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찐다고 설치다가 아끼는 냄비를 홀라당 태웠다(-_-). 며칠 연속으로 주변에서 쪄다 주는 감자를 얻어먹다가 나도 한번 쪄봐야지 했다가 큰일 치른다. 감자 맛도 이상하고. 똑같은 감자를 똑같은 방식으로 찌는데도 어째서 누구네 거는 맛있는데 누구 거는 이상한 거냐. 문제는 일관된 자세인가.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이 끝까지 못 가는 거. 시작은 창대하였다가 끝은 미약해지는 고질 병. 죽어라 닦았는데도 하얗게 빛나던 귀여운 냄비는 시커먼 태를 벗어나질 못한다. 아까워서 차마 버리지는 못하겠고 며칠 지나 그러려니 하고 써 먹으련다.




말이 나온 김이지만, 그동안 태워먹은 주전자며 냄비가 셀 수도 없다. 요리의 기본이 정성과 집중이라면 냄비를 태우는 빈도수를 따져볼 때 낙제인 셈이다. 커피 물 올려놓은 주전자를 몇 개씩이나 해먹다가 무선주전자를 장만한 후로는 태울 일이 없어진 점은 다행이지만 그동안 태워먹은 주전자와 냄비들이 달려드는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무슨 대책(요리 중 딴 짓 금지-근데 감자 찌는 것도 요리하고 부르나-)이든 세워야 할 텐데........   




그저께 내린 비로 토마토, 고추, 상추 및 기타 꽃들이 쓰러지는 사태 발생. 비 줄줄 오는데 우산 쓰고 나가서 걔네들 일으켜 세우느라 바빴다. 바닥에 엎드린 채송화는 작은 돌로 기댈 등을 만들어 주는 수고까지. 손바닥만 한 화단가지고도 이렇게 고달픈데 엄청난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을 생각하니 하늘이 노랗다. 장마, 홍수 때마다 농작물 간수하느라 얼마나 애가 탈까. 장대비를 무릎 쓰고 우비 차림으로 논으로 밭으로 다니시는 부모님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하루 대여섯 번은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엄마의 푸념을 늘 한 귀로 흘려들었는데 흙을 딛는 삶의 고단함이 콘크리트를 딛고 선 삶 보다 더 무겁다는 말 가벼이 말 할 수 없겠지만 올 여름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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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6-24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사히. 장마가 시작되나봅니다. 야밤에 늦게 귀가하는데 비가 오더군요.

겨울 2007-06-24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내리는 비는 사실 단비예요. 농작물이 다 타들어갈 정도로 가뭄이 계속되었거든요.
님도 부디, 여름 건강 챙기시기를.
 
애시 베이비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인생이, 사람이, 삶이 아름다워 같은 말들의 더 이상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할 감성도 말라버려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 침몰 중이라지만 이 적나라한 소설은 뭔가. 몇 번이나 구역질을 느끼며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용케 끝까지 읽은 이유는, 인간에 대한, 아야, 호쿠토, 무라노에 대한 연민이 있어서다. 보이지 않는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절대 없노라 단정할 수 없듯이. 바보 같고, 미친놈 같고, 머저리 같은 그들의 사는 법을 두고 어떤 판단의 잣대도 들이댈 수 없다.




이건 픽션이다. 이건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이건 가네하라 히토미라는 작가의 머릿속 상상의 결과물이다. 그녀는 그녀가 만든 세계, 인물들 속의 신이다. 라는 전제는 내게 있어 소설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만든다. 울고, 웃고, 분노케 하고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치미는 혐오와 경멸로 책을 던져버리게 만드는 힘. 이 소설이 충격과 논란의 한 가운데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책을 찢건 던지건 읽는 이의 자유다.




이 책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위장한 인간의 본질에 속고 있거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믿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사람일지도. 하긴 잘난 척 고상한 척 하지 마. 너도 별 수 없어. 라는 질타는 불편하다. 닭 한 마리 토끼 한 마리 죽이는 것 쯤, 발가벗긴 아기 위에서 자위하는 것 쯤, 피가 흐르는 상처를 물고 빠는 것 쯤, 요즘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 사고보다는 양호하다는 생각이다. 학교에서 제자가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고 욕을 내뱉는 것보다도. 소설은 세상의 거울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의 아버지가 아니다.




