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장태호 지음 / 종이심장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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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리라 다짐했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짐대로라면, 난 지금쯤 낯선 하늘에서 낯익은 별을 보며 어느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난 떠나지 못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도, 추진력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핑계같지만, 이 곳에서 이뤄야 할 꿈이 손에 잡혔기 때문입니다. 그 꿈 때문에, 잠시 다짐을 미룬 것입니다.
하지만 꿈은 내 손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다시 다짐했습니다. 4년 후에 아프리카 횡단을 하리라. 그 땐, 1년 정도 마음을 비우고 떠나리라.
 
아프리카는 내게 꿈같은 땅입니다.
4년 전쯤, 영어회화를 연습하고자 학원에 등록했을 때, 난 한 백인을 만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버거',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햄버거가 아니라 하던 그의 웃음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늘 미국, 캐나다, 영국 사람만 보던 내게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신선한 땅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랐습니다. 돈을 벌고 싶어 온 건가?란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남아공에서는 목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수업시간 틈틈히 남아공을 소개했습니다. 그가 그의 나라에서 찍어온 사진들과 동영상들이 그의 노트북에서 움직일 때, 우리는 그의 마음과 함께 남아공으로 날아가 남아공을 여행했습니다. 그 때 난, 자칼도 만나고 케이프타운도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우리를 자신들의 조그만 한국 보금자리로 초대해 고슴도치의 털도 구경시켜주고, 남아공 영화도 구경시켜주고, 맛있는 피자도 대접해 주었습니다.
남아공이란 나라를 잘 알순 없었지만, 그 넉넉한 남아공 사람때문에 난 남아공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남아공에선 싼 가격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랍스터 이야기도 해 주었고, 남아공 사람들은 킹크랩은 먹을 생각도 않는 다는 이야기도 해줬습니다.
남아공. 그 때부터 남아공은 내게 꿈같은 도시였고, 남아공에 이어 아프리카 전체가 꿈의 대륙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엄마에게 어학연수를 보내달라 졸랐던 때가 있었습니다.
빠듯한 생활에 3남매를 키우시는 엄마는 버거워하는 얼굴로 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난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남아공에 가겠다고 했고, 난 또 집안의 특이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고싶던 어학연수도 그저 이젠 시들시들한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그냥 단지 난 돈이 있다면 어디든 떠날텐데 하고 막연히 동경만하는 패기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내 시간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우연히 빙산에서 놀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든 펭귄 커플이 잠든 사이 남극으로 떨어져 아프리카를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서 펭귄 가족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그 펭귄 가족은 또 펭귄 가족을 이루고, 또 펭귄 가족을 이루고, 그렇게 펭귄 가족은 늘어나고 그 속에서 태어난 펭귄 한마리가 케이프타운에서 놀다가 깜빡 잠이 든 사이, 내 시간으로 떨어졌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던 꿈의 대륙 아프리카를, 그리고 꿈의 나라 남아공을 기억시킵니다.
"언제까지 잊고 있을 셈이었어?" 거만하기 짝이없는 녀석은, 내 무릎정도의 키밖에 되지 않는 주제에 날 한껏 노려보며 악을 지릅니다.
그렇게 난 다시 꿈을 꿉니다.
 
랑가방 레스토랑에 가서, 밀가루와 소금으로만 반죽해 석쇠에 구운 맛이 일품인 빵도 뜯어먹고, 내 생애 첫 사막인 아틀란티스 샌듄도 걸어봅니다. 핫베이의 참치잡이 어부에겐 "역시 동양인이군요." 하는 웃음과 함께 참치 뱃살을 넉넉히 구입합니다. 참기름과 김이 나도 생각이 나네요. 친구들을 불러모아 브라이를 익히고, 크루거에 가 사자왕 쟈카도 만납니다. 이 녀석, 내가 그를 처음 본 몇년 전에 비해 몰라보게 늙었군요. 스피어팜에선 와인에 취해도 보고 번지브리지를 걸으며 멋진 남자와의 커플 번지를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아마, 장동건 정도로만 잘생겼다면 눈 딱 감고 그를 끌어안고 뛰어내릴 수 있을 꺼에요. 겁이 없는 난 하라레 골목길을 쏘다니고, 하라레 골목에서 만난 흑인에게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그 파란 하늘에서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기억하겠죠.
 
책을 덮기가 두렵습니다. 내 여행을 마쳐야 하는 것이니까요. 내 시간으로 들어온 펭귄을 떠나보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다시 내 꿈의 대륙인 아프리카를 그리워하게 되었으니 이 책을 만나 또 뭔가를 얻게 되었군요. 지나친 그리움일지라도,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다보면 언젠가 만나게 될 때가 있겠지요. 꿈의 대륙인 아프리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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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8-06-27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 투~^^
 
네 인생을 껴안고 춤을 춰라
쉬이밍 지음, 장연 옮김 / 고려원북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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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맛을 아는 사람이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란 틀에 맞춰 사람이 가공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나마 나의 내면과 소통하게 되는 매개체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제대로 맛을 느끼진 못하지만, 책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다행이야.'
 
