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나게 시니컬한 캄피 씨
페데리코 두케스네 지음 / 이덴슬리벨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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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리안, 유니텔, 나우누리 등의 서버가 호황을 누리고 있었을 때, 팬픽에 앞서 인터넷 소설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을 때, 영화에도 그런 서버의 채팅창에서 만난 연인의 이야기가 종종 나오고 있었을 때, 대한민국에선 '엽기적인 그녀'라는 타이틀의 인터넷 소설의 붐이 일었다. 인터넷을 통해 한 편의 소설을 발표해 낸 한 남자는 영화계도 평정했고 해외로 그 소재는 팔려가기도 했다. 혹자는 그 이야기가 그 남자의 실화라 했고, 혹자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것은 인터넷 소설 인기의 시발점이 되었고 촉매재가 되었다. 그것들의 텍스트 적인 질이 어떠한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한다는 점은 분명해 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모 작가는 이런 현상을 보고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멀리 이탈리아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전해졌다. 한 변호사가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에 적기 시작해 화제가 되었고, 그것은 이내 소설로 발표되었다. 원제를 직역하면 '불법 법률 사무소.' 변호사가 발표한 불법 법률의 이름이란 궁금하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는 누군가의 뒷 이야기를 '알 권리'라는 명목하에 궁금해 하고 캐내고 싶어 하니까. 조금 고급스럽게 나가자면 '삼성을 생각한다'가 그렇게 히트를 쳤고, 좀 저급스럽게 나가자면 '4001'가 소문을 탔다. 이 두 책 사이의 간격은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실상은 대중의 관음증적인 욕망을 부추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보기보다 그렇지 않다. 그런 배경정보를 모른 채 읽는다면 그냥 유쾌한 블랙코미디 소설 한 편에 지나지 않다.

     꿈을 잃어가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모두가 한 때는 꿈이 있었다. 법조계에서 일하는 사람도,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도, 커피숍을 창업한 사람도, 한 때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그것은 그들의 꿈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커다란 장벽 앞에서 모두의 꿈은 사소해지고 시들어간다. 그 꿈을 현실로 바꾸는 것은 세상의 1% 사람들 몫이다. 그리고 요즘은 그 1%의 99.9%는 부모의 재정 능력 혹은 사회적 지위의 영향을 받는다. 즉, 이 세상의 0.01%의 사람만이 자수성가라는 타이틀 아래 꿈을 현실화 한다. 캄피씨도 한 때는 꿈많은 사람이었다. 마호가니 테이블 아래 법률 상담을 원하는 고객이 기다리고, 저울과 날카로운 검을 든 채 세상의 악을 심판하는 공명정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캄피씨는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고 아침 8시에 다시 출근을 하고 어깨 밑까지 다크서클을 내린 채 연애, 우정 따윈 일에 밀려버린 세일즈맨일 뿐이다. 그의 꿈은 사라졌고, 그의 야망도 점점 시들어간다.

     유쾌해 보이고 발랄해 보이는 이 이야기 속엔 전 세계의 현실이 담겨있다. 합법적인 근로시간 외에도 상사의 요구에 따라 일을 해야만 하고, 그것에 따르지 않는다면 그 자리를 노리고 있는 누군가의 재물이 될 뿐이다. 사랑, 우정, 가족애 따윈 성공 앞에 길을 내주는 것이 아닌 현재를 꾸려나가기 위한 압박에 길을 내 주어야 한다. 취미 생활은 이력서에나 존재하는 허울이 되어버리고, 특기란을 메우려면 한참을 멍해져야 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 그리고 캄피씨다.

