월, 자잘한 부스러기들까지, 차라리 눈을 감아버릴 껄 싶도록 더럽다. 이건 병원이 아니라 이빨 수리공장이다. 또 치료받는 내내 옆자리에서 들리는 견적 뽑는 과정이라니. 몇 십만 나온 것도 억하고 소리를 쳤는데, 조족지혈이다. 앞에 네 개, 뒤에 두 개하면 천 이백이구요. 몇 개 씌우는 것까지 해서 천 삼백 얼마라나. 치료산지 경린지 상담원인지 틀니의 유해함과 불편을 끝도 없이 나열하면서 임플란트의 놀라운 세계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아픈 사람이 죄인이지. 인생은 60부터인데 먹는 걸 빼면 사는 재미 당연히 없다. 집이건 땅이건 팔아서라도 청춘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랴.


그 병원, 전문의는 달랑 한 사람에 나머지는 간호사복장의 남녀가 분업을 하는 시스템이다.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누가 와서 하는지도 모르겠고, 유난히 목소리 큰 여자만이 얼마짜리 할 거냐고 묻는데, 싼 거, 비싼 거 알아서 선택하시라다.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겪을 때마다 기분이 영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약자로서의 환자, 강매 당하는 손님 같아서 씁쓸하다. 그럼에도 앞으로 몇 번은 더 다녀야 할 곳이고, 일 년이 지나면 또 어딘가 탈이 나겠지. 그 때마다 짙은 화장의 사모님이라 불리는 여자는 열심히 카드를 받아 긁어댈 것이다. 최소한 접수창구만은 제복의 전문 간호사에게 맡기면 안 될까? 돈독 오른 아줌마가 금고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 인상만은 안 풍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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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9-06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치아 아프면 정말 열불나요. 치과는 보여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무섭잖아요
쇠붙이 연장 도구들이 쭉 나열되어 있고. 그게 두 눈 껌뻑이는 내 입 속으로 침입하고.
개인병원 방문해서 카운터에 원장 싸모님이 계시면 거 참 기분 이상해지죠.
먹는게 사는 낙인 저로서는 번거로워도 인내심을 갖고 치료받으시라고 권합니다.
아. 여담으로 오늘 아침은 정말 바람에 가을 냄새가 완전히 났어요.

겨울 2006-09-0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 온 뒤의 하늘이 꽤나 높아졌어요. 주변엔 벌써 감기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치료는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받을랍니다. 문턱을 넘기가 어렵지 일단 넘어서면 부지런을 떠는 편입니다. 이 가을, 건강 챙기셔서 근심없이 지내시기를......
 

 

집 주변을 어슬렁대는 도둑고양이 네 마리와 은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음식물쓰레기통을 두어 번 엎은 뒤론 얄미워서 눈을 흘겼는데, 얼마 전부터 그 녀석들이 먹을 만한 것들을 추려 화단의 넓적한 돌 위에 놓아두는 버릇이 들었다. 마루에 앉아서도 잘 보이는 장소라 녀석들이 왔다 가는 것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들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나 또한 길들여지고 있는 건가. 녀석들이 안 보이는 날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앞집의 낡은 슬레이트 지붕 위에서 녀석들은 뒹굴뒹굴 놀다가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납작 엎드려 잠을 잔다. 매끼 챙겨주는 주인도 없으니 배가 고픈 날도 있을 터. 배부른 구속보다는 자유가 좋아 무소속이 된 건지. 야박한 주인을 만나 내쫓긴 건지. 고양이 팔자가 부럽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고, 그렇다.

 

고양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얘기지만. 오늘 어쩌다가 뒤로 돌아가기를 해서 옛날 글을 읽게 되었다. 무수한 오타들과 늘어지고 늘어져 읽다가 길을 잃는 이상야릇한 문장들을 보고 허걱. 그 때는 이랬구나 했다. 한번 쓴 걸 다시보기는 너무너무 귀찮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썼던 거라 뜯어 고치다보면 다시쓰기가 되고. 실수도 엉성함도 나름 미덕(?)이 있다고 자부하는 지라. 단 어쩌다 그걸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할 따름. 오늘 쓰는 이것도 한참이 지나서 보면 얼굴이 붉어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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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3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한 번 쓴 글은 다시 읽으면 안됩니다.
저는 길고양이들이 때로는 부럽던데요.

