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은 책을 읽는 독자에겐 때론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작가의 마음을 넘겨 짚어 버리는 오만함이 군데군데에서 새어나온다. 일전에 읽은 이 작가의 책 뒤에 있는 작가의 인터뷰를 괜히 읽었다. 난 이 책에서도 작가의 우울함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론, 중간에 책을 덮고 싶었다.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굳이 책 속에서 찾지 않아도 우울은 요즘 내 주변에 만연하다. 그럼에도 책을 덮지 못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작가의 빼어난 글 재주 때문이다. 이것조차 이제 날 우울하게 만든다. 책이 힘들 때 책 뒤를 펴 작가의 말을 읽었다. '공부가 지겨워지는 순간 이야기는 없다.' 내게 이야기가 없는 이유를 작가는 꿰뚫었다.

 

     신선한 발상에 작가가 그동안 해 왔던 배경을 덧붙였다. 거기에 작가가 소질이 있어보이는 우울이 첨가되었다. 발상은 신선하나 소재 하나하나는 그놈의 우울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시작은 죽음이다. '저승차사'나 '마지막'이라는 단어에서 왔던 두려운 느낌이 죽음이라는 말에서 뼈를 찌른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것은 한 사람에게 품고 있는 연민이고 그 탓에 놓을 수 없는 애착이다. 많은 인물들이  얽히고 설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모두 연민, 그리고 애착. 그리고 그것을 미련없이 떨구는 것은 화율의 마지막 선택인 영원한 '죽음'과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그것을 미련없이 떨굴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에 또 누군가를 품고 또 누군가는 빛을 보게 된다.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작가의 기지는 빛을 발한다.

 

     과연 진심의 순서는 어디일까. 사건의 앞에 놓여야만 하는 필수조건일까, 사건의 뒤에 놓여도 무방한 충분조건일까. (p.314)

     이 말 뒤에, 이 말의 주인공 연홍은 말한다. 순서 같은 것은 상관없이 어디에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 진심이라고. 그 말이 왠지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하는 듯 하다. 진심, 그것이라면 모든 것은 이 세상이건, 이승이건 상관없다고. 과연 나는 지금 진심이라 부를만한 어떤 것이라도 가지고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하면 <용의자 X의 헌신>을 꼽지만 난 <방황하는 칼날>을 꼽는다. 소년범죄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함께 사회 전반적인 이슈를 제공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지가 무엇보다 돋보였기 때문이다. 기존 추리소설의 '단순함'을 깨고 무언가 지속되는 꺼리를 제공해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역시 독보적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눈을 번쩍이는 것도 이런 이유일 터.

     다작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 <다잉 아이>는 왠지 익숙하다. 그 소재는 영화 <디 아이>를 닮아있고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도 다소 고루하다. 하지만 그 안에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색을 닮아 결코 지루하지 않고 진부하지 않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에서 멋을 느낄 수 있다면 이런 작가의 아이덴티티 때문일 것이다.

     살고 싶은 욕망이 담긴 죽어가는 눈, 생명은 꺼져도 그 눈 속에 담긴 의지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인간의 몰락이 때론 기록이 되는 까닭은 이런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의지는 기록으로 남기도 하고 타인의 기억 속에 하나의 이미지로 남기도 한다. '난 아무 잘못 없어. 죄책감을 느낄 이유 따위는 없다고.' 이 사건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연대 책임을 지고 있으나, 그렇기 때문에 죄의식은 덜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죄가 사해지지는 않는다. 결말을 보면 알게 되듯, 사해지지 않는 죄는 덜해지는 죄의식만큼이나 무겁고 잔혹한 또 다른 에피소드를 남긴다.