     나와는 다른 직업,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만 같은 그의 일상을 보며 난 나의 일상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쩌면 캄피씨가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책은 해피엔드로 끝나고 그는 자유를 찾았지만, 그 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유리구두를 신고 공주가 된 신데렐라의 뒷 이야기가 불화 끝 이혼일지, 끝까지 잘먹고 잘살았습니다일지 모르는 것처럼 그의 뒷 이야기도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또 다시 어딘가에 직장을 구하고 또 다시 그런 삶은 이어질 것이다. 에밀리와 결혼을 했을 수도, 성격차로 헤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와 어떤 결론이 내려졌든 그는 다시 일을 해야 하고, 또 다시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은 이 세상 속에서 뻔한 이치가 되어버렸다. 이젠 해피엔드도 꿈꾸기 힘든 일상이 되어 버린 지금 캄피씨의 이야기를 한 편의 즐거운 상상으로 읽어야 할지, 한 편의 씁쓸한 에피소드로 읽어야 할지 이것도 독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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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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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문학 시장의 붐이 일던 때가 있었다. 성인이 봐도 즐거운 문학들이 줄기차게 나왔고, 그 중에 몇 권은 드물게 베스트셀러 반열에도 이름을 올렸다. 청소년 문학과 성인 문학의 경계는 여전히 불분명했지만, 그 어떤 타이틀을 달았건 독자를 몰입시키는 텍스트를 만난다는 설렘을 주는 책들이 계속 되었다. 그러다 주춤. 주춤의 주체는 알 수 없다. 바짝 당겨진 끈이 살짝 느슨해 졌던 것인지, 아니면 삶의 페이스를 핑계 삼는 나의 탐독 아닌 탐서가 맥을 못 추고 있었는지. 그런 시간이 지속되던 중, 봄바람 처럼 살랑거리며 내 귓가에 그 소문을 나누는 책이 있었다. 제 1회 수상작이라는 매력적인 타이틀까지 달고 있었다. 상을 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 1회 수상작은 그 상이 앞으로 가질 위엄을 증명해 주기도 하기에 늘 빼 놓지 않고 있었던 터였다. 그렇게 샛노란 표지의 상큼한 책장 문이 열렸다.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상상력과 발랄함이 주 무기는 아니라는 것은 첫 장만 봐도 알 수가 있었다. 노련한 글 솜씨가 보였고, 쉽지 않은 주제들이 보였고, 청소년 문학이라는 타이틀을 다는 소설들이 왕왕 그렇듯 무언가 결함이 있는 아이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어가며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설마 하고 웃어 넘길만한 엄청난 일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선 진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여울이라는 이 아이가 처해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 그저 어이 없지만은 않다. 인간극장이나 휴먼 다큐멘터리 어디쯤에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을 법한 그런 사정이다. 그래서 더 안 쓰럽다. 같은 상황이라도 나이에 따라 느끼게 되는 삶의 체감 무게는 엄연히 다름을 알고 있고, 그것을 감안한대도 그 아이의 사정 꽤나 복잡하기만 하다. 하지만 삶이란 아이나 어른이나 그저 버텨나가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버티기 위해 가출을 하고, 누군가는 독립을 하며 스스로의 방법으로 그렇게 버텨나간다. 여울이에겐 그 돌파구가 코스튬플레이와 출가 계획서 그리고 세바스찬이었듯, 그 시기엔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도 어떻게든 우린 우리만의 돌파구를 만들며 이 삶을 버티고 있다.

