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역사지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걷기여행 특강 1
이현군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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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년만에 돌아 온 한국은 변하지 않은 듯 많이 변해 있었다. 익숙한 것들이 사라져 있었고 새로운 것들이 도입되어 있었다. 가장 당황했던 것들은 지하철 역에 있었다. 기존에 쓰던 카드를 잊어버려 티켓을 사려 했더니 보증금을 내야 했다. 일년 내의 사소한 변화들이 날 낯설게 만들었다.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종로로 종로에서 인사동길을 따라 삼청동으로 그리고 광화문과 시청을 걸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보수하기 위해 혹은 신설하기 위해 공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또 일년 후엔 어떤 모습이 될까, 사뭇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최근에만 실시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꾸준히 조금씩 진행해 온 변화가 지금의 서울을 만들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지명 속에 그 역사는 숨쉬고 있었고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길 옆에 지난 시간들이 아직도 그 때 그 시간을 보존하고 있었다.

 

     대학 때 처음으로 서울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많이 걸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멀어보이는 거리도 밤바람이 좋아 걸었었고 그 때 날 짓누르던 상념을 떨치기 위해 걸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때가 떠올랐다. 그 때 조금만 더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걸었다면 지금 난 서울을 조금 더 알게 되었을텐데. 하지만 서울에서 태어 나 서울에서 자란 사람도 서울을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을 그 때 깨달았었다. 이곳저곳을 걸어다녔다고 하면 거기가 거기와 연결되어 있냐고, 그곳이 거기에 있었냐고 묻는 때가 왕왕 있었다. 그들은 서울 토박이였고 난 서울에 막 적응하기 시작한 이방인이었다. 걷는 즐거움은 아마 그 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난 이 책과 지도를 들고 다시 서울을 걷고 싶다.

     이 책은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서울 곳곳에 있는 역사적 흔적을 말해준다.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것들, 어디있는지 몰랐던 것들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주며 책에 나온 루트를 따라 걷고 싶게 한다. 그리고 잘못 알고 있던 사실들, 혹은 잘못 되어 있는 현실들에 대해 자각하도록 도와준다. 서울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올바르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책이다.

 

     그동안 서울을 오해하고 있었다. 옛 것을 헐어내고 새로운 것들로만 중무장 하고 있는 다소 삭막한 곳이 내 인식 속의 우리 수도였다. 유럽의 도시들을 걸으며 그들이 보존하려 애쓰는 옛 시간들을 얼마나 감탄했던가. 하지만 그것은 내 잘못된 사고였음을 이 책은 가르쳐 준다. 서울은 축적된 시간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였다.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은 내가 보이는 것을 외면했었고 볼 수 있었던 것을 보지 않았던 탓이었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시야를 넓혔다면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시간들. 저자의 말처럼 그 시간들은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잘못된 재현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조선시대 이후로 우리의 수도였던 곳, 그곳이 다시 보인다. 이제 난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낸 서울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조만간 그 곳을 걸으며 보지 못했던 시간들에게 자부심 가득한 눈길을 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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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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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누구나 꿈꾸는 일탈.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은 올해 봄이었다. 늘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으면서도 오롯이 혼자 있는 것에 대해선 남 모를 두려움이 존재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임이 좋다, 혼자 걷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도 여행길에 늘 누군가를 함께 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그러다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그 어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완전히 낯선 곳에서 난 여행에 대해, 그리고 내 연약함을 알았다. 처음으로 '진짜' 여행을 했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 진짜 여행은 내겐 너무나 고되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몇달이 지난 지금, 그 시간이 그립다.

 

     최영미 시인의 글을 좋아했다. 특히 그녀의 미술에 대한 애정과 지식은 나를 미술관으로 이끄는 힘이 있었다. <시대의 우울>이나 <화가의 우연한 시선>을 읽으며 미술에 대한 내 관심은 나날이 깊어졌고 여행지에서 미술관은 필수 코스로 자리잡았다. 시인에겐 미안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시 보다 그녀의 미술 이야기에 내 감각은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그녀가 쓴 여행기가 기대가 되었으며 제목 앞에 내 여행을 떠올리며 설렜었다.

     하지만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라는 제목 탓인가, 이 책은 길을 잃은 것마냥 보였다. '여행'에 대해 말을 하려 하는 것인지, '미술'에 대해 말을 하려 하는 것인지, '글'에 대해 말을 하려 하는 것인지. 난 하나의 목적지조차 정확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의 글은 좋았고 그녀의 글 속에 녹아있는 그녀만의 경험은 소중한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것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은 아직 '젊어서' 그리고 천성적으로 그녀보다 더 '겁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내 나이와 그녀의 나이 사이의 간격 탓일까. 아니면 지나쳤던 내 기대 탓일까.

