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1993년 8월이었다. 작고 얇은 한 권의 책이지만 어지러웠던 시대의 아픔을 증언하고 대변하는 독특한 양식에 매료되어 하룻밤을 샐 만큼 내게는 특별한 책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다스리지 못하여 울고 웃기를 반복하던 시기에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이름으로 그림 속에 깃든 역사를 추적하여 다니는 서경식의 여행기는 잠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역사는 고통으로 얼룩져 왔고 그것을 기록하는 화가들의 영혼은 치열할 수밖에 없음이다. 두 형을 독재정권의 손아귀에 빼앗기고 부서진 가족의 파편을 먼 이국의 땅에서 발견하고 감회에 젖어 기록하는 사람 또한 또 하나의 예술가임은 분명하다.

회화에는 일자무식이었던 내가 이 한 권의 책으로 감동받으며 잊을 수 없는 그림 몇 개를 가슴에 각인 시킨 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어떤 그림이든 역사를 캐고 읽으며 이야기를 만드는 습관이 생겼으니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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