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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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언니의 부탁으로 도서관에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을 찾았다. 사람들의 손 떼는 전혀 묻지 않은 채, 햇빛을 받으며 책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빨간 책을 한장 한장 넘겼을 때, 숨이 멎었다. 내 시선이 마치 그가 들고 있는 사진기의 뷰포인트를 통해 그 장면을 보고 있는 듯 했다. 사진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감상을 그 때 알았다. 또 다시 도서관에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흑백 사진을 표지로 가진 한 책을 보았다. 그리고 책장은 넘어가고 또 다시 숨이 멎었다. 로버트 카버의 전쟁 사진들, 참혹했지만 아름다웠다. 목숨마저 위태한 그 순간을 무릅쓰고 떨리는 손으로 눌렀을 셔터, 그리고 그 셔터가 담아낸 순간들. 사진집과 나는 그렇게 만났었다. 조세현 작가의 사진에 대해서는 연예인들의 사진으로 더 알고 있었다.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가장 잘 포착하는 작가, 그가 말하는 얼굴이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사람을 보고 기억하는 데 유난히 짧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나와 아름다운 얼굴을 담아내는 그가 바라보는 사람은 다를 듯 싶었다. 그렇게 또 다시 노란 사진 책이 한 장 넘어갔다.

     그는 말한다. '사람을 찍고 있노라면 나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내 카메라 앞에서 그들의 아름다움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꽃처럼 피어나는 순간, 그들이 짓는 표정과 눈빛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삶마저도 고스란히 내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그런 순간. 그럴 때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따뜻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p.29) 그가 말하는 그런 순간들이 책 속에 녹아 있다. 최첨단을 걷는 세련된 공간에서 사는 이들은 아니지만, 부유한 이들은 아니지만 그래서일까 그가 찍은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거나 평화로워 보인다. 세월의 풍파를 모두 겪은 듯한 주름살을 가지고 있는 할머니도 그 안에서 배운 것은 삶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말하듯 평화로워 보인다. 조세현 작가가 본 그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사진집을 읽는 것은 소설책을 읽거나 그림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하나의 독립 된 이야기, 혹은 캔버스 위에 쏟아진 색의 향연과는 다르게 사진기가 포착한 그 순간이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하고 그 속으로 사람을 빨아들인다. 중국 시안, 중국은 참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곳이다. 높은 빌딩이 줄을 잇다가도 어느 순간 우리의 80년대에도 보지 못했을 더 이전의 시간을 가진 골목이 나온다. 시안이라는 곳엔 가보지 못했지만 그 곳엔 우리가 경험한 아주 이전의 시간이 숨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이들은 그런 시간과 현대를 넘나들고 있는 사람들이리라. 사진집을 보며 그들의 삶을 상상해 본다. 한 명 한 명, 그들의 얼굴과 마주하고 인사를 건낸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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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에 책이 있다 - 사물, 여행, 예술의 경계를 거니는 산문
안치운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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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일기를 쓸 때도 머뭇거린다. 조금 더 멋진 표현이 없을까, 조금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없을까, 이렇게 고민을 하다보면 한 줄도 쓰기가 어려워진다. 어렸을 적엔 그렇게 쓱쓱 잘도 써 내려가던 하루 생활 기록이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생각나는 대로 쓰자라는 심정으로 쓰게 되면 이게 웃자고 쓴 것인지 뭘 생각하고 쓰긴 한건지 알 수 없는 글장난이 펼쳐져 버린다. 과연 무엇이 좋은 글일까. 아마 이 물음은 평생을 나를 따라다닐 것만 같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내게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하게 알게 해 주었다.

     연극 평론가인 저자 안치운은 이 책을 살며, 여행하며, 공부하고로 분류했다. 그리고 그 속에다 그의 사는 이야기, 그가 좋아하는 여행 이야기, 그리고 그의 운명과도 같은 공부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그의 삶 속에 녹아있는 소소한 행복들이 나의 것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자전거로 길을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 그리고 달리며 생각했던 우리네의 문제점들. 여행을 하며 느낀 것들 그리고 책의 운명에 관해서까지. 몇 문장을 손으로 짚어가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 내가 가장 공감했던 문장을 옮겨본다.

