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문학에 대한 나의 애정이 다시 타오른 시점에는 김연수라는 이름이 있다. 모두가 잊지 못한다는 첫사랑은 두 번째 사랑에 의해 희미해 진다지만, 나는 김연수라는 두 번째 이름에 의해 첫사랑에 더 또렷이 다가갔다. 하지만 한동안은 내가 김연수 작가의 작품들을 애정하는 건지, 김연수 작가를 애정하는 것인지 알기 어려웠다. 『우리가 보낸 순간』과 『원더보이』에 대한 아쉬움과 그렇게 아쉬움을 느끼는 것조차 배신인 것 같은 마음이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 혼란은 『지지않는다는 말』을 통해 조금 해소 되었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통해 어느정도는 정리가 되었다. 아니, 정리가 된 기분이다.

이 책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통해 나는 김연수 작가가 가지고 있는 80년대에 대한 짙은 향수를 다시 확인했다. 맥북에어로 글을 쓰고 아이폰으로 편집자들과 미팅 약속을 잡는 21세기 생활을 하면서도 그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정서는 80년대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정서가 그의 글쓰기의 뗄 수 없는 근원이라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이젠 그 이야기는 좀 그만했으면 하던 나는 작가에 대한 애정과 작품에 대한 애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와 만나는 한 인간의 시점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어야 하는 게 옳았다는 느낌이다. 이 책이 내겐 작가의 그 시선을 보게 했고, 그러니 작품에 대한 큰 이야기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제외하고 그 느낌만을 말하자면 대강 이렇다. 김연수의 작품 중 가장 애정하는 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다. 그 책은 우리의 시간은 수 많은 시간들과 이어져 있고 나는 수 많은 사람들과 이어져 있으며 그 시간과 그 관계 속엔 수 많은 사랑이 존재했고 그럼에 나는 외롭되 혼자는 아니라는 희망을 들려줬었다. 그리고 이 책을 개인적으로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2탄'으로 부르고 싶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촘촘한 인물 구조에 머리가 아프지도 않지만 이 책은 분명 그 이야기를 닮았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 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p.201

이 책에서 독자는 하나의 선을 보게 되지만, 그 손은 촘촘한 점들로 이뤄져 있고 개인의 능력껏 그 점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 바로 이 점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두 번재 이야기처럼 느끼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입양아의 뿌리 찾기'라는 다소 식상해 보일 수 있는 소재는 그 촘촘한 점들을 들여다보게끔 이끄는 작가의 노력에 의해 특별해 진다. 그 점들을 구상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향수가 가장 짙게 닿아있는 80년대와 그가 살아가는 21세기를 만나게 한다. 그 지점에 다가가는 순간 작가의 시선과 나의 시선은 마주치고, 몇 번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가의 책들을 놓치 못했던 이유는 분명해 진다.

내가 태어나서 막 세상의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하던 80년대. 그 시간은 내게 호기심과 자각의 환희만 가득하던 때이지만, 누군가에겐 격동의 그리고 아픔의 시간이었다. 나는 문학작품 속에서 그 시절을 마주할 때마다 그 시간을 온전히 이해해 보고 싶었지만 그건 내가 이룰 수 없는 바람이었다. 이뤄질 수 없는 바람 앞에서 나는 오히려 그 시간들을 외면하고 싶었고 이젠 그만 해도 될 것 같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면하고 싶지 않은, 그만 할 수 없는 고집도 있는 것이며 그 고집이 내게 타인의 시선으로 그 시간을 보게 하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그 시대가 어떻고 이 시대가 어떻든 우린 살아있기에 알아야 하며 우리가 듣는 그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 아닐지라도 시간 속에 남겨진 점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은 무언가 만들어질 것이고 만들어진 팩션 속에서 결코 우린 혼자 살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김연수라는 작가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러니 더 이상은 그에 대한 애정 혹은 작품에 대한 애정 그리고 또는 또 다시 찾아올 아쉬움에도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고 놓지 않을 것임이 확실해 지는 것이다. 여전히 김연수 작가는 내 두 번째 사랑의 이름이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김연수 작가와 시선을 마주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혼자가 아님을 깨닫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우린 외로움을 위로받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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