나 역시 지금 얼마나 무라노 씨를 만나고 싶은가. 얼마나 간병 받고 싶은가. 얼마나 죽여주길 바라는가. 사실은 지금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서 죽여주세요, 하고 울며 간청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울면서 죽음을 애걸하고픈 이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p. 186)




나에게 죽음을 주세요. 날 죽이고 당신도 따라 죽으라는 말 따위는 안 해요. 그런 바보 같은 말은 절대 안 해요. 당신의 그 가느다란 손가락과 화사한 손바닥으로 날 죽여주길 바랄 뿐이에요. 부탁이에요. 뭐든 드릴 테니. 제발. 죽여. 주세요. (p. 187)




좋아해요. 라는 수없는 고백에도 무반응이거나 어쩌다가 돌아오는 네. 라는 답이 전부인 무라노를 향한 아야의 독백이 처절함을 넘어 귀여운 건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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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에서 돌아와 발견한 종이봉투에 네 권의 책이 들어있다. 주인도 없는 집에 택배를 놓고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현관문과 대문이 활짝 열려있었으니 아마도 무심코 들어왔겠지? 뜻밖의 선물이라(이미 전에도 한번 받았지만) 즐겁고 신나면서도 약간의 고민을 동반한다. 파랗고 노랗고 하얀 그리고 분홍의 책표지가 마치 꽃처럼, 마당 구석구석에 소담스레 핀 채송화처럼 시선을 잡아끈다. 책이 꽃보다 예쁘다. 고마워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몇 송이의 꽃이 폈나 혹은 필 것인지 숫자를 세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정오쯤 마당에 나가 활짝 잎을 연 꽃송이를 무료한줄 모르고 넋을 놓아 구경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만져보고 마른 흙에는 촉촉하게 물을 적시고 옆구리에서 비집고 올라오는 풀을 뽑아낸다. 오늘은 무려 열두 송이의 꽃을 피웠다.




동네에 새로 들어선 마트에 갔더니 개업기념으로 빨간 소쿠리를 하나씩 준다. 이걸 어디다 쓰나 하면서도 커다란 소쿠리가 별나고도 신기해서 자꾸 바라봐진다. 오늘 하루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옆구리에는 모두 빨간 소쿠리 하나씩을 끌어안았을지도. 정말 장사가 될까 싶은데도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마트가 벌서 세 곳이다. 번갈아 경쟁세일을 하는 유혹의 전단지가 날아들면 작은 손지갑을 움켜쥐고 달려가는 어처구니없는 심리란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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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오른쪽 벽면에는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의 포스터가 몇 년을 한결같이 걸려있다. 산 건 아니고 누가 줬는데 기억도 안 날만큼 오래 됐다. 새삼 징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저 영화에 대한 기억과 감상을 아직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걸 보면 포스터에 대해서도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저 영화의 제목은 정말 멋지지 않은가. 이참에 가훈으로 삼아버릴까. 삶이, 생활이 흐르는 강물 같다면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오는 사람 안 말리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다, 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정이 뚝 떨어지는 인간(누구의 표현에 의하면)이다. 물건이건 사람이건 집착, 소유와는 무관하다. 어려서야 내 것 내 사람에게 이끌려 발광도 하고 상처도 받고 기쁨도 얻었지만 나이들 수록 드는 생각은 버리면 버릴수록 덜 가지면 덜 가질수록 삶이 가볍다는 거다. 유일하게 끌어안고 살던 책마저도 두 번 읽을 것 같지 않은 것들은 아낌없이 이집 저집을 떠  넘긴다. 주고 나서 살짝,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뭐, 어쩌랴.


내게 있어 이 공간은 이름 그대로 서재다. 제목만 넣으면 원하는 책을 찾아서 값을 치루고 마술상자처럼 뚝딱 내게로 오는 멋진 곳이다(서재를 시작하면서 알라딘을 알았다). 발품을 팔지 않아도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산다는 사실이 서재를 처음 시작한 그때는 신기하고 즐거웠다. 또한 이곳은 무한한 여백이 있는 공책이다. 연필 혹은 볼펜을 들어 손가락이 아프도록 꾹꾹 눌러 쓰지 않아도 경쾌한 자판 소리에 취해 자잘한 이야기를 적어나가는 내 공책이다. 일기장 비슷하지만 딱히 비밀이랄 것도 없는 글을 쓰면서 은근한 노출과  적당한 관음을 즐기기도 한다. 문이 있지만 굳이 노크가 필요한 곳은 아니다. 가끔이지만 정다운 사람과 인사도 나눈다. 하지만 열린 공간이니 이런저런 불협화음도 예상한다. 타인의 신념, 실수, 주의, 주장, 요구사항 등 타인의 무수한 말, 글을 적당히 걸러 듣고 읽는 것도 요령이 필요한 시절이다.  세상이 온갖 별별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쯤이야 유치원생도 아니까. 

