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지 못해 세상엔 이토록 많은 고통과 상처가 얽히는 것이다."
책 띠지에 있는 그 말이 너무 사무쳤다. 전경린 작가의 책은 항상 이렇게 마주하게 된다. 제목이, 한 줄 카피가, 우연히 펴 진 책 속 한 문장이 그 때의 감성을 툭하고 건드린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였던 나는 마음을 허락하고야 만다. 마치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듯.
떨어진 단추를 꿰메지 못하고 있었다. 단추가 떨어진 옷들은 차곡차곡 옷장에 쌓여가고 있었다. 혼자 살기 시작한 후, 밥도 잘 해 먹었고 편안했고 고양이 두 마리도 함께 하고 있었지만 엄마가 없다는 것은 단추가 없는 옷이 쌓인다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나의 귀찮음은 떨어진 단추를 바라만 보고 있었고 그것은 감정이 조각 나는 걸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도 연결되었다. 다만 그걸 인정하기 싫었고 모르는 척 하고 있었을 뿐이다.
실수로, 아니 일부러 손을 놓아버린 새 엄마의 딸. 그 손을 놓은 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그 딸을 찾아야 하는 주인공 희수의 그림자를 밟아가며 소설을 뒤 쫓지만 내 마음은 반짓고리를 파는 노인 앞에서 어느 순간 멈춰 버렸다. 단추를 단단히 꿰메 놓으면 모든 것이 돌아올 것처럼 말하는 노인의 목소리에 나는 옷장에 쌓인 단추 없는 내 옷들을 떠올렸고, 그 옷들처럼 쌓여버린 미해결 감정들이 떠올랐다.
뜨겁게 달궈 졌을 때 찬 물이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치익 하고 소리내며 거부하는 프라이팬처럼 되기 싫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뜨거워지길 거부하고 있었다. 달궈지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성가셨고, 그 시간 동안 팽팽했다 놓아지는 감정의 기복을 견디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어느 순간 드라마처럼 내 삶에 누군가 들어와 모든 것을 정리해 주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누군가에 대한 비예의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내게 발을 들이 밀었다가 나의 작은 놀람에 쑥 발을 빼는 그들을 예의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희수가 손을 놓은 순간, 그녀 역시 삶의 온기를 놓은 건지도 모르겠다. 가장 최소한의 것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였고, 나에 대한 애착감이었고, 세상과 나를 잇는 끈이었다. 그것 중 얼마만큼을 나는 포기하고 있었던 걸까. 그것이 실감 되어서 희수가 안타까웠고 멀리에서 연인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을 유란이 서글펐다.
전경린 작가의 소설들은 이렇게 때를 맞춰 내게 왔다. 오글거리는 사랑 이야기는 딱 질색이라고 말 하는 내게 그녀의 소설들은 전혀 오글거리지 않았다. 후에 생각하면 오글거리는 감정들은 적시에 적당히 포근하고 적당히 마음을 죄인다. 그걸 인정하며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과연 그동안 나는 전경린 작가의 책을 제대로 읽었던 것일까. 그것이 과연 사랑이야기이기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