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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난 모른다. 나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나와도 다른 환경에서 자랐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한 쪽 마음이 따뜻해지며 짠해져 오는 것, 이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던가. 그러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가지고 있는 그의 그림 속에 담긴 그를 키운 시간이 담겨있는 것을. 언젠가 누군가 넌 왜 책을 좋아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리고 언젠가 난 왜 이렇게 자라게 된 걸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생각의 끝엔 내게 책을 사주던 아버지, 내게 책을 읽어주던 고모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과거를 통해 현재를 갖게 되는 걸까.
우리들의 현재 모습엔 우리가 보내온 시간들이 축적되어 있다. 도시에서 자란 이들은 자연스레 도시적인 생활습관이 몸에 밴채 지금도 그렇게 살아오고 있지만 어린 시절을 그런 문명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보낸 이들은 도시화 속에서 그 모습이 조금은 뭉개져 버렸다. 작가는 그들에게 대한민국 원주민이라는 이름을 붙혔다. 하지만 이들이 결코 남루하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강단있게 자신의 시대를 버텼고 일으켜 세워 지금 대한민국 중산층을 버티는 힘이 되었다. 나는, 그리고 작가도, 그들이 자랑스럽다.
작가의 자전적인 면모가 고스란히 들어나는 이 책 속엔 그 시절의 가난함, 치열함, 고단함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결코 초라하지 않다. 현재의 기억 속에서 오히려 그들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누구보다도 뚜렷한 역사를 가진 하나하나의 개인이다. 작가는 그들을 끔찍히 사랑하고, 그럴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책 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도시에서 자랐지만, 한달에 두번이상은 시골의 조부모님을 방문하며 자란 나는 그런 장소가 있는 나의 가족에 유난히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도시에서만 자란 친구들이 차마 다 알 수 없는 그런 뿌리가 내게 있다는 느낌은 아버지가 심어준 나의 힘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시골은 가난하지 않았다. 예스러운 모습은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용돈을 쥐어주는 조부모님, 그리고 도시에서 맛보지 못하는 여러 경험들을 즐길 수 있는 곳. 내겐 그런 곳이다. 그래서 내겐 그들이 원주민이라는 느낌은 없는 것일까? 하지만 어떤가. 내겐 그것이 나의 축적된 시간이고 그 시간들은 분명 내 안에서 빛나고 있을 것이다.
작가를 통해 작가가 축적해 온 시간들을 탐험해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책과 함께 내가 그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리얼리스트, 이 말은 이 작가에게 적합한 수식어이다. 대한민국을 꼼꼼하게 그려냈던 그가 다시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서 난 내겐 낯설은 책 속 작가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