 

     수많은 여행기가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때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몸부림을 치면서도 그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그래서 난 사물에 대한 특별한 시선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은 작가들의 여행기에 기대를 한다. 그들은 자신이 떠난 길 속에서 자신이 만난 풍경, 사람, 문화들에 넋을 잃고 우리도 넋을 잃게 만든다. 그들이 떼 놓은 발자국 하나하나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최영미 시인의 이번 책은 최근에 간 여행부터, 오래 전 여행까지를 아우르고 있고 그 순서도 여정도 일정한 틀이 없다. 제목처럼 진짜 여행을 보여주려 했던 의도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그 어느 여행에도 완전히 참여할 수가 없었고 후반부에는 여행보다는 그림 쪽으로 시선이 옮겨가며 그녀가 냈던 미술기에서 이미 만난 것 같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전반적으로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물론 여행이라는 것은 일정한 룰이 없다. 내가 세웠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지도 않다. 몇 번이고 그 계획이 엉망으로 돌아가며 진짜 여행을 배우고 일상에서 강한 모습으로 무장하고 있던 내가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래도 이야기를 따라가며 떠나는 여행은 조금 단정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실제로 밟지 못했던 길, 혹은 내가 밟았던 길을 글로 만나는 즐거움은 여행의 그런 고됨이 담겨있어도 나를 완전히 책 속에 파묻히게 할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겐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어떤 책이든 내게 가르치는 바는 있다. 난 이 책 속에서 그 모든 여행은 책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내 스스로 내 발로 걸어야 함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렇다면 이런 여행기를 읽으며 온 실망은 어쩌면 내가 조금 자랐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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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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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모른다. 나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나와도 다른 환경에서 자랐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한 쪽 마음이 따뜻해지며 짠해져 오는 것, 이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던가. 그러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가지고 있는 그의 그림 속에 담긴 그를 키운 시간이 담겨있는 것을. 언젠가 누군가 넌 왜 책을 좋아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리고 언젠가 난 왜 이렇게 자라게 된 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의 끝엔 내게 책을 사주던 아버지, 내게 책을 읽어주던 고모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과거를 통해 현재를 갖게 되는 걸까.

 

     우리들의 현재 모습엔 우리가 보내온 시간들이 축적되어 있다. 도시에서 자란 이들은 자연스레 도시적인 생활습관이 몸에 밴채 지금도 그렇게 살아오고 있지만 어린 시절을 그런 문명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보낸 이들은 도시화 속에서 그 모습이 조금은 뭉개져 버렸다. 작가는 그들에게 대한민국 원주민이라는 이름을 붙혔다. 하지만 이들이 결코 남루하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강단있게 자신의 시대를 버텼고 일으켜 세워 지금 대한민국 중산층을 버티는 힘이 되었다. 나는, 그리고 작가도, 그들이 자랑스럽다.

     작가의 자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들어나는 이 책 속엔 그 시절의 가난함, 치열함, 고단함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결코 초라하지 않다. 현재의 기억 속에서 오히려 그들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누구보다도 뚜렷한 역사를 가진 하나하나의 개인이다. 작가는 그들을 끔찍히 사랑하고, 그럴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책 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도시에서 자랐지만, 한달에 두번이상은 시골의 조부모님을 방문하며 자란 나는 그런 장소가 있는 나의 가족에 유난히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도시에서만 자란 친구들이 차마 다 알 수 없는 그런 뿌리가 내게 있다는 느낌은 아버지가 심어준 나의 힘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시골은 가난하지 않았다. 예스러운 모습은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용돈을 쥐어주는 조부모님, 그리고 도시에서 맛보지 못하는 여러 경험들을 즐길 수 있는 곳. 내겐 그런 곳이다. 그래서 내겐 그들이 원주민이라는 느낌은 없는 것일까? 하지만 어떤가. 내겐 그것이 나의 축적된 시간이고 그 시간들은 분명 내 안에서 빛나고 있을 것이다.

     작가를 통해 작가가 축적해 온 시간들을 탐험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책과 함께 내가 그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리얼리스트, 이 말은 이 작가에게 적합한 수식어이다. 대한민국을 꼼꼼하게 그려냈던 그가 다시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서 난 내겐 낯설은 책 속 작가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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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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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굽는 냄새가 공기를 타고 코 끝을 간지럽히면 그 냄새는 자연스레 눈 까지 잡고 냄새의 근원을 찾게 만든다. 어느 한 쪽에선 달콤하고도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을 때, 또 어느 한 쪽에선 그 냄새조차 피해 갈 어리석고 잘못 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모두들 행복하고 웃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지만 이 역시 음과 양의 조화인 듯 한 쪽이 웃을 때 어딘가에선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이고, 그것이 인간의 삶인지라 우린 그 굴곡의 시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그 시간을 빠져나올 수 있다면. 누구든 그 유혹을 거부하겠는가.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득과 실이 있는 법이라 그 유혹의 끝엔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희생이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세상은 그저 좋은 대로만 살 수는 없는 균형의 공간이기에.