 

     편하기만 했던 여행은 금세 잊히기 마련인 것 같다. 여행은 불편함으로 자신이 와해되어야,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야 자신 속으로 깊게 회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오늘의 시련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후에 꾸는 꿈은 매혹이 된다. (p.100)

     사람이 그리워 우는 울음은 고독한 이들의 절규와 같다. 운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 울음은 듣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고 닦아주어야 하는 것. (p.182)

     모든 책은 출간된 그 순간부터 헌책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책은 시간과 싸우면서 헌책이 되고, 시간을 켜켜이 받아들여 늙어갈 때 책으로서 최고의 위엄을 지닌 고서가 된다. (p.220)

    

     처음에 이 책을 들었을 때는 연극 평론가의 어렵고 따분한 이론 이야기가 아닐지 걱정을 했다. 흔히 산문집이라는 형태의 책을 마주하다보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저자의 전공분야와 섞여 이해하기 난해한 문장들의 집합체로 변질되어 있는 때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말할 때조차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자신의 감상을 담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좋은 글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솔직 담백한 글 맛, 그것이 줄 수 있는 깊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 제목처럼 이 책은 마치 시냇물에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써 내려간 문장은 맑고 조용했지만 시냇물이 바다로 가면 그 끝을 알 수 없게 되듯 그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힘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강해 보였다. 그런 강함을 책을 읽는 행위 만으로도 내가 어느정도 배울 수 있을 듯했다. 글을 읽으며 일상을 적어내려간다는 것이 내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더 나은 표현들을 더 수려한 문장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그 일을 어려운 것으로 만든 것이었을 것이다. 이젠 조금 더 담담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내 일상을 정리 해 보려 한다.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작은 물을 이루고 또 그것들이 쌓여 하나의 큰 물이 될 수 있도록. 이 책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잔잔하게 독자의 마음을 씻어주며 읽는 행위를 통해 쓰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해보고 또 다시 매혹당하게 해 주는 듯 하다. 좋은 글을 만난 기분, 책을 읽는 내내 그 기분에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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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피쉬
해이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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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첫 소설집, <캥거루가 있는 사막>을 읽을 때였다. 난 그 때 작가가 자신을 벗어나서 글을 쓸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A라는 작가가 있다. A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며 손 끝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자라났다. 원하는 것은 뭐든 가질 수 있었지만 단 하나, 다른 집 같은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은 받지 못했다. 이기주의, 안하무인 탓에 친구를 사귈 수 없던 A는 돈으로 사람들을 옆에 두려하나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고 어느 날 '책'이란 것에 탐닉하게 된다. 워낙에 돈이 많던 A는 하루 중 눈 떠 읽는 시간 모두를 세상의 모든 책을 읽기 위해 애쓰고 어느 날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신 자신이 이 세상의 모든 책같은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그리고 그 책 속에는 가난한 자들의 삶도 포함되어 있어야 했고 A는 자신이 책으로 경험한 '가난'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써 내려간다, 라고 했을 때 A가 쓴 이 '가난'이 A의 자라온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 진짜 '가난'을 묘사할 수는 없는가? 뭐 이런 쓸 데 없는 생각들이었다. 그 때, 난 해이수의 첫 소설집을 읽었고 제목부터 '호주'를 떠올렸고 작가의 프로필에서 '호주'를 봤고 책을 통해 '호주'를 여행했다. 그러고 나니 새삼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그 책의 리뷰에 이렇게 썼다. 소설 속 배경이 모두 '호주'인 것이 아쉽고 작가가 더 많은 배경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 바람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의 대답이 그게 아니었는데, 하는 아쉬움과 작가가 첫 단편집에서 독자에게 확신시켜 준 '좋은 작가를 만났다'는 확신에서 온 것일 수도 있었고 그 당시 현실을 도피해 이방인이 되고 싶던 내 마음을 담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내 바람처럼 작가는 두번째 단편집에서 더 넓은 세상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세상은 첫번째 단편집에서 내가 확신한 또 하나의 기대되는 작가라는 느낌에 확신을 주기 충분할만큼 멋졌다.

 

     에베레스트, 케냐, 호주, 가상공간. 이 책에서 독자는 세계여행을 하게 된다. 한글로 된 책으로 시작한 여행은 아시아 대륙을 지나 아프리카로, 그리고 잠시 휴식-가상 공간으로, 마지막 종착지는 작가의 첫단편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오스트리아 대륙으로 이어진다. 어떤 이는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그 곳을 향하고 어떤 이는 그 곳에서 그 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벗어나고 싶어 하는' 행위 뒤에는 현실에 대한 '불안'이 있다. 첫번째 단편<고산병 입문>에서는 가난한 남편으로의 지위에 대한 불안, <루클라 공항>에서는 돌아갈 곳이 있는 여행자로의 지위에 대한 불안, <아웃 오브 룸비니>에서는 할육무합 해야 하는 작가와 여행자로서의 지위에 대한 불안 등. 이 들의 떠나고 돌아가는 행위 뒤에는 지위에 대한 불안이 있다. 그렇다면 이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그 원인을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불안의 이면엔 분명 이 원인들이 자리잡고 있을 터. 나는 그들에게 이것을 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떠난 뒤의 시간에 대한 불안은 없었는지. 하지만 난 이미 이 대답을 알고 있다. 어디론가 떠날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떠남 후에 올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과정들에 대해 알고 있고 그 익숙함 속에 다시 불안이 올 것이라는 것도 알지만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현재 상황과는 다소 다른 종류의 것일테고 그 종류를 경험하며 잠시나마 내가 있던 현실을 잊고 싶은 것일 테다.

