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은 그 집에서 죽었다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첫사랑의 이미지는 모든 사람을 감동시킨다. 왜나하면 모든 계층, 모든 나라, 모든 성격을 통해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정열적인 것은 아니다.

스탕달은 『연애론』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 수 만큼이나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첫사랑의 이미지는 거의 유사하다는 말, 그 이유를 생각했었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첫사랑에 갖게 되는 환상 탓일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생각해보면 좋은 시간도, 힘든 시간도 아련함으로만 남게 되고 기억이 희미해져갈 수록 우리는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다른 바람을 불어넣고, 그렇게 치장한 이미지를 다시 기억하게 되는 것일테다. 그러므로 첫사랑의 이미지가 유사한 이유는, 우리가 교육받은 첫사랑이라는 것의 모습이 획일 되어 있다는 것과 누구나 그 획일 된 이미지를 환상화 시켜 실제의 과거 안에 집어 넣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세상에는 섣불리 맞딱드려서는 안 된다고 알려진 크고 작은 금기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요리사의 손톱, 작가의 민얼굴, 옛사랑의 현재 모습 같은 것이 있다.

이렇게 시작 되는 이 소설은 스탕달이 말한 첫사랑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비록 세중이 연희의 첫사랑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욕망, 열정은 첫사랑을 능가했기에 그것은 첫사랑이 아니되 첫사랑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섣불리 맞딱드려서는 안 된다는 그 금기를 뛰어넘어 긴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의 배우자와 부모가 된 상황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환상은 깨어지고, 숨겨왔던 옛 이야기들은 꺼내어졌다.

이 소설을 극대화 시키는 것은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다양한 시점이다. 세중과 연희를 그리는 제 3자의 시점, 그들이 발견한 노트 속의 인물이자 시체 중 한 구의 인물의 시점, 그리고 참나무, 박새, 청설모, 바람 등의 자연이 관찰한 인간의 시점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그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실과의 단절과 그것을 잇는 환상이라는 실체를 마주한다. 그 환상이라는 것은 결국 민얼굴을 드러냈을 때 상상 속에서 존재할 때만큼의 아름다움은 없는 것이고 현실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주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군가를 살게 한다는 점이다. 연희도, 세중도, 그리고 노트 속 인물도 그렇게 살아냈고, 그 환상이 우리에겐 미래를 꿈꾸게 하는 유토피아가 되기도 했다.

세중과 연희가 눈 속에 고립 되어 시체들과 마주하고 자신들의 근원에 있었을 온갖 욕망을 표출하게 되는 장면은 압권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것 역시 시간이 뭉개놓은 희미함 속에 덧칠해 진 환상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는 마지막 부분에 와서는 서늘해 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 그것으로 인해 꿈꾸게 되는 미래는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 수 있는 것일까.

김형경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소설이 아니라 『사람풍경』이라는 심리 에세이를 통해서 였다. 그 책을 통해서 나는 나에 대해 조금 솔직해졌고 지난 시간과 인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전에 씌여진 이 소설 속에서도 나는 그런 치유의 메시지를 발견한다. 살면서 분명 우리는 환상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것에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그게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었고, 시간이 흐른 뒤엔 그 마주함 조차 또 하나의 환상으로 아름다워 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과거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그 끔찍한 시체를 발견했던 장소조차 찾아갈 수 없고 단지 아련한 기억으로 자리잡는 법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문학에 대한 나의 애정이 다시 타오른 시점에는 김연수라는 이름이 있다. 모두가 잊지 못한다는 첫사랑은 두 번째 사랑에 의해 희미해 진다지만, 나는 김연수라는 두 번째 이름에 의해 첫사랑에 더 또렷이 다가갔다. 하지만 한동안은 내가 김연수 작가의 작품들을 애정하는 건지, 김연수 작가를 애정하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우리가 보낸 순간』과 『원더보이』에 대한 아쉬움과 그렇게 아쉬움을 느끼는 것조차 배신인 것 같은 마음이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 혼란은 『지지않는다는 말』을 통해 조금 해소 되었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통해 어느정도는 정리가 되었다. 아니, 정리가 된 기분이다.

이 책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통해 나는 김연수 작가가 가지고 있는 80년대에 대한 짙은 향수를 다시 확인했다. 맥북에어로 글을 쓰고 아이폰으로 편집자들과 미팅 약속을 잡는 21세기 생활을 하면서도 그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정서는 80년대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정서가 그의 글쓰기의 뗄 수 없는 근원이라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이젠 그 이야기는 좀 그만했으면 하던 나는 작가에 대한 애정과 작품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와 만나는 한 인간의 시점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어야 하는 게 옳았다는 느낌이다. 이 책이 내겐 작가의 그 시선을 보게 했고, 그러니 작품에 대한 큰 이야기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제외하고 그 느낌만을 말하자면 대강 이렇다. 김연수의 작품 중 가장 애정하는 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다. 그 책은 우리의 시간은 수 많은 시간들과 이어져 있고 나는 수 많은 사람들과 이어져 있으며 그 시간과 그 관계 속엔 수 많은 사랑이 존재했고 그럼에 나는 외롭되 혼자는 아니라는 희망을 들려줬었다. 그리고 이 책을 개인적으로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2탄'으로 부르고 싶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촘촘한 인물 구조에 머리가 아프지도 않지만 이 책은 분명 그 이야기를 닮았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p.201

