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에 책이 있다 - 사물, 여행, 예술의 경계를 거니는 산문
안치운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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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일기를 쓸 때도 머뭇거린다. 조금 더 멋진 표현이 없을까, 조금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없을까, 이렇게 고민을 하다보면 한 줄도 쓰기가 어려워진다. 어렸을 적엔 그렇게 쓱쓱 잘도 써 내려가던 하루 생활 기록이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생각나는 대로 쓰자라는 심정으로 쓰게 되면 이게 웃자고 쓴 것인지 뭘 생각하고 쓰긴 한건지 알 수 없는 글장난이 펼쳐져 버린다. 과연 무엇이 좋은 글일까. 아마 이 물음은 평생을 나를 따라다닐 것만 같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내게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하게 알게 해 주었다.

     연극 평론가인 저자 안치운은 이 책을 살며, 여행하며, 공부하고로 분류했다. 그리고 그 속에다 그의 사는 이야기, 그가 좋아하는 여행 이야기, 그리고 그의 운명과도 같은 공부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그의 삶 속에 녹아있는 소소한 행복들이 나의 것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자전거로 길을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 그리고 달리며 생각했던 우리네의 문제점들. 여행을 하며 느낀 것들 그리고 책의 운명에 관해서까지. 몇 문장을 손으로 짚어가며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 내가 가장 공감했던 문장을 옮겨본다.

 

     편하기만 했던 여행은 금세 잊히기 마련인 것 같다. 여행은 불편함으로 자신이 와해되어야,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야 자신 속으로 깊게 회귀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오늘의 시련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후에 꾸는 꿈은 매혹이 된다. (p.100)

     사람이 그리워 우는 울음은 고독한 이들의 절규와 같다. 운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을 긍정하는 것, 울음은 듣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고 닦아주어야 하는 것. (p.182)

     모든 책은 출간된 그 순간부터 헌책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책은 시간과 싸우면서 헌책이 되고, 시간을 켜켜이 받아들여 늙어갈 때 책으로서 최고의 위엄을 지닌 고서가 된다. (p.220)

    

     처음에 이 책을 들었을 때는 연극 평론가의 어렵고 따분한 이론 이야기가 아닐지 걱정을 했다. 흔히 산문집이라는 형태의 책을 마주하다보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저자의 전공분야와 섞여 이해하기 난해한 문장들의 집합체로 변질되어 있는 때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말할 때조차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자신의 감상을 담아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좋은 글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는 것은 이 때문이었다. 솔직 담백한 글 맛, 그것이 줄 수 있는 깊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 제목처럼 이 책은 마치 시냇물에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써 내려간 문장은 맑고 조용했지만 시냇물이 바다로 가면 그 끝을 알 수 없게 되듯 그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힘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강해 보였다. 그런 강함을 책을 읽는 행위 만으로도 내가 어느정도 배울 수 있을 듯했다. 글을 읽으며 일상을 적어내려간다는 것이 내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더 나은 표현들을 더 수려한 문장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그 일을 어려운 것으로 만든 것이었을 것이다. 이젠 조금 더 담담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내 일상을 정리 해 보려 한다.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작은 물을 이루고 또 그것들이 쌓여 하나의 큰 물이 될 수 있도록. 이 책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잔잔하게 독자의 마음을 씻어주며 읽는 행위를 통해 쓰는 행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해보고 또 다시 매혹당하게 해 주는 듯 하다. 좋은 글을 만난 기분, 책을 읽는 내내 그 기분에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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