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필립 빌랭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이 얇은 책 한권을 몇년 째 수도없이 들었다놨다 읽다 덮고 다시 읽고 했던 것은 아마도 몇년 전 읽었던 아니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 대한 의리였을 수도 있다. 자신의 연애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인 아니에르노의 책에 난 많이 흔들렸었다. 아직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가 다소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왜 들썩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그녀처럼 단순한 열정에 의해 사람에게 들뜨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다시 이 책을 들었고 마지막 장이 처음으로 날아갔다. 나는 늘 나와 책의 관계 속에서 닮은 듯 닮지 않은 그래서 묘한 관계가 구축되는 희열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알아야 했다. 지금 내 상황의 진실을. 아니, 알 수 없겠지만 알고 싶었다. 단순한 열정에 의한 내 달뜸과 이유를 알 수 없는 그의 포옹의 사이에 있는 감정의 여운을.

 

     <단순한 열정>을 읽고 아니에르노와 만나 33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4년여의 연애를 해 온 그는 그녀와 헤어진 지금 과거의 시간을 문학이란 이름으로 박제한려 한다. 시간은 가둬질 수 없지만 과거는 가둬진다. 물론 온전할 수는 없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자신만의 해석으로 조금은 다르게 다시 쓰여지는 법. 과거를 가두려는 시도를 하며 그는 깨달은 듯 하다. 진정으로 그녀와 이별하려면 자신에게 배어있는 그녀의 흔적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러려면 그녀가 남겨놓은 그녀의 문학과의 사이에서도 벗어나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시간을 모두 지울 순 없기에 그녀와 그녀의 문학을 모두 끌어안은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어쩌면 그는 자신의 첫 책을 이렇게 고백식으로 발표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난 솔직히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의 내겐 필립 빌랭의 입장보다 아니에르노의 입장이 더욱 선명하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조금 더 나은 성장을 하길 바라는 마음, 왜 내게 이런 마음이, 그것도 하필 이렇게 지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내게 이런 마음이 생겼는지 알 수가 없다. 나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고 있지 못한 내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겐 이것이 단순한 열정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 이제야 아주 조금 그녀의 마음이 보일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지금의 내 나이와 그 때 그녀의 나이 사이에도 아주 큰 간격이 존재하지만. 그리고 그래서 난 그의 진짜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아마 그와 그녀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그의 진심을 한 번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제목 때문인지, 클림트의 '포옹'이 내내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포옹의 황금빛은 어쩐지 조금은 처연해 보인다. 연인들은 서로를 탐닉하지만 그들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는 서로의 몸은 서로를 구속하고 있는 듯도 하다. 그들도 이렇지 않았을까. 단순한 열정, 그리고 욕망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구속하고 포옹했던 것은. 아, 어쨌든 지독하다. 그들도 나도 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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