 

(내겐 일상에서의 모든 문이란 문을 전부 열고 지내는 묘한 습성이 있는데, 잠긴 문 안을 상상하는 일이 두려워서다. 물론 대문을 지나치게 여는 건 삼가야겠지만 집에 사람이 있는 한 우리집 대문은 활짝 열려있어 장사꾼을 비롯한 온갖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열린 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올 간 큰 도둑이 없음을 감사해야 할까.)

 

톡, 톡, 톡. 채송화가 피어나는 소리다. 어제만 해도 진분홍색 꽃이 하나 피더니 오늘은 무려 세 송이나 피었다. 장독대 옆에 핀 노란 채송화가 유난히도 예뻐서 오며가며 멈춰 서서 뚫어지게 보게 된다. 내 손으로 옮겨 심어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이토록 기특한(?) 일일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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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10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에요. 포스터의 저 푸르른 초록도 너무
좋아요. 영화만큼이나 님의 단상과 글이 더 좋구요.^^
노란 채송화가 톡톡 터지는 소리, 상상해봅니다...

잉크냄새 2007-06-1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포스터, 영원히 기억될만한 포스터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 리의 포스터처럼 말이죠.
음, 그나저마 채송화 톡톡 피어나는 소리가 뭘까요....

겨울 2007-06-11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채송화가 피어있는 시간은 아주 짧아요. 피는 순간은 아마도 더 짧을 거예요. 톡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지나갈 것 같아서.
혜경님. 요즘 채송화는 구경하기 힘든 꽃이 되었대요. 저도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을 갖고 있다가 가까이서 보니 마냥 신기합니다.
여우님. 채송화에 눈독들이는 도둑이라면 정말 '귀여운넘'일지도 몰라요.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노래가 있음에도 머릿속은 늘 기억 따로 이름 따로 부유한다. 계기는 과꽃이 뭐냐는 원이의 질문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필 만큼 흔한 그 꽃의 정체를 모를 수 있다니. 초롱꽃목 국화과. 취국 혹은 당국화라고도 불림. 쌍떡잎식물. 한해살이풀. 원산지는 한국 혹은 중국이다.


며칠 마당에 앉아 햇볕을 쪼이며 하찮은 노동 아닌 노동을 했다고 양쪽 팔뚝에 오도도 좁쌀 같은 두드러기가 생겼다. 일명 햇빛 알러지 같은데, 그동안은 무탈하게 살다가 갑자기 나타나다니 당황스럽고도 걱정이다. 일단 연고를 발라 심하게 가렵지도 않고, 보였다 사라졌다 하니 크게 고민할 일은 아닌 듯싶지만 이후론 가급적 노출을 삼가야할지도 모른다. 이 햇빛 알러지로 여름마다 고생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아주 심한 경우로 얼굴이며 팔뚝이 온통 울긋불긋하고 염증까지 생겨 일상생활을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바라보면서 연민을 금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나한테도 덜컥 생길 줄이야.


오늘 처음 안 새로운 사실. 카네이션이 여러해살이 라는 것. 지금 화단에서 소복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저 녀석을 내년에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버이날 동생이 사온 분홍색 바구니 속의 카네이션이 왜 그렇게 못 미덥던지. 눈인사만 잠깐 하고는 탈싹 쏟아놓고 볕 좋은 자리에 심었었다. 한두 개 피어 있었던 꽃잎이 시들시들 하는데도 다른 꽃망울이 도무지 터지질 않길 레 가망이 없는 건가 했는데, 어느 사이에 잘도 천연덕스럽게 복스러운 꽃잎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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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6-0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전 왜 과꽃이 흰색일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박꽃이랑 헷갈렸나...

겨울 2007-06-0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흰색, 붉은색 여려가지가 있는 모양입니다.
저도 흰색의 다른 꽃을 생각했다는.

프레이야 2007-06-10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 과꽃이군요. 연회색 벽 새단장한 님의 서재에 아주 잘 어울려요.^^
햇빛 알러지면 가려울텐데 여름이 걱정이네요.. 조금씩 나아지시기 바래요.

겨울 2007-06-1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혜경님. 울 집 화단에 심은 꽃은 중의 하나가 과꽃이라고 누가 일러주는데 그래요? 하고 놀랐어요. 알러지는 아무래도 환경의 역습 같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