겨울 2006-08-3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고양이 어감이 좋아요. 담과 지붕을 타고 다니는 고양이는 분명 도둑고양이가 어울리지만 다 늦은 저녁이나 아침에 거리에서 만나는 고양이는 따로 길고양이라고 불러야겠어요. 아님 집없는 고양이?
 

 

세차게 부는 바람 앞의 갈대가 마음을 뒤흔든다. 여심이 갈대라는 비유가 아니라도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갈대는 매혹적이다. 저 가운데 서서 바람을 맞고 싶어서 실제와 상상하는 것의 차이 때문에 한참을 고민한다. 벌판에서 세찬 바람을 맞아본 사람은 안다. 그 살 떨리는 공포를. 절대 살랑살랑 부는 바람 같은 게 아니다. 


초등학교를 십리 길을 걸어서 다녔다. 태풍이 불거나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은 우산이나 우비도 별 소용이 없다. 즉, 온몸으로 비를 맞거나 바람을 맞는 일 같은 거 예사였다는 이야기.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나서서 옷을 말려 주시곤 했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 반찬이나 간식을 나눠 먹고, 수업 끝나고 교무실에 가서 놀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 시절의 학교는 즐거운 놀이터였다. 학원도 없고 숙제도 없는 놀이터, 쉬는 시간 점심시간의 땀으로 흠뻑 젖는 놀이가 세상의 전부였던, 참으로 동화 같은. 이렇게 과거의 어떤 일들이 간절히 그립다는 것은 현재가 몹시도 우울하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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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8-30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바람이 느껴져요.. 멋진 사진입니다..^^

겨울 2006-08-30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모르는 분의 사진인데 풍덩 뛰어들고 싶어지죠?

비로그인 2006-08-31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절반 정도로 걸어서 다닌 적이 있어요.
그때는 왜 그리, 태워준다는 사람들이 반가웠던지..;;;;

겨울 2006-08-31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짜 차의 기억들 무궁무진 하지요.^^
여행 준비로 여념 없으시겠죠? 제가 다 떨리네요.

파란여우 2006-08-3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에 풀물 들어요....흐흐(완전 깨는 소리)

겨울 2006-09-0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풀물보다 뱀이 나올 것 같아서.... 훌쩍 어른이 된 후로는 아무리 멋진 풍경이 나타나도 멀리서 바라볼 뿐 뱀이랑 징그러운 기타 벌레들을 상상하며 몸서리를 치게 되요.
뱀을 만나도 거머리가 달라붙어도 눈으로 쓱 훑고 마는 담대했던 계집아이가 그리워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서 익숙해지는 건 순간이겠죠?
 
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6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온통 악당 아니면 악녀 뿐인. 탐정도 경찰도 기업가, 의사 하다못해 고용인 내지 종업원,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엑스트라까지도 어딘가 한군데는 뒤틀려있는 이런 소설 아마도 처음이지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른 인간을 찾아서랄까.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배경이 되는 도시, 무생물의 나무, 날씨까지도 뭔가 음흉한 범죄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살맛, 인간의 냄새 운운하기엔 너무도 타락한 도시 사람들 속에서 그나마 제일 순수(?)하고 착한(?) 필립 말로. 얄팍한 우정에 헌신한 대가로써 그가 얻는 것은? 난 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책의 마지막 몇 장을 먼저 읽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결과는 그러면 그렇지.

  

자네가 그 여자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걸세.(61쪽)


이 멋진 말과 함께 테리 레녹스를 배웅하는 필립 말로는 그럴 듯했다. 이거야말로 정녕 남자들의 우정이란 거구나. 만취해서 거리에 개처럼 팽개쳐지는 한 남자의 무엇을 보고 말로는 선뜻 손을 내밀었을까. 그가 원래 그런 인간이어서? 탐정이란 그의 직업의 특성상 전혀 상관없는, 그러나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정체불명의 한 남자를 거두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라서? 어쨌든 두 남자의 만남과 이별을 참 의미심장하게 낭만적으로 그려나가는 소설의 시작은 멋졌다. 우정이란 여자 남자를 떠난 만인의 로망이니까.