     이 책은 읽는 법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질 것 같다. 하나하나 따지기 좋아하는 어른들에겐, 코스튬플레이를 하며 만난 아주머니와 세바스찬이 왜 등장해야했는지 의문이 들며 후반의 힘이 빠진다는 질책을 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에겐 많은 소재들을 엮어 놓은 연결고리가 느슨하다는 지적을 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삶엔 특히 어린 시절엔 우리 주변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 내 주변에 그런 것들이 있는 지 알 수도 없는 것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었고 그것들에 의해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으며 지내왔다.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대화와 공감이 가장 중요한 것인 그 나이의 아이들에겐 이런 환경이지만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아주 근본적인 교훈이 때론 필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그 수많은 것들이 결국 너희를 자라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텍스트의 짜임새와 연결고리보다는 더 중요한 것임은 틀림 없다. 그렇기에 결국은 이 책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 모두를 에우르는 신선한 재미와 감동을 군데군데 숨겨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또 하나의 비밀의 열쇠를 찾는 것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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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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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줄이면, 모든 것이 용납되는 그런 책이 있다.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라는 이 책 표지의 한 구절이 그랬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직전 <지중해 오디세이>를 읽으며 또 한 번 여행에 대한 열망이 잠시 피어났던 때라 이 책을 만나는 것은 왠지 조심스러웠다. 여행을 하고 돌아 온 모두가 왜 떠나지 않는가를 부르짓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은 있다. 현실이라는 것은 핑계라고 한다면 묻겠다. 비행기 값도 없다면, 배 값도 없다면, 버스비도 없다면? 아, 여기에는 삶은 여행이라는 기막힌 답이 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다행히도, <지중해 오디세이>의 후반에 스스로 합리화를 시켜 놓은 까닭인지 이 책도 여행에 대한 열망을 가중시키진 않았다. 여전히도 낯선 곳을 꿈꾸고, 내 생에 가장 훌륭하고도 가난했던 그 여행을 다시 또 떠올리게도 했지만 그 곳에 가긴 아직 부족하다는 내 합리화가 떠나고 싶다는 열망을 훌륭히도 잠재울 수 있었다.

     책.

     <지중해 오디세이>와 이 책이 닮은 것은 바로 여행자의 책이 그 장소에 있다는 점이다. 여행을 하기 전, 완벽한 여행을 위해 엄청난 독서 내공을 가지고 있던 카플란이나 여행지에 꼭 한 권의 책을 넣어다니는 이 작가의 공통점이다. 글 속에서 스스로를 여행자라 칭하는 저자는 낯선 곳에서 자신의 기억 속의 책을 꺼내어 보거나, 혹은 읽고 싶었던 그래서 어울릴 것만 같았던 그 책을 꺼내 놓는다. 단 한 번이라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심하게 공감 할 것이다. 공간에 어울리는 책들은 낯선 장소에서 낯선 생각을 친숙한 것들로 만들어 놓는다.

     장 그르니에의 <섬>에 실린 카뮈의 서문만 읽고 이 책은 함부로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강렬한 햇살 아래에 서게 될 때까지 아껴두었던 나도 그랬다. 어떤 책에는 그 책에 어울리는 장소에서 읽을 그런 예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태양의 도시'라 일컬었던 스페인의 말라가 해변 아래에서 두 세번 거듭 읽어졌고, 난 그 뜨거운 햇살 아래서 그 책의 생각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저자의 경험은, 또 그가 여행지에 그에 걸맞는 책을 한 권씩 들고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그 수많은 곳들을 돌아다니며 그런 꿈같은 경험을 지속시키는 그가 뜨겁게 부럽기도 했다.

     내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언젠가 다시, 나도 또 그런 여행을 할 것이다.

     내 가방엔 그 장소에서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들어 있을 것이고 나는 달뜰 것이다. 타고르의 시선집을 들고 인도로 향할 수도 있고 오에 겐자부로의 책들을 안고 일본으로 향할 수도 있을 것이며, 말랑말랑하면서도 뭉클했던 건지 아일랜드를 들고 다시 한 번 영국행 비행기를 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곳에서 책을 읽을 것이다. 어떤 여행지는 너무나 훌륭해서 그저 풍경을 보는 것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만, 그래도 난 책을 읽는 것은 포기하지 않겠다. 다만, 지금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내겐 저자만큼 그 여행지에 가져갈 딱 맞는 책을 고를 혜안이 없다는 것, 그것 때문이라고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합리화 시킨다.