 

     일전에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에서 다소 멈칫했다면 이 책에선 다시 기지개를 켜는 셈이다. 그럼 그렇지. 이 양반 아직 안 죽었구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고로, 아마도 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음 작품도 읽게 될 것이다. 다신 이런 소설은 못 쓸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이 겸손한 척 하는 구라빨이었길 간절히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심의 탐닉 - 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 김혜리가 만난 사람 2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사람과 사람간의 사적인 대화. 그 대화를 엿듣고 싶은 욕망, 대중들의 그런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인터뷰의 시작이라면 이 책을 통해선 그런 욕망을 채울 수도 있고, 누군가의 비밀스런 공간을 엿보는 재미도 챙길 수 있다. 노련한 인터뷰어 김혜리, 그녀와 22인의 사람들.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나와의 인터뷰를 해보기도 한다. 난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털어놓는 시간. 이 책 속에는 그런 수많은 재미가 있다.

 

     - 백수로 지내신지 3개월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점점 자신감이 없어져요. 난 뭘 해도 되는 놈이다, 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강했는데 점점 작아지고 있는 기분이랄까요?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그럼 전 이 시간이 익고 있는 시간이겠죠. 너무 익어서 타기 전에 백수 탈출을 해야 하긴 할텐데요.

 

     - 그런 시간을 보냈음에도 아직 사람에 대한 믿음은 있으신 거죠?

     그럼요. 그런 시간을 보내서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죠.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을 믿어요. 백수 생활 내내 제게 믿음을 주신 분들이 없었다면 전 아마 굶어죽었을 거에요. 백수라고 밥 사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그들이 제겐 희망이었죠.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세요?

     보란듯이 잘 돼서 저를 외면했던 대상들에게 마음껏 눈을 흘겨 줄 거에요. 나 이런 사람이었는데, 몰랐지? 하고 약을 올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를 살려주신 수많은 분들께 보답해야죠. 쨍하고 해뜰 날이 돌아왔으니 제 양지 안에서 일광욕 한 번 즐겨보시라고 할 거에요. 또 롤리팝에게 비싼 사료도 사줄 거고요.

 

     - 아, 고양이를 키우시죠?

     아니요. 지금은 고양이가 저를 키우는 셈이에요. 심심할까봐 사고 쳐주고, 돈 쓸 데 없을까봐 한번씩 아파주고, 잠 푹 잘까봐 밤이면 우다다 뛰어다니니 심심할 틈도 잠을 푹 잘 틈도 없어요. 절 움직이게 만드는 셈이죠. 앞으로는 고양이를 한 번 키워보고 싶어요.

 

     + 앨리스의 진심

     사실은 이런 웃자고 하는 내 하소연이 아니라 언젠가는 정말 근사한 인터뷰를 한 번 해보고 싶다. 내가 가끔 웃자고 하는 언젠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는 게 꿈이라는 내 말은 웃자고 하는 말은 결코 아닌 진심이기도 하다. 이 책 속에서 다시끔 알게 된 22인을 보며 그러기 위해선 조금 더 알찬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지나가는 바람을 충분히 견딜 수 있게 단단해 져야 나만의 비밀을 품을 수 있겠다는 생각. 지금도 내겐 가벼운 바람이 지나가고 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9-29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김중혁 작가가 인터넷을 검색해서 자신의 소설에 대한 독자평을 읽지 않는 사람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만약 작가가 어쩔 수 없는 호기심에 독자평을 읽는다면 내 것은 읽을 일이 결코 없길 바란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내 것을 읽었다면 문학에 문자도 모르는 것이 까분다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의외로 작가들이 블로그에서 자신의 책에 대한 평을 읽는 일은 꽤 흔하다.) 왜냐하면 김중혁 작가의 책을 엄청 기다린 내가 이 책에 대해선 결코 좋은 말을, 그동안 외쳤던 '심봤다'를 외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문학에 문자도 모르기 때문일까? 난 그 두가지 이유 때문이길 바란다.

 

     <펭귄뉴스>와 <악기들의 도서관>, 김연수 작가와 함께 한 <대책없이 해피엔딩> 및 그가 쓴 그 외 몇 단편들, 그리고 칼럼들까지 모두가 즐거웠다. 이 사람 머리 속에 한 번 들어가보고 싶었고 술자리를 한 번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말빨로 사람 후려칠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김연수 작가의 북콘서트에 갔다가 작가를 보고는 간지남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글재주에 간지까지 나다니, 멋지다며 흠모하기까지 했다. 아, 그런데 ...