올해 초, 두권의 책으로 심한 혼란에 휩싸였었다. 김형경의 <사람풍경>과 루쉰의 <아Q정전>탓이었다. <아Q정전>은 고등학교 때 만난 후 오랫만의 재회였다. 당연히 느낌이 새로울 수 밖에 없었다. <사랑풍경>을 가슴으로 만난 직후라 <아Q정전>이 더 사무치게 다가왔따. 무슨 생각을 해도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걸까란 고민이 됐고, '괜찮아, 잘 될꺼야.'란 자기 위안이 들 때면 '나 꼭 아Q 같잖아.'란 생각을 떨칠 수 없어 고개를 흔들어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자아정체성 확립의 폭풍이 잠잠해진 요즘, 이 책을 만났다.
 
자기 계발서는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읽다보면 나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자기 계발서는 대부분 실천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이론상으로 쉽게 서술하며 "봐, 쉽잖아."라고 말하듯 밥을 떠먹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자기 계발서의 홍수 속에서 혼자 밥 먹는 법을 터득하길 기다려주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런 홍수 속에서 이 책은, 서양 심리학에서 아용되는 기법에 불교와 노자사상까지 덧붙여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아주 천천히 독자가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서 밥 먹는 법을 터득하길 기다려준다.
 
나는 모든 것의 근원이다.
자아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쁜 마음을 접어두고 스스로에게 2-3일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P.46)
이 책은 우리 자신을 먼저 살펴볼 것을 권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타인을 살펴 볼 시간을 갖기는 커녕, 자신을 살펴 볼 시간 조차 없어하는 현대인에게 잠시 숨 돌릴 틈을 가져도 좋지 않겠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내 시선 안에서, 내 생활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생활의 모든 원인과 이유는 내 안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렸을 때 부터 접촉해 온 외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즉, 외부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자기 내면의 변화와 원인을 각찰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번뇌가 바로 보리
우린 어려서부터 나약함과 눈물이 좋지 않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ㄹ로 인간의 가장 자연스럽고 진실한 모습을 말살하는 일이다. 고통이 올 땐, 고통과 함께하며 그 참모습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져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런 지혜가 많은 지식보다 훨씬 나은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눈으로 바다를 보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바다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온전한 바다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의 중심을 찾고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상처와 고통, 번뇌를 직시함으로써 보리(생명의 지혜)를 꽃피운다.
 
자아 부모의 재창조
자기 존재의 중심을 갖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참 사랑이다. 자신의 모든 존재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며,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의 생명력은 굳건하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참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자기의 중심으로 돌아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면, 날 바라봐 주는 사람도 생겨나고 날 사랑하는 사람도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내 행위의 변화는 주변사람에도 영향을 준다.
 
이 책을 만나며, 자기 존재의 중심을 갖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간다. 남들은 '백수'라며 혀를 차는 지금의 내 시간이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인지 다시 한 번 기억한다. 이 시간동안 얼마나 나에 대해 많이 생각했는지, 오랫동안 꾼 꿈을 어렴풋이나마 현실로 잡아두는 힘을 갖기까지 내 바다 속에서 얼마나 허우적 댔는지, 이 시간들이 너무나 고맙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사람이란 얼마나 큰 힘을 가진 존재인지.
 
북한 핵실험이 한창 떠들석하다. 물질에서 에너지로 변환되며 방출되는 엄청난 힘이 세계를 긴장케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육신이 물질로부터 에너지를 전환할 때는 얼마나 큰 힘이 생기는지를. 그리고 그것은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음을.
 
쉽게 읽으려 한다면, 충분히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다시한 번 생각해 볼 수록, 이 책은 어려워진다. 자꾸 책을 끌어안은 채 한숨을 내쉬게 된다. 어느 때에는 내 마음을 너무 꿰뚫어보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난다. 하지만 억지로 참지 않는다. 이 눈물이 나의 온전한 바다를 찾아가는 올바른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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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네버랜드 클래식 29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김영선 옮김, 노먼 프라이스 그림 / 시공주니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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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안에서 흥겨운 노래가 들린다.

 죽은 자의 궤짝 위에 열다섯 사람

 어기여차, 그리고 럼주 한 병!

 

 노를 젓는 소리와 파도 소리, 바닷 바람 소리도 들려온다.

 그 소리들에 마음이 괜히 들떠 나도 모르게 책장으로 손이 간다. 스르륵 스르륵 책이 넘어간다.