     하지만 이 땅에 있다고 여행자의 독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핑계, '삶은 여행' 이라는 말을 나도 한 번 읊조리며,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맞는 그런 책을 읽으며 더 먼 곳으로 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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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오디세이 - 세계적인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의 역사 문화 기행
로버트 카플란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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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3학년, 로버트 카플란을 읽고 국제 관계학을 읽었다. 전공도 아닌 전공 서적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로버트 카플란의 글은 날카로웠다. 로버트 카플란의 글이 부시와 클린턴의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는 그 당시 꽤나 유명했다. 어렵지 않은 글 안에 어렵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때 알았다. 내 꿈은 그 책을 읽으며 커졌고 그 때 난 그렇게도 반짝 거렸다. 꿈 꿀 수 있는 자유가 충만했던 그 때, 한 권의 책을 흡수할 수 있던 그 때, 그 때를 돌아보면 참 아찔하다. 그렇게도 난 눈부셨다. 꿈은 현실과 부딪혀 점점 타협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늘 턱 없이 부족해 보였다. 그 안에서 내일을 걱정하고 미래를 걱정하다 보니, 평생 갖지 않을 것 같던 청약 통장이라던지 보험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그만큼 삶의 여유는 줄어들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로버트 카플란의 책을 읽었다. 그의 글은 여전히 어렵지 않았지만 난 이 책 한 권이 그토록 어려웠다. 여전히 내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줬지만 그 때만큼 반짝 거릴 수 없는 나는 연신 투덜거리고 다른 미래를 꿈 꾸기 보단 머리 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하며 당분간 내겐 오지 않을 자유라며 현실을 책망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책 첫 페이지에서 만난 뜨거운 한 문장 탓이었다. 책의 첫장에서부터 한 구절이 독자를 사로잡는 일은 흔치 않다.

    

     여행은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인간은 꿋꿋이 존속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한다고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삶 속에서 그 많은 것들이 잊히지만, 우리의 여행은 결코 잊히는 일이 없다. (p.14)

 

     현실에 제압당한 지금도 여행에 대한 꿈은 버릴 수가 없다. 당분간 내게 오지 않을 자유래도 여행을 꿈꾸며 삶은 지속된다. 그렇다면 그 꿈을 놓지 않기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로버트 카플란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나라들을 여행하며 내게 그 답을 알려 준다. 그의 여행에서 카잔차스키가 말한 암호랑이, 즉 셰이랜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띈다. 엄선된 선장으로 비유되는 준비 된 여행가는 여행을 하며 세상을 향한 눈을 뜨게 된다. 그의 안에 축적 되어 온 지식들이 그 지식의 배경이 된 공간들과 마주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은 그의 안에서, 그리고 그의 앞에 펼쳐진다. 완벽한 여행을 하기 위해 선행 되어야 할 것들은 결국 지식의 습득을 통해 진정한 모험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그 지식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 많은 독서를 하고, 텍스트 안에서 길도 잃어보며 그것들이 무르익다가 터지는 순간을 준비해야 한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많은 독서, 그것 뿐인 것이다. 로버트 카플란은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그가 쌓아온 지식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또 그 안에서 새로운 지식들을 쌓아올려 가기도 한다. 그의 지식들은 그렇게 쌓여가며 결국 반짝하는 섬광과 함께 세계의 흐름에 대한 눈을 그에게 선사함과 더불어 간신히 원고 하나 팔아 먹고 사는 미래 없는 자유기고가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저널리스트로 거듭나게 해 준다. 그것은 운이 아니었고 내부적인 그의 엄청난 준비 탓이었다는 것을 이 책 속, 즉 그의 여행 속에서 우린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실을 탓하고 비난하던 나는 틀림없이 잘못 된 행동만 거듭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때때로 왜 이것 밖에 할 수 없는지 한탄하는 내 태도는 분명히 어긋난 것이었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은 내게 준비의 과정이며 삶의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는 것을 왜 그동안 나는 잊고 있었던가. 탓을 하려면 아직 그 시간과 노력이 부족하여 내게 그 섬광이 오지 않은 탓을 하는 것이 옳았다. 더 많이 읽고, 한 권의 좋은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은 언젠가 현실 속에서 반짝 하고 떠오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 책 한권이 알려 주었다. 그러고보면, 로버트 카플란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향한 눈을 안겨 준 셈이다. 난 이번에도 몇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지없이 그에게 매혹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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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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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아이의 영어 교육을 위해 몇 억을 투자했다며, 빚을 내서라도 아이의 사교육에 투자하는 돈은 줄일 수 없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나온다. '투자'라는 말은 곧 이익을 얻기 위해 돈을 쏟는 것을 말하는 바, 아이의 사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생각이 결국은 이익을 얻기 위함임을 짐작해 본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이익이란 무엇일까. 아이의 사교육마저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여겨지는 이 시스템이 바람직한 것일까.