갑자기 소설이 잔혹해지는 시점, 말로가 살인사건 사후 종범 혐의로 연행되어 무자비한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장면에서 호기심은 급상승했다. 유능한 탐정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어낸 남자의 가치가 무엇이길 레, 덩치 커다랗고 주먹이라면 어딜 가도 빠지질 않을 주인공이  이런 수모를 당해야하나. 무릇 영웅은 시련 속에서 태어난다지만. 그의 오만과 냉소, 말기 암 수준인 잘난 척을 빼면 필립 말로가 아닌데. 눈은 활자를 따라가면서도 머리는 또 다른 소설을 썼다.     


이 친구, 그저 경찰을 미워하는 녀석이구먼. 너는 그게 다야, 탐정 새끼. 그저 경찰을 미워하는 녀석일 뿐이라고.(83쪽) 그레고리우스 경감은 뼛속까지 썩은 악당 중의 악당이다. 이 악당 앞에서의 필립 말로는 그야말로 하이에나의 먹이 감이다. 악당이지만 나름 귀엽고 미련하고 둔한 메넨데스. 그는 역시나 결국 경찰에게 개기다 죽을 쑨다. 유일하게 깔깔깔 웃고 싶어지는 캐릭터랄까. 난 거물급 악한이야, 말로. 돈을 쓸어 담지. 내가 짜낼 수 있는 녀석들을 짜내서 한 몫 챙기기 위해서는, 짜낼 수 있는 녀석들을 짜내서 돈을 버는 수밖에 없거든. (128쪽) 이런 웃기는 과시를 하는 머리 나쁜 악당의 말로는 너무 뻔해서 동정을 금치 못했다.


난 악녀가 무섭다. 악녀가 나오는 영화도 꺼리고 악녀가 등장하는 소설은 말할 것도 없다. 필립 말로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고 약간 어리숙한 바보로 만들어 버린 아일린 웨이드가 등장했을 때 그래서 불안했다. 그녀의 지고지순 연기에 홀딱 빠져들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이라고 짐작하다가 맞아떨어지니 입맛이 썼다. 이 여자의 비뚤어진 욕망, 질투가 실비아 레녹스의 타락과 파멸, 비참한 죽음보다 나을 것도 없다. 저이는 버려진 개나 다름없어요. 저 사람에게 집 좀 찾아주지 그래요. 잘 길들여져서 성격은 제법 순하거든요.(10쪽) 최소한 데리고 살던 남자를 차 밖으로 집어던지고 떠나는 실비아 레녹스는 나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버려진 남자에게 하등의 동정을 느낄 이유는 없으니까.

 

술 아니면 담배 그리고 데메롤.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유혹들이다. 여기에서 죽어나가는 인간들에게 일말의 연민이나 동정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죽을 법 하다는 삶이 죽음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설령 그것이  필립 말로 우리의 주인공일지라도. 그래서 이별 뒤에 짠하고 등장하는 또 다른 주인공 따위 반갑지 않았다. 원래 진짜 악당은 이렇게 끝까지 살아서 남은 자의 뒷머리를 강타하는 것일까. 세뇨르 마이오라노스. 당신을 악당 중의 최고 악당으로 임명합니다. 마지막에 그 매디슨의 초상을 집어넣은 게 치명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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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3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말로 작품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겨울 2006-08-30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작품을 첫 번째로 읽었어요.^^ 나머진 이 거보다 약하다는 거지요?

물만두 2006-08-3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건 취향에 따라 달라요^^

프레이야 2006-09-1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겨울 2006-09-12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 혜경님.^^
재미나게 읽고, 쓰고, 덤으로 적립금까지
좀, 민망합니다.

비연 2006-09-1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레이먼드 챈들러 작품은 다 좋죠..

겨울 2006-09-15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반갑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온전한 매력을 아직은 잘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