 한살 두살 세살, 열 손가락 만으로는 꼽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라 동생의 열 손가락을 더 빌려오고도 모자른 나이가 되어서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아니, 어린 시절로 돌아갈 필요까지도 없다. 그냥 눈을 감고 지금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신나는 모험을 떠올린다. 보물섬을 찾아가는 배 속에 내가 있다.

 지금보다 훨씬 날씬한 몸으로, 훨씬 예쁜 얼굴로 질끈 동여맨 긴 머리를 바닷바람에 흩날리며 사나이 냄새가 물씬나는 선원들에게 윙크를 날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어이, 거기. 똑바로 하라고! 바람이 세. 키는 단단히 잡고 있는거야?"

 

 때론, 위험하다.

 바닷바람은 가끔 거센 파도를 일으켜 내가 탄 배를 잡아삼킬 듯 넘실거리고, 그 바람에 배는 한 바탕 진통을 겪어 배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얼굴을 노랗게 질리게 만들어논다.

 작은 세상같은 배는 망망대해 위에서 시기와 질투 모함을 만들어 내 서로 다치게도 하고 자신도 상처를 입는다.

 

 그러다 보물섬을 발견한다.

 여전히 날씬하고 예쁘고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맨 난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소리친다.

 "섬이 보인다."

 섬에 배를 대고, 섬을 모험하기 시작한다. 예전 해적들이 섬에 버리고 간 한 남자도 발견하고, 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뗏목과 재어놓은 염소고기로 허기를 해결하기도 한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해적새 삼년에 욕을 읊는 앵무새도 함께이다.

 보물을 찾기 위해, 많은 피를 봐야하고 많은 죽음을 봐야하고 때론 나도 피를 흘리고 죽음의 문턱에 살짝 다녀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기도 하지만 신난다. 모험이란.

 

 책을 읽는 내내, 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떠다녔다.

 바다를 떠다니고, 사과 궤짝에 숨어 선원들의 모함을 밝혀내고, 섬을 모험하며 죽을 고비도 넘기고 용감하게 나 홀로 모험을 한다. 난 어리지 않으니까.

 보물을 찾았고 난 부자가 되었다.

 부자가 되지 않았더래도, 그리고 다시 보물지도를 발견한대도 피 비릿내 진했던 그런 여행을 다시 하고 싶진 않지만 이건 확실하다.

 모험은 신나고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훌쩍 커버려 읽는 보물섬은, 꼬맹이였던 시절 그래서 정말 바다에 나가면 해적이 득실거릴 것 같아 바다를 동경했던 그 시절 읽은 보물섬보다 더 흥미롭고 더 신이 난다.

 이젠 더 이상, 바다엔 해적이 득실거리지 않고 보물지도라는 것도 없으며 그 보물을 찾기 위해선 모험이 아닌 돈으로 탐사선을 장만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참, 이 네버랜드 클래식은 모으고 싶은 책 중 하나여서 한권한권 모으려 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완역에 충실하려 한 노력이 돋보이며, 책도 너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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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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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비전에서 며칠이 멀다하고 아동 성폭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런 인간들은..."
 성폭행 범인들을 관리하는 방법에 관한 논의가 계속된다. 사진과 실명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치 않다는 사람들도 있고, 범인도 인격이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다들 쯧쯧쯧 하지만, 외면한다.
 속 타는 것은 텔레비전 속의 가해 어린이들의 부모님들 뿐이다.
 쯧쯧쯧 혀를 차며, 설마 우리 아이에게 저런 일이 생기겠어?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본다. 만약 우리 아이에게도 저런 일이 생긴다면...
 
 <너도 하늘말나리야>라는 이금이씨의 또 다른 책에서도 그랬듯, 이 책도 부각되고 있는 사회 문제를 이야기 하며 함께 해결책을 모색한다.
 국가차원에서의 해결이 아닌, 가까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이름 뿐만 아니라 성까지 같은 두명의 유진이가 똑같은 어린이집에서 겪은 똑같은 사건. 원장이 아이들과 행한 비밀놀이.
 이름도, 성도, 다닌 유치원도, 겪은 사건도 똑같은 유진이지만 그 일 이후의 이야기들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한 명씩 그 이야기를 해 준다.
 
 사건을 온전히 겪어내고, 온 가족이 마음으로 함께 울어주고 이겨내 준 유진이.
 어느 새 사건을 잊어버렸지만, 사실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을 수 밖에 없었던 유진이.
 
 중학교 어느 날, 두 유진이 다시 우연처럼 한 반이 되며 그 사건을 잊어버렸던 유진이는 조금씩 기억을 되찾으며 갈등을 겪는다.
 한번의 아픔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일들이 또 다시 다른 아픔과 함께 마음을 할키어 댄다.
 