     책 <비즈니스>는 그런 사회의 문제를 낱낱히 고발한다. 아이의 교육비를 대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 그 여자의 행실은 충격적이지만은 않다. 이미 우리는 뉴스나 사회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흔치 않게 들어 왔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위해 부모가 몸을 파는 유일한 나라, 우리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사랑조차 비즈니스의 연속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비즈니스 우먼들의 태도엔 부끄러움이 없다. 이게 다 나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이 아니며,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발을 맞춰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투자를 해 만들어 내는 그들 인생 최고의 상품들은 그들이 원하는 그대로의 것이 될 수는 없다. 그 상품들은 결국 이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상위 몇 프로만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물건들이 되어버린다. 그렇게도, 애 써서 만들어 낸 내 인생 최고의 것이 이 세상 안에서 존재를 확인받지 못하는 또 한 명의 무국적자가 되어갈 뿐인 것이다. 그것을 너무나 생생히 보여주고 있어서 이 책 속에 간간히 등장하는 이팝나무의 존재는 환상적이면서도 망연스럽다. 밥알이 쏟아 나오 듯 만발하는 그 나무는, 이 세상의 어두운 면과 극하게 대비가 된다. 그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이 하나 둘 떠오르며, 우리의 비즈니스는 그 뜻이 어찌 되었건 간에 더러워 질 수 밖에 없다.

     여자가 만난 결론은 성공적인 상품을 배출한 것도, 이 세상에 찬 물을 끼얹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 자신을 찾은 것처럼 후련해졌고 그의 아들 여름이를 끌어 안았다. 자신의 길 안에서 행복해 진 것이 그녀가 만난 결론이었지만 나는 왠지 그 결론이 석연치만은 않다. 그녀 본인은 그것이 사랑이라 여길 지 몰라도 그녀는 타잔을 만나는 내내 남편과 아들에 대한 이유 모를 향수에 젖었고 그들에 대한 의무도 느슨하게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 맡기지 못한 그녀의 사랑은 사랑이라기 보다 타인에 의해 깨어난 행복했던 한 때에 대한 회상이 아닐까 생각 해 보는 것이다. 결국 또 다른 비즈니스를 시작한 것 같다는 묘한 느낌, 이 느낌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그들이 이야기하는 '비즈니스'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어떤 것을 희생하는 투자의 개념이라면 우리는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다. 유일무이한 나라라고 하지만 이 세계 속 모든 순환 자체가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시간이나 노력을 희생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들어나는가에 따라 우린 속물이 되기도 하고 비속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까. 그녀는 사마리아 여인일 뿐이다. 우리 모두 자신에게 돌을 던지지 못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 중 죄가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예수의 말씀이 유난히 크게 들려온다. 씁쓸하지만 단순히 그것 뿐만은 아닌 다양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며 박범신의 필력은 그것을 극대시킨다. 하지만 그 메시지들이 모두 전달될 수는 없다는 것은 단점이자 한계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앞 선 '고산자', '은교'를 통해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작가에게 이 책은 전작에 비해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 그리고 우리가 비난하고 있는 대상이 과연 그럴만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해 준다는 점은 훌륭하다. 나도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을 속이며 어떤 비즈니스를 계략하고 있진 않은가.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없다는 점, 바로 그것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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