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만에 돌아 온 한국은 변하지 않은 듯 많이 변해 있었다. 익숙한 것들이 사라져 있었고 새로운 것들이 도입되어 있었다. 가장 당황했던 것들은 지하철 역에 있었다. 기존에 쓰던 카드를 잊어버려 티켓을 사려 했더니 보증금을 내야 했다. 일년 내의 사소한 변화들이 날 낯설게 만들었다.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종로로 종로에서 인사동길을 따라 삼청동으로 그리고 광화문과 시청을 걸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보수하기 위해 혹은 신설하기 위해 공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또 일년 후엔 어떤 모습이 될까, 사뭇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최근에만 실시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꾸준히 조금씩 진행해 온 변화가 지금의 서울을 만들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지명 속에 그 역사는 숨쉬고 있었고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길 옆에 지난 시간들이 아직도 그 때 그 시간을 보존하고 있었다.
대학 때 처음으로 서울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많이 걸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멀어보이는 거리도 밤바람이 좋아 걸었었고 그 때 날 짓누르던 상념을 떨치기 위해 걸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때가 떠올랐다. 그 때 조금만 더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걸었다면 지금 난 서울을 조금 더 알게 되었을텐데. 하지만 서울에서 태어 나 서울에서 자란 사람도 서울을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을 그 때 깨달았었다. 이곳저곳을 걸어다녔다고 하면 거기가 거기와 연결되어 있냐고, 그곳이 거기에 있었냐고 묻는 때가 왕왕 있었다. 그들은 서울 토박이였고 난 서울에 막 적응하기 시작한 이방인이었다. 걷는 즐거움은 아마 그 때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난 이 책과 지도를 들고 다시 서울을 걷고 싶다.
이 책은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서울 곳곳에 있는 역사적 흔적을 말해준다.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나쳤던 것들, 어디있는지 몰랐던 것들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 주며 책에 나온 루트를 따라 걷고 싶게 한다. 그리고 잘못 알고 있던 사실들, 혹은 잘못 되어 있는 현실들에 대해 자각하도록 도와준다. 서울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올바르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책이다.
그동안 서울을 오해하고 있었다. 옛 것을 헐어내고 새로운 것들로만 중무장 하고 있는 다소 삭막한 곳이 내 인식 속의 우리 수도였다. 유럽의 도시들을 걸으며 그들이 보존하려 애쓰는 옛 시간들을 얼마나 감탄했던가. 하지만 그것은 내 잘못된 사고였음을 이 책은 가르쳐 준다. 서울은 축적된 시간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였다.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은 내가 보이는 것을 외면했었고 볼 수 있었던 것을 보지 않았던 탓이었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시야를 넓혔다면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시간들. 저자의 말처럼 그 시간들은 오류를 범하기도 하고 잘못된 재현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를 죽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조선시대 이후로 우리의 수도였던 곳, 그곳이 다시 보인다. 이제 난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낸 서울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조만간 그 곳을 걸으며 보지 못했던 시간들에게 자부심 가득한 눈길을 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