 

     작가의 다른 세계 이야기도 듣고 싶다던 내가 이 단편집 중 가장 인상적으로 꼽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배경이 호주인 <젤리피쉬>와 <마른 꽃을 불에 던져 넣었다>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을 해결해주는 타인의 배려, 그들의 존재를 완벽하게 보여주진 않지만 그들의 행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배려임을 독자는 느낄 수 있기에 그 짧은 단편 속에서 싸한 여운은 오래 지속된다. 특히 표제작이기도 한 <젤리피쉬>에서 에밀리의 알 수 없는 행동들에 대해서 작가는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지만 독자는 어렴풋이 그 상황을 만들어 볼 수 있는데 독자 스스로 만들어 낸 그 상황은 말하지 않아 더 아름답고 슬프다. 이것이 해이수라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그만의 능력이다.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그려주진 않지만 그러지 않아도 흐트러짐이 없는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인류 모두가 한 구석에 가지고 있을 고질적인 병에 관한 것과 결국 그것을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배려라는 희망, 작가는 이 둘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의 케냐 이야기>에서 철수는 케냐에서 만년설을 보지 못해 히말라야로 떠난다. 이 장면이 책을 덮고 계속 마음에 남은 것은 앞으로 작가가 독자에게 보여 줄 것이 더 많을 것이고 그것을 보기 위해 나는 작가의 다음 책 역시 기다릴 것임을 대신 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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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속삭여줄게 - 언젠가 떠날 너에게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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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내게 온 후 얼마간 책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난 쉽게 책을 잡지도 못했고 읽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직은 런던에서 다 오지 못한 내 마음이 그녀의 속삭임을 듣고 다시 그 곳에 가고 싶다고 발버둥을 칠까 두려웠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이 책과 마주했을 때, 내가 있던 시간들이 떠올랐고 하지 못했던 것들이 아쉬웠지만 괜찮았다. 난 언젠가 다시 그 곳에 갈 것이고, 이 책은 그런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속삭이고 있는 장소들엔 나의 속삭임도 있었다. 몇 개월간을 템즈강 근처에서 살며 시간이 날 때면 걸었던 장소들, 마음이 복잡하고 내 자신을 잃고 있단 생각에 괴로웠을 때 갔었던 세인트 폴, 친구들과 함께 했었던 그리니치와 박물관들, 거의 매일 지나다니며 내가 가장 사랑한 트라팔가르 광장. 그 곳에서 난 즐거웠었고 외로웠었고 누군가에게 내 일상을 속삭이고 싶어 때론 혼잣말을 하기도 했고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기도 했었다. 잠시 다녀가는 여행객이 차마 다 보지 못하는 순간들이 내게 있었고 난 언젠가 그것들을 말하고 싶었다. 다만 내 말하는 기술이, 내 서술하는 방식이 저자처럼 유수하지 못해 그 바람을 그저 언젠가 할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었을 뿐. 하지만 이 책과 마주하며 내겐 내 이야기를 할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두가 다른 곳을 보고 모두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기에 각자의 이야기 속에는 각자의 속삭임이 있고 그 속삭임은 어떤 형태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런던 속에 있는 그녀의 속삭임이 내게 가르친 것이었다.


지독한 독서가 정혜윤은 다시 한 번 독자를 설레게 하는 책을 써 냈다. 그간 쏟아져 나온 여행 책과는 차별이 되는 그녀만의 색이 이 책에서도 살아난다. 도시를 걸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문학에 빠져드는 것, 그것은 책에 매혹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경험이다. 그리고 그 도시 안에서 자신의 한 문장을 떠올리는 것, 그것은 누구나 가능할 수도 있지만 개인이 가진 독서량과 비례해 깊이가 더해진다. 저자가 쓴 그 어떤 책보다 예쁘고 깊었던 것, 그것은 문학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한 도시와 그 도시를 제압할만한 독서를 한 사람이 만났기에 가능했다.