이 책에서 독자는 하나의 선을 보게 되지만, 그 손은 촘촘한 점들로 이뤄져 있고 개인의 능력껏 그 점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 바로 이 점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두 번재 이야기처럼 느끼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입양아의 뿌리 찾기'라는 다소 식상해 보일 수 있는 소재는 그 촘촘한 점들을 들여다보게끔 이끄는 작가의 노력에 의해 특별해 진다. 그 점들을 구상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향수가 가장 짙게 닿아있는 80년대와 그가 살아가는 21세기를 만나게 한다. 그 지점에 다가가는 순간 작가의 시선과 나의 시선은 마주치고, 몇 번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가의 책들을 놓치 못했던 이유는 분명해 진다.

내가 태어나서 막 세상의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하던 80년대. 그 시간은 내게 호기심과 자각의 환희만 가득하던 때이지만, 누군가에겐 격동의 그리고 아픔의 시간이었다. 나는 문학작품 속에서 그 시절을 마주할 때마다 그 시간을 온전히 이해해 보고 싶었지만 그건 내가 이룰 수 없는 바람이었다. 이뤄질 수 없는 바람 앞에서 나는 오히려 그 시간들을 외면하고 싶었고 이젠 그만 해도 될 것 같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면하고 싶지 않은, 그만 할 수 없는 고집도 있는 것이며 그 고집이 내게 타인의 시선으로 그 시간을 보게 하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그 시대가 어떻고 이 시대가 어떻든 우린 살아있기에 알아야 하며 우리가 듣는 그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지라도 시간 속에 남겨진 점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은 무언가 만들어질 것이고 만들어진 팩션 속에서 결코 우린 혼자 살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김연수라는 작가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러니 더 이상은 그에 대한 애정 혹은 작품에 대한 애정 그리고 또는 또 다시 찾아올 아쉬움에도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고 놓지 않을 것임이 확실해 지는 것이다. 여전히 김연수 작가는 내 두 번째 사랑의 이름이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김연수 작가와 시선을 마주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우린 외로움을 위로받기도 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취 나라에서 망드라고르 산맥까지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3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것들이 나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내게는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같은 추억이 없는데 그럼에도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같은 것이 그리울 때가 있고 또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이 서른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그런 그리움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최근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이라는 부제가 달린 여섯권의 그림책이 그 그리움을 해소해 주고 있다. 우선 방의 불을 꺼야 한다. 이 책은 작은 불빛 하나에 의지해 읽는 것이 제 맛이다. 침대 옆에 놓인 키다리 스탠드의 불빛이 천장을 향하게 해 놓았기 때문에 그 스탠드를 켜면 천장이 환해지고 천장에 반사 된 빛이 책으로 떨어진다. 딱 그 불빛 아래에서 읽는 것이 이 책에 대한 최고의 예의가 된다.

3권인 <비취나라에서 망드라고르 산맥까지>는 네 가지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비취나라에서 시작된 여행은 코라카르 나라를 거쳐 연꽃나라로, 그리고 망드라고르 산맥으로 이어진다. 이 여행에서 우린 아시아를 만날 수 있다. 빨강이 모티브가 되었을 법한 색들과 이야기를 구성하는 조각조각들이 환상적이지만 낯설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낯익지도 않다. 이것들을 낯익게 하려면 우리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승려들을 춤추게 해야 하고, 거대한 코끼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낯익어 지는 순간 이 책의 재미는 배가 되고 우리의 모험은 시작된다.

벌써 세번째 이야기를 읽고 있는 이 책의 최대 장점은 끝을 알 수 없는 상상력에 있다. 작가는 단지 글로만 그 상상력을 풀어내지 않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시각화 한다. 글을 읽고 나서 작가의 그림을 보며 나의 상상력이 그가 의도한 내용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한 권 한 권 읽어나갈 때마다 모험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알파벳을 따라 하는 여행이기에 여행은 유한하다. 하지만 우리의 상상력은 끝이 없기에 몇 번을 읽으며 다른 나라를 만들어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임을 생각한다. 그렇기에 상상할 수 있다면 유한한 이 책의 끝은 무한해 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닐랑다르의 두 왕국에서 키눅타 섬까지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4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껴읽고 싶었지만 아껴읽지 못한 것은 목차 때문이었다. 이 책에 드디어 오르배 섬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본 순간, 이미 책은 넘어갔다. 시리즈의 전체 제목이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이기에 당연히 처음부터 가장 궁금한 지역은 오르배 섬이었다. 그 궁금증은 책을 읽어나갈 수록 책의 흥미도와 비례 해서 커졌다.