 

     그래도 힘을 내라,고 말해주는 곳이 있다. 책 한권 속에 살며시 자리 잡고 맛있는 빵을 구워내고 있는 위저드 베이커리가 그 곳이다. 빵집을 찾는 이들은 단순히 빵만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내면에서 속삭이고 있는 유혹들, 하지만 인간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 유혹들을 마법의 힘으로 현실로 끌어내고자 한다. 그렇다고 제빵사가 흑마술을 쓴다고 보면 곤란하다. 그는 늘 자신의 마법이 첨가 된 빵을 구매하는 사람들한테 말한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니,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그리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자신이 짊어져야만 한다고.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그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으로 생긴 결과에 또 다른 마법을 기대한다. 하지만 기적이란 한 번 오는 것도 꿈 같은 것이라 다시 요령을 바랄 때 그것은 불가능하다. 제빵사는 그것을 말한다. 인간사에는 얻는만큼 희생되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라고. 책 속 화자 나는 그런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아픈 기억과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 받는다. 그의 마법이 아니라 누군가는 나를 위로해 주고 믿어준다는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사실 그런 것 아닐까? 세상에는 마법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자신이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가 필요한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 쉬운 것들을 우린 어쩌면 이렇게 갈구하며 사는 것일까.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지만 읽는 내내 따스함과 뭉클함이 존재 한다. 유년기의 큰 상처는 엄마의 자살에서 온 것이 아니라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데에서 온 것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큰 것임을 짐작할 수 있기에 나도 함께 그의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마법의 환타지와 함께 사람에게 힘을 주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가득했다.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며 그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말들이 포춘쿠키 안의 메시지처럼 책을 읽는 내내 반짝 거렸다.

     이 책을 영화화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찰리와 초콜릿공장같이 멋진 영화가 탄생할 것 같은데. 그런 영상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맛이 깊은 책이었다. 읽는 내내 빵이 구워지는 냄새가 코 끝을 간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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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와 산다 - 제3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최민경 지음 / 현문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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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성장소설이 강세를 타고 있다. 그런 흐름을 타고 나도 성장소설에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조금 시들시들 해진 것은 그 장르의 책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멘토의 역할을 하는 누군가를 만나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과정, 아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이 누군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고 그 동안 이 아이가 과연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난 적이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누군가는 드라마틱하게 아이를 바꾸어 놓는다. 이 구조들이 식상해지고 있는 찰나, 이 책은 정말 신선한 소재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 때 <리버보이>라는 소설이 유명세를 치렀지만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물론 그 책도 하나의 멘토가 등장하여 아이의 사고를 바꿔놓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한 소녀가 꿈 같은 경험을 하며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었지만 그 경험과 우연성이 너무나 몽환적으로만 그려져서 감동보다는 하나의 판타지를 본 느낌이 강했었다. 그리고 이 책, <나는 할머니와 산다> 역시 은재라는 한 소녀가 할머니의 영혼과 마주하게 된다는 데에서는 현실적인 대처 방법에선 조금 벗어나지만 그 외에 독자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지극히 현실적이었으며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한다는 데에서 훌륭한 흡입력과 재미를 제공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느 순간 할머니 유령을 보게 되고 그 후 할머니의 습성을 따라 하게 되며 낯선 감정을 느끼지만 할머니가 무언가 할 말이 남아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할머니를 받아들이며 할머니가 남긴 한을 풀게 되는 은재는 결국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깊은 응어리도 풀어내게 된다. 할머니가 남긴 한은 바로 고모, 고모는 입양 1세대로 해외에 입양을 가게 되었고 은재는 두려움을 가진 채 공개입양 되어 부모의 사랑으로 가정 안에 들어 온 아이였다. 하지만 입양아라는 것을 인정을 해도 사춘기 소녀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친부모에 대한 궁금증과 양부모이기 때문에 내게 이럴 수 있다라는 이유 모를 반항심은 있을 수 밖에. 이것을 푸는 열쇠는 은재가 가지고 있었고 단지 할머니는 은재가 그것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뿐이다.

 

     성장 소설 중에는 이름이 무색하게 내용은 청소년의 문제를 다루되 화자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어른인 듯한 인상을 풍기는 것이 없지 않았다. 가끔은 그런 화법이 청소년 소설을 읽는 독자가 길을 잃게 만들고, 과연 이것이 성인이 아닌 청소년에게 얼마나 많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게도 했다. 하지만 이 작가는 심사 평에도 들어나 있듯 너무나 자연스레 16세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 은재가 할머니와 살 때 그랬던 것처럼 작가의 몸 속에도 은재가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나이, 사춘기라는 열병을 겪으며 누구나 겪을 정체성 문제가 입양아라는 특수한 환경을 만나 더 또렷이 드러난다. 재미, 감동, 교훈까지 삼박자를 모두 갖춘 훌륭한 성장소설을 만난 기분, 오랜만에 느끼는 만족스러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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