 아직,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는 방법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앞에 어느 날 갑자기 크게 던져진 것같은 세상 속에서 당황하고 흔들린다.
 그저 아이들의 선택을 믿어주고, 그 선택이 어긋났을 때 함께 슬퍼해주는 부모가 될 것인가, 선택같은 것은 주지 않은 채 정해놓은 길로만 걸어가게 하는 부모가 될 것인가.
 모두 전자의 선택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에 관한 욕심 때문에 점점 후자의 상황으로 빠져간다. 전자의 선택이 좋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할까, 단지 욕심 때문에 방향이 틀어지는 것 뿐.
 하지만, 그것은 아이를 위한 선택이 아닌 부모의 욕심일 뿐이다.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가 원한 것이 아니라면 부모를 위한 길이 되어버린다.
  
 결국 해결책은 서로 보듬어 주는 것이다.
 상처엔 연고를 발라주고, 반창고로 꼭꼭 상처를 싸매어 덧나지 않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호호 입김을 불어주며 어루만져 주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어쩌면,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연고도, 반창고도 아닌 어루만져 주는 입김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상처를 똑바로 바라보며, 어루만져 주는 입김 속에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은 그렇게 타인의 상처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난 학교에 맞지 않는 아이였다. 한 번도 학교가 좋았던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하지만 학교가 싫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견뎌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내 아이는, 그 아이가 원한다면 대안학교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 때가 온다면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아직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 꼭 만나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부모가 될 사람들이 꼭 만나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을 위한 성장동화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실 청소년과 청소년이 될 아이를 갖고 있는 부모들, 그리고 앞으로 부모가 될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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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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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제목을 다시 들여다 봤다.
 분명히 청소년 성장 동화라고 들었는데, 이 책 제목이 너무 슬프다. 어느 날 내가 죽었다니.
 책 표지에 있는 파란 수첩, 왠지 이 책도 저 수첩도 슬플 것만 같다. 책을 펴기가 살짝 두려워진다.
 책을 펴는 기분보다는, 책 표지에 그려있는 파란 수첩을 펴는 기분이 든다. 아이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기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요즘 애들 정말 이래? 갑자기 중학교 1학년인 동생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해서 나쁜 일은 어른이 해서도 나쁜 일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단지 "어린 것이..." 라는 그 네 글자의 말로 어느새 아이들이 해서는 안되는 일과 어른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분해 놓았나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 시절, 나 역시도 "어려서"란 말을 듣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며, 나도 똑같을 뿐이에요. 나도 당신들처럼 똑같이 고민하고 심각한거라구요. 라고 생각했었다.

 

 재준이가 죽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그리고 어느 날, 재준이의 어머니께서 내게 전달해 주신 크리스마스 날 내가 선물했던 파란 일기장을 건네신다.

 네가 읽어보고 이야기 해 달라고...

 

 중학생의 이야기지만, 친구는 동성의 친구가 아니다.

 이성의 친구이지만,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고 생각해 주는 것은 동성친구보다 더 애틋하다. 사랑은 아니지만, 사랑보다 더 진한 우정이다.

 

 내가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이유는, 이제 갖 사춘기를 넘긴 아이들이 겪는 고민과 사랑, 우정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매우 사실적이다.

 담배를 피고, 오토바이를 타고, 야한 속옷을 선물하고, 이성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을 갖고.

 그 시절 나도 경험했을 호기심이 막상 나이를 먹어 '어른'이라는 허울좋은 껍질을 갖게 된 지금은 어린 아이들의 철없는 방황같이 보였던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아이들의 담백한 이야기일 뿐이데도...

 

 가장 친한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다 알지 못했던 속마음을 친구가 죽고나서야 친구의 일기를 통해 하나하나 알아가며, 좀 더 자라는 것이다.

 아마, 주인공인 유미는 좀 더 시간을 흘러보내면서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파일럿피쉬가 재준이었다는 것을... 자신이 더 멀리 볼 수 있는 현실을 만들어 주기 위해 재준이가 그렇게 사라진 것이라는 걸.

 재준이의 일기장을 덮으며, 유미가 절대로 재준이를 잊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은 너무 슬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사건이지만 자신을 자라게 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갑자기 중학교 때, 스스로 세상과 인사를 했던 한 아이가 생각이 난다.

 알게 된지 얼마되지 않았었지만, 늘 밝은 인상이 참 귀여웠던 아이. 그런 어두운 면을 갖고있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던 아이.

 그 아이가 스스로 세상과 인사를 했다고 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친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 아이가 생각이 나며 눈물이 쏟아졌다.

 

 누구나 그렇게 성장통을 겪는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자신이 겪었던 그런 성장통을 어느새 잊게 된다.

 나도 그렇게 아팠었고, 나도 그렇게 슬펐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라났다. 그 슬픔을 보듬아 주는 또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부딪히고 위안 받으며...

 

 동생의 시선으로 다시 한 번 이 책을 생각해 봤다.

 중 1인 동생은 같은 또래의 시선에서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지금을 조금은 괜찮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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