     사실 난 스릴러는 별로고 좀비가 나온 영화 한 편 본 적이 없다. 그래, 어쩌면 취향 차이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장르에 잼병이라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이 다음에 나올 김중혁 작가의 책도 기대할 것이고, 또 그 책 역시 잽싸게 사서 읽어버릴 것이다. 어쩜 다음 책은 내 취향에 딱! 일지도 모르니까.

 

     작가가 말했다. 이 책을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라고. 그래. 그 부분을 집고 넘어가게 되면 이 책이 가진 가능성은 보인다. 그게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게 문제. 책 속의 좀비는 스릴러물에서 무섭게 묘사된다고 들었던(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으니까)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욕심과 잔혹에 의해 철저히 희생 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바꿔 생각해보면 그들도 죽기 전엔 누군가를 희생시켰던 사람들이었다. 즉, 가해자였던 사람들이 사후에 또 다른 인간의 잔혹성에 의해 피해자로 변모 된 셈인데 난 여기서부터 복잡해졌다. 여기서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기억이란 무엇인가.

     자, 여기서 난 결정을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보고 다시 한 번 이 의미에 대해 생각 해 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잠자코 다음의 김중혁 작가의 책을 목 빼고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옹
필립 빌랭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이 얇은 책 한권을 몇년 째 수도없이 들었다놨다 읽다 덮고 다시 읽고 했던 것은 아마도 몇년 전 읽었던 아니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 대한 의리였을 수도 있다. 자신의 연애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인 아니에르노의 책에 난 많이 흔들렸었다. 아직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가 다소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왜 들썩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그녀처럼 단순한 열정에 의해 사람에게 들뜨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다시 이 책을 들었고 마지막 장이 처음으로 날아갔다. 나는 늘 나와 책의 관계 속에서 닮은 듯 닮지 않은 그래서 묘한 관계가 구축되는 희열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알아야 했다. 지금 내 상황의 진실을. 아니, 알 수 없겠지만 알고 싶었다. 단순한 열정에 의한 내 달뜸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그의 포옹의 사이에 있는 감정의 여운을.

 

     <단순한 열정>을 읽고 아니에르노와 만나 33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4년여의 연애를 해 온 그는 그녀와 헤어진 지금 과거의 시간을 문학이란 이름으로 박제한려 한다. 시간은 가둬질 수 없지만 과거는 가둬진다. 물론 온전할 수는 없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자신만의 해석으로 조금은 다르게 다시 쓰여지는 법. 과거를 가두려는 시도를 하며 그는 깨달은 듯 하다. 진정으로 그녀와 이별하려면 자신에게 배어있는 그녀의 흔적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러려면 그녀가 남겨놓은 그녀의 문학과의 사이에서도 벗어나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시간을 모두 지울 순 없기에 그녀와 그녀의 문학을 모두 끌어안은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어쩌면 그는 자신의 첫 책을 이렇게 고백식으로 발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난 솔직히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의 내겐 필립 빌랭의 입장보다 아니에르노의 입장이 더욱 선명하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조금 더 나은 성장을 하길 바라는 마음, 왜 내게 이런 마음이, 그것도 하필 이렇게 지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내게 이런 마음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나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고 있지 못한 내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겐 이것이 단순한 열정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이제야 아주 조금 그녀의 마음이 보일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지금의 내 나이와 그 때 그녀의 나이 사이에도 아주 큰 간격이 존재하지만. 그리고 그래서 난 그의 진짜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아마 그와 그녀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그의 진심을 한 번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제목 때문인지, 클림트의 '포옹'이 내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포옹의 황금빛은 어쩐지 조금은 처연해 보인다. 연인들은 서로를 탐닉하지만 그들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는 서로의 몸은 서로를 구속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들도 이렇지 않았을까. 단순한 열정, 그리고 욕망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구속하고 포옹했던 것은. 아, 어쨌든 지독하다. 그들도 나도 그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