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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막연한 바람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아. 저건 꼭 해 봤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상 그것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면 멈칫 하게 마는 것들. 나는 책읽기에도 몇몇의 그런 책들을 가지고 있다. <율리시스>가 그렇고 대부분의 러시아 문학이 그렇다. <죄와 벌>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고 좋아하면서도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다시 읽을 엄두는 전혀 나지 않는 것, 그러면서 언젠가 꼭 다시 읽고 싶은 것. <안나 카레니나>를 완역으로 한 번 읽어보겠다고 몇년 전부터 다짐만 하고 있었던 것도 그중 하나였다. 핑계는 늘 단순했다. '흠, 여긴 출판사가 마음에 안 들어. 여긴 번역자가 별로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소한 정보를 가지고 혼자 이렇게 핑계를 대며 멀리한 것이 벌써 몇 년. 그러다 정말 읽지 않을 수 없는 <안나 카레니나>가 찾아왔다. 더 이상은 핑계도 댈 수 없다. 모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보다는 좀 더 색다른 전집을 만나보고 싶은 독자들의 니즈를 파악했던 것인지 흥미로운 콜렉션을 지닌 이 전집의 1,2,3권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나 같은 독자들을 확실히 파악한 것이 아닐까 하는 놀라움마저 들 정도였으니 이젠 읽어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사실 톨스토이가 가지고 있는 명성과 달리 난 톨스토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톨스토이를 조금 제대로 만난 것은 예전 텔레비전의 전 국민 책 읽기라는 취지로 시작된 모 프로그램에서 톨스토이 단편선을 소개했고 그 바람을 타고 톨스토이의 책을 읽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될 때였기 때문이다. 그 단편집에서 만난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지나치게 종교적 색채가 강했고 어린시절부터 누군가 강요하는 듯한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성향에 굉장한 반감을 가졌던 나는 자연스레 그의 글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명성은 괜히 온 것이 아니라서 그의 작품들을 만나고 싶고 특히 예술작품이라고까지 칭해지는 <안나 카레니나>는 더욱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지금 톨스토이에게 딱 한마디만 하고 싶다. 인정.
연애소설이라고 하기엔 그 시대와 작가가 주장하는 바람직한 사회상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고 사회소설이라고 하기엔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마음 아프고 강렬하다. 그래서 이 책은 예술작품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책의 제목이자 이야기의 한 축인 '안나 카레니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시대적 희생양이자 사랑을 위해 자신을 불태울 줄 알았던 열정의 화신이기도 하다.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을 영유하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만 현대의 시선에서 그녀의 선택은 결코 비난할 수만은 없다. 사랑에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 그것은 보편적인 사람의 마음이 아니던가. 그리고 안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사랑과 관념은 그 시대의 러시아를 모두 보여주기에도 충분하다. 특히 레빈의 사고와 관념은 톨스토이의 그것을 옮겨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렇기에 이 책은 저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역할 역시 충분히 하고 있다.
'가장 위대한' 이런 수식어가 어울리는 책은 흔치 않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온 이후 이 책에 쏟아진 그런 찬사들은 과언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할 법하다.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세세하게 놓지 않으면서도 그 시대, 러시아에서 벌어진 시대적 특수성을 그 보편성과 적절하게 섞어 놓는다. 그래서 이야기는 길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점점 더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잘 된 번역까지 어우러진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한 권을 만나는 재미는 상상 이상의 무엇이 있다. 자, 이제 또 다른 이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와 함께 그것들을 느껴 볼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