하지만 오르배 섬에 도착하기까지는 닐랑다르의 두 왕국을 거쳐야만 했다. 그리고 닐랑다르의 왕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시 넋을 잃었다. 가족끼리의 영토싸움,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 말하는 것이라고 하기엔 도덕의 기준을 벗어난 것 같았고 당연히 아름다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세상이었다. 세상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수도 없이 발생하고 그건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 였다. 아름답기만 한 세상이 아니기에 모든 이야기가 아름다울 필요는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알아야했다. 너희가 나아갈 세상이 사실은 아름답지만은 않은 곳이라고 누군가는 말해줘야 했다. 그것을 이 이야기가 대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조금은 씁쓸한 마음으로 오르배 섬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곳에 펼쳐진 어머니의 지도를 만나게 되었다. 세상을 향한 눈이 종이에 펼쳐지고 있었고 그 눈과 나의 눈이 마주하는 순간 이 책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심스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건 그 어떤 편견 없이 이 세상을 바라보고 탐험해야 하고 그걸 나만의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여러 문화를 담은 듯한 이야기들은 그 자체가 여행의 기록이었고 문화 지도였다. 오르배 섬의 오르텔리누스는 또 다른 모험을 떠날 수도, 처형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남긴 지도와 그의 눈으로 확인한 세상을 남겼기에 또 다른 이들의 모험을 유도할 것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누군가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이야기는 계속 될 수 밖에 없다.

바위투성이 나라를 지나 키눅타 섬으로 향하며 이 책은 점차 어두워졌다. 그 어떤 결말도 석연치 않았고 두려움만 가득했다. 하지만 오히려 명확치 않은 결말은 계속 되는 모험과 더불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이야기와 그에 대한 세상이 남았음을 알려주는 듯 했다. 또 키눅타 섬에서 보여진 식인종의 이야기는 세상에 다양한 문화가 있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정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기에 석연찮은 이 책이 유달리 무거웠고 커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럼에도 알아갈만한 곳이라는 걸 알고 다양한 문화가 있지만 사람 사는 곳이기에 결국은 이해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며 자랐으면 좋겠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마침맞았고 추천할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최소한의 사랑

작가
전경린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발매
2012.07.26

리뷰보기

"가장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지 못해 세상엔 이토록 많은 고통과 상처가 얽히는 것이다."

책 띠지에 있는 그 말이 너무 사무쳤다. 전경린 작가의 책은 항상 이렇게 마주하게 된다. 제목이, 한 줄 카피가, 우연히 펴 진 책 속 한 문장이 그 때의 감성을 툭하고 건드린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였던 나는 마음을 허락하고야 만다. 마치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듯.

떨어진 단추를 꿰메지 못하고 있었다. 단추가 떨어진 옷들은 차곡차곡 옷장에 쌓여가고 있었다. 혼자 살기 시작한 후, 밥도 잘 해 먹었고 편안했고 고양이 두 마리도 함께 하고 있었지만 엄마가 없다는 것은 단추가 없는 옷이 쌓인다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귀찮음은 떨어진 단추를 바라만 보고 있었고 그것은 감정이 조각 나는 걸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도 연결되었다. 다만 그걸 인정하기 싫었고 모르는 척 하고 있었을 뿐이다.

실수로, 아니 일부러 손을 놓아버린 새 엄마의 딸. 그 손을 놓은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그 딸을 찾아야 하는 주인공 희수의 그림자를 밟아가며 소설을 뒤 쫓지만 내 마음은 반짓고리를 파는 노인 앞에서 어느 순간 멈춰 버렸다. 단추를 단단히 꿰메 놓으면 모든 것이 돌아올 것처럼 말하는 노인의 목소리에 나는 옷장에 쌓인 단추 없는 내 옷들을 떠올렸고, 그 옷들처럼 쌓여버린 미해결 감정들이 떠올랐다.

뜨겁게 달궈 졌을 때 찬 물이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치익 하고 소리내며 거부하는 프라이팬처럼 되기 싫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뜨거워지길 거부하고 있었다. 달궈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성가셨고, 그 시간 동안 팽팽했다 놓아지는 감정의 기복을 견디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어느 순간 드라마처럼 내 삶에 누군가 들어와 모든 것을 정리해 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누군가에 대한 비예의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내게 발을 들이 밀었다가 나의 작은 놀람에 쑥 발을 빼는 그들을 예의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희수가 손을 놓은 순간, 그녀 역시 삶의 온기를 놓은 건지도 모르겠다. 가장 최소한의 것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였고, 나에 대한 애착감이었고, 세상과 나를 잇는 끈이었다. 그것 중 얼마만큼을 나는 포기하고 있었던 걸까. 그것이 실감 되어서 희수가 안타까웠고 멀리에서 연인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을 유란이 서글펐다.

전경린 작가의 소설들은 이렇게 때를 맞춰 내게 왔다. 오글거리는 사랑 이야기는 딱 질색이라고 말 하는 내게 그녀의 소설들은 전혀 오글거리지 않았다. 후에 생각하면 오글거리는 감정들은 적시에 적당히 포근하고 적당히 마음을 죄인다. 그걸 인정하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과연 그동안 나는 전경린 작가의 책을 제대로 읽었던 것일까. 그것이 과연 사랑이야기이기만 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