나도 가끔은 런던의 거리에서 내가 가진 문장들을 떠올렸지만 절대 저자 같을 수는 없었다. 아직 미비한 독서 체험을 한 나는 그 도시에서 내가 읽지 못한 책들을 아쉬워하는 것뿐이 도리가 없었다. 그러면서 난 앞으로 내가 읽을 책들을 그려봤었다. 어쩌면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내겐 내 방식의 속삭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저자가 다 얘기하지 못한 내 특별한 경험이 있는 장소들을 말하는 것,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시간을 빨리 가졌으면 좋겠다.


런던에서 ‘행복’을 묻는다면 난 ‘자유’라고 말하고 싶다. 그 곳의 정착민이 아닌 잠시 머물다 가는 이방인이기에 가능했던 자유. 저자는 책 끝머리에서 그런 자유를 열망하는 자들을 교양인이라고 일컬었지만 난 교양인이 아니어도 됐기에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그 자유 속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했고 그런 나를 인정해야 했다. 그건 고통도 따르는 일이었지만 조금 더 많은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것, 그것은 분명 행복이었다. 살아있음을, 움직이고 있음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 행복이 아니면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저자는 자신의 런던 체험을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과 결부시켜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고 그 책을 읽는 독자에게 행복과 낯섦을 공유하게 만든다. 그것이 이 저자가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덮고 난 런던이 그리웠다. 내가 다 가보지 못한 곳, 내가 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다시 한 번 보고 듣고 느끼고 싶었다. 그녀의 속삭임이 닿은 곳에 다시 한 번 서서 그 속삭임을 온전히 듣고 내 속삭임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런던으로 갈 때 그녀의 이 책이 손에 있을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간밤에 꿈을 꿨다. 꿈에선 런던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 장소들이 있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그곳, 그곳 이야기를 나도 언젠가 당신에게 속삭이게 되길, 그리고 당신도 내 속삭임을 듣고 런던으로 가게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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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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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어느 날, 내게 익숙한 세상이 사실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난 언젠가부터 그런 상상 속 공포에 시달리곤 했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 무의식적인 욕망이 만들어 낸 환각일 뿐이고 언젠가 그것이 거짓임을 알게 된다면 과연 내가 제 정신으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공포. 혹은 난 스스로를 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서서히 미쳐가고 있음을 알고 있는 상상. 현대의 영상 혹은 인쇄물이 만들어 낸 비실제적 체험에서 근거한 나의 망상이라고 해도 이런 생각들은 언젠가부터 머리 속 한구석을 지배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정말 활자가 되어 소설 속 사람으로 나타났다.

 

     십년 넘게 길러온 콧수염을 아내를 놀래키기 위해 깎은 남자는 그것이 자신을 엄청난 혼돈으로 몰고 갈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내, 친구, 직장동료 그 누구도 남자가 콧수염을 깎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는 원래 콧수염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 뿐인가? 그의 기억 일부분은 잘못 된 것이며 그의 친구들은 존재조차 하지도 않았던 사람이라고 하니. 남자는 점점 혼돈에 빠진다. 이것은 자신처럼 장난을 좋아하는 아내가 만들어 낸 또 다른 게임인가, 아니면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계략인가, 아니면 아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런 현실은 급속도로 남자의 생활을 뒤집어 놓는다.

     무언가 희망적인 결말이 있을 것이라는 독자의 상상은 무너진다. 결국 남자는 자신의 콧수염을 잘랐던 면도칼로 최후의 시도를 한다. 그는 남자가 미쳤음을 증명하는 것일까, 아니면 남자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남자와 함께 나도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나는 책 속 이 남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난 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일까.

 

     책을 덮고 나서 남자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정말 미쳤던 것일까, 아니면 책 속 상황 자체가 하나의 거짓일 수도 있다. 혹은 작가가 독자를 희롱하기 위하여 남자의 혼란을 빙자해 독자를 어지럽히는 것일 수도 있다. 남자에 대해 그 어떤 대답을 내릴 수 없었던 것처럼 난 책에 대해서도 그 어떤 답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섬뜻했다. 얇은 책 속에 들어있는 엄청난 긴장감이.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내 시간이 조금은 두려웠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만난 것 기억나? 하면 우린 몇년 째 만난 적이 없어, 라는 대답을 들을까봐. 하지만 때론 그 모든 것이 거짓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금까지 지낸 시간 모두를 잊고 새롭게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온다. 그렇게 된다면 행복할까? 여전히 난 대답을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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